< 타민족 사찰 소개 >
미국내 스리랑카 불교계 집중취재 (1)
글 | 이은주
미국내의 불교사찰 숫자와 미국인 주류사회를 향해 활동하는 스님들의 숫자, 미국내에서 국제연대활동 등을 고려할 때 현재 남방불교계 교세로는 태국이 가장 강하고, 다음으로 스리랑카라고 할 수 있다. 스리랑카 불교의 강점은 영어를 잘하는 스님들이 많다는 데 있다. 미국에 있는 태국 사찰은 130여개로 추정되지만 로스 엔젤레스 DHARMA VIJAYA BUDDHIST VIHARA 주지 피아난다 스님에 의하면 스리랑카도 110여개 정도이다. 이 중에서 남가주에 13개, 북가주까지 합한 켈리포니아에 20개로 집중적으로 가장 많이 있고, 워싱턴 지역에도 6개, 뉴욕, 워싱턴 DC, 플로리다. 아리조나, 텍사스, 콜로라도, 시애틀 등 여러 지역에 있다. 대부분의 스리랑카 절은 뉴욕과 워싱턴 DC 캘리포니아에 몰려 있으며 캘리포니아는 현재도 여전히 오픈 하는 사찰이 있다고 한다.
참고로 태국인구는 대략 7천만이고 스리랑카는 2200만 정도이다. 태국이 영토도 넓고, 인구도 많기 때문에 미국 거주 태국인이 많아 미국에 태국불교 교세가 강하지만 스리랑카 불교는 미국 불교와 인연이 깊다.
미국과 스리랑카 불교와의 인연
스리랑카와 미국의 불교 인연은 미국불교사에 중요하게 소개되는 신지학회( TheosophicalSociety) 중심 인물인 올콧 대령과 헬레나 페트로바 블라바츠카( Helena Petrova Blavatsky-약칭 HPT)의하여 시작되었다. 신지학회는 뉴욕에서 1875년 11월에 창립되었다. 신지학회는 세 가지 목적으로 창립되었다.
인종, 신조, 성性, 신분이나 피부색으로 인한 차별없이 인류의 보편적 형제애의 핵심을 구축한다. 고대와 현대의 종교, 철학, 과학을 연구하며 그런 연구의 중요성을 입증해 보인다. 자연에 대한 설명되지 않은 법칙과 인간에 내재한 심령의 능력을 탐색한다.
올콧 대령과 헬레나 페트로바 블라바츠카는 1879년 인도를 방문하여 신지학회의 발판을 마련한 후에 1880년 5월 17일 스리랑카로 갔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은 5월 25일 갈레의 사원에서 5계 수계를 받았다. 이 날은 미국인이 처음으로 비록 미국 밖인 스리랑카이었지만 공식적으로 5계를 정식으로 받은 날이었다. 올콧 대령은 그 후에도 1882년, 1883년 등 그 후에도 여러 차례 스리랑카를 방문하여 스리랑카 불교계와 협력 관계를 맺으면서 그들을 돕는 활동을 했다. 그는 1889년 수만갈라와 함께 처음으로 불교기를 제작하기도 했다. 또는 그가 쓴 ‘불교교리문답-The Buddhist Catechism’은 여러나라 언어로 번역되었고, 지금도 스리랑카에서 사용되고 있다. 이렇게 미국사람 올콧 대령은 스리랑카 불교계와 깊은 인연을 맺었다. 올콧 대령과 HPT가 맺은 스리랑카 불교계와 맺은 인연은 젊은 스리랑카인 다르마팔라와 깊은 인연을 이어졌다. 그는 1893년 시카고 세계종교회의에 스리랑카 불교 대표로 참가하여 큰 인기를 끌었다. 그는 당시에 불교 대표처럼 활동을 하였다.
이런 인연인지 스리랑카 불교계는 1966년 워싱턴 DC에 남방불교사원으로는 가장 먼저 ( Washington Buddhist Vihara)를 건립하고 미국에서 활동을 시작하였다. 또 2000년 5월 15일에 UN에서 처음 시작한 웨삭법회도 뉴욕에서 활동하는 피야티사 스님의 서원과 노력 그리고 스리랑카 정부가 참여하여 공식적으로 1995년부터 제의하여 시작되었고 그 후에 스리랑카 불교계가 주도하여 성공시켰다. 당시 삼귀의와 독송, 설법은 피아티사 스님이, 기조 연설은 스리랑카에서 출가한 미국인 비구 보디 스님이 하였고, 이 행사는 스리랑카 정부와 승가 주최로 하였으며 스리랑카 유엔대사와 자야코디 불교장관이 참석하였고 많은 태국 유엔대사들이 참가하였다.
미국에서 활동한 네 명의 스리랑카 큰 스님
동부에는 워싱턴 지역을 기반으로 백인들을 지도한 헤네폴레 구나라타나 스님이라면, 서부에는 로스엔젤레스에서 활동하였던 하바나폴라 라타나사나 스님(2000년에 입적)이다. 그는 스리랑카 유엔 대사를 역임하였으며, 미국불교도의회(American Buddhist Congress)의 핵심 멤버였으며, 로스엔젤레스 불교학대학의 학장( College of Buddhist studies)을 역임하였다. ‘아함가마 담마라마 나야카 테로-Pandit Ahangama Dhammarama ‘L.A, Buddhist Vihara’의 주지 스님으로 95세의 노스님이다. 14세 때 출가하여 스리랑카의 위로우디 불교대학을 졸업하신 후 날란다 대학에서 25년간 강의를 하셨고 미국에서 활동한지는 43년이 된다고 한다.
뉴욕에서 활동한 피아티사 스님(몇 년전에 입적)은 뉴욕시 대학에서도 강의도 하고, 뉴욕 원각사 주지였던 법안스님과 비슷한 연배로 법안스님과 매우 좋은 관계로 지냈으며 뉴욕 스리랑카 사찰 건립의 주역이고 뉴욕에서 불교국가들의 연대 활동에 앞장섰다. 이 사찰은 스리랑카 교민들이 많이 찾는 사찰이다.
웨스트 버지니아주에 있는 바바나 소사이어티 (Bhavana Society), 숲속의 수행처에서 수행을 지도하는 헤네폴라 구나라타나( Henepola Gunaratana) 스님은 현재 미국에서 스리랑카 스님을 대표하는 스님인데 세속 나이로 현재 95세이다. 이 스님은 한국에도 여러 차례 초청을 받아 수행 지도를 한 적이 있다. 첫 번째 방문은 1967년, 마지막 방문은 2011년 이다. 이 스님은 한국의 보리수 선원과 서울시 가양동의 홍원사 초청으로 가서 수행지도와 설법을 하였는데 미주현대불교에 오랫동안 팔리어 아함경을 번역하여 연재하였던 최숙희 보살님이 통역을 하였다.
이외에도 L.A.의 DHARMA VIJAYA BUDDHIST VIHARA 주지 ‘ 왈포라 피아난다 ‘ Walpola Piyananda’ 스님도 U.C.L.A.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영어로 쓴 책이“연민”이라는 제목으로 우리나라에 번역되었다.
미국 불교국가 중에서 한국불교계는 스리랑카 불교계와 교류가 가장 많았다고 할 수 있다. 뉴욕에서는 원각사를 이끌던 법안스님과 스리랑카 사찰 주지 피아티사 스님의 친분이 두터웠다. 지금은 두 스님이 모두 입적하였고 이런 교류가 중단되었지만 1980년대 원각사 부처님 오신 날 행사에는 항상 New York Buddhist Vihara 주지 피아티사(Pandit. Kurunegoda Piyatisa) 스님이 축사를 하였고, 법안스님이 강의하던 뉴욕시의 New School에서 불교 강의를 1985년 부터는 피아티사 스님이 법안스님 후임으로 되였다. 또 뉴욕 스리랑카 불교계는 성해 스님이 이끄는 맨하탄 국제봉축 퍼레이드에도 열성적으로 참가하였다. 로스 엔젤레스에서도 관음사 주지 스님은 하바나폴라 라타나사나 스님과 절친하게 지냈고, 미국불교도의회(American Buddhist Congress) 활동도 함께 하였다.
미국에는 한국과 인연깊은 두 명의 스리랑카 스님이 있다
혜월스님은 로스 엔젤레스 한국불교인에게는 널리 알려진 스님이다. 혜월스님은 한국의 순천 송광사에서 구산스님의 지도하에 1983년부터 1984년 까지 수행을 한 이력이 있다. 미국에는 로스 엔젤레스 관음사(당시 주지 도안스님)에서 1990년부터 3년동안 포교활동을 하였다. 그리고 2006년에 L.A. 근교의 Pearblosom에 현재의 혜월정사를 건립하고 수행과 포교를 하면서 한국불교계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또한 스님은 반테시라 스님이다. 반테시라 스님은 연세대학교에서 한국어와 사회복지학을 공부하였고, 진각종에서 세운 위덕대학교에서 2006년 부터 2015년까지 석.박사 공부도 하였는데, 석사를 받은 후 부터는 강의를 수 년 동안 하였다. 미후 2015년 초에 미국에 와서 LA의DHARMA VIJAYA BUDDHIST VIHARA 2019년 까지 포교활동을 하였다. 그 후 2020년에 콜로라도 사찰로 이동하여 덴버 스리랑카 사찰에서 활동하고 있다.
Mindfulness Meditation Center- L. A. Buddhist Vihara의
남방불교 최대 행사 ‘카티나-Kathina’ 행사 소개
Mindfulness Meditation Cente- L.A. Buddhist Vihara는 웨스트 코비나에 위치하고 있다. 웨스트 코비나는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카운티의 교외 도시로, 다운타운 로스앤젤레스에서 동쪽으로 20마일정도 떨어져 있으며 그레이터 로스앤젤레스의 일부이다. 도시의 인구는 2010년 인구 조사에서 106,098명으로 집계되었다.
2021년 10월 31일 약 40여명의 스님들과 약 200여명의 신도들이 모여남방불교 최대 행사 ‘카티나-Kathina’ 행사를 진행하였다. 이 카티나 행사는 북방불교에서 중시하는 부처님 오신 날 행사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행사이다. 이날 카티나 의식이 영어로도 진행이 되었기 때문에 스리랑카 사람들 뿐만 아니라 미국인들, 중국인들, 태국인 등 다국적인 불교인들이 모였다.
‘카티나-Kathina’는 팔리어로 (Kaṭhina Cīvara Puja 로 알려짐), 캄보디아, 라오스, 말레이시아, 미얀마, 스리랑카, 인도, 태국에서 3개월간의 우기 수행인 하안거(夏安居) 왔사(Vassa)가 끝날 때 열리는 남방불교 최대행사이다. 스리랑카말로 왔(Vas)라고 하는 3개월의 수행 기간을 마치고 비의 기간을 의미하는 팔리(Pali)에서 왓사나(Vassana)라고 불리는 수행자들에게 제공되는 특별한 승복(Kathina civara 또는 Robes)을 의미한다.
Kathina는 '단단함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카티나- Kathina’ 로브를 제공하는 것이 견고한 좋은 공덕을 얻는 데 도움이 된다고 믿는 이유에서 비롯되었다.
2500년의 긴 전통을 가지고 있는 카티나 의식은 일년에 한 번 공덕을 쌓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믿는 남방불교계에서 지켜온 승가 전통이다. 전설에 따르면 30명의 비구들이 고타마 붓다와 와사(Vassa)를 함께 보낼 생각으로 여행을 하고 있었다.그러나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사케타에 멈춰야 했다. 와사(Vassa)에 대한 부처의 지침에 따르면 수행승은 여행 중에 의도치 않게 농작물 또는 곤충에 해를 끼칠 수 있으므로 장마철에 여행을 금한다. 비구들은 갈등 없이 함께 시간을 보내고 법을 수행했고, 이후 부처님은 나눔과 관용을 실천하는 방법을 보여준 승려들에게 상을 주었다. 한 평신도가 부처에게 천 조각을 기증했기 때문에, 부처는 이제 조각을 비구들에게 주며 그들에게 그것을 승복으로 만든 다음 그들 중 한 사람에게 선물로 바치라고 말했다.
원래의 ‘카티나Kathina’라는 것은 불교 승려의 예복을 자르고 길이와 너비를 측정하는 데 사용되는 나무 프레임을 가리키는 팔리어 단어이다. 카티나 로브가 특별한 이유는 카티나 의복은 3개월의 와사(Vassa) 기간 동안 불교 승려들이 명상과 도덕적 행위의 엄격한 수행을 통해 자신을 정화하는 데 완전히 헌신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영성이 강하고 수도생활에 헌신한 승려에게 바치는 예복은 공덕이나 선업을 얻는데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다. 카티나 승복 (Robes)은허리에서 무릎까지 감싸는 옷,어깨에서 거의 발목까지 착용하는 긴 로브, 의식 동안 왼쪽 어깨에 걸었던 긴 옷등 3개로 구성되어 있다.
카티나 기간 동안 외우는 주문 (Chant)중 하나는 카티나를 수행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공로의 위대함을 찬양한다. 단단한 흙이나 단단한 돌이나 다이아몬드도 때로 흔들리고 부서질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카티나 공양으로 얻은 공덕은 궁극적인 불교 열반의 목표를 달성하기 전까지는 그 무엇으로도 없앨 수 없다. 카티나 공양은 무량한 공덕이 따른다고 강조한 해석이다. 카티나 의식에는 지정된 사원으로 가는 미리 정해진 경로를 따라 새 예복을 들고 행진하는 경우가 많으며 때로는 이 사원의승려가 인도하기도 한다. 의식의 구체적인 날짜는 없으며 개별 사찰의 준비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사순절 ( Buddhist Lent)이 끝난 후 1개월 이내에 의식을 거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