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말한다, “한민족은 단군의 자손이다”라고.
과연 그러한가? 단군이란 어떤 존재인가? 단군 신화가 100% 역사적 사실이라 하더라도 자연과학적으로 단군 신화를 고찰할 때, 단군은 왕이다. 왕이란 고대 국가의 성립 시기에 국가 규모의 전쟁을 일으켜 싸움을 잘 했기 때문에 국가를 세우고 왕권(王權)을 얻게 되어, 99.99% 이상의 백성을 다스리고 착취하게 된 존재를 말한다. 착취의 정도와 규모가 달랐을 뿐 왕이나 귀족이 백성을 착취하지 않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또한 단군 신화가 몽고 제국과의 전쟁에 고려라는 국가의 민초(民草)들을 동원할 필요성에서 나온 신화라는 것도 잊지 말라.
모든 신화는 민권(民權) 찬탈(簒奪)의 역사이다. 우리가 신화를 신화로서 알아차리지 않고, 신화에 취해 있는 순간, 우리의 권리는 사라진다. 단군 신화에 따르면 이미 단군도 환웅도 아닌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곰족과 호랑이족이 있었고, 이들을 다 제압한 압도적인 무력을 갖춘 환웅이 있었으며, 환웅과 웅녀 사이에 태어난 왕이 단군이다. 단군이 한민족을 낳은 것이 아니다. 단군은 한민족을 착취한 수많은 왕들 중 하나였을 뿐이다. 우리가 단군의 자손일 확률은 0.01%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곰족이나 호랑이 족, 또는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이라는, 착취당하던 사람들의 자손일 확률은 99.99% 이상이다. 수렵 채취 경제 시대에도 야만적 살육이 있었을 것이지만, 농경 시대 이후는 잉여 생산물을 독점하기 위한 대규모 살육이 시작되는 아수라장 전쟁의 시대였고, 싸움 잘하는 사람이 왕과 귀족이 되었음을 잊지 말라( https://cafe.daum.net/vipassana/30sN/650 , https://cafe.naver.com/maljjang2/1098703 ).
혹자(或者)는 말한다. 역사는 현재의 민주주의 관점으로 보는 게 아니라고. 이런 사람은 역사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과 역사에 대한 평가를 혼동하고 있다. 역사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은 조선조를 성리학의 관점으로 보는 게 아니다. 조선조에서 성리학이 실제로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최대한 사실 그대로 파악하는 것이 역사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송자’라고 불리는 우암 송시열이 편협한 성리학적 사관에 물들어 백성을 착취한 지배층이었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것이 역사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퇴* **과 율* **도, 심지어 실학자들 대부분도, 이런 세습적 신분제를 당연시하는 관습에 물들어 있는 기생충들이었을 뿐이라는 것을 직시하는 것이 역사를 잊지 않는 것이다.
역사를 현대의 관점에서 평가하는 게 아니라고?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다. 현재의 우리 입장을 빼고 역사를 볼 가치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리고 현재의 우리에게 진리인 것 대부분은 고대의 깨어 있는 지성인들에게도 진리였다. 사민평등(四民平等)은 현대인의 관점일 뿐이라고? 2천 5백년 전에 인도의 사성계급(四姓階級)이란 관념이 허구임을 직시한 부처님과 그 제자들은 사람도 아닌가?─아니면 그들만이 사람[살ᄋᆞᆷ]이 살아 있다[살/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 유일한 사람[살앎]들이었는가?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다’는 만적의 외침이 들리지 않는가?
다만 개인간의 무력의 차이나 개인 병기의 차이, 지도력의 차이가 전쟁과 싸움의 승패를 첨예하게 가르는 고대 과학의 단계에서는, 왕조 국가 체제가 전쟁을 통해 대부분의 국가가 생성되는 방식이었고, 정권을 잡은 권력자는 민권 찬탈을 정당화하는 용비어천가를 부르기 마련이라는 것이 역사적 사실임을 잊지 말아야 겠다.
적어도 99.99%의 우리는 단군의 자손이 아니다. 우리가 단군의 자손일 가능성은 0.01%도 되지 않는다. 우리는 저 무지렁이 백성, 민초(民草)였고, 천민이었고, 노예였고, 학대받고 착취당했던 피지배계층이었을 가능성이 99.99% 이상은 된다. 우리는 역사를 바라볼 때 우리였을 가능성이 많은 사람의 입장과 삶을 보아야 한다. 그것이 권리 주장의 오랜 투쟁을 통해 조금이나마 마련한 최소한의 우리의 권리를 지키는 유일한 길이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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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파란연꽃 작성시간 21.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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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금바위 작성시간 21.06.09 글은 사실을 기록하여야합니다
그당시에 혜공님도 금바위도 없었다고
보아야 할터인데 마치 당시에 살고 보았던것처럼
결론을 내린다면 여러가지로 불편한 일이 발생할것입니다
다시한번 한국의 고대역사를 열람하고 과연 혜공님의 관점이 옳기만 한가?
증명 못하는 글은 수정 되어져야 하던가 평가되어져야 할것입니다
적어도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을 30년이상 참구하여 보시기를
권합니다 그리고 불법도 50년정도 십신 십주 십행 십회향 십지 등각 묘각
52단계를 공부하고 나의 발걸음은 어느 단계에 있는가?
누구나 자신의 위치와 단계를 가늠하여 봄이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