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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결혼과 미국불교
일미 스님 미국 하버드대학 대학원 박사과정동성결혼을 반대하는 기독교문화
지난달 6월 초에 미국 부시 대통령이 때 아닌 동성결혼 방지를 위한 헌번개정안을 제안하면서 동성결혼 허용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도마 위에 오르게 되었다. 인류의 전통적 규범인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결혼을 헌법으로 보호하자는 것이다. 상원에서 그의 제안이 결국 부결되었지만 2004년 이후 잠시 조용했던 문화적·종교적 논쟁이 재현될 조짐이다. 사실 이 문제를 단순히 기독교문화와 세속적 문화의 충돌로만 보기는 어렵다. 기독교 교단 내에서도 이 문제로 많은 혼란과 분열이 일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2003년도 동성애자인 진 로빈슨(Gene Robinson)이 뉴햄셔주(州) 성공회 주교로 임명되면서 성공회 교회의 분열이 시작되어, 최근엔 버몬트주 성공회 교회에서 동성결혼을 위한 의식집을 발표하면서 분열이 더 가속화되고 있다. 통일그리스도 교회(The United Church of Christ)와 같은 진보적 교단은 이 문제에 대해서 좀 더 유연한 자세를 보이고 있으나, 미국의 주요한 교단인 천주교, 감리교, 장로교, 침례교, 루터교, 몰몬교, 그리고 감독교에선 상당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동성결혼을 반대하는 보수 기독교인들의 입장은 확고하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분명히 동성결혼을 금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창세기」 19장 24-28절에, 소돔(Sodom)과 고모라(Gomorrah) 도시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동성연애를 한 죄 때문에 신의 불의 저주를 받아 모두가 소멸하는 구절이 가장 빈번히 인용된다. 물론, 진보적 기독교인들이 소돔1이라는 단어가 동성애자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는 해석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만, 보수 기독교인들에게는 이 구절이 바로 동성애를 금하는 신의 말씀임을 철저히 믿는다.
동성애자들의 대체종교인 불교 올해 5월에 이루어진 갤럽조사에 의하면 28%의 미국인들이 아직도 『성경』의 모든 구절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45~48%가 부분적으로 믿는다고 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성경』에 대한 믿음이 미국사회의 관습과 생활 윤리를 규정짓는 중요한 척도임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현 부시행정부의 친보수 기독교정책으로 인해, 아직까지 기독교의 영향이 지배적인 미국에서 동성애자들의 권익을 주장하는 데는 상당한 난관과 저항이 따른다. 하지만, 기존 보수적 기독교 교단의 압박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동성애자들의 권익운동도 거세질 기세다. 그들은 그들의 삶의 형태를 죄악시 하는 보수 기독교 교단에서 자신들의 존재를 인정받으려는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보수적 신학 속에서 신앙적 차별의 벽을 넘지 못한 동성애자들은 결국 다른 대체적 종교를 찾아 왔다.2
이들에게 쉽게 보금자리로 여겨지는 종교 중에 하나가 불교이다. 『새 불교(The New Buddhism)』의 저자 윌리엄 콜먼(William Coleman)에 의하면 미국의 많은 불교수행센터가 동성애자들에게 가장 호의적인 곳으로 평판이 나 있고, 무엇보다 진보적이고 지성적인 동성애자들이 특히 불교에 호감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2001, p. 163). 동성애자이면서 불교학자인 호제 케버존(Jose Cabezon)은 「동성애와 불교」라는 글에서, 미국불교에서는 동성이기 때문에 차별받거나, 이러한 이유로 수계를 받아 법사나 승려가 되는 것을 거부당한 경우가 없다고 말하였다(p. 43). 왜 이처럼 미국불교가 진보적인 것처럼 보일까? 물론, 불교가 미국사회에서 지배적 역할을 하기에 규모로나 신도수로나 아직도 힘이 미약하기 때문에 쉽게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더 근본적 이유는 일반 신도들의 생활 행동윤리를 비교적 상세하게 규범짓는 『성경』에 비해 불교에선 평신도를 향한 계율(vinaya)이 상대적으로 빈약하고, 있더라도 그것을 철저히 강요할 신학적 토대가 구비되어 있지 않는 탓이다.
그래서 불교가 사회를 변혁하는 종교가 아니라는 해석이 자주 나온다. 오래 전에 막스 베버(Max Weber)가 말했듯이 출가승단 중심인 계율규정과 불교의 교단체계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신도를 위한 윤리규정이 빈약한 불교가 미국사회에서는 도리어 사회변혁을 요구하는 동성애자들의 중요한 보금자리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을 보면 아이러니컬하기도 하다.
성에 대해 훨씬 유연한 불교 솔직히 말해서 불교 전통경전에 동성애를 금기하는 구절을 찾기란 쉽지 않다. 물론 계율에 판다카(Pandaka)라 해서 아침저녁으로 성이 바뀌는 이의 출가를 금하였지만, 이에 대한 정의가 명확하지 않고, 설사 이것을 동성애자라고 간주하더라도, 똑같은 규정이 일반신도들에게 적용이 된 적은 드물다. 불교계율에 있어서 중요시 된 것은 승가화합을 위해서 출가자에겐 남녀, 동물 구분 없이 성적인 접촉을 금기하였고, 가정의 평화를 위해 일반신도에게 혼외정사를 금기하였을 뿐이다. 이러한 해석에 근거해서, 하와이 다이아몬드 상가(Diamond Sangha)의 로버트 에이컨(Robert Aitken) 선사(Roshi)는 10여 년이 넘게 동성애자들의 결혼식을 거행해 주고 있다. 서로 사랑하고 함께 수행할 수 있는 동반자라면 동성커플이라 해서 불교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불교 지도자들이 그처럼 확실한 태도를 취하고 있지는 않는 것 같다. 미국에서 불교의 거울 역할을 하고 있는 달라이 라마가 몇 년 전 한 잡지 인터뷰에서 동성애를 ‘죄’라고 언급한 후에 불자 동성애자들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아 결국 자신의 발언을 취소하고, 동성애자들의 권익을 옹호하는 자세로 돌변한 경우가 바로 한 예이다. 달라이 라마의 애매모호한 태도처럼 미국에 있는 대부분 아시아 계통의 불교 지도자들은 아직도 동성애를 터부시 하고 있고, 통일된 입장을 보이고 있지 않다. 그렇지만 이러한 문화에 노출되지 않았던 아시아 불교지도자들도(달라이 라마처럼) 점차 포용하게 되는 것을 보면 우리는 불교역사상 볼 수 없었던 신앙공동체의 발전을 미국에서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불교교단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동성권익보호운동이 추진되고 있지는 않다. 미국엔 조직화된 불교종단도 출가승단도 없거니와 앞서 말했듯이 사회운동으로 확대될 수 있는 평신도 윤리가 체계화되지 않았고, 종교 성격상 그리 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 가지는 명확한 것 같다. 미국에 있는 대부분의 서양불교센터와 불교신자들은 만일 동성결혼이 합법화 된다면 그다지 큰 저항 없이 자연스럽게 부처님 앞에서 행해지는 동성결혼식에서 함께 기뻐할 것이다. 불교학자 레오나드 쯔빌링(Leonard Zwilling)도 동조하듯이 불교에선 성(sexuality)에 대한 규정이 전통기독교보다 휠씬 유연하고 덜 비판적이기 때문이다(Cabezon 1985, p. 210). 동성애자들도 성스러운 결혼에 초대하자 그러면 여기서 시점을 돌려 생각해 보자. 만일 한국의 한 사찰에 동성애 커플이 와서 결혼식을 올리고 싶다고 한다면 우리 스님들과 불자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린 비정상적이고, 변태적이며, 병적(AIDS)인 위험한 사람들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아니면, 인간 삶의 다양성을 인정하여 불자부부로서 맺어 줄 것인가? 더 나아가 합법적 동성결혼운동과 인권보호운동에 간접적이라도 동참할 수 있을 것인가? 쉽지 않은 고민이지만 교학적, 수행적, 이성적인 견지에서 멀지 않아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된다. 교학적 잣대로만 동성결혼의 가부를 논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노예와 여성 차별이 정당시 되었던 2500여 년 전 사회의 관습하에서 이루어진 계율이나 가르침을 지금 현 사회에 그대로 적용하여 윤리적·법적 기준을 설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위험하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미국의 많은 동성애 친구들 중에서 한 레즈비언 커플이 있다. 삼십 대 후반인 케리(Kerrie)와 글로리아(Gloria)가 그들이다. 그들과 알고 지낸 지가 6년이 넘었으니 짧지도 않은 시간이다. 나는 두 사람의 애정이 다른 이성 커플과 별반 차이가 있다고 느끼지 못한다. 두 사람 모두가 선하고, 정직하며, 신앙적인 사람들이다. 지난 2005년 12월에 케리의 목사안수식이 있었다.3 꼭 참석해 달라는 부탁에 난 기꺼이 다른 목사님들과 그녀의 목사안수식에 함께했고, 안수식 끝에 케리는 글로리아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을 그날 참석한 모든 이들 앞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하였다. 난 이들의 서로에 대한 헌신을 바라보면서 이 두 사람의 사랑에 신학적·윤리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폭력이라는 생각을 했다.
여기서 필자의 개인적 입장을 마지막으로 피력하고 싶다. 결혼이 성스러움의 상징이고, 부시 대통령이 앞서 언급한 대로 인류사회 안정을 유지하는 근간이라면 그 성스러움에 동성애 커플을 함께 초대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부시 대통령과 보수주의자들이 말하듯이 결혼이 꼭 한 남성과 한 여성만의 결합이어야 하는가? 게다가 이것을 헌법으로 규정해서 동성애 커플을 영원히 법적 차별의 대상으로 낙인찍어야 하는가? 필자는 부시 대통령과 보수주의자들의 동성결혼을 금지하기 위한 헌번개정운동에 동참하기엔 무리일 정도로 윤리적이고, 가정적이며, 종교적인 많은 동성애자 커플을 알고 있다.
1. 현재 동성애자의 성교를 비롯하여 다른 비정상적인 성적 활동(sodomy)과 이런 사람들(sodomite)을 지칭하는 단어가 이 『성경』 구절에서 연유한다. 2. 올해 6월 9~11일에 1,002명을 대상으로 한 USA TODAY 갤럽 조사에서, 15%에 가까운 개신교신자들이 자신의 교회의 신학적 해석에 불만을 품고 다른 종교로 개종한 것으로 나타났다. 3. 그녀는 통일그리스도교회(The United Church of Christ)에서 오랫동안 목사안수를 준비해 왔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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