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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주불교현황

[2017년 6월호] 미국의 영적 스승, 람다스 /스텔라박

작성자파란연꽃|작성시간17.06.16|조회수687 목록 댓글 1



    미국의 영적 스승, 람다스


     


    삶에 전혀 중요치 않은, 가치 없는 것들을 붙잡고 있느라 너무 바쁘다는 것이 우리의 문제이다.( Your problem is you're... too busy holding onto your unworthiness.)” - 람다스


     



    조지 해리슨과 스티브 잡스가 존경한 인물


    내가 람다스를 처음 접한 것은 28 전쯤이었다. 당시의 나는 지금 만큼이나 정신 세계에 대한 관심이 많았었던 같다. 카발라와 기적 수업(A Course in Miracle)’ 스승인 매리언 윌리엄슨의 오디오북을 잔뜩 사가지고 오면서 <명상이란 무엇인가> 대한 람다스의 강의 오디오를 함께 구입해왔었다.


    그걸 들었느냐고? 물론 아니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미디어인 카세트테이프로 오디오를 들으려 시도했었지만 말투도, 목소리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수가 없었다. 그렇게 묻혀진 람다스라는 이름을 다시 듣게 것은 비틀즈의 멤버, 조지 해리슨의 노래를 들으면서였다.


    비틀즈의 다른 멤버들과 마찬가지로 명상수행을 했었던 조지 해리슨은 람다스의 책인 <바로 지금 여기에 살라(Be here now)>에서 영감을 받아 이와 똑같은 제목의 노래를 만들었다.


    바로 지금, 바로 여기에 살라는 지혜를 기억하세요.


    바로 지금 바로 여기는 지나간 시간과 달라요.


    과거는 지나갔으니 현재에 있으세요.


    현재는 지나간 시간과 달라요.


    현존하지 않는 삶을 살려 하세요?


    마음은 (과거와 미래의) 구석을 방황하길 원하죠.


    그런 마음은 지혜롭지 못한 마음이에요.”


    조지 해리슨 뿐만 아니라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 역시 람다스의 영향력에 대해 언급했었다. 스티브 잡스의 전기(Biography) 보면 <지금 여기에 살라(Be Here Now)> 람다스의 책이 대학생 시절 그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쓰여있다.


    “심오했습니다. 저와 친구들을 바꿔 놓았습니다.


    이는 스티브 잡스가 직접 했던 말이다.


    조지 해리슨, 스티브 잡스만은 아니다. 람다스라는 인물은 미국과 세계의 수많은 수행자들의 영혼에 커다란 울림을 주었다.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리처드 앨퍼트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영적 스승이자 작가 가운데 하나인 람다스(Ram Dass). 그의 본명은 리처드 앨퍼트(Richard Alpert) 1936 4 6 매사추세츠주, 뉴톤(Newton)에서 유대인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인 조르주 앨퍼트(George Alpert) 보스톤에서 변호사로 활동했던 인물이다. 브란데이스 대학(Brandeis University) 알버트 아인슈타인 의과대학(Albert Einstein College of Medicine) 창립자이기도 그는 유대인 커뮤니티를 위한 자금 조성에 공로를 세우기도 했었다.


    어린 시절, 리처드는 유대교 식의 성년식을 치르기도 했다. 이에 대해 리처드는 본질적인 공허함에 깊이 실망했다 표현했다. 그는 스스로를 무신론자로 여겼고 젊은 시절에는 어떤 종교 수행도 하지 않았었다.


    어린 시절, 종교에 의한 상처로 인해 나는 살면서 일말의 신성도 느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훗날 환각제를 사용하고 나서야 처음으로 신성을 체험했다.”


    그는 매사추세츠의 명망 높은 사립학교인 윌리스턴 노스햄턴 스쿨(Williston Northampton School) 졸업했고 터프츠 대학(Tufts University)에서 학부를 마쳤으며, 웨슬리언 대학(Wesleyan University)에서 석사를, 그리고 스탠포드 대학(Stanford University)에서 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버드 강단에 리처드 앨퍼트


    UC 버클리에서 강의하던 그는 하버드로부터의 종신교수 제안을 받아들여 사회관계, 심리학, 교육학과 대학원 과정 여러 부서에서 가르쳤다. 그는 또한 헬스 서비스 부서에서 테라피스트로도 활동했었다.


    기간 동안 그는 가까운 친구이자 파트너였던 티모시 리어리(Timothy Leary) 함께 다양한 연구를 하게 된다. 젊은 학자들은 실로사이빈(매직 머시룸에 함유돼 있는 자연 상태의 환각성분. 지난 호와 미주현대불교의 미국 불교계와 환각제 기사 참고), LSD-25, 그외 여러 환각제의 치유 효과 가능성 대한 강도 높은 연구를 실시하고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과 학생들을 실험 대상으로 하기도 했다. 이들의 연구 결과는 공동저작, <환각제 경험: 티베트 사자의 서에 근거한 매뉴얼(Psychedelic Experiences A Manual Based on the Tibetan Book of the Dead)> 열매를 맺었다.


    미국은 가장 열려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폐쇄적인 사회 가운데 하나다. 세상 사람들의 시각으로 , 위험천만한 이들의 실험과 신념으로 인해 티모시와 리처드는 1963 하버드대학으로부터 해임당한다. 당시 하버드의 총장이었던 네이든 푸씨(Nathan M. Pusey) 티모시 리어리의 해고 사유에 대해 학교 측으로부터 아무런 허가도 받지 않고,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떠났기 때문이라고 했고 리처드 앨퍼트에 대해서는 학부 학생들에게 실로사이빈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하버드에서 해고당한 후였지만 그의 환각제 연구는 계속됐다. 그는 1966 <LSD>라는 책을 시드니 코헨(Sidney Cohen) 함께 펴냈다.


     


    리처드 앨퍼트, 람다스로 태어나다


    1967, 리처드는 인도로 여행을 떠났다. 그곳에서 그는 커밋 마이클 릭스(Kermit Michael Riggs)라는 미국인 영적 구도자를 만나 함께 여행을 다녔다. 커밋은 스스로를 바가반 다스(Bhagavan Das)라고 불렀다고 한다.


    둘은 결국 카인치 아슈람(Kainchi Ashram)에서 영적 그루인 카롤리 바바(Neem Karoli Baba) 조우한다. 리처드 앨퍼트는 그를 마하라지라고 불렀으며 마하라지는 리처드에게 신의 이라는 의미의 람다스라는 이름을 주었다. 그는 여러 책에서 스승인 마하라지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드러낸 있다. 그는 또한 인도의 영적 스승인 메허 바바(Meher Baba) 교류를 나눴으며 저서에서 그의 이름을 여러 차례 언급했었다.


    티베트 해방 운동을 벌이고 있는 로버트 터먼 교수가 승계를 받은 것이 1964, 람다스가 인도로 것이 1967, 비틀즈 멤버가 명상을 배우겠다고 인도의 아쉬람으로 들어갔던 때가 1968 2월이다. 뒤를 이어 케임브리지를 졸업한 아잔 브람이 1974 타일랜드로 가서 불교승려가 되었다.


    즈음이 그랬던 같다. 서구인들은 종교보다 권위를 지니게 과학이 인류를 행복에 이르게 하리라고 믿었지만 차례의 전쟁과 유대인 대학살 등의 역사적 사건을 경험하면서 현대 과학에 대한 신뢰를 잃어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서구 지식인들은 해답을 동양의 종교와 명상에서 찾고자 했고 이는 결국 60년대 히피 운동으로 만개했다. 람다스 역시 이런 시대적 물결이 빚어낸 인물 가운데 하나라고 있다.


    미국과 세계의 젊은이들은 람다스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였다. 하버드 종신 교수였다가 환각제 연구로 강단에서 쫓겨나고 인도로 가서 명상을 배워온 남자. 그의 삶은 드라마보다 더욱 극적이다. 


    1971년에 발표된 , <지금 여기에 살라(Be Here Now)> 2 뒤에 펴낸 <당신의 고유한 존재를 행위한다는 (Doing Your Own Being)>, 그리고 1974 작인 <존재하는 유일한 (The Only Dance There Is ) , 그의 책들은 미국의 히피와 뉴에이지 세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환각제 없이도 완벽한 이완과 지복함을 체험할 있다는 사실에 히피들은 열광한 것이다.  

     


    죽는 것이 사는 , 다잉 프로젝트


    그는 인도에서 죽음을 보았다. 인도에서 죽음은 일상생활과 함께 있다. 강가를 따라 있는 화장터에서는 시체를 장작 더미 위에 올려 화장하고 재를 강가에 뿌린다. 역시 인도 여행 , 이런 장면들을 목격했었다. 시체 더미 옆에서 아이들은 뛰어놀고, 어른들은 장사를 하며 다른 이들은 강물에서 목욕을 한다. 


    미국은 어느 나라보다 죽음에 대한 언급을 금기시 하는 나라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그는 죽음을 앞둔 이들이 갖고 있는 공포와 의문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질문할 있는 공간이 미국사회에 시급함을 느꼈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편안하게 받아들일 있다면 삶의 과정인 죽음을 준비할 있을 아닌가.


    이를 위해 그는 다잉 프로젝트(Dying Project)’ 시작한다. 그가 다잉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데는 여러 사건과 요소들이 영향을 미쳤다. 1952, 마더 테레사는 인도의 콜카타에 죽어가는 사람들의 (Home for Sick and Dying Destitutes)”’ 개설해 보호자 없이 죽음을 앞두고 있는 이들이 인생 마지막 여정에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하면서 세상을 떠날 있도록 배려했었다. 그렇게 인도를 여행하며 실제 죽음을 눈으로 그는 죽음을 거부하는 미국의 신념 체계를 뒤흔들 수도 있는 생각을 키우게 것이다.


    또한 1960년대, 람다스의 동료 가운데 철학자이자 작가인 올다스 헉슬리라는가 소설, <아일랜드(Island)>에도 ‘죽어가는 사람들을 돌봐주는 집’인 다잉 하우스(Dying House)’ 등장한다. 당시 람다스는 소설 아이디어를 실현시키고자 주변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미국은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만큼 성숙한 사회가 아니었다. 람다스는 한발 물러서서, 각종 책과 강연 등을 통해 의식하면서 죽음을 맞자 ‘컨셔스 다잉(conscious dying)’을 주창하기 시작했다.


    인도에서 수행하다가 1970 미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람다스는 계속해서 ‘컨셔스 다잉’ 운동을 펼쳤고 1973년경, 드디어 다잉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다.


    다잉 프로젝트의 활동 가운데 하나는 죽음을 앞두고 있는 이와 가족을 위한 무료 전화상담 운영이었다. 또한 ‘죽음을 준비하기 위한 명상 워크샵’을 열어 사람들로 하여금 죽음을 기꺼이 수용할 있게 했다. 그리고 죽음을 테마로 람다스와 영적 스승들의 강의 녹음을 나눠주기도 했다.


    람다스는 다잉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의 일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인도로 가기 전부터 죽음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인도에서 귀국한 죽어가는 사람 명을 만났어요. 가족들은 분명 당황스러워 하면서도 겉으로는 마치 죽음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듯한 얼굴 표정으로 죽음을 앞두고 있는 가족 구성원을 대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죽음을 앞두고 있는 이는 가족들의 가식적인 웃는 얼굴을 이상 받아들이기 힘들어 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당신은 죽어가고 있다’고 확실하게 말했습니다. 순간, 그의 가족들은 말을 잊더군요. 하지만 이로 인해 죽음을 앞두고 있는 이나, 그의 가족 모두가 비로소 솔직한 대화를 나눌 있게 됐습니다. 당사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털어놓고 위로받고 싶어했지만 가족들이 죽음에 대한 언급을 기피했기 때문에 사이는 멀어졌던 것이죠.


    내가 죽어가는 사람에게 죽음을 직면할 있도록 있었던 데는 인도에서의 체험이 컸습니다. 인도에서는 죽음이 일상생활 속에서 당연한 것으로 존재하고, 실제 눈으로 수가 있어요. 성지에 보면 죽음을 예감한 사람들이 경전을 읽으면서 조용히 죽음을 수용하고 기다립니다. 인도에서 죽음은 끝이 아니라 변용(變容, transformation) 것이죠. 미국과는 달리 그들에게 있어 죽음은 패배가 아니었습니다.


    다잉 프로젝트의 사업으로 무료 전화상담을 시작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죽음에 직면한 사람들에게 있어 병원 같은 시설에 대한 필요는 부차적입니다. 그들에게는 죽음에 대해 솔직히 말할 있는 대화상대가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죽는 순간을 의식(Consciousness) 미적 승화로 수용할 있도록 죽는 순간까지 인도하는 것이 다잉 프로젝트의 목적입니다.


    우리들 사회에는 죽음을 신의 징벌, 실패로 생각하는 신념체계가 암암리에 형성돼 있다. 이는 어쩜 사형제도나 질병 때문인지도 모른다. 전생, 내생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여러 믿음이 있지만 여전히 우리사회에서는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이라는 생각이 팽배하다.


    하지만 생로병사는 우리들이 태어나면서부터 거치게 되어 있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람다스가 다잉 프로젝트 소식지 1호에서 정의한 죽음은 죽음에 대한 우리들의 부정적 고정관념을 수술한다.


    “인간의 삶이란 마음의 깊은 곳까지 탐구하기 위해, 심원한 의식의 세계를 인식하고 자각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죽음은 삶의 일부분일 뿐만 아니라 인간을 내면적 자각으로 향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기회이다.


    죽음은 끝이 아닌, 새로운 자각을 향한 출발점이다. 죽음에 대해 편하게 얘기할 있을 , 우리는 비로소 있게 된다.


     


    여러 비영리 재단을 설립한 람다스


    다잉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듬해인 1974년에, 그는 하누만 재단(The Hanuman Foundation) 설립했다. 하누만 재단은 교육과 미디어, 커뮤니티 서비스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 사회의 영적 웰빙을 추구하기 위한 비영리 교육 봉사 기관이다. 구체적인 활동으로는 죽음을 앞둔 이들에게 영적 도움을 주는 다잉 프로젝트’, 그리고 감옥의 수감자들이 영적으로 성장할 있는 기회를 주는 감옥 아쉬람 프로젝트 등이 있다.  


    1978, 람다스는 공중 보건 리더인 래리 브릴리언트(Larry Brilliant), 그리고 인도주의 운동가인 웨비그레이비(Wavy Gravy) 함께 국제 보건 조직인 세바 재단(The Seva Foundation) 설립했다.


    또한 메타 인스티튜트(Metta Institute) 교직원으로서 죽어가는 이들을 위해 마음챙김과 연민 가득한 보살핌에 대해 교육하고 있으며 그의 영적 그루인 카롤리 바바와 자신의 가르침을 이어가기 위해 러브 서브 리멤버 재단(The Love Serve Remember Foundation) 설립하기도 했다.


    1971년에 발표된 , <지금 여기에 살라(Be Here Now)> 현대의 가장 위대한 영적 고전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다. 2백만 이상 판매된 베스트셀러를 통해 람다스는 자기 내면에서 평화를 발견하는 방법을 보여주었다. 여러 재단을 설립한 , 람다스는 그의 모든 책의 로열티와 강의료를 그의 재단과 여러 재단에 기부했다. 그가 기부한 금액은 1974년부터 지금까지 매해 10 달러에서 80 달러에 이른다.


    그는 1991, 그의 봉사와 헌신으로 인해 Peace Abbey Courage of Conscience Award 수상한다. 또한 무한재단(Infinity Foundation)에서 개인적 영적 성장에 크게 기여한 사람들에게 수여하는 (Spirit Award) 수상한 있다.


    람다스의 개인적


    1996년인 60 , 람다스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유대교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하기 시작했다.


    제가 유대인으로 태어난 것이 우연은 아닐 거에요. 그래서 유대교에 대해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죠. 힌두교의 관점으로 보자면 우리들은 해결해야 필요가 있는 것으로 태어난다고 해요. 만약 그걸 외면하고 저항한다면 그것이 우리들을 사로잡아버린다는 것이죠.”


    1990년대, 람다스는 양성애자 선언을 했다. 그는 양성애자란 동성애자도 아니고 동성애자가 아닌 것도 아니다. 그건 아무 것도 아니다. 그저 의식일 뿐이다.(It isn't gay, and it's not not-gay, and it's not anything—it's just awareness.)”라고 말했었다.


    50 초반, 람다스가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을 , 역사학과 여학생인 캐런 사움(Karen Saum) 잠시 연애한 적이 있었다. 캐런은 람다스와 헤어지고 나서 아들을 낳았고 이름을 피터 라이카드(Peter Reichard)라고 지었다.


    24세가 피터는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물었고 캐런은 그의 아버지가 람다스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려줬다. 유전자 테스트를 통해 자신의 아버지가 람다스임을 알게 그는 78세의 람다스를 찾아와 사실을 알렸다. 피터는 현재 53세로 노스 캐롤라이나에서 뱅커로 일하고 있으며 아들도 있다. 람다스는 손자를 할아버지이다. 


     


    갑작스런 뇌출혈과 건강 악화


    1997 2, 람다스는 갑작스런 뇌출혈로 쓰러진다. 이후 그는 언어 장애와 신체 장애를 겪고 있다. 그는 자신의 뇌출혈도 은총으로 해석한다.


    뇌출혈 이후에도 그는 소규모의 대중 모임에 모습을 보이며 강연을 계속하고 있다. 현재 그는 하와이에 거주하면서 웹캐스트와 수양회를 통해 가르침을 이어간다.


    그의 삶의 메시지를 요약해달라는 요청에 그는 나는 나를 수련하고자 다른 사람들을 돕습니다. 그리고 나는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나를 수련합니다. 제게 있어 삶이라는 게임은 그게 전부인 같네요.”


    미국의 영적 지도자이자 작가 가운데 하나인 웨인 다이어(Wayne Dyer) 2003, 람다스를 돕기 위한 모금 운동에 나섰다. 뇌출혈 이후 그의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졌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들이 그를 도울 차례입니다. 람다스의 몸은 이상 여행을 감당할 없을 정도로 악화됐어요. 그는 현재 제가 거주하며고 집필하고 있는 하와이의 마우이에 왔습니다.


    저는 그와 자주 대화를 나눕니다. 73세가 그가 자신의 노년 건강관리에 대해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았음을, 그래서 다른 이들에게 부담이 되어야함을 사과하며 아름다운 눈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을 , 저는 겸허해집니다.


    그는 여전히 집필하고 가르칠 의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여행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들이 그의 곁으로 가야 합니다.  


    마우이는 치유의 장소입니다. 람다스는 이제 치유의 땅에서 머물고 싶어합니다. 그는 현재 마우이의 집에서 살고 있는데 집은 그의 소유도 아니고 차압당할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여러분들 모두에게 주택을 구입하는데 도움을 주시고, 그럼으로써 많은 이들의 미래를 위해 그렇게도 많은 돈을 기부했던 남자를 돕는 재단을 설립하자고 부탁드립니다. 람다스가 수행하며 실제 보여줬던 자비의 삶을 계속 살아갈 있게 말입니다.


    지금 순간 우리들의 사랑과 재정적 지원을 가장 절박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은 바로 람다스 자신입니다.”    


     


    람다스의 저작들


    람다스는 하버드 대학 강단에 있을 때부터 꾸준히 저작 활동을 했다. 이제까지 발표한 책은 15.


    가운데 수많은 영혼들에게 영향을 미쳤던 고전은 <지금 여기에 살라(Be Here Now or Remember, Be Here Now (1971)>이다.


    그는 스승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사랑의 기적: 카롤리 바바에 관한 이야기(Miracle of Love: Stories about Neem Karoli Baba, 1978)>라는 책으로 녹여내기도 했다.  


    한국어로도 번역돼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가운데 하나는 <성찰: 나이듦과 변화 그리고 아름다운 마무리(Still Here: Embracing Aging, Changing and Dying, 2000)>이다.


    다잉 프로젝트 사업을 펼치고 자신의 수익을 모두 기부하는 몸으로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살아왔던 그의 글은 독자들을 진정으로 성찰하게 한다.


    최근 UCLA MARC(Mindful Awareness Research Center)에서 마련되는 <마음챙김과 나이듦(Mindfulness and Aging)>이라는 클래스를 들은 적이 있다. 나이든다는 것에 대한 사회적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 진정으로 나이 먹어감을 축하하고 매일 매일을 기념하면서 있는 방법들을 실습하고 배웠다. 클래스를 비롯해 미국과 세계의 나이듦 대한 개념을 바꿔놓은 것이 바로 람다스의 <성찰>이다.


    시간을 한쪽 방향으로 진행하는 것으로 이해할 우리는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안타까움으로 붙잡으려 한다. 하지만 시간이란 것이 근원적으로는 없음을, 과거 현재 미래가 동시적임을 이해할 나이듦과 죽음은 삶의 과정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가슴으로 알게 되면, 저항 없이 편안하게 받아들일 있게 된다.   


    현대인의 몸에 대한 집착은 병적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공허해진다. 몸은 신성이 신성임을 알기 위해 시절 인연을 빌어 빚어낸 아주 훌륭한 도구이다. 하지만 태어남이 있었으니 죽음이 있다. 그리고 죽음은 다른 변환의 시작이다. 우리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젊어지는 비법' 아니라 '늙음을 받아들이는 방법'임을 람다스는 <성찰> 통해 말하고 있다.


    다른 그의 가운데 하나는 <신에 이르는 : 일상 속에서 피워내는 바가바드 기타의 영향 가르침 (Paths to God: Living The Bhagavad Gita, 2004)이다.  


    람다스가 미국의 티벳불교 대학에서 바가바드 기타에 관해 강의했던 내용을 담고 있어 그의 육성에 가까운 이야기를 들을 있는 책이다.


    그는 바가바드의 기타에서 말하는 까르마 요가의 , 야나요가의 , 박티요가의 길을 스스로의 체험을 통해 이야기한다. “야나요가는 호롱불이고 박티요가는 보석과 같다. 지혜의 길은 스스로 빛나지만, 계속 기름을 부어야 하고, 헌신의 길은 빛이 있기만 하면 계속 빛난다.”


    가장 최근의 책은 2013년에 펴낸 <거울 닦기: 영적 가슴으로 사는 (Polishing the Mirror: How to Live from Your Spiritual Heart)>이다.


    책은 그의 가르침의 요약이자 그의 삶에 대한 추억을 담고 있다. 책에 대해 매체와 인터뷰에서 82 때의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제가 젊었을 나이듦과 죽음에 관한 성찰은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순진했던 같습니다. 이제 나이는 80 넘었어요. 늙어가고 있으며 죽음에 다가가고 있습니다. 인생의 끝에 점점 다가가고 있는 것이죠. 이제서야 비로소 저는 주변의 음악을 직면할 준비가 됐습니다.”


     


    람다스의 명언들


    몸이 불편해 웹사이트를 통해서 계속 가르침을 펴고 있는 람다스. 그가 했던 가운데 두고 두고 씹을 만한 명언들을 가지 소개한다.


     


    침묵할수록 많이 들을 있습니다.(The quieter you become, the more you can hear.)”


    오직 당신 내면의 나인 것만이 내가 하는 말을 들을 있습니다. (Only that in you which is me can hear what I'm saying.)”


    당신이 이미 디트로이트에 있을 , 당신은 그곳으로 가고자 버스를 타지 않아도 됩니다.(When you are already in Detroit, you don't have to take a bus to get there.)”


     


    람다스의 생활 규칙


    하루에 시간은 조용히 앉아 있으라.


    푹신한 침대가 아닌 딱딱한 바닥에서 잠을 자라.


    이런 저런 생각 끝에 잠들지 말고 조용히 명상을 하다가 잠들도록 하라.


    감소하게 먹고 간편하게 입으라.


    사람들하고는 있는 일찍 헤어지고 자연과 가까이 하라.


    텔레비전과 신문을 무조건 멀리 하라.


    무슨 일에나 최선을 다하라. 그러나 결과에는 집착하지 말라.


    풀과 벌레들처럼 언젠가 우리도 죽을 것이다.


    삶다운 삶을 살아야 죽음다운 죽음을 맞이할 있음을 명심하라.


     


    언젠가부터 자신도 그의 생활규칙처럼 살고 있음을 발견했다. 언뜻 보면 수도승이나 있는 생활규칙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눈을 감고 내면의 눈으로 스스로의 숨을 알아차리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이런 라이프스타일을 걷게 된다.


    미국 불교계와 영성계의 빛나는 , 람다스.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가녀린 목소리로 명상 세션을 이끌고 자신과 타인들의 수행을 위해 우주와 함께 춤추고 있는 그는 시대의 진정한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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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수행자 | 작성시간 17.08.12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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