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행과 포교하는 사부대중 >
충주 석종사 혜국 스님에게
간화선에 대해 묻다
글 | 전현자 (취재기자)
기자: 큰 스님, 큰 영광입니다. 간화선에서 화두는 어떤 역할을 하는지요?
큰스님: 어떤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화두란 우주와 내가 둘이 아닌 세계, 진리를 바로 보여주는 걸 화두라 그래요.
기자: 요즘 젊은이들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무심’이나 ‘공’, 그런 단어만 들어도 어려워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다가 간화선 수행을 할 때는 몽중일여까지 되어야 한다는 것에는 간화선을 아주 어려워합니다. 큰스님께서 그 면에 대해서 가르침 주시면, 매우 감사하겠습니다.
큰스님: 문제는 지금 금방 우주와 내가 둘이 아니라고 하면, 그거에 대한 이해가 좀 된 다음 나가야 하는데. 전혀 이해가 안 된 상태에서 공에 대한 질문이 나왔는데. 공이라고 하는 것을 바로 알아야 되지, 공이란 아무것도 없는 거라고 생각하면, 그건 공하고는 거리가 멉니다.
공이라고 하는 것은, 부득이 예를 들자면. 여기 얼음으로 잘생긴 사람을 조각해서 저 마당에 놔두면 코가 녹고, 입이 녹고, 다 녹아가다 요만한 얼음덩어리였다가 결국은 물이 되어버리는데. 얼음이 과연 있는 것이냐? 있다고 하면 살살 녹아가는 과정만 있는 것이고, 없다고 하려니 아까 조금 전에는 있었다고 할 것이고. 그러면 얼음이라고 하는 세계가 있는 게 아니고 물이라고 하는 존재가 ‘영하’라는 인연을 만나면 영하라는 기온을 만나면, 얼음으로 살짝 나타났다가, 거기에 영상이라고 하는 기온이 오르면 물이 되어서 물로 나타났다가, 100도 이상이라는 뜨거운 기온이 오면, 수증기로 됐다가. 얼음이라는 세계가 따로 있는 게 아니고, 물이라는 세계가 있는 게 아니라, 수증기가 있는 게 아니고. 주위 인연에 의해서 얼음이 됐다가, 인연에 의해서 물로 변했다가, 인연에 의해서 수증기로 됐으니 실체가 없다는 것이지, 얼음 자체가 없다는 얘기가 아니고, 물 자체가 없다는 게 아니고. 실체가 없는 것이 공이란 이 말이에요. 실체가 없는 게. 지금 ‘얼음’하면, 얼음에 대한 실체가 있느냐 이 말이요. 물하고 영하라고 하는 온도가 만난 인연만 있지, 실체가 없다 이 말이요. 물도 마찬가지로 얼음이 영상이라고 하는 온도와 물이 만나서 물로 있는 것이지, 100도만 넘으면 수증기가 되어버리니, 어느 것 하나 실체가 없으니 공이지요.
자동차만 하더라도, 엔진 따로, 타이어 따로, 좌석 따로 다 하면, 그건 그냥 하나의 부품이지, 자동차라고 할 게 없는데. 실질적으로 실체가 있는 게 아니라, 타이어가 만나고, 엔진이 만나고 제자리에 있을 때에만 자동차라고 하는 게 있듯이, 고정불변의 실체가 없는 걸 ‘공’이라 그래요. 그 ‘공’을 알아야. 얼음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 몸뚱아리도 원자 덩어리가 모여서 지금도 잠깐도 고정된 시간이 없이 점점 변해가는 게 얼음 녹아가는 거와 다르지 않으니, 이 몸뚱이도 실체가 있는 게 아니라 지수화풍 사대원소. 즉, 원자들이 모여서 원자 덩어리가 각자 모여 있는 동안만 있는 것처럼 보이지, 우리가 현미경으로만 봐도 이 몸뚱이가 있는 게 아니라 변해나가는 원자, 변해나가는 과정만 있을 뿐이라 이 말이요.
그것이 바로 실체가 없기 때문에 공이라. 이렇게 이름을 하니까 실체가 없어서 공이라고 하는 연기법, 이 공을 알아야 몽중일여도 알 수 있고, 오매일여도 알 수 있지만 그것도 부득이 얘기를 하자면, 몽중일여라는 건 우리 번뇌망상이 그게 꿈이요. 번뇌망상이 일체 사라져서 내가 내 주인이 되면 그게 몽중일여요. 그걸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한테 무슨 말을 하겠느냐 이 말이요.
정말 번뇌망상이 전부 다 화두가 되가지고 화두일념이 되었을 때, 미운 마음, 원망했던 마음이 전부 다 지나가는 강물이란 말이요. 강물이라는 게 지금 기자님이 오늘 서울에서 왔는데 한강 지나왔죠? 그러면 올라갈 때 한강 봐요, 안 봐요? 그럼 그 강물이요, 아니요? 내려올 때 강물은 벌써 흘러가버렸어요. 같은 강물은 두 번 다시 볼 수 없어요. 늘 흘러가고 있으니까. 그런데 우리는 그 강을 본다고 착각하는 동안은 공을 못 보는거요. 기자님이 올 때 본 강물은 이미 흘러가버려서 그 강물은 없어요. 전연 다른 강이 왔는데, 그냥 한강을 본다는 거야. 한강이란 건 없다 이거요, 실제가. 계속 흘러가버리고 있으니까. 저 위에서 다른 물이 계속 흘러오는 과정만 있지, 한강이란 실체는 없다 이 말이요. 그런데 우린 있는 걸로 보는 동안은 그건 공을 모르는 소리다 이 말이요.
우리 내면도 늘 변해가고 있기 때문에 원자가 쉼 없이 변해가고 있고, 피가 변해가고 있고, 세포가 변해가고 있고. 변해간다는 건 늙는다는 것이고, 늙는다는 건 죽음으로 가는 건데 그러면 그것이 잠깐도 고정되어 있는 실체가 없기 때문에, 아, 우주 진리 전체가 다 흘러가는 강물과 같아서 고정되어있지 않다는 게 공이고 공인 줄 아는 놈을 깨닫는 게 간화선입니다.
실체가 없는 공의 원인을 바로 보면, 내 마음의 번뇌망상도 미운 마음, 원망하는 마음, 화가 나는 마음도 일어나는 찰나 이미 지나가버린 강물이라 말이요. 없다 이 말이요. 없어, 내 안에 지금. 가만히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건, 내가 그 놈을 붙들고 놓지 못하는 내 감정만 있다 이 말이요.
이미 그 일은 일어나서 흘러가버렸는데 없는 일을 우리는 붙들고 있으니 그걸 실체가 없는 걸 번뇌망상 꿈속에 산다. 그것이 흘러가버린 것을 바로 보고, 내 번뇌망상 모든 생각이 꿈인 줄 알고, 그것이 허망한 줄 알고, 이미 한번 일어날 때 흘러가는 강물인 줄 바로 보면, 실체가 하나도 없어. 그럼 왜 몽중일여가 어려울 수 있냐 이 말이요. 내 감정의 세계가 흘러가는 강물과 같다는 걸 바로 봐버리면, 보기만 한다면, 그건 아주 쉬운 일이지, 어려운 일이 아닌데.
몽중일여라는 게, 꿈이라는 게 지금 번뇌망상이 꿈인데 그게 꿈인 줄 모르고 저녁에 잘 때의 잠만 꿈으로 생각하면 이게 설명이 안되기 때문에 이거는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처음부터 하는 얘기입니다.
기자: 스님, 사람들은 삶속에서 괴로움을 경험할 때 힘들어합니다. 어떤 사고적 전환이 있으면 삶의 모든 것들이 변화하고 있음을 확고히 자각할 수 있을까요?
큰스님: 본인이 실체 없는 것만 바로 봐버리면. 내 몸뚱이도 실체가 없는데 그 안에 있는 번뇌망상이 어디 실체가 있겠냐 이 말이요. 그건 본인이 실체가 없다는 그것을 이론적으로 알게 아니라, 내 번뇌망상을 전부 다 화두와 하나가 되어서. 화두라고 하는 건 바로 공성인데. 공성과 하나가 되어서 벽이 허물어져버리면 바로 그 자리입니다.
지금 이 방은 내가 앉아있는 방이라 하고, 해인사 법당은 해인사 법당, 조계사 법당은 조계사 법당, 미국 뉴욕의 명상센터는 미국 뉴욕의 명상센터라고 하지만, 한 허공이야, 한 허공. 무슨 미국이다, 한국이다 할 게 아니라 한 허공이다 이 말이요. 그런데 한 허공이 되지 못하는 건, 방이 따로 따로 있는 건 이 벽 때문이요. 벽만 허물어버리면. 지금 기자님과 나는 이 방 안에 앉았지만, 벽을 허물어버리면 안이 있어요, 없어요?
기자: 없습니다.
큰스님: 안이 없으면, 밖이 있어요, 없어요?
기자: 밖은 있습니다.
큰스님: 밖이라는 게 없어요. 한 허공이 되니까. 저 바깥의 허공에서 어느 걸 안이라고 하고, 어느 걸 바깥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허공에서.
기자: 방이 사라진 상태에서..바깥이라는 경계는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큰스님: 한 허공인데 저 바깥에 나가서 저 허공에서 이건 안이다, 저건 바깥이다 할 수 있겠소?
기자: 그런 허공으로는 없습니다.
큰스님: 이 벽을 허물어버리면, 한 허공인데 어디 안과 밖이 있냐 이 말이요. 안이 없어지면, 밖도 없어지는 거예요. 양변을 여의는 체험을 해야만, 그러면 바로 보이는 거지. 안이라는 건 나다, 밖이라는 건 남이다. 그런데 나니, 남이니 하는 벽을 허물어버린 상태를 보여준 걸 화두라 그래요. 안과 밖의 벽을 허물어버려서 한 허공이 된 상태를 보여준 게 화두라 이 말이요. 그러면 화두와 내가 하나가 되어서, 나와 화두가 둘이 아니면 벽이 허물어진 것이고. 안과 밖이 없어지면 그러면 그냥 자각을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냥 그 세계에서 살게 되는 거요.
그러려면 그걸 직접 체험을 해야 하는데, 모든 것을 귀로 들어서 지식으로 외우는 것만 가지고는, 그건 자기 인생이 아니기 때문에 결코 볼 수가 없습니다. 그건 본인이 직접 걸어야 되고. 내가 ‘내가 누구인가’를 깨달으려면, 그걸 너무 쉽게만 생각할 게 아니라 내 잘못된 성질 하나만 고치는 것만 해도 평생 노력을 해도 될까, 말까 하는데. 내 안에 있는 모든 성질과 번뇌망상을 공성이라는 걸 깨닫기까지는, 꼭 수행만이 아니라 삶속에서 꾸준히. 삶과 수행이 둘이 아닌 위치에 가도록 노력을 해서 직접 체험이 일어나도록 해야되지, 한 두마디 들어서 알아질 거라고 생각하면 그건 지식이 되지, 지혜가 안된다는 얘기입니다.
기자: 공성을 깨치기 위해서는, 화두가 곧 공성임을 어떻게 체득할 수 있을까요?
큰스님: 진리를 체득하기 위해서는 화두 아니라도 좋아요. 무슨 수행이든지, 수행으로 자기가 직접 체험을 해봐야 된단 얘기죠. 눈을 떠봐야 바깥에 뭐가 있는지 알지, 눈 감은 채로 뭐라고 말한들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기자: 스님, 800년 전에 중국선사들이 그때 당시에 그 제자에게 맞게 내려준 그 화두를 지금도 스승들께서 제자들에게 화두로 주신다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메타버스 시대에 필요한 화두가 있다면 스님께서는 그런 화두도 주실 수 있는 것인지요, 아니면 옛날 화두도 지금 어떤 마음 자세로 화두를 드느냐에 따라서 옛 것이 아니고 지금 것이 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큰스님: 질문부터가 우리에게는 많이 거리가 있는 질문이예요. 왜냐면 허공에는 시간과 공간이 없어요. 허공에만 없는 게 아니라, 수학자들도 민코프스키박사가 특수 상대성 원리를 가지고 사차원의 세계는 시간과 공간은 그림자속에 숨어버린다고 할 만큼. 석종사 이 집은 신라 때 법당 다르고, 고려 때 법당 다르고, 지금 법당 다르지만. 허공은 신라 때 허공이나 고려 때 허공이나 지금 허공이나 만 년후에도 저 허공이예요.
화두는 허공.공성을 보여주는 건데, 공성에 무슨 800년이란 시간이 있냐 이 말이예요. 허공을 딱 보여줬다면, 신라 때 보여준 허공이나 지금이나 만 년 후에도 저 허공이예요. 화두는 이런 모양있는 환영의 세계를 보이는 게 아니라, 본래 모양없는 우리 참모습을 보여준 건데, 거기에 무슨 시간이 붙을 수 있냐 이 말이요. 기자님하고 나하고 여기서 서울역 가면 자동차로 가도 두 시간 가야되요. 부산역을 가려면, 세 시간 가야되야 되요. 미국 자유의 여신상에 가면 비행기로 몇 시간을 가야 해요. 그런데 기자님이 자동차나 비행기로 가지 않고, 마음으로 하면, 서울역 1초도 안 걸렸다, 부산역 1초도 안 걸렸다, 미국 1초도 안 걸렸다. 시간이 없잖아요. 어디 시간이 있어요, 마음에? 그 마음을 보여준 것이 화두인데, 무슨 화두에 800년된 화두가 있고 메타버스 시대라는 시대가 있겠는가. 화두는 시간.공간이 끊어진 세계를 보여준 건데, 거기에 시간을 논하면 벌써 그건. 질문 자체가 그 세계를 모르는 겁니다. 제가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이것밖에 안되니 저도 답답합니다.
기자: 아무리 시간이 초월된 상태라 하더라도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언어적, 실제적으로 와 닿는 화두를 주실 수는 없는지요?
큰스님: 그거는 내 분상이 아니지만 굳이 설명을 하자면. 수행하는 사람들이 자기 생각의 벽을 허물어버릴 수 있는 화두라면 어떤 화두가 나와도 괜찮고. 생각의 벽속에 갇히도록 하는 화두는 나는 인정을 안한다는 얘기지. 생각의 벽을 허물어버리는 화두, 생각의 벽을 깨뜨리는 화두는 그건 언제든지 상관이 없어요. 새 화두가 열 번이 나와도 그건 괜찮아요.
기자: 제가 스님 유튜브 동영상 법문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 중 하나에서 스님께서 인도 다람살라로 가셔서, 달라이 라마 존자님을 뵈었을 때, 화두 참구 방법이 한국에 있고 그걸로 수행을 한다고 두 분이 말씀 나누시는 중에 달라이 라마 존자님께서 그것 참 견성.성불 하기 좋은 수행법이다 라고 말씀하셨다고 기억합니다.
큰스님: 그거는 내 동영상을 잘못 들은 거요. 우리가 달라이 라마 스님께 먼저 질문하기를, “티벳은 수행의 마지막 목적지를 어디에 둡니까?” 하니까, “자비와 공성에다 둔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는 말은, “공성은 이미 공성이라면 공성이 안되는데 그 공성이란 건 언어가 끊어진 놀이가 아닙니까?“하니까 그 분이 ”한국에서는 어떻게 수행하느냐?“ 한 큰 방에서 30명, 많은 곳은 80명. 전부 다 서로 한 방에 앉아서 한 시간 동안 화두하고 10분 돌고는 또 좌선하다가 해서 하루에 10시간 내지 12시간 한다. ”한 방에서 그렇게 하느냐? 그거를 참 한번 보고 싶다.“ 그렇게 한 방에서 공동체적인 수행하는 모습은 참 좋은 모습이라고 했지, 그 분은 화두에 대한 얘기는 안했어요, 그 당시에.
기자: 제가 잘못 알았습니다. 한 일주일 됐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있어서 전 세계인의 화두가 되어있습니다. 여기다가도 화두를 쓴다고 한다면, 이런 화두일 때는 큰스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큰스님: 그 내용을 나도 마음 아프게 생각하고, 참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가슴이 아플 정도인데. 다만 그걸 보면서 내가 하는 생각은 이거는 어리석은 생각이지만. 지금의 공주가 옛날에 백제였어요. 경주는 신라였어요. 그러면 신라엔 김유신 장군이고, 공주의 백제는 계백 장군인데. 신라와 백제가 싸우면서. 야사에 나오는 말이지만, 계백 장군이 이번에 나가면 자기가 전쟁에 져서 자기가 죽고 나면 자기 자식들이 노예가 되는 게 너무 가슴이 아프고 고생할 게 안타까워서 자기 칼로 부인과 자식을 죽이고 나갔다는데. 지금에 와서 보면. 지금 만일 공주와 경주가 싸워서 서로 그런 일을 벌인다면, 저 놈들 미친놈들 아니가? 공주도 우리나라고, 경주도 우리나라고 이웃 간에 칼부림한 거밖에 더 되냐 이 말이요. 그 원인을 한 나라인 줄 모르기 때문에 그랬다. 한 나라인 줄만 알면, 그러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도 한 허공에 사는 사람인데, 허공의 고마움을 너무 몰라서 저렇다고 생각됩니다. 허공을 바로 보자는 게 화두인데, 그러면 내 생각에는 싸우는 이유가 뭘까?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공기를 돈 주고 사는 사람이 없어요. 공기는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데에 근본인 생명유지의 요소인데, 나는 지금 내가 기자님께 이 말을 하지만, 기자님 듣고 있지만. 내 안에 생명이 있으니까 말하는 것일 거거든. 그러면 내 생명을 내가 만들어본 일이 없다 이 말이요. 나는 내 생명을 내가 만들어본 일이 없어.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가 만들어놓은 산소. 공기를 코를 통해서 빌려온 생명이고 빌려온 에너지라 이 말입니다. 떠다니던 구름이 비가 되면 그 물을 입을 통해서 물을 먹어서 물에서 빌려온 에너지, 물에서 빌려온 생명이고. 날마다 떠오르는 태양에서 열량을 섭취해다가 빌려온 내 체온이요. 대지에서 나온 음식. 대지에서 빌려온 생명이니까 지,수,화,풍 네 가지 원소, 우주 자연의 생명을 내가 빌려다 쓰고 있는 에너지이지, 내 생명을 내가 만들어본 일이 없다 이 말이요. 그러면 러시아 사람도 그 생명 빌려다 쓰고 있고, 우크라이나 사람도 그 생명, 미국 사람도 그 생명, 새들도 그 생명에서 날아다니고 있고, 노루도 그 생명에서 뛰어다니고 있고, 그 한 생명인 줄을 모르기 때문에 저렇게 싸우고 있으니.
화두라는 건 그 한 생명을 보여준 거요. 그것만 바로 보아버리면, 저 사람이 있음으로 인해서 내가 있고, 내가 있음으로 인해서 저 사람이 있는데 한 허공인 줄 모르고.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그 한 허공을 모름으로 인해, 이런 전쟁이 일어나는데.
난 어디에서 들은 얘기 같은데 지구에서 나오는 먹거리나 모든 음식이 서로 양보하고 서로 나누고 그렇게 산다면, 지금 80억 인구 70배가 먹고 산다는 얘기요. 그런데 서로 많이 가지겠다고 저렇게 싸우고 전쟁하느라고 결국 모자라게 된 거다. 우크라이나도 같은 내 생명과 하나요. 우주 생명이니까. 러시아도 그거요. 그걸 모르는 아픔이란 얘기요, 내 얘기는. 그것만 안다면. 이 생명의 본질은 바로 허공을 알아야 되고. 그 허공의 고마움을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일 같아요. 허공이 있기 때문에 자기네가 걸어 다닐 수 있고, 총을 쏠 수 있고, 허공이 있기 때문에 집을 지을 수 있고, 허공이 있기 때문에 나무가 자랄 수 있는 건데. 같은 허공에다 대고 왜 저렇게 총질을 해야 되나? 참으로 마음 아프고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서 화두라는 건 수행자들만 할 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생명은 너 생명과 내 생명이 본질적인 면에서는 둘이 아니다. 집도 집으로 보면 한국 집 다르고, 미국 집 다르지만, 한 허공에서 볼 때는 이 허공이 미국 허공이요, 미국 허공이 이 허공이요?. 한 허공인 줄 아는 그게 바로 간화선입니다.
기자: 네, 스님. 정말 훌륭한 가르침이십니다. 제가 좀 재밌으라고 질문 만든 것 중에 한번 여쭤는 보고 싶습니다. 화두를 시간을 초월한 곳이라고 하셨지만, 어차피 있는 말이니까요. 핸드폰 안에 있는 히말라야는 어떻게 올라갈 것인가? 왜냐면 핸드폰 많이 쓰고 있으니까요. 그런 식의 화두를 만약에 갖고 한다면, ‘뜰 앞의 잣나무’보다는 좀더 감히 와 닿지 않을까? 라고 제가 어리석은 질문 드려보겠습니다.
큰스님: 지금 휴대폰 속에 있는 히말라야는 이미 볼 때 다 올라간 거요. 그거는 환영이기 때문에. 그거는 실물이 아니기 때문에 이미 볼 때 꼭대기를 꼭대기 위에서 보고 있어요. 그림자는 올라갈 수가 없어요. 휴대폰에 나온 히말라야는 그림자이기 때문에 그거는 올라갈 필요도 없고. 이미 볼 때 그건 자기 안에 다 들어와 버린 거요. 그러기 때문에 그림자로 환영으로 그런 화두를 보여준다고 하는 거는, 그건 생각의 벽을 허물어버리는 게 아니라, 내 생각의 벽을 내 마음에 맞게 한겹 덧칠한 거기 때문에, 그걸 인정안해요.
기자: 그럼 ‘뜰 앞의 잣나무’도 뜰앞의 잣나무가 보이지 않습니까?
큰스님: 그러니까 그게 문제요. 뜰앞의 잣나무라면, 뜰을 두고 한 얘기도 아니고, 잣나무를 두고 한 얘기도 아니예요. 뒷동산의 복숭아 나무라고 해도 뜻은 똑같고, 옆 집에 있는 소나무라고 해도 괜찮고, 그건 글자로 볼 게 아니라 그 당시 스승이 보 여준 암호예요.
암호는 그 안에. 예를 들어서, 누가 와서 ‘백두산’했든, ‘한라산’했든, 그 안에 숨겨진 뜻은 똑같아요. 암호로 했다면. 예를 들어, ‘어디 가서 누구를 만나서 뭘 가지고 오너라.’ 하는데 , 남이 알아들을까봐서 암호로 ‘백두산’해서 누구를 만나서 가지고 오너라. ‘한라산’이라 했든, ‘백두산’이라 했든 그건 똑같아요.
그러면 ‘정전백수자’라는 것은, 묻는 사람은 어떤 것이 우주의 대진리입니까? 해서 물었지만, 그걸 대답해주는 스승은 ‘그건 말로 대답해줄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 라는 겁니다.
눈이 전혀 안보이는 분께 “눈이 펄펄 온다는데, 눈이 어떻게 생긴 겁니까?” 무슨 말로도 설명이 안돼요. “어머니, 눈이라는 게 뭐예요?” 하니까 눈을 이만큼 갖다주니까, “아, 눈이라는 건 서늘한 거네요.” 엉뚱한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하얀 거를 알려주려고, 백조를 안겨주니까, 백조가 “꽥꽥”하거든요. “아, 눈은 ‘꽥꽥’이네요.” 말을 할수록 점점 더 멀어져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뜰앞의 잣나무라고 하는 것은 그 뜰도 생각 말고, 잣나무도 생각 말고, 스승에 대한 믿음. ‘저 스승은 한 마디 마음의 언어, 눈뜬 소식을 보여주려고, 한평생 부모형제 버려두고 저 어려운 길을 걸어왔다. 나에게 오직 저 말 한 마디, 저 큰 선물 하나 주려고 계신 분이다.’ 그 믿음이 가면, 왜 ‘뜰 앞의 잣나무’라 했을까? 하는데. 뜰을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잣나무는 전연 잊어버리고 스승과 내가 하나가 되어서 ‘나는 누구인가’ 이 속에 들어가 있는 시간이예요.
기자: 그러면 스님, ‘자동차 지붕에 장미꽃이 피었다.’ 그런 화두는 가능한가요?
큰스님: 화두란 깨닫고 보면 분명하고 분명한 세계인데, 막연한 세계는 화두가 아닙니다. 그래서 옛 스승은 ‘삼라만상 중에 법신만이 홀로 드러났구나.’라고 일러주셨습니다.
기자: 스님께서는 제자 분들에게 화두를 주실 때에 굳이 중국의 선사 분들의 그런 화두가 아니라. 때로는 이 제자에 맞는 현대의 언어로 화두를 주시기도 하십니까?
큰스님: 나는 지금까지. 처음에 화두를 할 때, 내 마음에 맞는 화두. ‘이 세상은 어떻게 생겼을까?’ 또는 ‘사람은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그거는 머지 않아서 그냥 답이 보여요. 그러면 내 안의 모든 번뇌망상이 화두가 되어서, 나와 화두가 하나가 되어서 깨닫는 쪽으로는 못 가요. 자꾸 알아지기만 하지. 그러기 때문에 나는 지금까지 화두를 옛날에는 왜 스승들이 나한테 딱 맞는 거를 주면 되지, 옛날 화두를 줬을까? 하는데.
성철 큰스님같은 분들이 왜 당신이 그 정도 위치에 가서도 옛날 그 어른들 걸 줬는가? 그게 벽이 허물어져버린 상태는 과거와 지금이 없고. 당신이 보고 나니까 그게 현재 자기가 주고 싶은 거였어요.
나도 마찬가지로 내가 백 번 만들어도 옛날 스승이 벽을 허물어버려서 보인 그보다 더 좋은 건 없어요. 지금 사람들은 지금에 맞는 걸 달라는데, 만일 그 세계를, 벽이 허물어져버리니 세계를 요만큼이라도 본 사람은 이보다 더 좋은 건 없다. 내가 만들면 그거는 이보다 100분의 1도 안되는데, 내가 왜 그걸 주느냐? 줄 생각이 요만큼도 안 나요. 그게 너무 소중하기 때문에. 그러나 그거에 대한 믿음이 안 가면 그건 아무 소용이 없는 거라. 믿음이 안 가면.
기자: 스님, 스님은 누구십니까?
큰스님: 나를 누구냐고 하는 걸 알고 싶으면, 묻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알면, 그 묻는 놈과 둘이 아니야. 보살님이 나보고 ‘스님은 누구냐?’ 하면, ‘묻는 나는 누구인가?’ 를 알면 벽이 허물어져버렸다면, ‘아, 둘이 아니었네.’
당신이 누구인가를 물을 게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를 물어야 해. 그것만 물으면, 그것만 나오면 당신은 누구냐는 건 저절로 답이 나와요.
장소와 날짜:2022년 3월 8일 충주 석종사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금바위 작성시간 22.11.28 혜국스님 계심으로 기자님 질문에 시원한 답변
온 1000년전 허공과 미국의 허공과 쏘련과 북한의 허공
하나의 허공에너지를 공짜로 사용하면서 고마운줄 모르고
서로 치고 받는 전쟁을 일으키는 탐진치 치한 각국 대통령과 위정자들의 무지를
폭로 하시는 혜국스님 훌륭하십니다
색 즉 시 공
공 중 무 색
제상의 무명운을 개하고
비상의 불성일을 견하는 개사는 무위법의 무루지로서 열반안에 도하는 법에 의하여=금타대화상님
시대신주=마귀를 항복시킴=번뇌마,오음마,천마를 항복시키는 대신력 있다
시대명주=두루 살핌=육안,혜안, 천안, 법안 있다
시무상주=원만
시무등등주=1, 4지 구족 5안 원만 2, 삼신 무상보리
기도는 큰 위력이 있어 지성으로 기도하면 복을 글어오지 않음이 없고
화를 보내지 못할것이 없다
선종에서 숙제를 마친 참선자는
1,시대신주2,시대명주3,시무상주 4,시무등등주
네가지 신력을 갖추어야 하고
대세지,관음,지장,문수,보현 보살님 보살행
국민과 전세계인들 앞에서
보여 주어야합니다
금타만다라는 4 주문을 만족 시킵니다
원효대사님 반야심경 복원소
금타대화상님 반야심경 략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