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민족 사찰 소개 >
미국내 스리랑카 불교계 집중취재 (5)
뉴욕 퀸즈 빌리지 스리랑카 사찰
New York Buddhist Vihara
글 | 손의진
2월이 끝나갈 어느 무렵의 화요일 오전, 퀸즈 빌리지에 위치한 스리랑카 사찰 New York Buddhist Vihara 에 방문하였다. 7번 종점인 플러싱 메인 역에서도 차로 20분간 더 동쪽으로 들어간, 지하철만으로는 조금 접근이 힘든 커닝험 파크 근처에 위치하였다 (몇 개의 버스가 운행된다).
사찰 외관에 흰색 좌상이 자리잡고 있었지만 주변에 다른 주거지역과는 조금 떨어져있어 조용하고,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쉽게 지나칠 수 있을 법하게 눈에 띄지 않았다. 1991년부터 2000년까지 봉사자들에 의해 총 9년이라는긴 시간 동안 일반적인 스리랑카 사찰 형식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사찰 자체는 1981년부터 하우스 렌탈 방식으로 존재했다고 하는데 본격적으로 현재 위치에서 운영한 것은 1993년부터, 그리고 사찰이 완공된 것은 2000년이라고 한다.
주황색 가사를 입은 한 비구 스님께서 식당으로 이어진 입구로 안내해 주셨다. 곧 사찰의 주지스님이신 Aluthgama Dhammajothi Thero (이하 알룻가마 스님)을 만나 뵐 수 있었는데 사찰의 이곳 저곳을 안내해주시며 사찰의 역사와 스님들에 대해서 설명해주셨다.
신발을 벗고 주방을 지나 본격적으로 실내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었던 것은 앉은 사람만한 크기의 백색 파고다와 그를 둘러싼 벽화였다. 벽화는 정반왕의 딸이라고 알려진 ---비구니 스님이 부처님께서 밑에서 깨달으신 바로 그 보리수 나무의 종자를 배를 타고 스리랑카로 들여왔던 역사를 표현하고 있었다. 알룻가마 스님께서는 곧 우리를 2층 법당으로 안내해 주셨는데 올라가자마자 계단에서 햇빛을 받고 무럭무럭 자라는 바로 그 보리수 나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건물 전체는 돌 바닥으로 되어있는데 어찌된 일인지 차갑지 않고 따뜻했다. 한국의 바닥 난방과 같이 데운 물이 지나가는 파이프가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주지스님께서는 맨발로 다니셨고 다른 스님들도 주로 양말 한 켤례나 샌들을 신고 계신 것을 볼 수 있었다.
파고다와 벽화를 따라 올라 2층으로 올라가면 건물 전체 넓이의 길고 넓은 법당이 위치해있었다. 부처님과 그 옆에 앉아계신 이 사찰의 초대 주지스님이신 파야티샤 스님의 상, 그리고 주지스님께 각각 삼배 씩 드리고 나서 본격적으로 사찰과 상주하시는 스님들에 관련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피야티샤 스님은 UN에서 Vesak 행사가 할 수 있도록 처음으로 제안하고, 이런 노력이 결실을 맺어 1999년 제 54차 유엔총회에서 5월달 보름날을 ‘유엔 웨삭의 날’로 가결되었다. 2019년 이 뉴욕 비하라에서 입적한 피야티샤 스님은 뉴욕에서 활동하던 법안스님과는 아주 절친이었으며, 현 뉴져지 혜안정사가 개원식을 할때는 축사를 하기도 한 스리랑카 불교계의 큰 스님이었다. 스님의 행적은 사찰 곳곳에 붙어있는 사진이나 동상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사찰에는 다양한 연령대를 위한 프로그램들이 시행되고 있었는데 매주 수요일 저녁 모든 사람들을 위한 메디테이션, 매주 토요일 어린이 법회, 그리고 한달에 한번씩 보름달이 뜨는 날에 법회와 토론이 시행되고 있다고 한다. 일요일에는 댄스교실, 무술, 그리고 싱갈라 (Singhala - 스리랑카 언어) 교실 등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도 시행되고 있으며 경전공부를 하는 청년부도 활성화 되어있다고 한다. 알룻가마 주지스님께서는 근처 퀸즈의 St. John’s University 와 뉴저지 Union County College 에 직접 또는 줌으로 강의도 나가신다고 한다.
다양한 연령대와 인종이 모두 절을 방문한다고 하며 매번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인원은 코로나 이전에는 20 ~ 25명 사이, 코로나 시대인 지금은 10 ~ 15명 정도라고 한다. 코로나 상황을 제외하면 매년 신도수는 증가추세에 있고 미국에서의 사찰 운영이나 신도들의 성향이 특별히 다른거나 힘든 점은 없다고 하셨다.
현재는 총 여섯 분의 비구스님이 상주하고 있는데 각자 맡은 일과 수행을 하며 개인방에서 생활한다. 한국 절과 조금 다르다고 느꼈던 점은 무조건 네 명 이상의 비구나 비구니가 함께 거주해야 승가가 형성되는데 남 녀는 철저하게 구분되며 비구승과 비구니승은 같은 사찰에 상주할 수 없다. 이렇게 대중 생활이 기본으로 전제되어 있지만 자유도 또한 있어 보였다. 예를 들어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과 침소에 드는 시간이 각각 다를 수 있으며 (하지만 늦어도 10시에는 모두 취침에 든다고 한다) 아침 예불이나 수행을 대중 전체가 꼭 따라야하는 특정한 시간 없이 각자 하신다고 한다.
스님들께서는 아침 5시 반에서 6시 사이에 기상하여 대부분 신도들이 매일 준비해드리는 아침, 점심 공양을 한다. 가끔씩은 초대를 받아서 멀리 신도의 집이나 식당에서 외식을 할 때도 있는데 이동은 스님들이 직접 차를 운전하거나 신도들이 불러주는 우버 등을 이용 한다. 음식이 없으면 주로 탁발을 나가고 아주 소수의 경우로 직접 요리를 하는 때도 있다.
규모가 있는 사찰이기에 따로 행자 교육 등도 하는지 여쭤보았는데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설 부족, 즉 행자가 상주할 방이 따로 없으므로 한 번도 시행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현재 뉴욕에 위치한 스리랑카 사찰은 총 네 곳으로 이 곳 퀸즈 위치한 절 이외에 롱아일랜드에 한 곳, 그리고 스테이튼 아일랜드에 두 곳이 더 있다고 한다. 미동부에 위치한 모든 스리랑카 사찰은 비구 승가이며 뉴욕 이외에 뉴저지에 세 곳, 보스턴과 코네티컷에 각각 한 곳씩 존재한다고 한다 (비구니 승가는 다른 지역에 존재함).
이야기를 모두 들은 후 스님께서는 지하에 문화교실이 이루어지는 스투디오와 정식으로 공공 도서관으로 등록된 도서관 등을 보여주셨다. 신도들과 일반인들이 이 도서관을 잘 활용한다고 한다.
마지막으로는 마침 보스턴에서 방문하신 스님을 포함해 총 네분의 스님의 사진을 파고다와 벽화를 배경으로 담을 수 있었다.
사찰 곳곳에서 이 곳을 아끼는 여러 따뜻한 손들을 느낄 수 있었다. 국교가 불교인 나라의 사찰이기에 그런 것일까? 신도와 스님들의 관계도 아주 정돈되고 조화로워 보였고 수행자에 대한 공경이 묵묵하게 배여서 품어져 나오는 듯 했다. Blood Drive 나 스리랑카 본국에 다양한 구호물품과 기금을 전달해주는 등 다양한 사회활동들도 주도하여 그 지역에서 중요한 커뮤니티로서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한국에서나 미국 이민사회에서는 주로 개신교가 그런 활동들에 적극적인 참여를 하고 절들은 속세와는 다소 구분되고 멀어진다는 관념이 있는데 이 곳은 철저하게 사회와 공존하여 어느 대중들에게나 쉽게 접근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유엔 웨삭의날 제정에 성사되는데에는 뉴욕에 거주하시며 불사를 하고 계신 피아티샤 스님의 큰 서원과 끊임없는 노력, 그리고 스리랑카 정부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웨삭을 유엔의 공휴일로 제정하고자 피아티사 스님을 위시한 불교지도자들이 모여 처음 제의문을 작성한 것은 1995년이었다. 이 제의문은 클리턴 대통령, 당시의 뉴욕 주지사에게 전달되었다. 1998년 11월 9일에서 14일에 걸쳐 콜롬보에서 열렸던 국제불교회의에 피아티사 스님은 이 건의를 다시 상정하였다. 이 회에서 상정된 17가지 건의안 중 제일 첫 번째가 웨삭을 유엔의 공휴일로 제정하는 것이었다.
1999년 12월 13일, 54회 유엔 총회에서 웨삭의 날 5월 보름날이 유엔본부 및 유엔에 근무하는 관리들의 공휴일로 만장일치 승인, 공포되었다. 유엔의 승인을 얻기 위해 스리랑카 외무장관은 특히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대표와 유대를 갖고 일했으며, 불교국가 뿐 아니라 불교 신자가 전혀 없는 국가의 대표들도 이 안건의 승인을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었다.
21422 Spencer Ave, Queens Village, NY 11427
(718) 468-42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