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분에서 언급한
-중생의 본질과 해탈의 본질에 대하여,-
해탈nirvana 수행이란,
四聖諦를 완성하는 작업이다.
본 수행은 오직 중생의 근본 본질에서 벗어나기 위한 작업이며, 불교 수행의 근본이다.
허나, 현재의 유위적 수행방편으로는 중생 본질의 경계에서 해탈할 수 없다.
중생의 고통의 원인은
유위법(因緣生起)으로 성립된다. 따라서 수행의 목적은 응당 유위법을 소멸하고
중생의 고통의 본질에서 벗어나려는 것이 여래(붓다)의 가르침이며 수행의 근본 목적일 것이며,
이것이 四聖諦를 완성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중생의 본질은 무엇이며,
해탈nirvana의 본질은 어떤 경계인가?를 알야 보자.
요약해서 그 경계의 본질을 설명하자면,
*衆生의 本質은 有念有想의 상속으로 존속하는 주체로서
有爲法(인연생기)의 경계가 그 本質인 것이고,
*解脫nirvana의 본질은
有念有想의 有爲法의 경계를 벗어난
無念無想의 無爲의 境界가 해탈nirvana의 本質이다.
유위법계에서 비롯되는
諸行無常이니, 諸法無我니, 一切 皆苦 니 , 假我니, 즉 無常 苦 無我라는 경계는
본 해탈nirvana 수행을 완성함으로써 일체 消滅이 완성 되고
궁극의 無餘의 해탈nirvana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중생의 본질이요,
해탈경계의 본질인 것이다.
그러나,
현 불교계의 수행방편으로는 중생의 유위의 경계 타파가 不可能하고 따라서, 해탈nirvana경지의 진입이 不可能 하다.
그것은 제2분에서 언급했듯시
現佛敎界의 수행방편은 전 世界를 통틀어 일체가 유위적 수행방편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위적 수행법으로는 유위의 경계를 타파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상식일 것이고,
유위적 수행법은 유위의 경지와 同化되어 유위의 경계에서 벗어날 수 없슴을
그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상식일 것이다.
그러나,
有爲界에는 別界의 無爲的으로 作用하는 無爲性界가 존재한다.
意識하면 有爲가되고 意識하지 아니하면 無意識의 無爲性界가 되는 경계가 있다.
수행자 싯타르타는 6년여 동안 전정각산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경계를
네란자라 숲속 지금의 [부다가야 수행터]에서 우연히 그 부분을 발견하게 되고,
우연히
*2) 유위와 무위성의 자율신경계의 경계를 결합한 無爲적 有爲의 中道性을 이용하여 中道的인 수행법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우연하게 . . .
自律神經系가 衆生境界에서 解脫境界로 넘어가는 징검다리 역활을 하는 것이다
싯다르타는 그 自律神經이라는 징검다리를 이용하여 中道性 수행법을 이룰 수 있있을 것이다.
수행자 싯따르타는 그 중도적 수행법을 통하여 전정각산에서 6년 동안 고통의 수행법으로 이루지 못했던 해탈체득을
지금의 부다가야 수행처로 옴긴 후, 중도적 수행법을 사용하여 단 기일에 해탈nirvana 체득을 완성하게 된 것으로 필자는 추정 하되,
필자의 체득 체험의 경험을 통해 얻은 증득과정을 살펴 볼때, 그 수행방식이 정법 해탈 수행방식의 자세임을 확신한다.
그 수행법이 中道性을 띤 ,언어로 전달될 수 없는 言語道斷의 수행법이기에
第1分에서 언급했듯이 敎外別傳할 수밖에 없는 수행법으로서 유통과정에서도 길게 전달 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영산회상에서의
如來가 꽃을 들어 보이고 가섭이 미소로 답하는 [염화미소]라는 [以心傳心]의 방식으로 전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훗날 가섭으로 부터 28대 제자라고 전해진 중국으로 건너간 [달마]의 수행법을 전래대로 살펴 보건데
가섭도 以心傳心의 [염화미소]의 대답은 붓다의 수행법을 잘 못이해 한 것이거나
아니면 유통과정에서 왜곡된것으로 추정이된다.
그 수행법은
지금의 수행방식과는 전혀다른 수행법이며
그 수행방식은 감히 상상될 수 없는 수행방식이다.
그 흔적은 지금의 [부다가야] 에서 유튜브 화면을 통해 발견하게 되었으며 그 수행을 상징하는 기념탑은 [대탑]이 아니라,
그 대탑 옆댕이에 자그마한 보잘것 없는 기념탑으로 댕그런히 서있다. 그 기념탑은 버려진 것처럼 찾는이도 별로없고,
일부의 엉뚱한 해설로 자리하고 있슴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 수행탑의 발견은 얼마전[ 2023 . 9 월 ]
우연히 유튜브 상의 [부다가야]를 시청하다가
붓다가 수행한 그 때의 [해탈 수행방식의 흔적]을 그 곳 [부다가야]에서
유튜브 화면을 통해 발견, 확인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참 기뻤다. 참 다행한 일이 였다.
붓다식 수행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것이,
그리고
필자가 경험한 수행법이 분명 정법임을 확인할 수 있을 근거자료가 발견됬다는 것이. .
그리고.
수행자들에게 자신있게 전달할 수 있는 확실한 수행법의 근거 자료를 발견했다는 것이 참 기쁘다.
합장.
*글 쓰는 자질이 부족하여
설명이 부족한 부분은 간간히 수정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