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 종단협의회에서 주최하고 조계종 국제포교사에서 주관한 <제1회 국제포교사 해외문화체험단> 18명이 10월 19일부터 11월 5일까지 미국의 동부와 서부를 다녀갔다. 소속을 보면 조계종 15명, 종단협 1명, 진각종 2명과 뉴욕에 미리 와 있던 이 추경 국제포교사와 미국에서는 메릴랜드 진각종 인덕정사가 합류했다.
이들의 일정표에 의하면 메사추세스 주의 인사이트 메디테이션 센터와 (Insight Meditation Center) Barre Center for Buddhist Studies, 캠브리지 젠 센터, 프로비덴스 젠 센터, 데이비드 멕켄 하버드 한국학 연구소 소장 방문 및 연구소 방문, 뉴욕 원불교 한국학교 , 조계사, Buddhist Church of New York, 티벳 하우스를 방문하고 뉴욕지역 스님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11월 2일부터는 L.A.지역으로 이동하여 관음사, L.A.불교대학,과 고려사, 달마사 등 여러 사찰과 태고사 서래사, 서부불교대학, 태국사찰을 방문하였다.
이들은 프로비덴스 젠 센터에서는 하루 밤을 묵고 아침 예불도 같이 하였다고 한다.
이 인터뷰는 보스턴 지역과 뉴욕 방문을 마친 후에 원철 스님, 조현우씨와 뉴욕의 케네디 공항에서 11월 2일에 이루어 졌다.
이번 방문단 단장 원철 스님은 현 조계종 종정 법전스님을 은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하였고 해인사 해인 강원, 실상사 화엄학림, 동국대 강사를 역임하였다. 월간 해인지 편집장을 역임하였고 현 조계종 포교원 신도국장으로 있다.
질문: 지금까지 일정을 마치고 난 후의 소감을 듣고 싶다.
원철 스님: 첫날은 미국인들이 운영하는 보스턴에 있는 선 센터를 방문했습니다. 상당히 규모도 크고 고급과정, 일반과정 그 다음에 영구과정들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는 부분이 상당히 특이했습니다. 미국 안에서도 다섯 번째 안에 드는 아주 훌륭한 명상센터라고 들었습니다. 적지 않게 불교가 서양인들한테 어필되는 그런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제가 귀담아 들은 것 중 하나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20세기에서 제일 큰 사건 중 하나가 불교와 서양 사상의 만남이라고 역사 학자들이 더러 얘기하고 있는 현장을 제 스스로 확인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물질적 풍요에서 정신적 풍요를 위한 불교적 역할을 인해서 서양문명을 한 차원 높아 질 것을 믿고 있다고 거기 행정을 총 담당하시는 분이 우리를 모아 놓고 자기 느낌을 얘기 해 주었습니다. 1960년대 70년대 동양의 승려들이 처음에 왔을 때는 서양 불교인들은 거의 부처님 대접을 하였는데 그런 과정에 그 분들이 가지고 있는 인간적인 면모들 다른 표현에 의하면 인간적인 약점들을 미국인들이 보게 되었던 거죠. 그 뒤부터는 사람에 의지하기보다는 법에 의지하는 형태로 [저 사람한테 무엇 무엇이 배울 것이 있다] 그런 식으로 입장들이 선회했는가 봐요. 그런 면서 동양에서 어떤 훌륭한 선사가 오더라도 그 사람을 부처님이나 조사의 반열보다는 같이 수행하는 도반으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현재 자기네들 기본적인 동양의 선사들을 보는 관점이라고 설명을 했습니다.
두 번째는 경허 스님, 만공 스님, 고봉 스님 그리고 숭산 스님으로 이어지는 덕숭산 쪽의 선 맥이 이쪽으로 전해져 거기에 한국의 승려들이 아니고 서양의 승려들이 선 센터를 운영을 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느낀 것을 물론 살림살이가 그리 편하고 넉넉하다는 표현은 쓰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 있는 한국 스님들이 하는 절보다 규모도 크고 내용도 나름대로 있으면서 또 한글로 예불문을 외우고 염불을 하는 부분들이 한국 사람으로서 상당히 좋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걸 보면서 인도에서 달마 대사가 중국에 왔을 때 불교를 전해주면서 느꼈을 고초가 연상되었고 그 연장선상에서 인도의 불교 의식이 중국 사람들한테 어떤 형태로 전했을까 다시 한번 생각하였고 숭산 스님이 이곳에 오셔서 미국 사람들에게 예불문을 전했을 때의 마음하고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결국은 달마 대사도 중국에 선불교의 씨앗을 뿌리긴 했어도 활동이 왕성하지 못했고 당시에 살고 있을 절을 절이라고 이름도 붙이지도 않고 소림굴이라 하여 <굴>이라고 이름 붙일 정도의 그 굴의 의미가 저에게는 상당히 구체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소림굴이라고 부르는 <굴>이라는 의미 속에서 그 법을 전한 사람의 고뇌, 고독, 그 다음엔 초창기 선불교가 중국에 와서 겪은 어려움이 한마디로 그 안에 응축되어 있는 그런 느낌과 또 숭산 스님이 서양인을 대상으로 선을 가르치면서 느꼈을 어려움이라던가 번뇌가 짐작이 되었습니다.
아침 예불때 108 참회를 하고 그게 끝나고 예불을 올리던데 예불을 한글로 올렸습니다. 그 다음에 신묘장구대다라니 같은 것은 우리말이나 인도 말이나 중국말이나 크게 다르지 않으니깐 주력은 다라니는 현장법사가 번역을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원칙을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정신들은 상당히 괜찮았던 것 같고, 반야심경을 다시 영어로 번역을 해 가지고 그 반야심경을 두 번을 했습니다. 그래서 앞의 반야심경은 의식적인 주력적인 의미가 강했던 것 같고 그 뒤에 영어로 번역한 것은 반야심경이 가지고 있는 의미 그런 것들을 미국 사람들한테 전하는데 하나의 좋은 방편으로 그렇게 보여 졌습니다. 선어록 초창기 것을 읽다보면 일화오엽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꽃 하나가 다섯 가지 이렇게 그걸로 피어난다 그래서 보통 얘기 할 때 선종이 달마대사로 인해서 크게 융성해 나가는 과정을 일화오협이라고 표현하는데 지금은 이렇게 미묘하고 어렵지만 앞으로 한 세대 두 세대 지나고 나면 또 이쪽 서구에도 나름대로 나라의 화려함이나 국가의 강대함에 걸맞은 그런 위치를 차지하지 않을까 하는 느낌을 가지고 갑니다.
그 두 개의 선원은 상당히 규모도 컸고 나름 데로 체제를 갖추었고 또 미국인들에 의해서 운영되는 선 센터였습니다. 뉴욕에 와서 한국스님들에 의해 운영되는 절을 보니 크기도 상대적으로 비교적으로 안되고 개인의 토굴의 형태로 보였습니다. 대부분 교포들을 상대로 포교하고 있었는데 이것도 필요하지만 능력이 된다면 현지인을 법을 대상으로 법을 전하는 것이 장래를 봐서 좋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볼 때는 미국인들에 의해서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법을 펼 수 있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교포들이 이역만리 와 있으니까 종교적으로 위로를 해주고 다음에 마음의 안식처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불교의 전법적 차원에서 볼 때는 언어적 장벽을 극복해서 현지인을 교화해서 현지인이 포교하는 방향으로 포교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부분들이 좀 부족했습니다.
뉴욕 맨해튼 일본 절에 갔었는데 여기에서 미국인과 일본인들의 참석률을 물어보니 절 참석률은 미국인들이 높았습니다. 재정적인 기여도는 일본인들이 숫자는 적지만 재정기여도는 훨씬 높았습니다. 이런 모델들을 보았습니다. 이런 것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나의 시사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질문: 이번이 1회라고 되어있는데 이것은 앞으로도 계속 이 사업을 할 예정인가요.
답: 이번이 1회인데 저희들이 1회라고 붙인 이유는 앞으로도 계속 하겠다는 거죠. 꼭 미국 쪽으로 오겠다는 계획은 없고 유럽이 될 수도 있고, 다른 나라를 갈 수도 있습니다. 일단 1회로 우리가 가장 가까운 또 서로 영향력이 있는 가장 많이 주고받는 미국을 선택하게 된 거죠.
국제포교사의 활동목적은 무엇입니까?
국제 포교사를 저희가 처음 양성 할 때는 한국의 전통 사찰에 이분들을 보내서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에게 한국 불교를 소개하는 것이 주목적이었습니다. 그건 국제 포교사로서 아주 소극적 역할인데 국제 포교사들을 여기 와서 느낀 것은 스님들이 숫자가 적다 보니깐 그 일을 도와주고 그 다음에 그 일을 해 줄 수 있는 법사 가 필요하다는 거죠. 그래서 그런 역할들을 해 줄 수 있는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가 그걸 타진해서 그것이 우리 해외문화 체험의 목적도 동시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질문: 국제포교사의 활동영역이 지금은 국내에 한정되어 있지만 앞으로는 밖으로 더 확대될 수 있다는 말인가요?
답: 이 분들한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찾아보고 당신들의 역할들도 스스로 자리 매김도 하고 어차피 하시는 분들이 적극적인 의지를 가져야 되거든요. 그래서 그런 것들도 겸해서 그렇게 왔습니다.
질문: 현재는 모색단계이군요?
답: 예 그렇습니다.
조현우(조계종 포교원의 국제포교사 / 국제포교 담당)
질문: 이번 방문을 통해 느낀 점은?
조현우: 일단 개인적으로는 여기 나와서 전법활동을 하고 계시는 스님들께 상당히 감사하다는 생각을 갖게되었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보다 좀더 구체적이고 확신을 가질 수 있는 부분이 생겼습니다. 물론 힘들고 어렵긴 한데 미래가 불투명해 보였던 것이 어떤 일정정도에 가닥이 잡힌 것 같다. 느낌에 이게 구체적인 방법보다 느낌상으로다가 올 때 그런 부분이 있습니다.
질문: 미국의 한국불교는 이민불교입니다. 이 이민불교와 한국불교는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문제가 한국에서는 어떻게 인식되고 있고 논의가 되는지 궁금한 사항입니다.
답: 실제로 저희가 제 1회로서 국제포교 여기 현실을 보기 위해 나온 것이니 어떻게 보면 종단적인 차원에서는 처음 입니다. 여기서 어떤 결론이 나와야 되겠죠. 제가 와서 봤을 때는 현실 자체가 한국과 같지 않다. 또 한국과는 다른 스타일의 법회운영 또 사찰 운영이 이루어져야 되겠다. 아직까지 관찰 기간이 짧고 단순히 겉핥기식으로 본 것 가지고 계획을 세우면 안되겠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방법이 나오려면 세월이 조금 더 있어야 될 것 같고, 현지에 실제 종단이나 실무자들이 직접 와서 현실도 보고 운영하는 방식도 보고 연구를 한 번 더 해야 될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