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각, 명상, 선
1. 생각,
불교에서는 생각을 망상이란 규정한다.
왜냐하면 생각나는 대로
현상의 경계만 따라 조차 가다보면
그 실체가 없는 생각에 괴로워 허덕이기 때문이다.
경계란, 앞에 나타나는 형상으로서
자기 근본 실체를 보지 못하고
마음 일어나는 대로
생각 따라 마음만 움직이기 때문에
이러한 마음작용이 괴로움의 원인이 되기에
망상이라 규정짓는 것이다.
명상,
명상이나 사색은
물체의 근본이나 생각의 실체를
고요히 추구하며 결론을 지으나
자기의 본질과 하나가 되어
전체적으로 승화되지 않는 한
생각하는 갈대에서 벗어나지를 못한다.
2. 선,
선을 생각이나 명상과 다르게 구별 하는 것은,
명상이 고요한 상념의 추구라고 할 것 같으면
선은 고요한 상념에서 벗어나
활빨발한 자기 주인공의 실체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 선은,
마음 작용을 쉬고
그 절멸한 곳에 고요히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자기 실체화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부정적인 표현이 많다.
이의 부정은
실체가 없는 자기 마음모양을 부정하는 것뿐
현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 선에도 대개 세 가지 방법이 있다.
관,
묵조
간화(화두)
등이다.
관이란,
한 가지 이미지를 모아서 집중하는 것인데
명상의 사색과 다른 점은
그 하나를 모아서 정신을 집중하며 일체를 이룰 뿐
명상이나 사색과 같이
이념을 추구해 파고들며 해답이나 결론을 구하지 않는다.
묵조선
일체의 상념을 끊어
생각 없는 것을 가지고
전체를 하나로 모아
그 근본 실체에 도달해 나를 이룬다.
간화선
화두를 잡는 방법을 말한다.
잡는다는 것은
생각을 잡는 것으로
생각을 가지고 다른 망념에 대처하며
일념화 해 가는 방법이다.
속절없이 일어나는 잡념들을
하나의 생각을 잡고
통일된 정신으로 몰고 들어간다.
이러한 방법을 대개 수행이란 말로 표현한다.
수행이란 마음을 닦는 법이라 한다.
마음을 닦는 다는 게
본래 가지고 있는 본질의 본래 청정한
자기 모습에 이르는 것이다.
이것이 어디에서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니고
본래 자기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기에
닦아 나타나게 하는 것이다.
신앙은 이와 또 다르다.
닦는 다기 보다는
주입시키는 것이다.
그 주입이란
어떠한 신이나 불보살의 이미지에
물들게 하여 그와 일체화 한다.
3.
서양 철학에서
명상이나 사색이
불교의 선을 못 따라 오는 것은
사색이나 명상은 그 추구를 가지고
결론이나 해답을 찾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교의 선은
이론적 결론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명에의 부활이다.
전체를 부정하는 데서 오는
전체의 긍정으로
그 부정과 긍정에서도 벗어나
자기와 자연과 합일 된 곳을 가지고
자기의 실체로 삼기 때문이다.
그래 우주(자연)와 내가 합일 된 곳에
나의 실체가 있고
나의 법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