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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보성과 유무중도

작성자雨庵| 작성시간14.09.21| 조회수93| 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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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밤과꿈 작성시간14.09.22 놀랍지요. 오늘 열심히 가족에게 설명한 비유를 써보면..
    철이가 학교에서 집에 가는 길이 두 개가 있습니다.
    철이 엄마가 철이랑 같이 학교에서 집에 올 때면 철이는 길 A 로 가거나 길 B 로 갑니다.
    길 A 에는 떡볶이집이 있어서 철이는 꼭 여기서 떡볶기를 사먹고 입에 고추장을 묻히고 집에 옵니다.
    길 B 에는 아이스크림가게가 있어서 철이가 아이스크림을 입에 묻히고 집에 옵니다.

    어느날 철이 엄마가 너 혼자 집에 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철이는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 집에 나타납니다.

    다시 말해 내가 안 볼 때도 세계가 내가 생각하는대로 있다면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이 둘인데
    뚜껑을 열어보니 두 가능성 모두 설명이 안됩니다.
  • 작성자 보리수1 작성시간14.09.22 ?

    빛이 입자 일 때는(유) 파동성을 갖지 않으며(무)..빛이 파동일 때는(유) 입자성을 배제한다.(무)

    얼핏 그럴듯합니다. 유와 무가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것으로 유와 무가 서로를 용납하지 않는 상보성의 원리 속에 있는 듯 합니다.

    그러나 함정입니다.

    빛이 입자로 나타날 때는 파동성을 배제하고 빛이 파동으로 나타날 때는 입자성을 나타내지 않는다....조건에 따라서 입자의 특성을 보여주거나 파동의 특성을 보여준다는 상보성의 원리가

    유도 버리고 무도 버리라는 유무중도와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 답댓글 작성자 보리수1 작성시간14.09.22 빛은 입자의 특성과 파동의 특성을 동시에 나타낼 수 없다는 것이 상보성의 원리라고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빛이라고 부르는 것이 상보성을 갖고서 조건에 따라서 입자가 되었다가 파동이 되었다가 하는 것은 빛이나 입자 , 파동이라고 부르는 것에 각각 그 실체가 없어서 찰나찰나 변해가므로 무상하며 무아인 것이라는 과학적 증거가 됩니다.
  • 답댓글 작성자 雨庵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4.09.22 보리수1 빛(photon)에서는 (질량을 갖는)입자성과 (질량이 없을 때 나타나는)파동성이 공존한다는 겁니다.
    전자(electron)의 경우 관찰여부(조건)에 따라서 입자성이 드러나거나 사라진다는 말이구요.

    우리가 세상을 유로 본다는 것을 저는 입자성이라고 본 것입니다.
    저는 에너지를 입자성의 상실로 본 것이지요.

    그렇다면 어느 하나의 입장을 취한다면 단견이란 말씀이지요.^^

    유무중도란 자성자리이구요!

  • 답댓글 작성자 보리수1 작성시간14.09.22 雨庵 설명을 하자니 그렇기는 합니다.

    그런데...어느 하나의 입장을 취하건 둘의 입장을 모두 취하건 중도에서 벗어나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어느 입장이든지 입장을 버리지 않고서는 중도에 계합할 수가 없습니다.
  • 작성자 king콩 작성시간14.09.22 참 불교가 어렵네요.
    특히 "중도" ()()()
  • 답댓글 작성자 보리수1 작성시간14.09.22
    선지식들께서 '세수하다 코만지기' 보다 쉽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막상 경계에 부딪히면 알고 있던 것들은 어디로 모두 숨어버리고,
    자기도 모르게 자기자신을 붙들고 늘어져서 앙버팀을 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수행을 통해서 밑바닥까지 뒤집어 놓기 전에는 아무 것도 안됩니다.
    머리로 얻는 이해는 마른 지식에 불과하여 지혜라고 할 수 없다고 합니다.

    머리로 얻는 것 말고, 몸으로 얻어야 합니다.
    가슴이 뒤집혀서 머리로 생각하기도 전에 경계에 자동으로 반응하는 것....그것을 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어려운 것이 아님에도..... 어려울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 답댓글 작성자 king콩 작성시간14.09.22 보리수1 ()()()
  • 답댓글 작성자 보리수1 작성시간14.09.22
    보리수는 가끔 깨닫는 일을 자전거 타는 일에 비유합니다.


    자전거를 한 번도 타보지 않은 사람이 다른 사람이 타는 것을 보고, 자전거 타는 법을 설명한 책을 보고,

    전문가로부터 설명을 듣고 그 요령을 아무리 잘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마른 지혜(乾慧)에 불과해서

    그 사람은 실제로는 자전거를 탈 수가 없습니다.



    붓다의 가르침을 아무리 잘 이해하고 있어도 현실법에 즉시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 보리수1 작성시간14.09.22 자전거를 가지고 길에 나가서 끌고 다니면서 수도 없이 넘어지고, 부딪히고 깨져서 피를 흘리면서 결국
    홀로 자전거를 굴릴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전거 타는 법을 깨우친 것입니다.

    이때는 머리를 쓸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자전거를 굴리게 됩니다.

    자전거에 대한 지혜를 가진 것입니다.


    지혜는 필요할 때만 발현되며, 쓰지 않을 때는 흔적이 없습니다.

    지혜를 써야겠다고 마음 먹을 필요 없이(잡념, 번뇌가 필요 없이) 자건거를 타야할 때

    그냥 그대로 무심하게 자전거를 굴리고 갑니다.
  • 답댓글 작성자 보리수1 작성시간14.09.22 그렇게 해서 바로 깨우치고 나면,

    20년 동안, 30년 동안 한 번도 자전거를 타지 않더라도, 필요하다면 즉시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됩니다.

    수영하는 법도 그렇습니다.

    물론 오랫동안 떠나 있으면 몸의 기능 때문에 그전처럼 빠르게 자전거를 탈 수는 없을지라도,

    자전거 타는 법이나 수영하는 법에서 에서 자유롭습니다.

    자전거를 보더라도 넘어질까(번뇌) 두렵지 않고, 물에 빠져도 익사할 공포(번뇌)에서 해방됩니다.
  • 답댓글 작성자 보리수1 작성시간14.09.22 king콩 운동신경이 아주 둔하거나, 어떤 이유 때문에 보통 사람이 자전거를 3일 안에 배우는데 1달이

    걸릴 수도 있으며, 마음이 나약하여 공포심을 가진 사람은 평생 자전거를 못 배울 수도 있습니다.



    이때의 해탈을 심해탈이라고 부릅니다.

    흔히들 심해탈이라고 하니까 마음으로 해탈한다고 생각하는데

    보리수가 이해한 바로는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그런 마음의 해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心은 흔히 생각하는 관념적인 그런 마음이 아닙니다.

    여기에서의 '마음'은 육체와 정신이 나누어 지지않는 그 자리를 가르킵니다.
  • 답댓글 작성자 보리수1 작성시간14.09.22 마음이라고 해서 육신과 상관 없는 정신작용만을 이른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깨달음은 몸(몸과 마음을 포함한 개념)으로 體得하여야만 합니다.

    깨달음도 역시 사람에 따라서는 금방 깨닫고 內面世界의 큰 변화와 함께 대자유를 성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를 根機라고 합니다.


    누가 칼로 찌른다고 해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누가 명예를 훼손해도, 심하게 두들겨 패도, 목숨을 끊겠다고 해도

    분노나 잡념이 일어나지 않고 여여부동한 경지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집착과 번뇌로부터 온전히 벗어나야만 깨달았다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 보리수1 작성시간14.09.22
    세속적인 어떤 잡스러운 일은 미리 몸으로 연습하지 않고서도 잘 할 수 있는 경우도 있기는 합니
    다. 사람에 따라서는 평생을 수행한다고 돌아다니면서도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죽고 맙니다.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바른 수행법을 만나느냐?
    수행을 바르게 지도할 수 있는 눈 밝은 스승을 만나느냐?
    불퇴전의 보리심을 내느냐?
    얼마나 굳은 의지로 수행에 임하느냐 ?

    많은 요인들이 작용하여 빠르기도 하고 늦기도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 보리수1 작성시간14.09.22
    수행을 오래 했는데도 깨닫지 못했다고 부끄러운 일이 아니며,
    단 순간에 깨달았어도 전혀 자랑거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위와 같은 그런 것들이 아니고, 지금 당장 자유롭지 못하고,
    지금 당장 번뇌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늘 불만족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걸음이 조금 빠르지 않더라도, 며칠 후에 달성할 것이라는 가까운 기약이 없더라도,
    지금 부터라도 관심을 가지고 조금씩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며,
    생활 속에서 작은 것이라도 실천해 간다면,

    평생을 걸려서 못 깨닫다가 죽는 순간에 깨달아도 늦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_(합장)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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