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주불교계 소식 >
재가신자로서 모범을 보여준
최숙희 보살님 장례식
글 | 편집부
저명한 비구 보디스님도 참석하고,
웨스트 버지니아 바바나 소사이터 구나라타나 스님도 부원장을 직접 보내 조사를 전하고,
로스 엔젤레스에서 혜안스님이 참석하여 고인을 추모하였다.
미국에서 불교공부와 팔리어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 재가신도의 모범을 보였주었던 최(박)숙희 보살님 장례식장에 지난 6월 9일 뉴져지 리지필드 중앙장의사에서 있었다. 최 숙희 보살님은 불교계에 늦게 입문하였지만 경전에 바탕을 두고 신앙생활을 하였다. 미국 주류 사회를 비롯하여 불교계에 이름이 널리 알려진 비구 보디 스님으로의 지도를 받으면서 20년 가까이 팔리어와 불교 공부를 하였다. 또 위빠사나 수행을 열심히 하면서 뉴져지에서 웨스트 버지니아 바바나 소사이어티(Bhavana Society)에 계시는 올해 96세인 반테 구나라타나 스님도 자주 찾아가 수행지도를 받았다. 작년에 내가 구나라타나 스님께 최 보살의 투병을 전했는데 무슨 병인지 매우 궁금해 하였다. 스리랑카 출신 구나라타나 스님은 미국에서 위빠사나 수행 으로 가장 성공한 스님이다. 최 보살님은 2004년과 2005년에 구나라타나 스님이 한국에서 초청을 받아 한국에가서 설법을 하고, 위빠사나 수행 지도를 할 때 통역을 담당하였다. 최 보살님은 구나라타나 스님이 이끄는 수도원을 비롯하여 여러 위빠사나 수도원에서 수행도 하고 또 경전읽기 모임을 결성하여 여러 사람들과 함께 수행과 공부를 병행하였다. 그러나 2021년 6월경 식도암 4기 판정을 받고 모든 것을 정리하고 뉴져지 중국 사찰에서 혼자 조용히 수행을 하면서 투병생활을 하였다. 작년 중국 사찰에 들어가기 전에 나와 만나 식사를 하면서 보살님은 담담하게 그 소식을 전해 주었다. 식도암 4기 평균 수명이 1년에서 1년 반이라고 한다. 그 이후 나는 보살님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여 가끔 카톡으로 연락을 드렸다. 그리고 지난 4월에 전화를 하니 통화가 되었다. 8개월간 키모 치료로 상태가 좋아져 그곳에서 나와서 일상 생활을 한다고 하였다. 뉴저지 포트리에서 잠깐 만나 우리는 식사를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최근에 개원한 뉴저지의 Empty Cloud Monastery라는 곳을 최보살님에게 소개해 주었다. 최보살님은 이곳이 본인이 사는 집 부근이라고 하며 아주 기뻐하였다. 그리고 그날 바로 그곳을 방문하여 가보고 매우 좋다는 연락을 나에게 하였다. 수도원이 너무 마음에 든다는 것이다. 앞으로 이곳에서 수행을 하고 싶다고 의욕을 보이기도 하였다. 4월말에 미주현대불교 취재 기자들과 함께 그곳을 갔는데 그곳 주차장에서 우연하게 최보살을 만났다. 우리는 함께 취재도 하면서 매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갑자기 다시 병세가 악화되어 지난 6월 5일 이 세상과 인연을 마감하였다.
최 보살 남편 박준구 선생은 장례식 참가자들에게 장례식 참가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말을 전하면서 “ 남편이지만 묵연 보살의 불교 생활에 대해 정확하게 잘은 몰랐지만 아내는 불교를 정말 좋아하였고, 공부를 열심히 하였다.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문제의 답은 경전에 있다고 말했다.”고 옆에서 본 최보살의 신앙태도를 전했다. 고인은 사망하기 전 위빠사나 수행을 미국인 신도들에게 개방할 수 있는 Meditation Center 가 마련되어 본인 소장의 책들도 함께 보관하고 싶다는 뜻을 수 차례 말했다고 한다.
9일 장례식장에는 함께 경전공부와 수행을 하던 도반들을 비롯하여 최 보살님과 인연있는 스님들도 많이 참석하였다. 웨스트 버지니아에서는 구나라타나 스님은 연로하신 관계로 대신 이 수도원의 부원장 Saddhajeewa 스님을 보내 스님의 녹음 메세지를 전했다. 부원장 스님은 최숙희 보살님은 세계적으로 명망 높은 스님들로 부터 지도를 받고, 또 인정을 받은 훌륭한 보살님이라 고인을 평가하였다. 또 비구 보디 스님도 직접 참석하시어 본인 소개도 하시고, 최 숙희 보살님과의 인연, 최 보살님이 진지한 구도적인 자세와 매우 뛰어난 학생이었다고 참석자들에게 설명하였다. 보리사 원영스님이 장례식을 집전하였과 로스엔젤레스 무염사의 혜안스님도 멀리서 참석하였고, 전에 예일대학교에서 법사로 명상을 지도하던 미국인 보성스님도 참석하였다.
최 숙희 보살님은 내가 발행하는 미주현대불교에도 많은 글을 쓰는 중요필자였다. 미주현대불교에 2001년부터 10년 넘게 중부 아함경을 번역하여 연재하였다. 처음에는 비구 나나모리(Bhikkhu Nanamoli)와 비구 보디 스님이 공동 편집한 영문 ‘The Middle Length Dicourses of the Buddha’를 주 교재로 하여 번역하다가, 나중에는 팔리어 원전을 번역하였다. 이외에도 나의 부탁으로 취재일도 많이 도와주고, 때로는 통역일도 도와 주어 일손이 부족한 미주현대불교에 큰 도움을 준 분이다.
이런 오랜 인연으로 나는 오늘 최 보살님 장례식에서 고인의 약력 소개를 하였다. 미주현대불교에서 소장하고 있는 불교 번을 가지고 가서 장례식장을 장엄하여 최보살님 가시는 길을 아름답게 하였다. 이 불교 번은 미국에서는 가지고 있는 곳도 거의 없고, 장례식장에 번을 장엄하는 장례식은 인연이 있어야 하는데 최보살님과는 아름다운 인연으로 마감을 하였다고 생각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하면 우리는 존재로서 있는 것이 아니고 생멸이 본래 없는 다르마로 있는 것이고, 연기하고 있는 것이지만 이 생에서의 최 보살님과 인연은 나에게는 매우 소중한 것이었다.
박숙희 묵연 보살 약력
1. 1946년 경남 사천에서 태어나 경남여고를 졸업하고 서울 사대 국어국문과에 입학. 동대학 조교로 있다 1969년 도미
2. 캔사스대학원에서 석박사를 마침.
3.1977년 박준구씨와 결혼. 슬하에 2남.
큰 아들은 예일대학교 졸업하고, 에티테이먼트 사업, 둘째 아들은 신경과 의사.
4. 1989-2004, 퀸즈 칼리지와 버겐커뮤니티칼리지에서 한국어 한국문화를 강의.
버겐칼리지에서 미전국 best teacher award수상
5. 1999-2000년, 뉴욕에 1997년 도솔법사가 설립한
로터스 달마스쿨 디렉터
6. 수행과 경전공부에 정진하면서 2004년 부터 비구 보디 스님에게 빨리어 학습.
7. 2001년 5월호 부터 미주현대불교에2013년 1월 까지 중아함경 번역.
8. 경전 번역 외에도 미주현대불교에 본인의 위빠사나 수행기, 미국의 위빠사나 지도법사로 유명한 조셉 골드스턴과 인텨뷰, 2000년 유엔에서 처음 열린 유엔베삭행사 취재 등 미국불교에 관한 많은 글을 투고.
9. 2004년 한국 보리수선원 초청 스리랑카 스님 구나라타나스님 한국방문 통역.
2005년 한국 홍원사 초청 스리랑카 스님 구나라타나스님 한국방문 통역.
10 . 최근에는 뉴저지에 Maywood Meditation Center 설립하여 중부경 경전공부를 회원들과 함께 하며 재가불교운동을 펼침
아래는 비구 보리 스님이 장의사 사이트에 올린 글이다.
“Suki was one of my most devoted students and dearest spiritual friends. For close to twenty years she studied Buddhism and the Pali language with me. She would drive 1.5 hours each way, sometimes twice a week, to attend classes. She had an excellent grasp of the Pali language and, before her illness, had even started to teach Pali in Korean. Suki had a warm and cheerful nature, a generosity of spirit that was deeply appreciated by her fellow students and Dharma friends. She would undertake any task assigned to her and never complained. She even treated her final illness with a touch of humor. Before she underwent brain surgery, she assured me that if it was her time to depart, she would go peacefully, and would cherish the treasures of Dharma she had acquired in this lifetime, also shared an im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