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방세계 >
틱냑한 스님 베트남에서 95세로 입적
글 | 편집부
세계적인 불교 지도자이자 평화 운동가인 틱낫한 스님이
1월 22일 베트남 중부 도시인 후에의 뚜 히에우 사원에서 입적했다. 그가 프랑스에 세운 불교 명상공동체 플럼빌리지 사원은 틱낫한 스님이 이날 자정에 입적했다고 고인의 트위터를 통해 밝혔다. 세속 나이로 95세이다.
베트남 출신인 틱낫한 스님은 시인이자 교사, 평화 운동가로,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와 함께 불교계에 큰 영향을 끼치며 세계불교계를 이끌어 왔다. 고인은 1926년에 태어나 23세의 나이에 승려가 됐다. 그는 1961년 틱냑한 미국에 왔고 프린스턴대학교에서 종교를 공부하였다.
지난 1963년 고국에 돌아온 뒤 반전 운동에 참여했다가 남베트남 정부에 의해 추방당했다. 1982년 프랑스 보르도에 명상 공동체 ‘플럼 빌리지(Plum Village-자두마을)’를 세우고 다양한 활동을 통해 평화운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주로 프랑스에 거주하면서 미국,한국 등 여러나라에 초청을 받아 강연회를 가졌다. 불교 원리를 정치·사회 개혁에 적용하는 참여불교 운동을 전개하며 미국을 비롯하여 여러 나라에 영향을 끼쳤는데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미국의 대표적인 참여불교 단체인 ‘Buddhist Peace Frllowship’는 틱냑한 스님의 큰 영향을 받았다.
미국에는 켈리포니아주에 ‘deer park, 뉴욕에는 Blue Cliff Monastery(벽암사) 미시시피에는 Magnolia Grove Monastery 등
세 개의 명상수련원을 설립하였다. 스님은 생전에 서양의 불교 포교를 위해 이 일을 담당한 스님들의 교육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기울였다. 스님들에게 권위의식을 없애고, 겸손할 것을 강조하였다. 그가 설립한 뉴욕의 Blue Cliff Monastery 행사에 가보면 수도원 앞에서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인사하면서 맞이하는 일을 신도가 아닌 스님이 하고, 또 점심 공양시간에 참가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일에 스님들이 음식담당하는 신도들과 함께 한다. 이러한 모습은 어느 나라 불교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장면이다. 또 불교를 서양인에 맞도록 변용에 많은 노력을 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서양인에 맞는 그의 걷기명상은 널리 알려졌다. 그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PARALLAX PRESS’출판사를 통해 많은 저서를 출판하였다.
고인은 생전에 미국의 인권 운동가인 고(故) 마틴 루서 킹 목사와 만나 갈등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프랑스에 플럼빌리지 사원을 세운 뒤 줄곧 마음의 수련과 명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늘상 "고통을 받는 법을 알게 되면 고통을 줄일 수 있으며, 고통을 이용해 행복과 환희를 느낄 수 있다"고 설파해왔다.
고인은 2014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말을 할 수 없게 되자 여생을 고향에서 보내기 위해 2018년 베트남으로 돌아왔다. 그는 사후에 시신을 화장해서 전세계에 있는 플럼빌리지 명상 산책로에 뿌려달라고 유언을 남겼다. 생전에 한국을 방문했던 틱낫한 스님은 국내에도 '평화로움', '틱낫한 명상', '마음에는 평화 얼굴에는 미소' 등 다수의 책이 소개됐다.
틱낫한 스님의 열반 소식이 전해지자 달라이 라마는 고인의 업적을 기리며 추모 메시지를 전했다.
달라이 라마는 고인의 트위터에 공유된 메시지를 통해 "나의 친구이며 영적 형제"라고 지칭했다.
그러면서 "마음챙김'(mindfulness) 명상과 자비로움이 내면의 안정에 도움을 주고, 마음의 평화를 추구함으로써 세계 평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함으로써 진실로 의미있는 삶을 살았다"고 말했다.
아울러 틱낫한 스님이 생전에 베트남전을 반대했고 킹 목사의 인권 운동을 지지한 점도 높이 평가했다.
이어 "그에게 경의를 표하는 최선의 방법은 세계 평화를 이루기 위한 그의 활동을 이어나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현지매체인 VN익스프레스는 전했다.
전세계 유수의 언론사들도 틱낫한 스님의 별세 소식을 전하면서 애도의 뜻을 전했다.
AFP통신은 고인을 "서구에 마음챙김을 소개했다"고 전했고 뉴욕타임스는 "전세계에 큰 영향을 미친 승려"라고 평가했다.
이밖에 CNN은 "평화 운동가로서 베트남전에 반대하는 운동을 주도했다"고 전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고인의 장례는 뚜 히에우 사원에서 일주일간 조용하고 평화로운 방식으로 진행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