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행문 >
동남아시아 사찰 순례기- 라오스 편
첫번째 라오스사찰 방문기 (8)
호 파깨우
(Ho Phakhaew)
미국에는 모든 아시아 전통불교 국가에서 건너 온 스님들이 신자들이 활동하고 있다. 또 미국에는 위빠사나 수행을 지도하는 기관도 많고, 수행하는 사람들도 많다. 한국에서도 위빠사나 관련 책도 많이 나오고 미얀마로 수행을 하러 갔는 사람도 많다.
필자는 2017년 말 부터 동남아시아 태국을 여러차례 방문하면서 태국지역의 유명사찰을 많이 소개하였다. 태국에서 치앙라이 지역과 태국 남부의 붓다다사 스님이 거주했던 ‘수안 모크(Suan Mokkh), 그리고 포틸락 스님이 이끄는 ‘아속’ 공동체를 방문하려고 하였지만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여행을 할 수가 없어서 우선은 태국불교 기행문은 치앙마이 사찰 소개로 끝낼 수 밖에 없었다. 기회가 되면 못다 한 태국 사찰 소개를 더 하려고 한다. 2020년 11월 호 부터는 2019년 11월에 라오스의 루앙프라방, 방비앵, 비엔티앤을 방한문 것을 토대로 라오스 불교를 소개한다.
글 | 김형근 (본지 편집인)
에메랄드 불상의 전설이 깃든 왓 파께우. 현재는 호 파께우 라고 불린다고 한다.
호 파깨우(Ho Phakhaew)
왓 씨사켓에서 큰 길을 건너면 호 파깨우가 있다.
현재 라오스 지역인 란상 왕조 포티싸랏 왕은 태국 중북부 지역의 란나 왕국의 공주와 혼인하였다. 그러던 중 란나 왕국의 틸로캇 왕이 아들이 없어 후계자를 두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자 포티싸랏 왕과 란나 공주 사이에 태어난 왕자, 셋타티랏이 외할아버지 뒤를 이어 란나 왕국의 왕이 된다. 1552년 아버지인 포티싸랏 왕이 죽자 셋타티랏은 자신의 고향인 란쌍 왕국으로 다시 돌아가고자 했는데 이 때 그는 란나 왕국의 수호상인 파께우, 에메랄드 불상을 함께 가져가게 된다. 란나 왕국의 대신들에게 불상을 가지고 곧 돌아온다고 약속을 하며 떠났으나 그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불상도 다시 돌려보내지 않았다.
란쌍왕국의 왕 셋타티라(재위 1546~1551) 왕은 미얀마의 침공을 피해 수도를 루앙프라방에서 현 비엔티안으로 옮기고 에메랄드 불상을 모실 왓 파께우와 거대한 사리탑 탓루앙도 건설하였다. 1565년 루앙프라방에서 비엔티엔으로 수도를 천도할 때(1560년 수도를 천도) 에메랄드 불상(높이 66cm,폭 48.3cm)을 모시기 위해 건축하였다. ‘왓(Wat)’은 승려가 거주하는 사원이며 ‘호(Ho)’는 승려가 거주하지 않는 사원을 말하고 프라깨우는 ‘에멀랄드 불상(보석 불상)이라는 뜻이다. 100여년 후인 17세기 경에는 왕위 계승 분쟁이 발생하면서 란쌍왕국은 3개의 도시 국가로 분열되었으며 이러한 혼란 속에서 1779년 시암 왕국 톤부리 왕조의 침략을 받아 왓 파께우는 파괴되고 에메랄드 불상과 파방은 빼앗기고 란쌍왕국은 멸망하였다. 이 중에서 파방은 1839년 태국이 라오스에 돌려주었고 녹색 옥으로 만든 66cm의 에멀라드 불상은 태국방콕의 왕실사원에 안치되어 있다.
현재 호 파깨우는 프랑스 정부에 의해 1936~1942년에 시멘트 건물로 복원된 것이고 불교관련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는데 라오스 전역에서 모아진 대리석과 철제 불상들을 전시하고 있다.박물관 내부를 구경하기 위해서는 건물 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입장해야 한다. 회랑의 벽에는 정교하게 판 불교관련 부조가 있으며, 소원을 들어주는 부처가 있다.많은 라오스 시민들이 불상에 꽃을 바치고 기도를 드린다.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불상 에메랄드 불상
지구상의 수 많은 불상중에서 가장 유명한 불상은 어느 불상일까?
아마도 현재 태국 방콕의 왕실사원에 있는 에메랄드 불상일 것이다. 이 불상은 현재 태국의 국보 1호이기도 한데 라오스에서도 소유권을 주장하며 태국에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이 불상에 얽힌 내력을 알아보자.
전설에 따르면, 이 불상은 인도에서 스리랑카를 거쳐 캄보디아로 왔으며, 캄보디아의 왕국에서 표면이 입혀져 1434년 아유타야왕국(태국)에 선물로 전해진 것이라고 한다.
이 불상은 미얀마가 아유타야왕국을 침공해 왔을 때 사라졌다가, 1세기 후인 1434년 태국북부 도시 치앙라이에서 가까운 치앙쎈(Chiang Saen)에서 큰 홍수가 난 후에 다시 발견되었다. 그 당시 발견한 스님이 옥(Jade)으로 만들어진 이 불상을 에메랄드(Emerald)로 잘못알고 부른 것이 지금까지 에메랄드 불상으로 불리고 있다. 이 불상은 치앙라이에 있다가 당시의 왕국인 ‘란나왕국’ 수도인 치앙마이로 옮기려하였으니 불상을 실은 코끼리가 세 번이나 방향을 치앙마이 동쪽 도시인‘람빵(Lam Pang)'으로 가는 바람에 부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이 불상을 람빵에 32년간 두었다. 1468년 ’란나왕국‘의 딸로캇 왕이 불탑을 완공하고 이 불상을 치앙마이의 ’왓 쩨디 루앙‘의 동쪽 벽감에 안치하였다.
라오스 고대국가인 ‘란쌍 왕국’과 태국 고대국가인
‘란나 왕국’
라오스 국부로 추앙받는 파웅음(재위 1353 ~ 1372)이 흩어져있던 호족 세력을 통합하여 불교를 국교로 하여 현재의 루앙파방(프라방)에 ‘란쌍 왕국(1353-1769)’을 세운 것을 라오스 역사의 시작으로 본다.
그의 아들 삼센타이(재위 1374~1416)는 왕조의 노역, 병역 및 조세제도의 기반을 확립하였으며 태국의 북조 왕조인 ‘치앙마이’, 태국 남부 왕조인 ‘아유타이’ 등 주변왕국과의 정략결혼을 통해 동맹을 맺는 등 유화정책을 펼쳤다. ‘란쌍 왕국’은 1520년 왕위에 오른 포티싸랏(재위 1520~1547)왕에 이르기까지 대륙부 동남아 국가 중 가장 강성한 국가로 성장했지만 내륙국가라서 미얀마와 타이 등 주변 왕국의 침입을 수시로 받았다. ‘란쌍 왕국’ 포티싸랏 왕은 태국 중북부 지역의 ‘란나 왕국’의 공주와 혼인하였다. 그러던 중 ‘란나 왕국’의 틸로캇 왕이 아들이 없어 후계자를 두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자 포티싸랏 왕과 란나 공주 사이에 태어난 왕자, 샛타티락이 외할아버지 뒤를 이어 란나 왕국의 왕이 된다. 그러던 중 아버지인 포티싸랏 왕이 죽자 샛타티락은 자신의 고향인 란쌍 왕국으로 다시 돌아가고자 했는데 이 때 그는 란나 왕국의 수호상인 파께우, 에메랄드 불상을 함께 가져가게 된다. (1548년 이라는 설이 있다.)
란나 왕국의 대신들에게 불상을 가지고 곧 돌아온다고 약속을 하며 떠났으나 그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불상도 다시 돌려보내지 않았다. 란쌍왕국의 왕이 된 샛타티락(재위 1546~1551) 왕은 미얀마의 침공을 피해 수도를 현 비엔티안으로 옮기고 에메랄드 불상을 모실 왓 파께우와 거대한 사리탑 탓루앙도 건설하였다. 이후부터는 에멀란드 불상은 비엔팅엔의 ‘왓 파께우’사원에 있었다. 100여년 후인 17세기 경에는 왕위 계승 분쟁이 발생하면서 란쌍왕국은 ‘루앙 프라방’, ‘비엔티안’, ‘참파삭’ 3개의 도시 국가로 분열되면서 약화되었다.
태국 지역은 1767년 ‘아유타야’왕국이 버마의 공격으로 멸망하였으나, 아유타야 출신의 ‘딱신’이 버마세력을 몰아내고 1768년에 ‘톤부리’지역에 새로운 태국 왕조를 수립했다. 1778년에는 ‘딱신’왕의 오른팔인 ‘짜오프라야 차끄리’ 장군이 라오스를 침공하고, ‘에메랄드’불상을 전리품으로 가지고 와서 ‘왓 아룬(새벽사원)’에 봉안하였다. 그 후 1784년 현 ‘짜끄리 왕조’의 왕실사원인 ‘왓 프라 깨우(Wat Phra Kaew)가 완공되고 거기에 봉안된다. 그리고 원래 에메란드 불상이 있던 치앙마이의 ’왓 째디 루앙‘에는 란나 왕국 건국 600주년이던 해인 1995년 당시 태국 국왕이 에메란드 불상을 모조한 옥으로 만든 약 70cm의 불상이 모셔져 있다.
이 불상은 인도에서 제작된 것으로 전해진다고 한다. 이후 스리랑카, 캄보디아, 태국(아유타이 왕국), 태국(란나왕국), 라오스(란쌍왕국)에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현 태국 왕실 사원에 봉안되어 태국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정확하게 봉안 연도가 알려지는 란나 왕국 시절부터는 각국 왕국의 각별한 관심을 받으며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각 왕국은 이 불상에 대한 특별한 보호와 신앙을 통하여 국민들의 단결과 통합을 이루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글은 본지 2020년 5월호에 실린 글인데 다시 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