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행과 포교하는 사부대중 >
한국불교는 우리의 운명: 버스웰 부부 (2)
UCLA에 신설될 한국불교
석좌 교수직을‘지눌’이라 이름한 이유는?
글 | 스텔라 박 (취재기자)
지난 호에 이어 UCLA를 은퇴한 로버트 버스웰 주니어 교수와 그의 아내 크리스티나 버스웰씨와의 인터뷰를 싣는다.
두 분 모두 학문으로서 한국 불교를 공부하셨기 때문에 학자로서의 예리하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한국 불교를 보실 것 같아요. 단지 아내가 한국인이기 때문이거나, 또는 한국에서 스님 생활을 하셨기 때문에 한국 불교를 선호하는 게 아니라요. 전 세계 다양한 불교들 가운데 한국불교의 강점은 무엇인가요? 학자적 관점에서 듣고 싶습니다.
로버트: 저의 경우, 한국에서의 수행 경험, 그리고 한국인 아내를 두고 있다는 것도 한국 불교의 진가를 알고 감사하게 느끼는 이유입니다. 두 말 하면 잔소리이죠.
하지만 제가 처음부터 한국에서 공부한 것은 아니에요. 그 당시의 저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불교가 있는지도 몰랐었습니다.
대학교 1학년 첫 학기 때 처음으로 불교 과목을 하나 들었는데 너무 심취된 나머지 교수님을 찾아가 출가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교수님은 타일랜드 불교를 가르치셨어요. 제가 출가를 도와달라고 했더니 가서 부모님 허락을 받고 오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교수님이 다리를 놓아주시더군요. 타일랜드로 건너간 저는 숲속 전통(Forest Tradition, 아잔차 스님을 중심으로 한다.)에서 공부하고 비구계를 받았었습니다.
타일랜드에서는 주로 팔리어로 된 경전을 보며 공부했지만 그와 별도로 대학에서 했던 중국어와 산스크리트어 공부를 계속했어요. 중국어로 쓰여진 불교 경전과 자료들을 공부하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런데 타일랜드에서 1년을 보내고 나니 신체적으로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곳 날씨는 너무 덥고 습기가 많았어요. 아직 20대의 나이인데 하루 1끼만 먹는 것도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홍콩으로 가기로 결정했어요. 당시, 중국 본토에서는 미국인들의 입국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 불교를 공부하기 위한 차선책으로 홍콩을 선택한 것이죠.
홍콩에 가서는 홍콩에 거주하고 있는 중국인 스님들과 함께 지내면서 중국어를 공부했습니다. 덕분에 홍콩에 있으면서 중국어로 쓰여진 불교 경전들을 읽을 수 있게 됐죠.
그런데 타일랜드에 있을 때, 그리고 홍콩에서 지내는 기간에 한국 스님들을 몇 분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처음으로 한국에도 불교가 있고 스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스님들이 제게 한국에 대해 얘기해줘서 한국의 승려들이 전통적인 방식대로 매우 열심히 정진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열심히 정진하는 공동체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중, 결국 순천 송광사로 가게 됐습니다. 그곳에 가서야 한국의 스님들이 정말 진지하게 수행하시는 것, 그리고 한국에 너무 풍부한 수행 전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하루 종일 10-14시간씩 좌선을 하고, 결재 때는 선방에서 3달 동안 안거를 하는 전통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저도 물론 안거에 참여했죠.
당시 저는 간화선이 뭔지도 몰랐었습니다. 한국의 불교 전통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으니까요. 단지 ‘내게 찾아온 기회를 최대한 이용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간화선 전통에 대해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것이 첫 걸음이었어요.
그렇게 접한 한국 불교는 매우 흥미있고 평범하지 않으며 독특한 불교 전통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 제가 수행하고 공부했던 전통과는 정말 달랐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어떻게 이런 전통이 생겨나고 발전되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간화선 수행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그 역사와 철학을 공부했어요. 그러고 나니까, 진정으로 한국 불교에 대한 깊은 이해와 찬탄의 마음이 더욱 깊어지더군요. 한국은 수행의 전통이 정말로 가득한 나라입니다. 특히 경에 대한 매우 깊은 이해에서 시작된 수행 전통이 아름답죠. 그래서 UCLA에 새로 신설될 석좌교수직의 이름도 이름도 ‘지눌’로 명명한 거에요.
교수님에게 지눌은 어떤 존재인가요?
로버트: 지눌은 한국 불교 전통에서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이 있는 인물입니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한국 불교에서 중요한 인물을 대라고 하면 원효대사를 언급합니다. 원효 역시 한국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문화적 인물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한국 불교 전통의 영향을 생각할 때 원효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작습니다. 원효는 정치적인 내용, 그 외에 거의 모든 방면에서 활발한 저작활동을 했습니다.
물론 <대승기신론>이 있기는 하지만 성숙하고 깊은 불교 저작의 시각에서 볼 때 원효의 저작물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반면 엄청난 양의 불교 저작이 지눌스님으로부터 왔어요.
지눌은 선수행을 돈오점수로 봤습니다. 그는 불교 선수행과 화엄 수행(화엄경의 이해)으로 대변되는 선과 교의 조화를 주장했죠. 불교 수행과 불교 가르침이 함께 해야 한다는 사상인 선교쌍수가 한국 불교의 근간을 이루게 된 것이죠. 지눌은 한국에서 최초로 간화선을 일으켜 세운 승려입니다. 원효대사는 간화선에 있어서는 아무런 업적이 없습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제가 송광사에서 계를 받았잖아요. 그런데 송광사를 처음 설립하신 스님이 바로 지눌스님이에요.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깊은 인연이죠. 그는 당대의 국사였었습니다. 혹시 이 기사를 읽는 독자들이 오해할까봐 드리는 말씀인데요. 원효스님의 원력이나 가르침이 결코 적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원효는 의심할 바 없이 다방면에 걸쳐 공부가 깊은, 재능이 많고 훌륭한 스님입니다. 하지만 선불교는 중국의 혜능스님으로부터 시작됐잖아요. 원효 스님은 혜능 선사 전의 인물입니다. 즉 한국에서 간화선은 둘째치고 선불교 자체가 아직 전해지기 전이었기에 원효스님을 선불교와 연결시킬 수는 없는 일입니다.
지눌스님은 한국 불교 역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분입니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체계적인 한국 불교, 즉 학술적 체계와 수행의 전통은 모두 지눌스님께서 확립하신 것입니다. 지눌스님 이전에는 선종과 교종이 서로 싸웠어요. 중국에서 시작된 불교 선종(禪宗)의 구산문(九山門) 전통이 각각의 목소리를 드높였죠. 그런데 지눌스님은 선과 교를 하나로 통합해 함께 공존하게 했습니다. 하나를 취하고 하나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받아들여 원만한 불교 수행과 체계적인 사상을 확립해놓으신 거에요. 그렇기 때문에 현대의 학문적 입장에서 봤을 때는 원효 스님보다도 지눌 스님이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어요.
크리스티나: 다른 사람들이 버스웰 한국불교 석좌교수(Buswell Endowed Chair in Korean Buddhist Studies)로 명명하지 그러냐는 말을 많이 해요. 그러나 저희에게는 그런 생각이 1도 없어요. 그리고 이 석좌교수 자리를 지눌 스님에게 바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지눌 한국불교 석좌교수(Chinul Endowed Chair in Korean Buddhist Studies)로 한 거에요.
지눌 석좌교수 신설을 위한 기금 외에도 대학원생들을 위한 장학기금도 기부하셨죠?
크리스티나: 네. 앞으로 남편의 은퇴를 앞두고 버스웰 UCLA 불교학 대학원생 장학금(Fellowship in Buddhist Studies at UCLA)을 만들었어요. 사실은 로버트의 제자들이 UCLA 불교학 대학원생을 위한 장학기금을 조성하고 싶어했는데 저희들이 하는 것도 좋겠다 싶어 이를 별도로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석좌교수 자리를 마련함으로써 앞으로 UCLA에서 한국 불교가 강의되고 연구될 수 있도록 보장할 수 있고, 또 대학원생들을 위한 장학기금을 조성해서 한국 불교를 공부하는 대학원생들을 도와줄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이로써 교수와 학생들 모두를 확보하는 풀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최근 미국에서는 마인드풀니스가 열풍을 일으키고 있고, 다시 역으로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버스웰 교수님은 20대에 타일랜드에서 위빠사나 즉 마인드풀니스 수행을 하셨는데요. 그후 한국에서 간화선을 만나고 나서 이 두 가지 수행을 결합시키셨나요? 아니면 예전의 것을 버리고 간화선만을 택하셨나요?
로버트: 타일랜드에서 위빠사나를 수행하면서 현재 경험의 무상함을 몸으로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한국에 갔는데 한국 스님들 중에서는 아무도 마인드풀니스에 대해 얘기하지 않더라고요. 오직 간화선, 화두, 이런 얘기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수행들이 불교 수행과 무슨 관계가 있지 하는 의문이 들었었습니다.
이 모두를 공부하고 보니, 마인드풀니스는 간화선의 기반이기도 합니다. 모든 종류의 불교 수행에는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간화선 수행은 하나의 질문에 집중함으로써 집중력과 사마디를 성취할 수 있고 이에 더해 통찰(Insight)과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간화선은 마인드풀니스 수행이 가져다주는 것을 성취하게 합니다. 즉 양쪽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이죠. 대신 차이라면 언어가 다르다는 겁니다. ‘통찰(Insight)’이라는 하는 대신 ‘본성을 본다’, ‘본성을 안다’라는 식으로 표현하죠.
팔정도는 바른 사마디와 바른 수행을 말하는데요. 가끔 저는 바른 사마디와 바른 수행이 도대체 무엇인가 싶어요. 불교대학 교수로서, 그리고 수행자로서 바른 수행, 바른 사마디는 무엇이라고 말씀해주시겠어요?
로버트: 불교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른 수행은 바른 노력으로, 선한 것을 증장시키려는 노력을 말합니다. 그리고 선하지 않은 것을 없애려는 노력을 의미합니다.
바른 사마디는 자나 상태, 즉 고요하면서도 집중된 상태를 말하죠. 하지만 간화선에서는 이런 단어를 사용하지 않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뭐꼬?” 등의 화두를 들고 깊은 질문을 하기 위해 필요한 집중 상태는 완전한 자나 상태와 같습니다. 간화선에서는 이 둘을 동시에 하는 거죠.
테라바다 전통에서는 사마디는 그저 사마디일 뿐입니다. 사마디에서 나오면 살피기(Investigate) 시작하죠. 사마디는 마음을 고요하게 하기 위한 도구로, 사마디에서 나오면 그 집중된 지혜로 주변을 살피고 삶의 무상함을 볼 수 있죠.
간화선은 이를 동시에 합니다. 충분히 집중된 상태로 있는데 사마디처럼 깊은 상태로 있지 않아요. 그래서 집중돼 있고 고요하고 평화롭지만 자나 상태로 있을 만큼 고요하진 않습니다. 그렇다고 산만해진 것도 아니에요. 그렇게 집중력과 통찰의 조화를 유지하는 거죠. 자나 상태의 깊은 집중력은 아니지만 집중력과 통찰이 함께 있는 상태요.
그렇다면 자연스러운 알아차림(Natural Awareness)과 비슷한 건가요?
로버트: 비슷합니다. 간화선으로 창조되는 상태가 바로 그런 거죠. 내 주변 환경에 대한 자연적인 깨어남, 인식이요. 파묻히지 않고 알아차리는 것이죠.
마인드풀니스가 미국의 메인스트림에서 전국적으로 유행이고 인기가 있는 지형에서 한국 불교가 파고들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왜냐하면 한국 선사들의 언어는 너무 친절하지 않아요. 제가 한국어를 사용하면서도 선사들의 법문을 들으면 “도대체 뭔 얘기하는 거야.” 싶을 때가 많거든요. 그렇게 애매모호한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미국인들, 더 나아가 전 세계인들에게 한국의 불교, 간화선이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로버트: 그게 바로 저희들이 대학에서 하고 있는 일입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전달하는 것이죠. 대부분의 선사들의 말을 들으면 신비하고 수수께끼 같아아요. 그런데 거기에는 그렇게 표현하는 이유가 있어요.
대학 강의실에서 우리가 하는 일은 사람들을 불교신자로 개종시키려는 게 아니거든요. 우리는 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하거든요. 설명하려 하죠. 그리고 학생들에게 내가 왜 이 전통에 대해 찬미하는지를 얘기합니다. 그것 자체도 큰 포교가 될 수 있어요. 최고의 포교는 개종시키려는 인위적 노력이 아니라, 예를 들어 설명해 납득이 가게 하는 거죠. 그러면 사람들은 그래, 좀 더 알아보자, 좀 더 공부해보자. 하겠죠. 그것이 불교 전파에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대학은 그래서 참 좋은 곳입니다. 대학이란 설명하여 이해시키기는 것을 잘 하는 곳이죠. 선사들이 하는 법문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논리로 이해되지 않겠지만 대학교수들은 명확하고 논리적으로 설명해 이해시켜야 해요. 말이 되어야 해요. 그래서 서구의 대학은 불교 전통에 있어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겁니다. 학생들이 최초로 불교를 접할 때 불교가 제공할 수 있는 것을 이해하게 하는 것이 대학의 존재 이유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UCLA는 정말 특별한 곳이에요. UCLA에는 불교 교수가 4명이나 있어요. 4명의 교수 중 한 명은 인도 불교를, 또 한 명은 일본 불교를 가르치고 있고, 중국 불교를 가르치는 교수도 있어요. 저는 한국 불교를 가르쳤었고요. 미국의 대학으로서는 정말 많은 교수를 확보하고 있는 거에요. UCLA에서 기독교학을 가르치는 교수는 2명 밖에 없습니다. 그 중의 한 교수가 한국 기독교를 가르쳐요. 그러니 학생들의 관심이 불교에 대해 더 많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얘기는 학생들이, 그리고 더 나아가 전 세계인들이 기존의 기독교가 아닌, 대체종교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뜻이에요. 기독교는 이미 경험해봤고 어떤 종교인지 알고 있어요. 그런데 뭔가가 조금 부족한 거에요. 그래서 새로운 무언가를 더 찾는 겁니다. 제 생각에 불교는 그 좋은 대체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대학에서 불교 명상 수행을 하도록 가르친 게 아니라 불교 명상에 대해 가르쳤었어요. 불교 명상 수행을 하도록 하는 것은 ‘명상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의 몫입니다. 공공 대학에서는 종교를 가르칠 수 없고, 단지 종교에 대해 가르칩니다. 하지만 이것만도 매우 중요해요. 저는 마인드풀니스에 대한 수업도 합니다. 마인드풀니스가 어떻게 발전했나, 마인드풀니스 수행의 목적은 무엇인가, 수행 시스템은 어떤가 등을 가르치죠.
간화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에요. 어떻게 접근하는가, 수행을 통해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 수행 결과는 어떤 것인가 등에 대해 가르칩니다. 그럼으로써 학생들은 불교의 여러 수행 전통의 차이점을 이해하게 됩니다.
예전에 한국의 수행 전통은 이러한 학문의 장에서 단 한 번도 거론되지 않았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일반적으로 일본의 묵조선, 티벳의 통렌, 중국의 선불교, 동남아시아의 위빠사나 등에는 노출되었던 적이 있지만 한국의 선불교는 접해보질 못했죠. 저는 강의에서 불교 수행을 강의할 때 꼭 한국을 포함시킵니다. 그럼으로써 사람들이 한국 불교의 독특함을 알 수 있도록 말이죠.
21세기 AI, 메타버스의 시대에 한국 불교, 한국 간화선이 인류에게 다가갈 수 있고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시는지요?
로버트: 우선 한국의 불교에만 국한시키지 말고 얘기해보죠. 저는 불교 전통이 현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바가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그러한 불교 전통의 한 부분입니다.
불교는 현대인에게 자아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이는 서구인들이 살아오고 생각했던 방식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서구인들은 영원불멸하는 영혼이 있다고 생각하고 생전에 착하게 살면 하나님의 은총으로 사후 하늘나라에 계신 하나님과 하나가 된다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영원불멸하는 영혼의 존재를 믿지 않는 대신, 자아를 비자아로 인식하죠. 즉 자아란 계속 생겨났다가 창조했다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불교가 제공할 수 있는 장점은 우리가 하나의 방향이나 길에 꽉 막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자아, 사회, 커뮤니티의 필요에 따라 변화할 수 있음을 얘기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불교가 제공하는 것은 우리 자아가 창조하고 부수고 다시 창조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그것이 일반적인 서구인들의 사고방식과는 아주 다른 점이죠. 그래서 21세기의 속도 빠른 세상, AI와 메타버스의 시대에도 불교가 여전히 우리들에게 기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불교가 깊은 수행의 전통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한국 사찰에서의 불교는 천도재, 염불, 108배 등 실제 수행과는 다른 전통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크리스티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생각해요. 요즘 평신도들 사이에서도 간화선을 수행하는 이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요즘 한국인들은 간화선이 더 이상 스님들만 하는 수행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 같아요. 모든 사람들이 하는 수행이 된 것이죠. 진재스님, 수불스님, 혜국스님 등은 평신도들이 간화선 수행을 하도록 간화선을 설명하고 소개하는 방법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사찰에서 머무는 템플스테이에 가면 불교 수행의 맛보기를 경험해볼 수 있습니다. 즉 불교를 일상생활에 활용할 수 있음을 경험하고 오는 것이죠.
저는 한국의 절에서 붓다의 가르침을 알고자 하는 이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108배도 겸손과 인류애를 닦을 수 있는 아름다운 수행이라고 생각해요. 또한 절 수행은 염불 수행과 함께 부정적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마음을 평화롭게 하는데 기여하죠. 텅 빈 껍데기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열심히 수행할 때, 인식의 지평까지 넓히는 큰 혜택을 준다고 생각해요.
제자들 중 몇 명이나 미국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나요?
로버트: 저의 제자 중 4명이 한국의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고, 캐나다와 미국의 대학에서는 12명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한 학기에 한국 불교 강좌를 택하는 학생은 몇 명 정도인가요?
로버트: 한국불교 학생은 한 학기에 50명 정도입니다. 불교학 개론은 수백명이 듣습니다. 불교학 개론은 일반적인 내용이라 저학년생도 선택할 수 있지만 한국불교는 상급 학년이 되어야 선택할 수 있어요. 그래서 학생 수가 줄어들죠. 한국어 수업은 수백명이 몰려와요. 거듭해 말씀드리지만 UCLA는 한국학에 있어 미 전국의 그 어떤 대학도 따라올 수 없는 규모와 수준을 자랑합니다.
은퇴 후에는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지요?
로버트: 별로 변화가 없을 거에요. 지금까지 하던 대로의 삶일 것이라 생각해요.
크리스티나: 저에게 더 헌신하고 집중할 것이라고 말하곤 했었어요. 그 약속을 지킬지 지켜볼 거에요. ㅎㅎㅎ. 농담이에요.
로버트: 아직도 번역 프로젝트가 남아 있으니 그 작업을 좀 할 거고, 초청하는 곳이 있으면 강의도 좀 하겠죠.
36년간 UCLA와 함께 하셨는데 그동안 가르쳤던 수업 타이틀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로버트: 학부 클래스로는 불교 개론, 불교 명상 전통, 중국 불교, 한국 불교 등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한국어와 중국어 원어로 쓰여진 불교 문서들을 읽는 코스도 가르쳤습니다. 대학원생과 박사학위 학생들을 위한 세미나로는 원효, 지눌, 한국 사찰에서의 수행 등이 있습니다.
스님인 제자도 있으시죠?
로버트: 네. 현재 박사학위에 있는 덕일스님도 제 제자입니다. 덕일스님은 초기 팔리어 경전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죠. 덕일스님이 공부하는 내용은 제가 처음 불교에 입문했을 때 관심 갖던 것들이에요. 스님은 한국에서 초기 팔리어로 된 경전을 공부하기 위해 스리랑카로 건너갔죠. 저는 초기에는 타일랜드에서 팔리어 경전을 공부하다가 한국으로 건너갔고요. 서로 같은 내용을 순서만 바꾸어서 공부한 셈입니다. 덕일스님이 공부하시는 내용이 요즘 한국에서 승려들 사이에서도, 재가자 사이에서도 매우 인기인 것으로 알아요.
끝으로 독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요?
로버트: UCLA에 한국 음악 과정이 개설됐었지만 수요가 없어져 사라졌습니다. 무척 안타까운 일이죠. 학교의 개설 학과는 세대마다 달라집니다. 그래서 한국불교를 가르치는 영구적 자리를 만들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저는 처음 UCLA에서 중국 불교를 가르치는 자리에 고용되었었습니다. 그런데 저 자신도 한국 불교에 관심이 있었고, 또 학교 측에서도 한국이 발전하는 것을 보며 한국 불교가 인기있다는 판단에 한국불교를 강의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제가 은퇴하고 나면 UCLA에서 중국 불교가 더 발전할 수도 있습니다. 한국불교가 계속 UCLA에서 강의되고 연구되게 하려면 꼭 한국불교 석좌교수 자리를 마련해야 합니다. 독자분들도 한국불교의 명맥을 이어가는데 작은 힘을 보태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박스 기사 - 로버트 버스웰 교수는?
한국불교를 전공한 대표적인 서양학자이자 불교 수행 연구자로 유명하다. 순천 송광사로 출가해 ‘혜명(慧明)’이라는 법명을 받은 그는 5년 이상을 머물며 선수행에 매진했다. 이때 송광사에 국제선원을 개원한 구산 스님을 만나 한국선불교와 보조 지눌국사에 대한 연구로 한국불교계에 이름을 알렸다. 미국과 유럽학계에 최초로 한국불교를 소개했을 뿐 아니라 일본, 중국불교 연구 수준 이상으로 정착시켰다. 2000년 UCLA에 불교학연구소를 설립해 초대 소장을 역임했으며 동아시아학과장도 겸임했다.
버스웰 교수는 불교를 광범위하게 다룬 저서를 다수 출간했으며 2권으로 구성된 ‘불교 백과사전’(Macmillan Library Reference 2003)의 편집장으로 활동했다. 120만 단어로 이루어진 ‘프린스턴 불교사전’(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3)을 공동으로 출간하기도 했다.
바로 잡음
지난 호 버스웰 교수 관련 기사에서 로버트 버스웰 교수가 10년간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원장을 지냈다는 내용을 10년 전, 2년간 불교학술원 원장을 지냈다고 바로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