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현대불교 홈 페이지 방문을 환영합니다.
모든 것은 변한다, 부처님의 말씀이 전래되어 온 과정 역시 예외는 아니다. 구전에서 나무껍질에 새겨지고, 종이 위에 붓과 펜으로 옮겨지다가 인쇄술의 발달로 불교문화는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을 해왔다. 21세기에 들어와 인터넷이 보급되어 세계가 하나로 연결된 시대에서 인류의 소통방식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속도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여기에 부응하고자 ‘미주현대불교’ 웹사이트를 개설함에 있어, 미주현대불교의 시작부터 지금까지의 발자취를 간략하게 더듬어 보고자 한다
김형근 미주현대불교 발행인의 회고
1984년 뉴욕에 와서 당시 맨하탄에 있던 원각사에서 법안스님의 배려로 1986년부터 절에 살게 되었다. 당시 원각사에는 법안, 혜관, 수경, 관성스님 등이 살던 시기였다. 지금은 혜관, 법안스님은 입적을 하였고, 새만금 간척사업을 반대하는 삼보일배로 한국사회에 널리 알려진 수경스님은 한국에 있다. 한국에서 할머니 따라서 가끔 절에 다녔던 나는 뉴욕에 와 절에 살면서 절 일을 도우면서 불교와 인연이 깊어지고, 불교에 대해 관심이 깊어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금생에서 불교와 인연을 단단히하고 싶어서 스님도 아니고, 불교학을 공부한적도 없는 무명 거사가 택한 일은 잡지 창간이었다. 당시 33세 였다. 그 당시 미주한국불교계는 언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한국의 불교신문을 받아서 부정기적으로 발행하는 불교신문이 있었지만 언론으로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한 상태였고, 미주불교계에 관한 내용은 너무 미약했다. 이런 상태에서 잡지를 만들려고 하니까 자료가 없기 때문에 지도도 만들고, 없던 길을 만들면서 가는 형국이었다. 하와이, 시애틀, 캘리포니아, 시카고 등을 방문하면서 스님들께 인사를 드리고 잡지 창간을 알렸다. 이런 방문을 통해서 한국불교 사찰 주소록을 만들고, 신행단체도 파악했다. 무명의 젊은 사람이 잡지를 한다고 하니까 주위의 반응은 뚜렷하게 갈리었다. 왜 어려운 일을 하느냐고 우려하는 분들도 많았다. 그러나 법안스님과 시카고 불타사 홍선스님께서는 의미있는 일이라며 격려를 해 주셨고, 남가주불교청년회에서는 환영해 주었으며, 필라델피아 선우스님은 적극 호응해 주었다. 뉴욕의 곽종진 거사님을을 발행인으로 모시고 출발했다.
언론과 편집 경험도 없고, 주위에 그런 사람들도 별로 없어서 처음에는 원고를 모아 한국으로 보내서 편집을 하고 인쇄를 하여서 비행기로 가져와서 배포하였다. 1989년 10.11월호 창간호를 시작으로 격월간으로 세 번을 발행한 다음에 4호 부터는 뉴욕에서 인쇄를 하여 배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니까 1989년 말부터 사찰, 신행단체, 스님과 신자 등의 활동 사항 등 미주한국불교 역사를 기록하고, 지난 간 역사를 복원하는 일을 한 것이다. 이렇게 시작을 하니 여러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취재기자 혹은 투고자로 열성적으로 전 미국의 주류사회인 백인불교, 티베트불교, 중국불교, 일본불교, 스리랑카와 태국 등 남방불교 사찰과 행사장을 찾아가 취재를 하여 보도를 하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번역자도 나타났고 미국에 거주하는 사람들 위주로 필진도 갖추었다. 미주현대불교가 출발하면서 부터 미국의 뉴욕, 캘리포니아, 하와이, 워싱턴 DC, 시카고, 텍사스 , 시애틀, 플로리다 등 전 지역이 서로 연결되었다. 그리고 미주한국불교 현황이 서서히 파악되었다. 이 모든 일들은 역량없는 내 개인이 한 것이 아니고 부처님의 가피가 있었고,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진행되었다.
지금으로 부터 약 180년전인 1844년도에 미국에 불교가 소개되었다는 것이 미국불교사 학자의 주장이다. 그리고 1960년대 비트세대와 히피세대들이 미국역사의 전면에 나선 시점에 샌프란시스코에서 부터 불교 바람이 불기 시작하여 2010년까지 약 50년동안 강풍이 되고 태풍으로 진화되어 전미국에서 퍼져 나갔다. 미주현대불교가 1989년 말에 창간 되었는데 이 시기는 미국불교가 강풍으로 불고 있을 때였다. 그러나 미주한국사회는 마치 동굴속에 있는 것 처럼, 미국 주류사회의 이런 움직임을 아무도 몰랐다.
미주현대불교는 이런 시기에 창간되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미국불교역사와 미국불교현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지 못해서 참으로 답답했다. 이것을 알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창간 7년이 되도록 미국불교사와 미국불교현황에 관해 잘 아는 사람은 만날 수 없었다. 당시 미국에서 불교학을 강의하는 교수들도 미국불교를 강의하는 것이 아니었다. 또 미국불교 현장을 많이 가보지 못하고, 미국이 워낙 넚기 때문에 미국불교 현황을 자세하게 파악하지는 못했다. 즉 미국불교 전문가라고 할 만한 사람을 만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1996년 당시에 미국불교의 최고의 마당발인 삼뱔라출판사 샘 버콜즈를 만나면서 이 문제가 많이 해결되었다. 미국불교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서양에서 가장 큰 불교출판사인 삼발라 출판사 버콜즈 사장이 미국불교계 중요 인사들을 소개해 주었으며 또 배려로 삼발라에서 출판된 < 백조가 호수에 온 이야기-How the swans came to the lake>를 김지영씨가 번역하여 미주현대불교에소개하면서 미국불교사가 한국불교계에 소개되기 시작하고 중요한 사람들과 연결되기 시작하였다. 이 싯점부터 미국불교 역사와 현황을 미주현대불교를 통해 한국불교계에 본격적으로 소개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 후로 미국불교사에 관한 중요한 책들을 번역하여 단행본으로 한국에서 출판하였다. 그 책들은 ‘이야기 미국불교사- 백조가 호수에 온 이야기-How the swans came to the lake’, ‘미국과 불교의 만남-The American Encounter with Buddhism’. ‘미국불교-Buddhism in America’ 이다. 이 외에도 뉴욕지역 최대사찰인 장엄사를 건립한 중국인 심가정 거사 중국어 저서인 ‘금강경의 연구’를 임우재씨가 번역하여 연재하면서 구독자들의 엄청난 관심을 이끌었다. 또 ‘탁냑한 스님의 반야심경’, 샴발라센터와 나루파대학교 설립자인 쵸감트럼프 저서 ‘성스러운 전사-The Sacred path of the Warrior’ 등 영어로 된 많은 책을 여러 사람들이 한글로 번역하여 미주현대불교에 연재하였다. 또 한국에서 활동하는 임도문, 강청화, 법안(실천승가회), 법륜, 학담, 용타, 여연, 정우, 한국에서 처음으로 연꽃보급한 혜민, 연화도로 유명한 수증, 강화도 성원, 도선사 혜자, 각산, 선엽, 문광스님등 20여명의 스님들을 초청하여 대법회를 하면서 미국과 한국불교의 교류를 꾸준하게 하였다. 또 이중표 교수를 초청하여 불교강의를 여러 지역에서 했다. 2003년부터 2017년까지는 워싱턴 디시의 수생식물원에서 식물원과 공동으로 ‘연꽃과 아시아 문화축제’ 행사를 주최하여 한국의 연꽃 문화를 워싱턴 디시를 중심으로 알렸다. 또 한국문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고려사경과 고려불화를 알리기 위한 행사도 2011년 이후부터 한국에서 김경호, 조이락 작가들을 초청하여 뉴욕에서 여러 차례 했다. 이러한 행사 외에도 2004년에는 뉴욕뿐만 아니라, 캘리포니아, 시카고, 하와이, 텍사스, 그리고 한국에서 미주한국불교계에 중요한 역할을 한 스님들과 신자 7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불교 미주전법 40주년 기념행사’를 미주현대불교가 주관하였다. 전미주 한국불교계에서 스님과 불교신행 단체 대표들이 참석한 것은 이 행사가 유일하다. 그 10년 뒤인 2013년 뉴욕 불광선원에서 ‘미동부해외특별교구와 미주현대불교가 공동주최하여 ‘미주한국불교의 미래방향을 모색하는 세미나’를 가졌다.
이런 의미있는 행사 외에도 우리 민족의 평화와 통일에 관한 문제에도 미주현대불교는 불교계에서 일정한 역할을 하였다. 1991년 10월에 로스 엔젤레스에서 열린 ‘조국 통일기원 불교도 합동법회’ 모임을 ‘조선불교도 연맹’에 처음으로 제안하여 회신을 받고, 북한 스님들의 미국 입국 비자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미주현대불교 사람들이 큰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1999년에 UN/DPI NGO에 가입하여 불교국제활동가를 양성하기 위해 이 프로그램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에게 재정지원을 하였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미주현대불교에서는 미주한국불교사에 관한 아주 중요한 사진과 자료, 책, 미국에서 활동한 스님들의 작품 등을 많이 확보하고 있다.
변화없이 발전없다. No Change, NO progress. 제 2 창간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한 세대가 흐르는 사이에 미주현대불교와 좋은 인연을 맺은 사람들과 미국불교계의 중요한 사람들이 세연을 마치고 저 세상으로 간 사람들이 많고, 나이가 들어 은퇴하면서 활동을 중단하게 되는 사람들 또한 많아졌다. 현재 미주한국불교계는 신자가 고령화되고, 신도수가 감소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또 세상은 아날로그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진화를 하였다. 그리고 지금은 유투브가 대세인 세상이다. 이런 변화를 실감하면서 미주현대불교도 진작부터 이런 변화에 적응하면서 웹싸이트를 구축하려고 했지만 그동안 자료를 전산화하는 비용과 이것을 관리할 사람의 인건비 등 때문에 차일피일 미루어지게 되었다. 대신 보스톤 거주 무상각 최혜현보살의 헌신으로 불교계 카페로는 자랑할 만한 인터넷카페를 만들었다. 그래서 인쇄로 발행된 내용이 ‘Daum’의 인텃네 카페에 올려지고 있으나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아 항상 고민을 안고 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스님, 그리고 신심 독독한 불교인들의 행적을 잘 기록하여 잡지에 올렸지만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잡지에 올린 내용들이 잘 뜨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 분들을 널리 알려야 하는 것은 미주현대불교의 중요한 일이다.
이제 미주현대불교는 운영이 너무 어렵고 누적된 부채도 많다. 인터넷으로 운영하는 것도 불교계 사정으로는 쉽지가 않다. 한국불교계에서도 미국불교계에서도 인터넷 언론은 운영이 잘되지 않고 있다. 인쇄 잡지도 어렵고, 인터넷으로 전환하여도 역시 어려운 것이 미국과 한국불교계 사정이다. 미주현대불교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은 연말이나 연초에 잡지가 계속 발행되는지 묻는다. 어쨌든 인쇄 잡지 발행은 이제 인쇄비용과 발송비용 때문에 현 상태로는 어렵지만 급작스럽게 인터넷으로 전환하여도 운영은 더욱 어려워 질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늦었지만 앞으로 디지털로 가야하는 것은 명확한 방향이다.
주변의 이러한 조건과 현재의 잡지사 재정 사정으로는 웹 싸이트 구축이 어려워 고민만 하고 있던 중에 다행히 웹싸이트 일을 오랜동안 한 몽구 거사님과 인연이 되어 이제 웹싸이트 작업을 시작하려 한다. 큰변화이다. 주변에서 시대에 맞추어 많은 단체들이 웹 싸이트를 만들며 변화를 하고 진화하는 것을 큰 숲에 불이 난 것처럼 뚜렷하게 보면서도 미주현대불교는 하지 못했다. 많이 늦었지만 미주현대불교 웹 싸이트 구축 작업은 제 2의 창간작업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미주현대불교에 보도된 내용이 다 올려지고, 나아가 이 작업을 깃점으로 한국불교계에 활력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