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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현불교기행

[2022년 7월호] 동남아시아 사찰 순례기- 치앙라이 사찰들 (3) 멩라이 왕의 어머니를 위한 사찰 왓 밍무앙 / 김형근

작성자파란연꽃|작성시간22.11.14|조회수44 목록 댓글 0

< 기행문 >

 

 


동남아시아 사찰 순례기- 태국 고대도시 치앙라이 (4)

치앙라이 사찰들 (3)

멩라이 왕의 어머니를 위한 사찰 왓 밍무앙

 


글 | 김형근 (본지 편집인)

 

 

태국사찰 구조

태국 사찰은 대개 우보솟, 위한, 살라, 불탑, 그리고 경전을 보관하는 장경각인 호 뜨라이와 종각 등이다. 
‘우보솟ubosot' 혹은 줄여서 ’봇bot'이라 부르는 법당으로 한국 사찰의 대웅전에 해당한다. 봇의 모양은 직사각형의 텅 빈 홀로, 한쪽 끝에 불상이 놓여 있다. 봇은 절의 스님들이 모여 명상하고 설법하는 곳이며, 특히 승려의 수계식은 반드시 여기서 행해진다. 봇의 둘레에는 ‘바이 세마bai sema'라고 부르는 여덟 개의 지계석이 땅에 박혀 있다. 
위한wihan'은 절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불당이다. 형태는 봇과 비슷하지만 크기는 약간 작다. 여기에는 절의 불상들이 모셔져 있다. 사찰에는 또 ‘살라sala'라고 부르는 정자가 있다. 살라는 봇과 비슷한 직사각형의 건물로 기둥과 지붕만 있고, 벽이 없어 시원하다. 동네 주민이 수시로 와서 이곳에서 쉬거나, 기도를 드리거나 설법을 듣는다. 살라는 때로는 마을 주민이 모여 마을 축제 등과 같은 공동의 행사를 앞두고 회의를 하는 곳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태국 사찰은 또 ‘쩨디cedi’ 혹은 ‘쁘랑prang'라고 하는 불탑이 있다. 쩨디는 종의 꼭대기에 뽀족탑을 얹어 놓은 형태로 스리랑카가 그 기원이다. 쁘랑은 옥수수 속대와 같은 형태로 캄보디아로부터 수입되었다. ---이 상은 <태국, 불교와 국왕의 나라‘ 조흥국 지음>에서 뽑았습니다. 

 

 

태국사찰 배치도
밖에서 본 모습

 

 

1296년에 치앙마이를 수도로 하여 ‘백만 논(畓)의 왕국’이란 뜻의 란나왕국을 건설한 멩라이왕(Mengrai, 1239-1317)은 중국위안족인 따이 위안(Tai Yuan)에 의하여 지금의 치앙쎈지역(치앙센 근처라고만 알려졌을 뿐 정확한 위치는 모른다)에 세워진 녹양((Ngon Yang)국의 왕자로 태어났다. 22세에 부왕의 뒤를 이었고, 1262년에 치앙라이에 도시를 건설하여 치앙콘, 판 등 북부타이의 분지와 작은 평야에 흩어져있던 작은 토후국가들을 통합하여 왕국의 영토를 넓혀나갔다.
1287년 치앙마이일대를 지배하고 있던 멩라이왕(King Mengrai)은 같은 타이족인 쑤코타이왕국의 3대왕인 람캄행왕(1277-1298), 파야오왕국의 응암무앙과 민족동맹을 맺고, 하리분짜야(현재의 람푼)지역에 있는 버마 몬족을 1291년부터 1292년까지 공격하여 하이푼차이를 멸망시켰다. 이런 정복과 통합의 과정에서 첫 번째 도읍지가 치앙라이이고 여기에서 라이는 멩라이에서 따온 것이다. 멩라이 왕이 도시를 만들고 도시 이름에 자기 이름을 붙인 것이다. 이런 연유가 있기 때문에 멩라이 왕을 이 지역 사람들은 신처럼 숭상하고 있다. 그래서 이 도시에는 멩라이 왕 동상이 시내와 여러 사찰 곳곳에 있다. 
작은 도시 치앙라이를 며칠 머물면서 시내 이곳저곳을 다니면 자연스럽게 눈에 띄는 사찰이 있는데 바로 ‘왓 밍무앙’이다. 도시 중심부에 있고  낮과 밤 언제나 건물과 탑이 화려하게 보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눈길이 간다.  근처에 식당과 상점들이 많고, 또 치앙라이 유명 관광지 중의 하나인 시계탑도 사찰과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시내 밤 풍경을 구경하기 위해서 왕 밍무앙 사찰 부근에 나와 보면 코로나로 인해 여행객이 많지는 않았지만 이 지역 거주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밤에는 전봇대 전선에는 낮에는 볼 수 없는 셀 수 없는 제비들이 앉아있었기 때문에 이 전선 밑을 지나가려면 제비 똥을 피하느라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경내 모습  /  구 위한 건물의 조각상
새로 지은 위한  /  전선에 제비가 보인다


많은 태국 사찰의 사원들이 화려하게 장식된 것을 볼 수 있는데  치앙라이에서는 이 왓 밍무앙 사찰이 현대적인 감각으로 건물과 탑이 매우 화려하게, 너무 현란하게 보일 정도로 되어 있었다. 낮에 길거리에서 보면 마치 왕궁의 성처럼 매우 화려하게 보인다. 최근에 지어진 위한에는 코끼리를 탄 왕과 왕의 어머니에 관한 여러 그림이 있다. 

이 사찰은  멩라이 왕의 어머니를 위한 사원이자 란나 왕국이 세워지기 전부터 소수민족에게는 유서 깊은 사원이다. 치앙라이가 란나왕국의 수도로 정해진 이후 왕국과 역사를 함께 한 사원으로 여겨진다. 과거에는 웅크린 코끼리 사원(Wat Chang Moob)이라고 불렸고, 이후 1970년에 태국왕실에서 공식적인 불교사원으로 등록하면서 ‘행운의 도시라는 뜻을 가진 왓 밍 무앙 wat Ming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과거에는 미얀마와 중국 등지에서 활동하던 타이 야이(wat Yai) 족의 사원이기도 해서 미얀마의 정령신앙과 란나 양식이 결합된 독특한 색감과 건물 양식을 볼 수 있다.

이 사찰의 역사적 내력은 경내에 큰 비에 영어로 소개되어있다.  

 

영어로 된 사찰 연혁  /  위한에 있는 멩라이 왕과 그의 어머니에 관한 그림
위한입구


700년 전에 이 사찰은 멩라이 왕 어머니인 ‘우아 밍 좀 무앙Ua Ming Chom Muang’)이다. 그녀는 오늘 날의 싶송푸나(Sipsongpunna)인 치앙 렁의 타이 누시의  공주였다. 이 밍무앙은 나중에 멩라이 왕의 부인에 의해 개조되었다.  
버마가 란나를 식민통치하던 시절, 주민들이 침략자들을 피해 도피했기 때문에 치앙 라이는 방치되었다. 훗날 치앙 퉁 출신의 타이 야이 사람들이 (샨 족)이 치앙 라이에 강제 이주 되고 나서 새로운 이주민들이 버마 건축 양식으로 이 사찰을 개조했다.
이 사찰에는 무릎을 꿇고 있는 코끼리 상이 있는 지붕을 씌운 우물이 있었기 때문에 꿇어앉은 코끼리라는 뜻의 ‘왓창 맙’으로 불렸다.  그 고장의 사람들이나 방문객들이 그 우물에서 물을 길어 마셨으므로 우물의 코끼리상은 이들에게 눈에 잘 띄었다. ‘왓 밍무앙’을 건설하기 전에는 그 땅은 비옥한 습지였는데 그곳에서 코끼리들이 휴식을 취하거나 놀이를 했다.  따라서 그 사찰은 코끼리와 연결지어 지는 일이 많았다.  멩라이 왕은 비사쿱자 축일과 이펭 축일(로이 크라통 연등 축제일) 양일에 이 사찰을 방문하여 초 공양을 올렸다. 왕의 모후의 화장한 유골이 이 사찰의 체디 탑에 봉안되어 있다.
이 사찰의 구조물 중에 빠뜨릴 수 없는 것은 마로 보르 남 창 뭅이라는 이름의 성스러운 우물이다.  이 우물의 지붕은 아치형의 콩 건축 양식으로 되어 있는데 거기에 조각된 동쪽으로 머리를 향하고 앉아 있는 코끼리 상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뒷 편 으로는 프라 탓 밍 무앙이라 불리는 란나 형태의 탑이 있는데 미얀마 양식으로 된 도금과 층층의 우산 모양의 장식을 자랑한다. 솜뎃 프라 냥나삼베라 솜엣 프라 상하라자에서 보내진 차오 낭 탈라매 스리의 사리가 모셔진 곳이다.   타이랜드의 고유한 신앙과 종교 그리고 문화와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사찰을 반드시 방문하기를 권한다.

 

위한 내부  /  위한 바로 앞에 서 있는 불상
화려한 탑



History of Wat Mingmuang Chiang Rai.  

King Mengrai was the first king of Lan na who founded Chiang Mai as the capital in 1296.  

Over 700 years ago this temple built by his mother-Ua Ming Chom Muang, a princess from the Tai Lu city of Chiang Rung 

(located in today's Sipsongpunna Southwestern Yunnan province).  

Wat Ming Muang was later renovated by King Mengrai's wife-a Mon from Hongsawadi city.  

During the Burmese colonization of Lan Na, Chiang Rai was deserted by its residents fleeing the invaders.  Later, the Tai Yai (Shan ethnic group) from Chiang Tung was forced to relocate to Chiang Rai, whereupon they renovated this temple, with Burmese-style architectural characteristics.  

In the past, this temple was called Wat Chang Mob ("kneeling elephant") due to a water well whose roof had a statue of a kneeling elephant, which made it visible for visitors and locals to drink from the well, located here.  Prior to the construction of Wat Ming Muang, this land was a fertile swamp where the elephants rested and played in the swamp.  Thus, this temple was then associated with elephants.  Twice a year, King Mengrai would visit this temple to light candles on Visakhapuja day and Yi Peng day (Loy Kratong lantern festival day).  His mother's bone ashes are housed inside the Chedi stupa in this temple.
Wat Ming Mueang temple was considered to be established by Chao Nang Talamae Sri, wife of King MengRai and daughter of a Burmese King from PhaKo city (Hong Sao Wadee). This temple was a personal temple of Phra Nang Uao Ming JomMuang, King MengRai’s mother. With a structure that showcases a blend of Tai Yai and Lanna Art, this temple showcases a number of antiques for study into the indigenous culture. The ceiling hiding place is decorated by the picture of swans in Triphum and Bali style. This structure houses the famous gilded stucco Buddha image, called LuangPhorPhra Sri Ming Muang. 

There is also a magnificent sacred well, named “Bor Nam Chang Mup,” 

since its Kong-style roof arch is adorned with statues of couching elephant with its face to the east. In the back is a Lanna-style Chedi, called “Phra That Ming Muang,” ornamented with gilded tierred umbrella in Myanmar art. The relics of Chao Nang Talamae Sri, received from Somdet Phra Nyanasamvara Somdet Phra Sangharaja, are housed inside. This temple is a must visit to understand Thailand’s native faith, religion, culture and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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