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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현대불교 2023. 11,12월호] 정정달 법사 미국포교 50년

작성자파란연꽃|작성시간24.05.20|조회수23 목록 댓글 0

 

 

 정정달법사
미국에서 50년 포교활동 마지막 법회 주관

 

미국에서 L.A 관음사 등 3개 사찰 개원한 정달법사
9월 24일 20여명 참석한 가운데 오렌지 카운티 법보선원에서 마지막 법회 주관

 

 

 

글 덕광德光 김형근 (본지 발행인)

 

 

1972 12월 31일 정정달스님, 운허스님, 구산스님이 삼보사 낙성식에 참석하기 위해 북가주 몬트레이 공항에 도착하였다.

 

 

정정달 법사는 현재 살아있는 미주한국불교계의 산증인이다. 오랜기간 재가 법사로 수행지도와, 불교를 포교 활동을 하였지만, 정달 법사가 처음에 미국에 올때는 한국에서 큰사업을 하다가 미국에 온 이한상 거사가 북가주 카멜에 건립한 삼보사 개원식에 참석하는 운허스님과 구산스님을 모시고 온 조계종 스님이었다.
전라북도 군산이 고향인 정달법사는 동국대 법대를 졸업하고 박사과정 2년과정 중에 1958년 지리산 화엄사에서 전강스님을 은사로 출가를 했다. 스님으로 활동을 하다가 1972 12월 31일 정정달 스님은 운허, 구산스님 모시고 이 한상 거사가 삼보사 개원식에 참석하기 위해 캘리포니아 몬트레이에 도착하였다. 한국에서는 12월 30일 출발하였다.
1973년 1월 28일 미주한국불교 최초의 사찰인 카멜 삼보사 개원식에 참석하고 난 후인 한 달후인 2월 말에 정달법사는 숭산스님이 건립한 동부의 프로 비덴스 선원에 가서 숭산스님과 함께 포교활동을 하게 되었다. 1972년 4월에 미국에 온 숭산스님은 선원을 개원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절로 세탁소에서 세탁 기계 등을 수리하는 일도 하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이해 9월에 달마사주지였던 한 계정스님이 프로비센스 선원을 방문하였는데 정달스님은 한계정스님과 함께 로스 엔젤레스 달마사로 왔다. 당시 달마사는 로스 엔젤레스 8가에 있는 쇼핑센터에 세를 얻어서 법당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렇게 되어 정정달 스님은 한계정스님, 동국대 출신의 김학순 박사와 함께 아파트를 얻어서 같이 살면서, 평일에는 일도하면서 달마사에서 포교활동을 하였다. 그러다가 누군가에 의해 정달스님을 모함하는 투서를 이민국에 하여 영주권이 없는 정정달스님은 구치소에 갇히게 되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천용 거사, 상록회를 시작한 김정법화 보살등이중심을 되어 보석금을 내주어서 하루 밤을 자고 구치소를 나오게 되었다. 그래서 달마사를 할 수 없이 나오게 되었다. 정달스님은 달마사에서 만났던 신도들과함께 약 한달간 준비를 하여 1974년 3월 10일L.A.관음사룰 개원하였다. (1715 S. Ardmore Ave.). 1년 정도 관음사에서 활동을 한 정달스님은 1975년 5월에 재가 신자로 포교를 하겠다는 것을 신문에 광고를 하고 승복을 벗고, 스님생활을 정리하였다. 관음사 새 주지로 도안스님이 활동할때 정달법사는 관음사에 나가면서 신도들이 뽑은 이사장으로 있었다.

1973년 1월 삼보사 개원식 앞줄 왼쪽 부터 상품화보살과 이한상 거사 부부, 운허, 구산, 정달스님 뒷쪽 맨 왼쪽 최동수 거사

 

정정달 법사

 

1978년 부터 정달법사는 물빨래를 하여 배달하는 세탁소 일을 시작하였다. 이 일을 시작으로 점차 규모가 큰 교모의 세탁소를 운영하였다. 그러다가 1980년 오렌지카운티에 정혜사를 개원하였다. 이것은 당시 달마사, 관음사 등 한국 사찰들이 L.A. 카운티에 몰려 있었기 때문에 한국사찰 포교 영역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오렌지카운티에는 250개의 개신교 교회가 있었지만 사찰은 없었다. 정달법사는 정혜사를 이끌면서 세탁소 사업을 하였는데, 정혜사에 나오는 신자들중에 정달법사 부부의 도움으로 세탁소를 연 사람이 21사람이나 되었다. 그리고 전강스님의 제자로 정달법사와 사형사제였던 정현스님의 소개로 미국을 방문한 강청화스님을 만나게 되었다. 정현스님은 강청화스님의 미국입국에 중요한 역할을 한 스님이다. 정달법사는 청화스님께 정혜사를 잘 이끌어 달라고 하면서 인계를 해주었다.
세탁소 일을 하면서 홀가분하게 개인적인 수행을 하려는 정달법사에게 여러 신도들이 조용히 수행하는 선방을 하자고 여러 사람들이 찾아왔다. 오랜동안 인연을 맺은 사람들의 요구 때문에 정달법사는 1997년 2월에 오렌지카운티에 법보선원을 개원하였다. 켈리포니아에서만 세번째 개원이었다. 이 법보선원에서 수행과 포교를 하다가 지난 9월 24일 마지막으로 법회를 하고 포교활동을 정리하였다. 이 뜻 깊은 법회에 그동안 정달법사와 인연이 있던 20여명이 참석하여 마지막 법회를 축하해 주었다. 1973년부터 계산하면 미국에서 50년간 포교활동을 정리한 것이다. 앞으로 법보선원은 UCLA에서 공부를 한 덕일스님을 주지로 하여 운영된다.

 

위왼쪽사진_1974년 LA 관음사 개원식을 집전하는 정달스님 위오른쪽사진_ 1980년 정혜사 개원식 장면
2023년 9월 24일 마지막 법회 장면

 

정달법사는 법사로 수행과 포교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불교계에서 미주법사회 회장으로 10년간 활동하면서 이벨극장과 윌셔 에리슨 호텔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미국인 현각스님의 초청법회를 하였으며, 미주현대불교 LA 후원회 초대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또 인권문제연구소 회장,L.A.6.15 대표위원장, 평통위원 등으로 사회활동도 활발히 하였다. 이러한 활동으로 LA 한인회(회장:이용태)와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교회(차종환)가 공동으로 한미양국의 국위선양, 개척자 정신을 발휘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개척자 상을받았다. 지난 2005년 11월 21일 LA 로텍스 호텔에서 가진 시상식에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세미 리, 통일운동가 이활웅씨, 교육자인 김주안 박사 그리고 법보선원 선원장인 정정달 법사가 개척자 상을 받았다.

미주한국불교 초기부터 정정달법사의 미국에서의 50년간 포교생활은 사실 간단하게 몇 줄로 요약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스님이 아닌 재가자로 불상을 모신 단체나 사찰을 운영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정달 법사는 기회가 될 때 마다 “부처님께 입은 은혜를 갚으려고 사생활없이 살았는데 오히려 업만 지지 않았는지 모른다는 ”는 말을 자주 한다. 항상 부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이런 마음가짐이 오랜 활동기간에서 마주친 어려움을 극복하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불교 의식도 잘 알고, 뛰어난 염불실력과 불교교리를 쉽고도 설득력있게 설법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앞으로도 오랜동안 로스 엔젤레스 불교 행사장에서 건강한 정정달 법사의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기원한다.

 

정절달 법사 / 평통모임, 맨 오른쪽이 정정달 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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