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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불교사

[2022년 2월호] 중국에 뿌리 내린 티베트 중국 장전불교(藏傳佛敎) / 이치란

작성자파란연꽃|작성시간22.04.11|조회수49 목록 댓글 0

 

< 기행문 >

 

 

몽골불교탐방기 (5)


중국에 뿌리 내린 티베트
    중국 장전불교(藏傳佛敎)    
중국 내몽골 자치구는 장전불교 전통이 지금도 계승되고 있다

 

글 | 이치란 박사 (원 응 보검)

 

 

중국불교는 한당(漢唐) 시대에 크게 발전하였고, 송(宋) 나라 시대에 이르면 중국적인 불교가 정착할 정도로 불교는 중국식 불교로 안착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북방유목민족인 원(元)나라가 건국됨으로써, 중국의 종교계도 엄청난 변화와 요동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송조(宋朝)가 비록 원나라가 들어서고서도 1279년까지 존속했고, 요나라 금나라가 원이 건국되기 전부터 있어왔지만, 결국 송은 원에 의해서 망하고 중국 천하는 몽골족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 중국에 전해진 한전불교(漢傳佛敎)와는 다른 전통을 세운 장전불교(藏傳佛敎)의 라마들이 집결한 모습


전회(前回)에서 쿠빌라이 칸과 티베트 라마승과의 관계를 소개했지만, 이 무렵 장전불교(藏傳佛敎)는 중국 땅에서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한족(漢族)인 중국불교학자들이나 일본 한국 등의 중국불교 전공자들은 요나라 금나라 원나라 청나라 불교를 크게 주목하지도 않고 좌도밀교니 진언 주력불교니 해서 과소평가해버리는 경향이 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원나라 시대의 장전불교는 막강한 종교적 파워를 행사하고 있었다. 

 

▲ 베이징 시에 있는 라마교 사원 옹화궁(雍和宫). 중국의 양식과 티베트의 방식을 혼합한 건축물


원나라의 원(元)자는 한족 출신의 한 대신(大臣)이 주역의 건괘(乾卦)에서 건원(乾元)에서 인용하여 건의해서 대원(大元)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원 왕조 왕실의 왕족 이하 공경대부는 거의가 장전불교를 신앙했으며, 티베트 라마를 존경하고 사원을 건립하는 등, 티베트 장전불교에 심취했다. 왕실에서는 건원사(乾元寺), 용광화엄사(龍光華嚴寺)를 세우고 많은 사람들이 라마가 되도록 했다. 원나라가 송을 멸망시키고 원조(元朝) 천하가 되면서 특히 장전불교는 최고조에 달했다. 선정원 지원28(1291)년 통계에 의하면, 전국의 사원수가 2만4천여 개, 승니(僧尼=남녀승려) 수가 2만1천3백 명이라고 했는데, 사원수가 승니의 수 보다 더 많을 정도로 불사(佛寺)를 많이 건립한 것이다. 원나라 중기인 14세기 초가 되면 승니 수는 백만 명에 이르렀다고 하니, 불교의 교세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간다.
 선정원(宣政院, 처음 이름은 總制院)은 몽골 제국 원(元) 왕조의 중국 통치시기에 설립된 중앙 정부 직속 국가 기구로 원 왕조 전역의 불교 관련 사무를 관장하고 토번(티베트) 지역의 군정 사무를 통할하였다.

 

▲ 필자 보검스님이 필공총림 동화사 회주 의현 대종사님을 모시고 몽골을 방문, 간단사원 칼라차크라 탄트릭 센터 소장 다블라 라마와 함께 기념 촬영. 다블라 라마는 공산치하 이전의 라마승들로부터 만다라제작기법을 전수받았다


1264년 원(元)을 선포한 쿠빌라이 칸(세조)은 조를 내려 처음으로 총제원(總制院)을 설치하고 그 책임자인 원사(院使)의 관직은 정2품으로 하였다. 당시 제사(帝師, 황제의 스승, 국사)였던 승려 파스파가 이 직책을 겸하게 되었고 아울러 원사와 함께 동지(同知)、부사(副使) 등의 관원을 설치하고 토번 지구 각지의 지방행정 기관을 관할하게 하였으며, 선위사(宣慰司)、안무사(安抚司)、초토사(招讨司)、만호부(万户府)、원수부(元帅府) 등을 포괄하게 하였다.
 당시 원 조정 치하의 티베트 지역은 세 개의 지역으로 분할 통치되었는데, 다 같이 선정원의 관할 하에 통제를 받았다. 선정원의 목적 중 하나는 디폰첸(티베트어로 '위대한 행정관'이라는 뜻)을 선발하는 것도 포함되었다. 티베트 문제와는 별도로 선정원은 몽골 제국 치하 전 세계의 승려(한족, 티베트족, 고려인 등)를 관리했으며, 적어도 명목상으로는 제국의 모든 사원, 수도원, 기타 불교 재산을 감독했다.
 훗날 만주족에 의해 세워진 청(淸)이 세운 이번원(理藩院)은 과거 원 왕조가 중국 국경 너머의 사무를 관장하기 위해서 제정한 청 왕조 버전의 선정원이었다.
 왕실에서는 장전불교가 크게 신장했다고 할지라고, 중국에는 이미 한당송(漢唐宋)과 요금(遼金)을 거치면서 한전불교(漢傳佛敎)와 중국불교인 선종(禪宗)이 크게 번성하고 있었다. 선종은 조동종(曹洞宗)과 임제종(臨濟宗) 선사들이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금나라 태조 야율초재(耶律楚材)의 청으로 만송 행수(萬松行秀:1166-1246)선사는《종용록(從容錄)》을 저작했으며, 그의 제자인 해운인간(海云印簡:1202-1257)선사는 쿠빌라이 칸에게 설강(說講)도 하고 전계(傳戒)를 내리기도 했다. 조동종 선사들이 주로 중국 북쪽 지방에서 활약했다면 남쪽 지방에는 임제종이 세력을 얻고 있었다. 남방의 임제양기파의 운봉묘고(雲峰妙高1219-1293)선사는 쿠빌라이 칸(세조)의 부름을 받고 가서 선교율(禪敎律)을 변론했으며, 고봉원묘(高峰圓妙1238-1295)는 고봉고불(高峰古佛)로 지칭되고, 중봉명본(中峰明本1263-1323)은 원대의 유명한 선사들이다. 선종이외에도 화엄, 천태,자은,율종 등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 중국 선종의 본산 숭산 소림사에서 두 승려가 무술 시범을 보여주고 있다


원나라 시대에는 중앙아시아 페르시아 등과 문화교류가 활발했다. 지금의 중동지역인 페르시아에는 일 칸국(Ilkhanate)이 세워졌는데, 칭기즈 칸의 손자이자 툴루이의 아들인 훌라구 칸이 중동 원정을 통해 1255년에 건설한 이후 이슬람 화하여 약 1세기 가량 존속했다. 페르시아 칸국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1335년 9대 칸인 아부사이드 칸 사후 사실상 쇠퇴해서 멸망됐다. 일한 칸국은 처음에는 샤머니즘과 불교가 국교였다가 1295년부터는 이슬람이 국교가 되기도 했다. 이슬람이 국교가 된 배경에는 인도에서 불교가 무슬림 군대에 타격을 입고,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전파된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다시 원나라로 돌아와서 원 나라 불교를 살펴보자. 밀교는 중국 원나라에도 전파되어 오늘날 중국 내몽골 외몽골 지역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원나라 시기에는 티베트 불교가 크게 영향을 미쳤는데, 이른바 탄트릭 불교를 말한다. 탄트릭은 밀교라고 하는데, 밀교는 비밀의 가르침이란 뜻으로 문자 언어로 표현된 현교(顯敎)를 초월한 최고심원(最高深遠)한 가르침을 말한다.   중국의 불교에서는 밀종(密宗)이라고도 한다. 밀교는 금강승(金剛乘)이라고도 하는데, ‘밀교’와 ‘금강승’이라는 두 낱말은 티베트 불교와 동의어로 사용될 정도로, 밀교하면 티베트 불교의 상징이 되어있다. 또한 밀교는 힌두교의 영향이 깊게 스민 불교이기도 하다.

 

▲ 훌라구국(훌레구인 울루스, 일 칸국)을 페르시아에 세운 훌라구와 그의 아내 도쿠즈 카툰. 훌라구는 칭기즈칸의 손자로 이슬람으로 개종하였으며, 부인은 기독교 신자였음


 중국에 밀교가 들어 온 것은 수당시대(隋唐時代)이다. 다라니(陀羅尼)가 예로부터 조금씩 중국으로 전해졌으나 인도 날란다사 대학의 학승(學僧)이었던 선무외(善無畏)의 원명은 슈바카라싱하(Śubhakarasiṃha637-735))이다. 그는 인도로부터 중국에 밀교를 전한 유명한 역경승(譯經僧)으로 그는 당 현종 때(716년) 장안에 와서 밀교를 전하면서《대일경(大日經)》을 번역했다. 720년에는 날란다사 대학의 학승인 금강지(金剛智)인 바즈라보디(Vajrabodhi 671-741)는 당나라 시대의 불교승려이자 밀교 경전의 역경자인데, 《금강정염송경(金剛頂念誦經)》을 번역했고, 그의 제자 불공금강(不空金剛) 삼장은 원래 이름은 아모가바즈라(Amoghavajra705-774)이고 밀교의 제6대조이다.

 

▲ 필자 보검스님이 요령성 부신 몽고족 부몽현 해당산에 있는 보안사 티베 트 사원을 직접 방문했다


이처럼 원나라가 건국하기 전부터 인도의 밀교는 이미 중국 땅에 들어와 있었다. 인도에서 직접 또는 서역을 통해서 들어온 중국의 밀교와 티베트에서 전해진 장전불교와는 그 성격이 조금 다른 것이다. 서하에는 티베트의 장전 불교가 이미 들어왔고, 원 나라에는 티베트에서 전래했다.

 

▲ 해당산 보안사에는 몽골 라마들이 수행 포교하고 있다


원나라는 망했지만, 원나라에 전해진 테베트의 장전불교는 북원(北元)으로 함께 밀려가게 된다. 명나라 주원장에게 중국 천하를 내 준 원나라는 원래 몽골족의 선조들이 근거지로 삼았던 지역으로 물러나서 북원을 세웠다. 티베트의 장전불교 또한 함께 갔음은 당연하다. 
 티베트불교는 중국·인도(라다크).부탄.시킴.네팔(히말라야)·몽골(러시아)·만주의 일부 지방에서 발달한 대승불교의 밀교종파이다. 인도의 대승불교 후기 밀법(密法) 전통이 티베트로 전해져서 중국에 전해진 밀교를 장전불교(藏傳佛敎)의 특징이 되겠다. 인도-서역-중국으로 전해진 밀교는 한전불교(漢傳佛敎)의 대승불교에 포함된다. 티베트불교는 티베트의 국왕이 불교에 의거한 통치를 위해 대승불교를 도입했다. 불교도입을 위한 문자를 제정, 산스크리트어의 경전을 정역(正譯)할 수 있었고, 현재는 산스크리트어 경전이 소멸한 상태에서 티베트 경전어는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티베트 불교는 라마교라고도 불리는데, ‘라마(La­ma)’는 구루(Guru), 즉 스승(師)을 뜻하는데 불(佛)·법(法)·승(僧)의 3보(三寶)에 법을 전하는 사(師)를 더하여 4보(四寶)라 하고, 여기에도 귀의한다. 이러한 특색을 라마교라고 부르게 되었다.     
 필자는 이런 장전불교의 역사적 배경아래, 중국 내몽골 자치구에 있는 티베트-몽골 사원 기행에서는 장전불교 중심사원을 방문했는데, 처음 간 사찰은 요령성 부신시 몽고족 부몽현 대판 해당산에 있는 보안사를 찾았다. 규모가 제법 큰 사찰이었는데, 티베트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사원이었고, 몽골족 자치현에 있었고, 사원은 몽골족 라마들이 수행하고 있었다.   
 이 사원은 티베트 라싸의 달라이 라마 주석 사찰인 포탈라궁을 모방해서 건립했다. 이 사원은 청나라 때, 1683년에서 1883년에 걸쳐서 티베트 제6세 판첸라마를 위하여 세웠던 사원이다. 한때 이 사원에는 수천 명의 라마들이 공부했었고, 주로 몽골족 라마들이 기거했으며, 현재도 몽골족 라마들이 지키고 있었다. 관광 사찰로 만들기 위해서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사원의 편액은 만주.몽골.한문.장문(티베트) 등 4개의 문자로 동시에 새겨져 있었다. 만주족은 중국불교 전통보다는 장전불교(티베트)를 받아 들였고, 장려했다.

 

 

이치란 박사 (원 응 보검)
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아시아불교평화회의(ABCP 본부 몽골) 한국회장
국제불교연맹 이사(IBC 본부 인도)
동방불교대학 전 총장
한국불교신문 전 주필
현: 해동불교대학장
강원불교대학장
WFB 세계불교대학 집행이사
일붕신문 상임논설위원
다나TV 영어금강경 강의
(www.haedongacadem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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