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 미현불교기행

[미주현대불교 2023. 3월호] 스리랑카 루완웰리세이야 불탑과 마하비하라-이병욱

작성자무량수|작성시간23.05.18|조회수75 목록 댓글 0

테라바다 불교 종주국 스리랑카 성지 순례기 (1)

스리랑카
루완웰리세이야 불탑과 마하비하라

 

 이병욱

 

 

아누라다푸라에 가까이 가면 가장 먼저 보이는 이 도시의 상징적인 탑이다. 기원전 2세기에 지어졌으므로 물경 2200여년의 역사를 지켜온 탑이다. 처음엔 무려 110m의 높이였다가 지금은 55m만 남아 있다.

 

 

 

순례시점은 2022년 11월 12일(월) 오후이다. 순례자들은 미리사베티야 불탑에서 루완웰리세이야
(Ruwanweli Seya) 불탑으로 향했다. 도중에 비를 만났다. 처음에는 약하게 내렸으나 빗줄기는 점차 강해졌다. 마침내 폭우로 변했다. 열대성 스콜같았다. 비가 내리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승용차 안에서 보내야만 했다. 비가 오래 가지 않을 것으로 보았다. 아열대나 열대지방의 경우 비가 세차게 내리지만 반시간 정도 지나면 그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주차장에 꽃가게가 있었다. 이번에는 불단에 꽃공양을 하고자 했다. 스리랑카 국화 여섯 송이에 200루피였다. 스리랑카 국화는 연꽃이다. 연꽃 중에 서도 수련이다. 보라색 나는 수련이다. 검색해 보니
영어로 ‘Nymphaea nouchali’이다. 비가 내린지 40분 만에 비가 그쳤다. 루완웰리세이야 주차장에는 월요일 평일임에도 순례 객들이 있었다. 그들 대부분 사람들은 스리랑카 사람들이고 거의 대부분 흰 옷을 입었다.

 

 

아누라다푸라에는 여러 기의 불탑이 있다. 높이가 50미터가 넘는 대탑은 다섯 기가 있다. 그 중에서도 흰색으로 되어 있는 것은 세 개이다. 이는 미리사베티야 불탑과 루완웰리세이야 불탑, 그리고 스리랑카 내전 종식을 기념하기 위해서 최근 조성한 다히루세이야 불탑을 말한다. 아누라다푸라에 여러 기의 불탑이 있지만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 된 것은 루완웰리세이야 불탑이다. 두투게무누왕이 자신의 통치기간인 기원전 137년에서 119년 사이에 건립한 것이다. 무려 이천년 전에 이렇게 거대한 탑이 건립되었다. 스리랑카 불자들은 아누라다푸라에서 두 곳을
가장 신성시하는 것 같다. 한곳은 보리수가 있는 스리마하보디 사원이고, 또 한곳은 스리랑카에서 역사 가장 오래된 루완웰리세이야 불탑이다. 루완웰리세이야 불탑이 스리랑카 불자들의 신앙의 고향으로 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오래된 탑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불사리가 안치 되어 있다는 것이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2쿼트 또는 1도나의 부처님 유물이 안치되어 있어 부처님의 유물 중에서 가장 큰 컬렉션이 있다고 한다.
루완웰리세이야 불탑에는 평일임에도 흰옷 입은 스리랑카 순례자들이 많았다. 이는 바로 옆에 있는 미리사베티야와는 대조적이다. 미리사베티야에서는 스리랑카 불자들을 볼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공양단에 꽃 공양도 몇 개 되지 않았다. 비가 개인지 몇분 되지 않았다. 불탑에 주변에는 물기가 있었다. 맨발로 그 너른 불탑 주변을 돌아보았다. 가장 먼저 꽃공양을 먼저 올렸다. 불상이 있는 곳이라면 예외 없이 꽃 공양이 올려져 있다. 도네이셔 박스를 보았다.
10루피나 20루피가 대부분이다. 꽃값이 100루피에서 200루피를 하니 십분의 일밖에 되지 않는다. 꽃살 돈이 없으면 돈으로 보시하는 것 같다. 돈이 없으면 보시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공양 단에는 반드시 꽃공양만 하는 것은 아니다. 도네이션 박스라 하여 우리나라로 말하면 불전함도 있었다. 그런데 속이 투명했다. 밖에서도 돈이 보이는 것이다. 지폐도 있고 동전도 있다. 루완웰리세이야, 꼭 한번 와보고 싶었다. 꼭 이 자리에 서고 싶었다. 그 때가 언제였던가? 블로그를 시작하고 나서 몇 년 되었을 때 어느 외국스님의 스리랑카 순례기를 접했다. 스님은 웨삭 때 스리랑카를 방문했는데 글과 사진을 남겼다. 그 사진에서 루완웰리세이야 불탑을 보았다. 반원형의 흰 불탑을
보았을 때 경이로웠다. “어떻게 저렇게 큰 대탑을 세울 수 있었을까?”라며 의문을 가졌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 자료 검색을 해보니 옛날에는 더 높았다는 것이다. 불탑이 세워졌을 때 높이는 55미터 가량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세월이 갈수록 증축이 되어서 높이가 어느 시대에 이르러서는 107미터에 달했다고 한다. 이집트 피라미드에 버금가는 높이인 것이다.

 

무엇이든지 영원한 것은 없다. 천년 이상 번영했었던 아누라다푸라도 이민족의 침입에 의해서 폐허가 되었다. 폐허가 되자 밀림 속에 방치 되었다. 그러다가 1800년대 초에 영국인에 의해서 발견되었다. 그렇다면 밀림속의 루완웰리세이야의 모습은 어땠을까? 위키피디아를 보면 루완웰리세이야를 발견했을 때 사진이 있다. 오늘날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니다. 1800년대 후반에서 1900년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진을 보면 형태만 남아 있다. 그리고 여기 저기 파괴된 불상과 건물 잔해가 흩어져 있다. 루완웰리세이야 불탑은 아누라다푸라의 마하비하라 구역에 있다. 마하비하라는 오늘날 스리랑카 불교의 종가집이라고 볼 수 있다. 마하비하라는 오늘날 테라와다불교의 종가집이자 더 나아가 세계불교의 종가집이라고 할 수 있다. 마하비하라는 한국불자들에게도 낯익다. 왜 그런가? 5세기 붓다고사 스님이 지은 청정도론의 탄생지이기 때문이다. 마하비하라는 한국불자들에게는 대사(大寺)로 잘 알려져 있는 사원이다. 마하비하라는 스리랑카에 불교가 전래될 때부터 중심지였고 또한 큰절이었다.
아누라다푸라 신성도시에는 크게 세 구역이 있다. 마하비하라 구역, 아바야기리 구역, 제따와나 구역을 말한다. 이 중에서 마하비하라와 아바야기리는 서로 경쟁관계였다. 왕실의 영향에 따라 발전되거나 퇴보 되었다. 현재 스리랑카 불교는 마하비하라 불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1세기 이후 중세시대에 마하비하라파는 아바야기리파를 몰아내고 주도권을 확보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두 파는 이렇게 주도권 다툼을 했을까? 마하비하라와 아바야기리는 모두 테라와다 불교이다. 후대 사람들은 전자를 소승 상좌불교라고 칭하고, 후자를 대승 상좌불교라고
칭했다. 전자는 보수적이었고 후자는 개방적이었다. 전자는 전통을 고수하고자 했고, 후자는 인도대륙의
새로운 사조, 즉 대승불교를 받아들이고자 했다. 현재 스리랑카불교는 테라와다불교 종주국의 위치에 있다. 3차 결집된 공인된 불교가 스리랑카를 통해서 전 세계로 뻗어 나갔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로마나이즈화된 빠알리 삼장이 전 세계 각국 언어로 번역되어 있다. 마하비하라 구역의 중심지 루완웰리세이야에 섰다. 5세기 청정도론의 저자 붓다고사도 저 거대한 불탑을 바로 보았을까? 불탑은 어디서나 보이는 랜드마크 역할을 했기 때문에 보았을 것이다.

 

 

그것도 아침저녁으로 보았을 것이다. 5세기에 불탑은 지금보다 더 높았을지 모른다. 최대 높이가 107미터까지 되던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붓다고사는 대탑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마 불탑을 부처님보듯 모셨을 것이다. 왜 그런가? 불탑에는 부처님의
사리가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루완웰리세이야는 스리랑카 최대의 사리탑이기도 한다. 루완웰리세이야 불탑 탑돌이를 했다.
탑돌이가 끝나자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그런데 이날 저녁 루완웰리세이야 불탑의 환상적인 모습을 보았다. 오후 6시 넘어 스리마하보디 보리수를 참배하고 난 다음 루완웰리세이야 불탑을 지나쳤을 때 밤하늘에 빛나는 대탑을 본 것이다. 흰색으로 빛나는
성스러운 루완웰리세이야 다고바를 사진으로 가졌다. 만족한 사진을 얻자 뿌듯했다. 고생한 보람을 느끼는 듯 했다. 두고두고 간직할 작품을 건진 것 같았다. 신성도시 아누라다푸라가 이 한 장의 사진에 다 들어 온 듯 했다.

 

인간은 대자연의 장관을 보면 경이로움에 경탄한다. 그렇다면 인간이 만들어 놓은 인공구조물은 어떠할까? 높은 산에 올라가서 대도시의 마천루를 보면 경이롭기는 하지만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왜 그런가? 도시의 거대한 구조물이 암덩어리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암세포는 무한증식을 특징으로 한다. 그리고 죽지도 않는다. 도시의 마천루를 보면 경이와 함께 두려움이 일어난다. 그러나 거대한 종교적 건축물을 보면 경이롭기도 하고 경외감이 들기도
한다. 이를 빠알리어로 상베가(saṃvega)라고 해야할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감동이다. 그래서 에스엔에스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아누라다푸라,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뛴다. 백색의 거대한 다고바를 보면 고대도시에 와 있는 것 같다.
저녁 해질 무렵 석양의 다고바는 장엄해 보였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렸을 때 찬연히 빛을 발하는 다고바는 신비스러웠다. 나는 마침내 꿈을 이루었다.”라고

 

 

 

 

 

이병욱
필자 담마다시 이병욱 거사는 전재성 박사가 이끄는
‘한국 빠알리 성전협회’에서
오랫동안 니까야 공부를 하고 있다.
그리고 블러그, 페이스북에
매일 불교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