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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현불교기행

[2020년 7,8월호] 네번째 태국 사찰 방문기(5) - 치앙마이의 중요 사찰인 왓 프라싱 / 김형근

작성자파란연꽃|작성시간20.09.13|조회수995 목록 댓글 0


    < 기행문 >




    동남아시아 사찰 순례기- 태국 편
    네번째 태국사찰 방문기 (5)


    치앙마이의 중요 사찰인
    왓 프라싱



    글 | 김형근 (본지 편집인)




    왓 프라싱 정문   




    Thailand Lanna, 란나라는 이름의 또 다른 태국  
    태국 말로 란나(Lanna)는 수백만 평의 논이다. 이름대로 란나 왕국은 높은 산, 티크 나무 숲, 아름다운 강과 비옥한 토양으로 둘러싸여 있다. 불교가 국교였던  란나 왕국이 남긴 풍요로운 문화, 예술, 생활을 당시 수도였던  태국북부의 ‘치앙마이’에서 볼 수 있다. 여행자의 천국이라는 말을 듣는 치앙마이는 한국인들도 많이 찾는 관광지이다. 치앙마이 시내에 300개 사찰을 비롯하여 이 부근에  1,000개 가까운 사찰이 있다고 한다.  


    란나왕국 수도였던 치앙마이 
    수차례 외세의 침략과 자연 재해로 란나 왕국은 수도를 치앙센(Chiang Saen)에서 팡(Fang)으로 그리고 치앙라이(Chiang Rai)로, 또 람푼(Lamphun)에서 위앙쿰캄(Wiang Kum Kam)으로 옮겼다. 1296년 멩라이(King Mengrai)왕은 새로운 도시의 이름을 치앙마이(Nopburi Si Nakorn Ping Chiang Mai)로 지었다. ‘치앙(Chiang)’은 왕국를 의미하며 ‘마이(Mai)’는 새롭다는 뜻으로 란나 왕국의 신도시를 의미한다. 비옥한 자연환경과 여러 나라 사이의 무역의 중심지라는 지리적인 특징으로 치앙마이는 끊임없이 주변국들의 침략에 시달렸다. 1557년에는 버마의 속국이 되었지만 1774년 시암 왕국의 도움으로 버마를 내쫓았다. 1892년 란나 왕국은 부분적으로 시암의 지배를 받게 되었으며 1932년 치앙마이 전체가 시암에 귀속됐다. 그리고 1949년 시암은 ‘태국(Thailand)’으로 공식적인 국호를 지정했다. 


    사찰 경내 모습   


    사찰 건물   


    사찰 경내 모습   



    란나 왕국 시대에 건립된  왓 프라싱


    왓 프라싱은 1345년 란나왕조의 7대 왕인 파유(Pha YU)왕이 선왕인 캄푸(Kham Fu) 왕의 유골을 봉안하기 위한 쩨디(탑)을 만들면서 세워진 사원이다. 치앙마이 구시가지에 있으며 란나 왕국 당시의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는 건물 ‘비하라 라이 캄(Vihara Lai Kham)’과 경전을 보관하는 장경각 허 뜨라이(Ho Trai)가 있다.  사원은 쩨디를 중심으로 ‘위한 루앙’, ‘위한 라이캄’,‘우보솟’,'허 뜨라이‘ 등이 있다. 미얀마가 ’란나 왕국‘을 지배했던 1578년부터 1774년까지 사원은 방치되어 황폐해졌다. 1782년 카윌라 왕이 재건을 서둘렀고 그 후계자가 ‘라이캄’과 ‘허 뜨라이’를 복원했다. 1920년에 이르러 유명한 승려인 크르 바 스리비차이(Kuru Ba Srivichai)가 복원에 앞장섰고, 2002년 경에 완전히 복구 되었다.
    --치앙마이를 가장 멋지게 여행하는 법에서 옮김.


    비하라 라이캄   




    원래 사원 이름은 ‘왓 리 창 프라(Wat Li Chang Phra)’로 불리다가 1376년 프라싱(Phra Singh)불상이 이 사원에 오면서 그때부터 ‘사자 부처 사원’이라는 뜻의 ‘왓 프라싱(Wat Phra Singh)’으로 불리게 되었다. 프라싱(Phra Singh)은 ‘사자 모양의 불상’이지만 실제로는 일반 부처상과 큰 차이가 없다. 과거 불교를 부흥시킨 스리랑카에서 제작된 여러 불상 양식중의 한 형태로 우리가 알고 있는 석가모니의 원명 Shakyamuni Buddha의 또 다른 이름인  ‘The Lion of Shakya'에서 유래 되었다. 즉 사자처럼 당당한 석가 부처의 모양을 기초로 만들어진 좌 불상으로 가부좌의 형태에 오른손을 무릎 위에 얹어 놓은 불상의 한 양식이다.

    우보솟(포살당) 뒤로 있는 쩨디는 파유왕이 선왕의 유골을 봉안하기 위하여 만든 탑이다. 그리고 탑 옆으로 있는 작은 불당 ‘비하라 라이 캄(Vihara Lai Kham)’이 있다. 이 건물에 태국 왕실 사원에 있는 에메랄드 불상과 더불어 유명한 ‘프라싱 불상’이 있다.


    쩨디(탑)   


    프라싱 불상                  



    그 프라싱 불상이 이곳 치앙마이에 오게 된 사연은 이렇다


    12세기 크메르를 몰아내고 최초로 타이족을 통일한 수코타이는 힌두교를 몰아내고 테라바다(남방불교)를 국교로 채택했다. 그리고 수코타이 3대 왕 람캄행 왕은 당시 남부 수코타이의 속국으로 있던 ‘나콘시탐마라’왕국에 수코타이 불교를 상징할 보물을 구해오라고 명령한다. 이에 ‘나콘시탐마랏’ 왕은 스리랑카에서 프라싱 불상을 가져다가 람캄행왕에게 바친다. 이를 범상치 않은 불상이라 여긴 람감행왕은 이 보물을 수코타이의 보물로 삼는다.

    1378년 아유타야가 수코타이를 멸망시키고 이 불상은 아유타야의 캄펭펫이라는 곳으로 옮겨진다.  후에 란나에서 왕자의 난을 일으켰다가 아유타야로 도망한 왕자가 우연히 캄펭펫에서 이 영험한 불상을 발견하고 ‘프라싱’을 란나의 샌 무앙마왕에게 바치고 죄를 사면 받는다.
    란나의 13대 왕 무앙 깨오(Muang Kaeo 1495~1525) 왕은 스리랑카에서 가져온 불상인 프라 부타상(Phra Bhuthasing)을 모실 건축물을 세우라고 명령한다. 그리하여 세워진 이 비하라(작은 불당)이 바로 란나 건축예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비하라 라이 캄(Vihara Lai Kham)이다. 라이 캄 벽면에는 용과 신들의 조각상이 있으며 당시 생활상과 풍속 그림 등 다채로운 예술작품을 볼 수 있다. 황금의 금박과 붉은 옷칠로 장식한 화려한 내부와 금박 장식의 극치를 보여주는 박공 장식의 예술은 이 불당이 치앙마이에서 가장 아름다운 란나의 건축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래서 이 건축물의 이름도  라이 캄(아름다운 금박 무늬)라는 이름을 붙여  비하라 라이 캄(Vihara Lai Kham)이 된 것이다.
    매년 쏭크란 축제 때가 되면 이 불상을 치앙마이 시내로 옮기어 불상에 물을 뿌리며 자신들의 허물과 죄를 씻겨 보내고 부처에게 복을 비는 축제의 시작을 알린다. 치앙마이는 태국 최고의 명절로 한국의 설에 해당하는 쏭크란 축제(양력 4월)가 시작되는 곳이다. 이 물 뿌림의 시작이 왓 프라싱에 모셔진  불상에서부터 시작된다.


    위한(대웅전)내부   


    위한(대웅전)에서 필자                 


    사원에 들어서는 입구는 사원의 이름에 걸맞게 입구 양쪽에 하얀 사자상이 지키고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정면에 보이는 웅장한 위한(Vihan, 대웅전)의 모습은 이 사원의 규모를 짐작하게 하며 위한의 기단 양쪽에는 화려하게 장식된 ‘나가’의 형상이 그 웅장함을 더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찰에서도 사자의 조각이 탑등에 많아 등장한다. 그에 관한 글을  옮겨 소개한다.
    “중국에서는 황제를 상징하는 것이 용이지만 인도에서는 코끼리나 사자가 동아시아의 용과 같은 역할을 했다. 코끼리나 사자는 인도에서 동아시아로 넘어오면서 그 중요성이 낮아지는데 당연히 중국에서 살지 않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물론 용이 중국에 살았다는 얘기는 아니다.)
    경전에서 코끼리와 사자는 흔희 문수.보현보살과 함께 등장한다. 사찰에서 사자가 등장하는 주요 장소는 세 군데이다. 첫째는 큰스님의 설법 좌대이다. 사자를 장식한 의자를 사용하는 대상은 인도에서는 ‘왕’과 ‘성자’이다. 이때는 수사자 네 마리를 네 모퉁이에 조각하는데, 왕의 통치와 위엄을 상징하고 성자가 모든 삿된 견해를 물리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전통이 동아시아의 불교로까지 전해져 큰 스님의 설법 좌대에 사자가 조각된다.
    둘째는 사찰 입구이다. 사자의 용맹성이 수호라는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으로, 사찰 입구의 좌우에 위치하는 사장상과 탑 주변에 네 모서리의 사자상 장식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중국은 이러한 사자 장식이 널리 보편화되어 베이징의 자금성이나 호텔 등 고급 건축에는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인도문화에서 사자 조각은 모두 수컷만 사용되는데 동아시아에 와서는 암수가 반드시 함께 등장한다는 것이다.”

    --- ‘자현스님 저서 사찰의 비밀, 264쪽에서 옮김--



    허 뜨라이 (장경각)                 



     입구에 들어서면  태국 국기를 비롯하여 불교 관련 깃발도 많이 있다. 입구 양 옆에는 기념품을 파는 많은 가게들이 있다. 마치 한국의 작은 시골 재래시장 같은 느낌이다.
    위한(대웅전)뒤로 돌아가면 다른 사원에서 볼 수 없는 또 다른 형태의 우보솟(Uboso 포살당)이 있다. 두 개의 출입구가 있는 우보솟이다. 또한 그 우보솟 주변에는 특이한 모양의 마치 남근을 상징하는 듯한 경계석이 법당을 둘러싸고 있다. 여러 기록을 살펴보면 지금은 없으나 과거 태국에는 비구니가 있었고 계율을 지키기 위해 비구스님과 비구니스님의 출입문을 따로 구별해 양쪽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경계석은 그것을 알리는 표식이라는 것이다. 두 문은 남쪽과 북쪽으로 나 있는데 남쪽문은 비구들이 출입을 하며 경내 안쪽에는 남쪽 방향으로 프라싱 노이(Phra Singh Noi 작은 프라싱)불상이 놓여 있으며 북쪽문은 비구니들이 사용하는 문으로 역시 경내 안쪽에는 북쪽 방향으로  불상이 놓여 있다.

    이 프라싱 사원에는 란나 왕국 시절을 대표하는 건축물이 있다. 프라싱 입구에서 왼쪽에 있는 목조 건물인 허 뜨라이(Ho Trai)라는 불경을 보관하는 사원 장경각이다. 비하라 라이 캄과 더불어 이 사원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란나 건축 예술품의 하나이다.


    허 뜨라이 (장경각)   


    탑돌이 하는 신자들   



    태국의 건축


    태국 건축물들은 가옥, 궁전, 정자, 건물 등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마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사원은 태국의 회화, 조각 건축양식을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는 태국 건축물의 결정체이다.
    태국의 승려들은 예로부터 종교적인 역할 이외에도 서민들의 교육을 담당하기도 하고 병든 자를 치료해 주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태국에서의 사원은 불교의식을 행하는 곳 이외에도  학교, 병원 등의 역할도 하고 지역 사회에서는 문화 적인 행사를 하는 장소이기도 하므로 마을 중심이나 사람들이 쉽게 다닐 수 있는 곳에 위치하여 있으며 사람들이 항상 많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사원이 차지하는 토지는 매우 넓으며 불상을 모신 불당, 승려들의 거주 구역, 승려들이 밤을 지새울 때 기거하는 곳은 사원 내에서도 아주 조용한 곳에 위치한다. 이 외에 사원이 소유한 토지인 불전 답이 있으며 신자들이 공양한 토지 등이 있다.
    태국의 사원은 장엄하고 엄숙한 분위기가 나기 보다는 사람들에게 친근하고 보면 기분 좋게 만드는 매우 화려하고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태국인들은 사원을 아름답고 화려하게 꾸밀수록 부처님에 대한 불심이 깊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라고 믿는다. 또한 보는 이로 하여금 기쁨과 관심을 끌기 위한 이유도 있다. 이런 불교에 대한 믿음들이 태국의 독특한 건축 양식을 만들어 낸 것 같다.


    사찰 지붕 모습   


    한국의 사찰건물과 비교해서 볼 때, 태국의 사원, 특히 불당 건물은 매우 높고 화려한 지붕을 가지고 있다. 고층빌딩 사이에 위치한 방콕 한복판의 사찰조차도 그 화려한 지붕으로 인해 마치 군계일학처럼 느껴지며, 마치 아름다운 모자를 쓴 채 곳곳에 위치한 불교사찰은 무분별하게 팽창해 온 방콕의 도시경관에 태국적 정체성을 부여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먼저, 지붕 끝에서 하향하면서 만들어 지는 삼각형의 공간을 건축용어로는 ‘박공’이라고 하는데, 태국에서는 이를 ‘나반’ 또는 ‘나추아’라고 부른다. 한국의 경우에는 박공이 건물의 측면에 위치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나, 태국의 사원건물에서 박공은 통상 건물의 정면에 위치한다.   태국 전통건축에서 박공은 장식을 위해 매우 중요한 공간이다. 왕실사원의 경우 가루다를 탄 ‘프라 이수안’(비쉬누의 화신인 라마의 태국식 명칭으로서 현 차크리왕조의 상징), 코끼리를 탄 인드라, 양 손을 합장한 천사상 등 태국 불교신화의 주인공들로 장식하거나, 사원과 관련된 왕의 엠블렘을 새겨 넣기도 한다.

    중국식 건축을 선호했던 라마 3세 때 부터는 추상화된 꽃 문양으로 장식한 박공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다음으로 지붕의 정점, 즉 용마루의 양끝에 마치 뿔 달린 새의 형상을 한 장식이 있는데, 시각적으로 매우 강렬한 효과를 전달해 준다. 이를 태국에서는 ‘쵸파(chofa)’라고 부르는데, ‘하늘의 수염(sky-tessel)’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한국의 전통건축에서도 용마루의 양끝을 치미 등으로 장식하는 것과 유사한 전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소 추상화된 이 모양의 원형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물을 지배하는 ‘낙’(Nak, 우리나라나 중국의 경우에는 용)이 원형이라는 주장이 있고, 다른 한 편에서는 독수리 형상을 한 가루다가 원형이라는 설, 또 다른 주장으로는 브라만이 타는 거위 함사가 원형이라는 설이 있다. 지역에 따라서는 이 부분을 ‘낙’ 또는 ‘함사’등 보다 구체적인 모양으로 장식하기도 하는데, 원형을 둘러싼 여러 이론(異論)에도 불구하고 건축에 신성을 부여하고 건물을 보호하는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치앙마이를 가장 멋지게 여행하는 방법」 에서 옮김   



    태국 불교사원의 법당 건물은 태국의 전통 건축양식에 따라 마치 지붕이 겹겹이 쌓인 모양의 다겹층 형식을 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매우 현란하고 복잡한 모양을 띠기도 하는데 지붕의 다겹층 양식은 비단 태국뿐만 아니라 인근 라오스, 버마, 캄보디아 등 인도차이나지역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발견되는 양식이다. 

    십자형 평면을 가진 건물의 경우 교차하는 건물지붕의 중앙부분에 탑을 올리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되는데 이 같은 형태의 지붕을 갖춘 건물을 ‘쁘라삿(Prasart)’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쁘랑탑 또는 체디탑과, 태국의 왕들이 쓰는 왕관(‘몽쿳’이라고 함.) 모양의 탑이 쁘라삿 건물의 타워 장식에 적용된다. 지붕은 예로부터 태양이나 비와 같은 자연환경으로부터 차단된 공간을 만들어 내는 역할을 넘어서서, 영적인 공간과의 소통을 위한 매개처로서의 상징적인 기능도 담당해 왔다. 지붕은 인간의 몸으로 비유하면 머리에 해당하는 곳으로서, 하늘과 맞닿는 장소이기 때문에 신성성이 부여되어 왔으며, 따라서 불가해한 세계를 표상하는 상징적 장식들이 많이 나타나는 곳이다. 

    여러 겹으로 중첩된 지붕은 마치 첩첩 산중이라는 말과 같이 여러 산이 하나의 중심 산을 에워싸고 있는 모양을 나타내며, 종교를 불문하고 산은 지상과 천상이 접촉하는 성화된 장소로써 세계의 축이자 우주의 중심이다. 태국의 사원건축에 있어서도 지붕은 불교적 우주의 중심이자 이상세계인 수미산(메루산)을 표상하는 곳이다.   

    마지막으로, 용마루 끝부분 장식물인 초파를 중심으로 하향하는 박공마루 부분의 장식이 있는데 이를 ‘바이라카’라고 한다. 바이라카는 마치 용(또는 뱀)의 몸이 꿈틀대는 형상을 하고 있으며, 바이라카의 끝단부분 장식을 ‘항홍’이라고 부른다. 항홍 역시 쵸파와 마찬가지로 추상적인 모습을 하고 있어서 그 원형이 조류(가루다 또는 함사)냐 파충류(낙)냐의 양설이 있으나, 불법을 수호하는 상징물의 기능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의견이 일치된다.


    ------- 인터넷 검색해서 옮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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