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초심작성시간09.02.26
있다, 없다 하는 분별심은.. 실체를 인정하고 있을 때 생기는 판단이다. 부처님께서는 무아 곧 실체를 부정하셨다. 개, 중생, 분별심, .. 어떤 언어이든 실체를 인정하며 사용하고 있다면.. 그것을 깨뜨려야만하는 게 수행자들의 닦음이고, 그것을 일깨워주는 게 스승의 할 일이다. 그렇게 알고 보면 조주 스님은 스승으로 잘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잘못하고 있는 것인가??..
작성자별하나나하나작성시간09.02.27
선종의 대표적인 무자 화두는 공부하는 이들의 깨달음의 희망이자 불가인 선종의 대표적 화두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위의 글의 쓰신 분의 의도는 저로서는 읽을 수는 없지만 이 무자 화두로 하여금 분별심을 버린 다고 생각하고 있는 이들에게 일으키고 있는 분별심 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분별심 그것을 바로 알때 분별심그것이 바로 깨달음으로 가는 것을 개에 뱃속으로 들어 가 보자고 하는 것이 아닐까요?
작성자별하나나하나작성시간09.02.27
선종의 뜻은 헤아리기가 어렵다고 생각 합니다. 그러나 연기법을 알면 선종의 뜻이 왜 그렇게 허왕되게 선사님들이 설법해 놓으셨는지 간단 하게 알수 있습니다. 연기 법은 바로 선을 설명 할수 있어야 하고 선을 알려면 연기법에 이치적인 교리를 같이 설명 할수 있어야 선과교가 오롯이 살아나는 불법의 진수를 알수 있다고 생각 합니다.
작성자별하나나하나작성시간09.02.27
공자도 육십에 이순이라고 하셧습니다 이말은 너무도 중요 하다고 생각 합니다. 공자 같은 분도 육십니 되서야 남에 말을 알아 들을 수가 있다고 하셨습니다.그런데 하물며 중생의 입장인 이글을 쓰는 이는 참구 하고 또 뜻의 이해가 참으로 어려운 것이 아닌가 생각 합니다.
작성자단현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작성시간09.02.27
위 윤창화 선생의 글에서 잘못을 찾기 어렵습니다. 제가 질의한 의도는 선 화두나 선지식들의 말씀 중에 우리가 이해 못할 이야기들, 특히 애매한 질의 응답에서 항상 분별심을 내지말라며 다그치는 것을 무수히 많이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리분별 못하는 말장난 같은 것이 대다수이지요. 그래서 그런 무분별한 말이 아닌 분별있는 사유를 했으면 해서 질의해 본 것입니다...
작성자노랑작성시간09.02.27
윤창화씨글은 오버는 하지만 잘못된 것은 없습니다. 구자무불성은 애매한 질문이 이므로 분별심을 버리라는 예도 아니겠지요. 윤창화씨도 설명한 유무견해에 대한 설명입니다.선종이 애매한 것은 분별심을 내지 말라는 것에 구자무불성 예는 해당하지 않겠습니다. 선종이 사리분별 못하는 말장난이 무엇인지 다시 예를 들어 주세요.
작성자팔배작성시간09.03.03
업식성이라? 개와 인간에 다른점이 무엇인줄 아는가? 개는 인연법이 없어서 거듭남이 없는 것이오...사람은 인연법이 있어 네가 어떤 인연법을 따라가는가에 따라 결국엔 불성에 인연까지 다다를 수 있는 것이오...하지만 어리석은 인연법을 따라가는자는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짐을 명심하시오...사람 몸 받기가 어렵고도 어렵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