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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생각은]]보살과 6바라밀이란...

작성자초심|작성시간07.07.18|조회수273 목록 댓글 24
 

보살과 6바라밀이란...



6바라밀(波羅蜜) 


보살이 열반에 이르기까지 수행해야 할 여섯 가지 조목으로서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선정(禪定), 지혜(智慧) 등을 말하며, 6도(度)라고도 합니다.


보시바라밀이란 자비심으로써 중생을 사랑하고 조건 없이 널리 베푸는 것입니다.

지계바라밀이란 계율을 엄격하게 지켜서 범하지 않는 것입니다.

인욕바라밀이란 온갖 욕됨을 참고 마음을 고요히 안주시키는 것입니다.

정진바라밀이란 항상 수행에 힘쓰고 게으르지 않는 것입니다.

선정바라밀이란 마음을 고요히 하여 통일시키는 것입니다.

지혜바라밀, 즉 반야바라밀이란 참다운 법의 이치에 계합한 최상의 깨달음을 얻는 것입니다. (펌)

............


보살이란 '깨친(菩提 boddhi) 중생(衆生 sattva)'이라 하여 처음에는 석가부처님 전생의 삶을 지칭하던 이름 이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우리도 미래에 부처님이 되고자 (과거부터) 지금, 그리고 미래까지 수행하는 것이니 바로 우리 역시 보살이 아닌가? 하는 주장을 펼쳤고,..

그에 호응한 불자들이 '우리도 보살'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됩니다. 그러니 이들은 불교에 대해 정통한 불자들(보살마하살)이었지요.


그런 가운데데 보살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대승 불자들이 나오게 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보살이 아닌가? 하고 묻습니다. 조금 무리가 없는 것은 아니나.. 그래 ‘너두 보살’이다 하게 되는 거지요.^^


그런데 진짜 문제는 불교에 대해 거의 아는 게 없으면서도 대승불교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선남자 선(善)여인들이 있었으니.. 그들 역시 보살이라 할 수 있을까??....


이렇게 보살이라 이름 하지만..

그 안으로 들어오면 무지개 빛깔만큼 다양한 보살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해서 보살들은 6바라밀을 행한다는 공통점이 있으나..

초짜 보살에서 보살마하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보살들에게 6바라밀은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습니다.


위에 펌한 6바라밀 해설은.. 중급을 넘은 보살들의 6바라밀 내용이 될 것입니다.

 

여기서는 초짜보살을 포함한 6바라밀 내용을 살펴보려 합니다. 왜냐?

<금강경>은 선남자 선여인이라는 초심 보살들을 위한 경(經)이기 때문입니다.^^()

    

6바라밀은 위에 심풀하게 정리한 것을 골격으로 풍부하게 살을 붙이고 옷을 입혀..

대승불교권의 불자라면 귀가 지겨울 정도로 많이 듣고.. 눈이 무거울 정도로 많이 본 것으로 누구나 다 잘 알고 있다고 여길 겁니다.


6바라밀은 대승불교를 전개하던 불자(보살)들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보살마하살이라면.. 24시간, 365일 6바라밀을 행한다는 것입니다.

뉴욕달마님께서.. "발심한 보살은 붓다의 길을 가는 게 아니라 보살도를 갑니다..." 라고 한 이유 역시 아마 같은 맥락이라고 봅니다.^^()


여기서는 초기 대승불교 운동을 왕성하게 전개하던 당시 곧 <금강경>이 출현하던 시기의 6바라밀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6바라밀은.. 보시바라밀, 지계바라밀, 인욕바라밀, 정진바라밀, 선정바라밀 그리고 반야바라밀입니다.


1번째 보시바라밀.. 보시는 상대에게 베푸는 것인데.. 베푸는 이유가 뭡니까?

상대가 열반에 관심을 갖고 결국은 자기처럼 발보리심(發心) 시키기 위해서 이지요.

보시바라밀은 크게 법(法)보시와 재(財)보시를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금강경>에 나오는 법(法)은 무엇입니까?

4성제, 12연기, 12처, 또는 37조도품, 9차제정, 위빠사나?...


그 당시 대부분의 보살 불자들은(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교학이나 수행은 잘 모르고, 흥미도 별로였으며, 그것을 공부할 여유도 거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아는 법(法)은 무엇일까요?  


“나는 본래 부처구나!” 하는 믿음이 곧 법이 아니었을까요?

그러니 그들이 전할 수 있는 “당신 역시 나처럼 본래 부처였습니다!” 하는 법은..유일한 법이자,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없는 최고의 법이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자신을 본래 부처임을 믿도록 한 보살은 이렇게 말합니다.

“석가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보살이라면 당연히 일체 중생을 열반에 이르도록 제도하라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새로 태어난 보살은 아무런 의심도 없이..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해서 상대에게 ‘당신도 부처였습니다“를 전하려 하니.. 그 말을 적어도 새겨듣게 하려면 신임이 필요함을 알았습니다. 해서 재물이나 음식, 아니면 맨 몸으로 도와줍니다. 그게 보시지요^^


세련된 6바라밀에서는 설명하길.. 보시바라밀은 조건 없이 널리 베푸는 것이라고 풀이 합니다.

그러나 대승불교 초기 보살들은 분명한 목표를 갖고 보시를 했으니...

곧 저들을 열반에 이르도록 하리라!

2번째 지계바라밀.. 삼장(三藏) 가운데 하나인 율장(律藏)에 나오는 계는 출가자들이 지켜야할 계와 율로, 보살이나 재가불자들이 지켜야 하는 계율이 아닙니다.

따라서 ‘지계바라밀이란 계율을 엄격하게 지켜서 범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는 설명은 재가불자에게 맞지 않는 설명이 됩니다. 

암튼 초기 대승불교가 전개될 당시 보살들은 <율장>을 생각하며 계를 지키자는 게 아니었지요. 그들이 지켜야할 계(戒)란.. 선한 일은 힘써 행하고, 악한 일은 멀리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왜냐구요? 그래야 사람들이 신뢰를 갖고 보살들의 말을 듣지 않겠습니까?^^()


3번째 인욕바라밀.. 아무리 우리가 좋은 뜻으로 상대를 위해 노력하는 대도 상대는 오히려 어깃장으로 나가는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럴 경우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는 수행을 하지 않은 보살이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목표를 상기하며 꾸욱 꾸욱 참아야만 합니다. 그것을 인욕바라밀이라 하는 거지요.()


4번째 정진바라밀.. 보시바라밀과 지계바라밀을 실천하는데.. 무슨 날이나 일요일만 하는 겁니까? 아니지요. 365일 매일 합니다. 정진바라밀이란 그것입니다.()


5번째 선정바라밀.. 아무리 보살이라 하나.. ‘내가 부처이구나!’ 하는 신심(信心)으로.. 9 중생을 위해 초짜 보살이 보시, 지계, 인욕, 정진을 매일 한다는 게 가능하다고 봅니까?

아니!입니다.

그러니 그들 자신을 충전시키는 길이 있어야만 합니다.

“관세음보살..” 또는 “옴 마니 반메 훔..” 염불을 한다구요? 좋습니다.

매일 108배를 한다구요? 좋지요^^()

간화선을 아침마다 적어도 30분 이상 한다구요? 너무 부럽습니다^^

<금강경> 독경을 매일 7번 한다구요? 최곱니다^^

...


이렇게 앞의 바라밀을 줄기차게 하기 위해 에너지 충전시키는 작업을 선정바라밀이라 합니다.^^()


6번째 반야바라밀.. 결코 쉽지 않은 보시, 지계, 인욕, 정진 그리고 선정바라밀을 행하다보면 그 안에 생기는 지혜가 있으니.. 그것을 반야(지혜)라고 합니다.^^()


그 지혜가 쌓이고 또 쌓이다 보면..

더 이상 위가 없는 반야지혜가 되니..

그런 반야지혜가 생기면.. ‘내가 본래 부처였구나!’ 하는 신심이..

반야지혜로 확연히 이해되는 깨침의 경계에 이르니..

그때를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라 이름 하는 거지요^^()

이와 같이

6바라밀 (수)행에는.. 8정도나 위빠사나 선정 또는 어느 수행법처럼 정형화된 법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수행을 위해 따로 수행처를 필요로 하지도 않습니다.

수행처는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속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최상의 깨침을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 


과연 그것이 가능한가? 하는 증명은..

오늘 현실에서도 볼 수 있어야만 하는 겁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님은 6바라밀을 통해 열반에 이를 수 있음을 주위에서 보았거나, 이룰 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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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자운행 | 작성시간 07.07.20 지금 이시대는 대승이 전승되면서 세존의 주옥같은 법구가 사라졌습니다 중생이 중생이면서 중생의 그릇됨을 보지 못하면서 소멸하는 길도 모르고 소멸하여 없어지는 길도 모르면서 부처를 합리화 합니다 본래불이라 아무리 설파하여도 본인에게서 있는 탐진치 삼독이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은한 본래불에 근처에도 못갑니다 그래서 육도윤회에 떠돌게 됩니다 차라리 삼독심을 여의어야 본래불에 가까워진다는 진리아래 소멸의 멸증을 일깨워서 삼악도에 떨어지지 않게 하여야 하는 것이 중생제도의 길입니다 그곳에 중생상이 있고 중생상이 사라지는 길이 있습니다
  • 작성자NYDharma | 작성시간 07.07.20 초심님, 제가 잘못 읽었습니다. 중생이 자신을 본래불이라고 자각하는 순간 어떻게 되지요? 불각중생인가요? 본각중생인가요? 본각중생은 본래불이겠지요. 본래불은 성취불이 아닌 고로 중생태입니다. 본래불과 성취불이 본질에서 동등하다는 것이지 모든 것이 동일하다는 것이 아니므로 중생이 본래불이라는 자각은 참으로 어려운 거라고 봅니다. 생각이야 그렇게 갖는 것는 쉽겠지만 행동마저 그렇게 되기는 어렵기 때문이예요.
  • 작성자NYDharma | 작성시간 07.07.20 본래불, 본래성불 사상은 우리가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장막을 걷어치우면 그대로 부처인 것을 아는 것이 전부라고 한다면 수행은 오직 장막을 제거하는 것이 되겠지요. 불성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면 장막을 제거하면서 불성을 완성시켜가는 작업이 수행이겠지요. 결국 점수냐 돈수냐는 것인데 저는 점수쪽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 작성자자운행 | 작성시간 07.07.20 님의 마음에 존중합니다 왜냐하면 잘못 이해됨이 있으면 있다고 말하고 없으면 주장하여 피력하는 것이 올바른 공부이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불법을 배우되 고운 마음으로 배워가길 기원해 봅니다 그런데 선불교에서는 말하는 점수와 돈수는 지금의 공부하는 것과 의미의 뜻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점수와 돈수의 문제는 나중에 인연이 되면 토론해 보실것이구요 탐진치를 멸해가는 것을 점수로 알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뜻하여 설명해 봅니다
  • 작성자초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7.08.06 밥을 먹을 때는 몸과 마음 전체가 밥이 되어 밥을 먹어라 이런식으로 삶의 순간 순간을 살아라 그대의 몸과 마음 전체를 집중하게 되면 명상이 따로 없고 수행이 따로 없다. *** 십이시법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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