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행문 >
동남아시아 사찰 순례기- 태국 편
네번째 태국사찰 방문기 (4)
치앙마이의 큰 사찰
왓 체디 루앙 방문기
(Wat chedi Luang)
글 | 김형근 (본지 편집인)
뜻밖에 아잔 문의 사진을 보았다
치앙마이에는 사찰이 워낙 많아서 어느 사찰을 가야 할지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도이스텝은 대부분 첫 번째로 꼽지만 ‘왓 체디 루앙’도 그 못지 않게 유명한 사찰이다. ‘왓 체디 루앙’의 뜻은 ‘큰 탑이 있는 사원’이라는 뜻이다. ‘체디’는 ‘탑’, ‘루앙(Luang)'은 ’크다‘라는 뜻이다. 이 사원에서 유명한 것은 이 탑과 현재는 여기에 없는 태국 최고의 불상, 에멜라드 불상, 락 무앙(Lak muang) 등이다. 그리고 눈여겨 볼 것은 근대 태국 불교의 아잔 문 부리다토( Ajahn Mun Bhuridatto: 1870~1949)으로 아잔 차 스님의 스승이다. 이 사찰의 2대 주지를 역임했다고 한다. 나는 이 사찰에서 뜻밖에 아찬 문의 조각상과 사진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사전에 어디에서도 이 사찰과 아잔 문에 대해 쓴 글이나 이야기를 들은 바 없어서 전혀 예상치 못한 사진이었는데 먼 곳에서 고향사람 만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 스님은 아잔 차 스님의 스승이다. 아잔 차는 1970년대에 미국인들을 비롯하여 서양인들이 많이 찾아가 수행지도를 받은 스님으로 위빠사나와 태국불교를 전 세계에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태국불교는 교육 제도가 잘되어 있다. 입문하면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다. 하지만, 극히 소수이긴 하지만, 두탕가(Duthanga 숲속의 수행자)의 길을 오로지 밟는 비구들도 있다. 이 두탕가 비구들도 탁발을 하고, 계율을 준수하는 것은 도시의 비구들과 똑같지만, 이 비구들은 명상 수행에 더 몰두한다는 점이다. 삼림수행이 외부에 알려지게 된 것은 아잔 차 대선사로부터이다.아잔 차 큰 스님은 시골 태생이기도 하지만, 그는 젊어서부터 명상 즉 위빠싸나(Vipassanā 觀)라고 하는 명상 수행을 주로 해 왔다. 아잔 차 큰 스님은 1918년 6월 17일 태국의 북동부 우본 라자타니에서 가까운 시골 마을에서 출생, 십대 때 사미승으로 3년간 절에서 행자생활을 하다가 집에 와서 부모님을 도와 농사를 짓다가 20세 때 비구가 될 것을 결심하고 사원으로 가서 1939년 4월 26일 우빠삼바다(비구 구족계)를 받았다. 그리고 다른 비구들과 마찬가지의 수행과정을 5년간 밟다가 부친이 심하게 아픈 것을 보고, 고통에 대한 문제를 깊이 생각하면서 인생의 의미에 대한 의문을 품고 빨리어에 의한 경전 공부를 접고, 28세 때, 한국불교로 보면 만행 즉 운수납자의 길인 두탕가의 수행 길에 들어서게 된다. 그는 서울서 부산까지의 정도의 거리인 400km를 걸으면서 잠은 숲속에서 자고 마을에서 탁발을 해 가면서 수행하는 과정에서, 한 사원에서 아잔 문 부리다토(Ajahn Mun Bhuridatto 1870-1949)라는 숲속의 도인 스님에 관하여 듣게 되었다. 아잔 문 부리다토 대선사는 태국출신의 비구로서, 프라 아잔 사오 칸타실로 마하테라(Phra Ajahn Sao Kantasilo Mahathera(1861-1941)의 지도를 받았는데, 프라 아잔 사오 칸타실로 마하테라 장로 스님은 태국 승가의 보수개혁파인 담마유티카 니까야 소속으로서 태국의 삼림수행의 전통을 세우신 큰 스님이다.
<이치란 해동경전어 아카데미 원장 글에서 참조>
아잔 문 사진
아잔 문 스님 흉상
주변풍경
사찰풍경
아찬 문은 태국에서 존경받는 스님으로 23세에 비구계를 받고 ’붓도‘염불과 위빠사나가 결합된 수행으로 아라한을 성취하였다. 붓다 이후로 오온과 12연기를 통해 아라한에게 도달한 수행 사례를 남긴 분은 아짠 문 이외에는 찾아볼 수가 없다. ’붓도 염송‘을 소개 한다
붓도 염송
아찬 문은 처음에는 수행 중 공중 부양까지 하는 아찬사오의 지도를 받았다고 한다. 그 후 ‘붓도’(Buddho, 붓다의 주격, 마음이 부처란 뜻 내포, 부처님에 대한 마음챙김. buddhanussati, 불수념)을 염송하면서 수행을 했다. 처음 부처님에 대한 마음챙김을 수행의 주제로 삼았을 때는 여러 가지 현상들이 나타났고, 그 현상들을 쫓으며 수행을 했으나,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외면적으로는 검소한 수행자의 삶을 사는 숲 속에서의 두타행(1일 1식, 잠을 자지 않는 등의 고행수행)의 실천을 하면서 선정 수행의 주제에서 내면적으로 주로 몸에 대한 마음챙김(신념처)을 중심으로 한 위빠사나 수행을 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아찬 문은 완전한 깨달음을 이룬 붓다가 되기를 결심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숲 속에서 수행을 시작하면서 이러한 결심을 버렸다. 이러한 결심을 완성하려면, 길고 긴 시간 동안 생사를 거듭하여야 했기 때문이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이 결심을 버린 후, 아찬의 마음은 부담이 줄어들었고, 정진은 더욱 빠르게 향상되었다.
<참고문헌, 붓다의 후예, 위빠사나 선사들, 태국 편>
대탑
대웅전 지붕에 있는 탑 상륜부
치앙마이 구시가지에 있는 이 사찰은 시내 번화가에 있는데 사찰에 들어서면 대웅전이 바로 보이는데 1928년 약 90년 전에 세워졌다. 내부는 금으로 화려하게 장식이 되어 있다. 내가 방문할 때에는 불과 몇 사람만이 있었다.
허물어진 불탑의 위용
이
사찰은 이 탑을 중앙에 두고 부처님을 대웅전을 비롯한 많은 전각들과 법회와 기도를 하는 우보소 등이 직사각형으로 탑을 삥 둘러 싸고 있는 형상이다. <치앙마이 왓 체디 루앙,혹은 wat chedi Luang> 이란 단어로 유튜부 검색을 통해 보면 ‘왓 체디 루앙’ 사찰 전체 규모의 아주 웅장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지붕이 3겹으로 되어 있는 큰 건물의 지붕 한 가운데에 탑의 상륜부가 세워져 있는 것도 나에게는 볼 거리였다.
치앙마이를 방문한 사람들 중에서 이 사찰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은 이 사찰 중앙에 우뚝 서 있는 허물어진 탑과 수 많은 전각 때문이다. 탑은 이 사찰에서 가장 눈에 띄고,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탑은 14세기 샌 무앙마 왕(1385~1401)이 그의 아버지 쿠나 왕의 유품을 안치하기 위해 1391년에 건립하기 시작하여 1411년 티로카랏 왕에 의해 완공되었으며, 란나 왕국에서 가장 높았던 높이 82m 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60m라고 한다. 이 탑의 기단부 길이는 54m 라고 한다. 하지만 이 탑은 완공 후 약 100여년 뒤인 1545년 치앙마이를 덮친 대지진과 1775년 수코타이의 탁신 장군이 당시에 버마가 지배하던 치앙마이를 탈환하려고 포격하는 바람에 불탑이 무너져 내리고 그대로 방치되었다가 1990년대 유네스코와 일본 정부의 복원 프로젝트에 의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사원 모습
이 사원에서 만난 스님들과 기념사진
법당내부 장식
나는 아유타이에서도 이와 비슷한 큰 탑을 본 적이 있고, 올라 간 적이 있었는데 아쉽게도 이 탑은 올라갈 수가 없었다. 이 탑을 빙 둘러보면 올라가는 계단마다 뱀 머리처럼 생긴 낙이 있는데 어쩐지 나에게는 좀 무섭게 느껴졌다. 서양인들이 한국사찰의 입구에 있는 사대천왕을 보고 나와 비슷한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이 사찰에 한국인 방문객이 많은지 기단부에 기부를 하라는 한글 안내문도 태국어, 영어와 함께 있다.
그리고 이 탑에 1468년 사원의 동편에 에메랄드 불상이 들어왔다. 이 불상이 아마도 태국과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불상이다. 그러나 이 불상은 1552년 란쌍 왕국의 루앙프라방으로 옮겨지게 된다. 당시에는 란나왕국과 이우인 란쌍 왕국이 아주 평화롭게 지내던 시절이다. 란쌍 왕국의 포티싸랏 왕과 란나 공주 사이에 태어난 왕자, 셋타티랏이 외할아버지인 란나 왕국의 탈로캇 왕이 아들이 없는 상태에서 죽자 외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란나 왕국의 왕이 된다. 란쌍 왕국의 왕자가 란나 왕국의 왕이 된 것이다. 그런데 란쌍 왕국에서 아버지가 죽게 되자 란쌍 왕국으로 돌아가면서 이 때 이 에멜랄드 불상을 가지고 루앙프라방으로 간 것이다. 그래서 이 에멀란드 불상을 라오스로 가 약 200년 동안 있다가 현재는 방콕의 왕궁의 황금사원에 안치되어 태국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현재 이 자리에는 란나 왕국 건국 600주년이던 해인 1995년 당시 태국 국왕이 에메란드 불상을 모조한 옥으로 만든 약 70cm의 불상이 모셔져 있다. 태국에서 가장 사랑받고 있고 유명한 불상이 이 대탑에 있었던 것이다. 얼마나 오래 된 와불인지는 몰라도 대형 와불도 있었다. 이래 저래 이 사찰은 흥미로운 요소가 많았다.
사원에 있는 큰 나무
정오에 종치는 스님
건축물을 보러 온 대학생들
태국에서는 도시를 세울 때마다 기둥과 함께 사원을 세우는 전통이 있다고 한다. 방콕에는 이러한 전통을 기반으로 세워진 ‘락 무앙’이라는 도시 수호 사원이 있다. 이 사찰에도 ‘락무앙’이란 건물이 있다고 하는데 이 사찰 방문 당시에는 그것을 주의 깊게 살펴보지 못했다. 또한 이 사찰에는 아주 커다란 ‘마이 양(Yang)’이라고 하는 나무가 있다. 다 자라면 30미터 이상이 된다는 하는데, 고무나무의 일종으로 태국인들은 이 나무에 영혼이 있다고 믿는다고 한다. 이 나무도 사찰과 시를 보호한다고 믿는 정령신앙의 일종이다.
이 사찰에서 서양인들도 많이 볼 수 있었고 스님들도 많았다. 점심시간에 종을 치는 스님을 보았다. 태국에 많은 사찰을 방문하였지만 종 치는 스님은 처음 보았다. 또 이 사찰에는 오래된 대탑을 비롯하여 사찰 건물들이 많아서인지 건축학을 전공하는 견학 온 대학생들도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