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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주불교현황

[미주현대불교 2024. 1월호] 미주한국불교 60주년을 맞이하면서 나아갈 길을 모색해본다 - 글 대혜 덕광(大慧 德光) 김형근

작성자파란연꽃|작성시간24.05.22|조회수13 목록 댓글 0

 

권두언

미주한국불교 60주년을 맞이하면서
나아갈 길을 모색해본다

글 대혜 덕광(大慧 德光) 김형근 (본지 발행인)

 

 

 

 

2024년 갑진년이 시작되었다. 60년 전인 1964년은 미주한국불교에는 아주 뜻 깊은 해이다. 이 1964년에 미국과 한국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
1964년 8월에 베트남에서 일어난 통킹만 사건을 계기로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본격적으로 개입한 해이다. 또 이 해에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 린든 존슨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서경보스님과 함께 참선하는 미국인들


1964년 2월 7일에 런던 히드로 공항에는 4,000명으로 추정되는 비틀즈 팬이 운집하여 비행기를 향해 손을 흔들고 고성을 질렀다. 이 비행기가 오후 1시 35분에 뉴욕 시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에 첫 발을 내디딘 그들은 3,000명의 요란한 군중에게 환영을 받았다. 2일 뒤 2월 9일 비틀즈는 ‘에드 설리번 쇼’를 통해 미국TV에 첫 선을 보였다. 그리고 11일 워싱턴 콜리시엄에서 8천명 광중들 앞에서 공연을 하였다.
한국에서는 한일국교 협상에 반대하는 6·3 항쟁 발발하여 서울시 일원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다. 미국사회에서 불교계는 중국인들이 ‘미국불교회(BAUS,Buddhist Association of the United states)’ 설립하였다. 본부는 뉴욕시 브롱스에 있었고 장엄사를 운영하였다.
1964년 일본스님 ‘에이도 시마노 Eido Shimano’는 뉴욕시에서 활동을 시작하였고. 그는 1976년 업 스테이트에 전통 일본사찰 ‘다이보세츠’를 건립하였다.
1964년 비틀즈가 미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당시 미국사회는 히피세대가 미국의 전통과 문화에 저항하며 새로운 문화와 철학을 찾던 시기였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의 미국에 서경보 스님이 한국스님으로서는 1964년 8월말에 처음으로 미국에 도착하였다. 서경보 스님은 그 후 뉴욕 콜롬비아대학을 비롯하여 워싱턴 대학, 하와이 대학 등을 거쳐 최종적으로 1966년 가을학기부터 필라델피아 템플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하여 1969년 1월에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서경보스님이 미국에 와서 주로 대학교를 중심으로 생활을 하였지만 그 과정에서 틈틈이 미국인들에게 선을 지도하고 계도 주고, 한국인 대상으로 포교활동을 하였다.

 

그 과정을 간략하게 요약해 본다.

 

미주전법 40주년 뉴욕행사 사진 김형근(필자), 성오(원적사) 피야티사(스리랑카), 도선, 진각(LA대각사), 길상(정명사), 도범(문수사), 도안(LA관음사), 광옥(토론토 불광사 창건한 스님), 무량스님(태고사), 진양스님 등이 보인다.


서경보 스님이 미국에 입국하여 학위를 받은 1969년까지 한국 스님들은 서경보 스님과 삼우스님 뿐이었다. 그리고 1970년에 서경보스님 상좌 고성스님이 입국하였고, 그 뒤에 숭산, 정달, 법안스님 등이 들어왔다. 이렇게 시작된 미주의 한국불교는 이미 1970년대에는 로스 엔젤레스, 북가주 카멜, 시카고, 뉴욕, 하와이,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 텍사스 주 휴스톤, 워싱턴 주 타코마, 카나다 토론토 등 전 미주의 주요도시에 한국사찰이 들어섰다. 대부분 스님들은 한국인 이민자를, 숭산스님과 삼우스님은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포교활동을 하였다. 이렇게 1970년대에 한국사찰들이 본격적으로 설립되기 시작하여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까지 팽창기를 맞이하였다. 그러다가 2008년 11월 무비자가 시작되고 난 후에 한인사회가 쇠퇴하기 시작하였는데 한국불
교계도 2010년대를 맞이하면서 정체기를 거쳐 쇠퇴기로 접어들었다. 무비자 제도는 한인사회 변동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무비자로 입국을 할 경우, 미국 내에서 비자 변경이나 연장 혹은 영주권 신청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무비자 입국이 시행된 후 한인사회가 더 이상 팽창하지 못하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이 있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한국으로 역 이민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기 시작하면서 한인타운 성장은 기대할 수 없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보다 이민이 일찍 중단된 미국의 일본인사회에서 볼 수 있었다. 1980년대, 90년대 까지 미국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었던 일본인들이 모여 살던 곳은 이제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샌프란시스코의 저팬 타운도 상징물인 탑은 있으나 그 지역에 일본인이 운영하는 가게는 별로 없다. 오히려 한국인이나, 중국인이 운영하는 가게를 많이 볼 수 있다. 그곳에 있는 일본 조동종 사찰조차 일본인 신자들이
별로 없다.

 

서경보 스님의 도미 년도인 1964년부터 60년이 되는 해인 2024년 현재 미주에 한국사찰은 대략 100개 정도이다. 스님은 12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 사찰이 정기법회 참석 숫자가 10-15명 정도 이고, 50명 이상인 사찰은 뉴욕불광선원, 뉴욕한마음선원 등 3-4개에 불과하다. 10명 미만인 사찰도 많다. 많은 사찰들이 미래에 대해 불안한 상태로 있는 것이다.
서경보 스님의 미국 입국년도를 기준으로 하여 올해가 60주년인데 20년 전인 2004년에는 한국불교 ‘미주전법 40주년 기념행사’뉴욕과 로스 엔젤레스에서 미주 여러 지역에서 참가한 수 십 명의 스님들을 포함하여 7-8백이 참가하여 기념행사를 크게 하였다. 20년 전의 2004년의 뉴욕 맨하탄 32가 코리아 타운의 한국식당들은 넘쳐나는 손님들로 24시간 영업하는 식당들이 ‘큰집 식당’ 등 여러 곳이 있었다. 퀸즈 플러싱에도 한국인들이 넘쳐났으며, 2세들을 상대로 하는 학원들도 많았다. 20년이 흐른 2023년 12월 현재 예전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이제 맨하탄에는 24시간 영업하는 식당들이 없다. 식당에는 손님들도 전보다 많이 줄었고, 한국인뿐만 아니라 백
인, 중국인 등 타민족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2세들에 의해 운영되는 한국식당들은 코리아 타운을 벗어나 있으며 퓨전 한식이고, 주로 백인들이 손님인데 한국인 손님은 주로 2세들이다. 20년 전이 엊그제 같은데 이처럼 많이 변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불교계와 기독교계 등 모든 종교계에 아주 심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요일 법회나 예배에 참가자 숫자가 20년 전에 비하여 현저하게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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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40주년 행사 10년 후인 2013년에 성원스님과 필자는 미주한인사회의 이러한 동향을 알아채고, ‘미주한국불교의 미래방향을 모색하는 세미나’를 미동부해외특별교구와 미주현대불교 공동주최로 뉴욕불광선원에서 하였다. 이 세미나에서 우리에 앞서 이러한 일을 경험한 미국의 일본 정토진종과 조동종을 집중 분석하여 소개하면서 그것과 1890년대의 미국에서의 중국불교 예를 토대로 한국불교의 나아갈 방향을 모색한 것이다. 앞으로 10년 후에 미주한국 사찰 운영이 어려워 질 것으로 예상하였고 그 예상은 정확하게 적중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찰들은 이 행사에 주목하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이런 행사를 하면 좋겠는데 이 행사를 주도적으로 준비했던 성
원스님은 6년 전에 애석하게도 젊은 나이에 암으로 입적하였다. 너무나 아쉽게도 시대를 앞서간 선지식을 잃은 것이다.
성원스님이 입적하였지만 희망하는 바로는 한국불교계를 대표하는 조계종단에서 미주전법 60주년 기념행사를 켈리포니아와 뉴욕에서 하면서 지난 60년을 정리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세미나를 했으면 좋겠는데 현재로서는 그게 어려워 보인다. 미국에는 서경보 스님의 계보로 백림사, 무문사 대연불보정사가 있다. 이 세 사찰은 힘을 합해 세미나는 못 하더라도 60주년 기념행사라도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행사를 계기로 한국불교계의 중심적 역할을 하는 미주한국사찰들의 진로에 대해 불교인들의 진지한 대화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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