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테라바다 불교 종주국 스리랑카 성지 순례기
(2022년 11월 11일부터 18일까지) (7)
부처님 재세시 방문한 축복의 탑묘 키리베헤라
여행은 늘 마음 설레이게 만든다. 국내여행이 이럴진대 해외여행은 어떠할까? 낯선 이지(異地)에서 보고 듣고 느낀다. 오감으로 느끼는 것이다. 현지에서 여행 못지 않게 회상하는 즐거움도 있다. 후기를 쓸 때이다. 여행기를 쓰면 다시 한번 여행을 다녀 온 것 같다. 스리랑카 키리베헤라도 그런 곳 중의 하나이다.
스리랑카에서 현지날자는 2022년 12월 16일 금요일이다. 이른 오전에 누와라 엘리야를 나서 장쾌한 협곡을 보았다. 엘라를 지나니 평지가 나타났다. 이전에 보던 것과 다르다. 아누라다푸라의 평지와 달리 덜 개발 된 것 같다.
스리랑카 동남부는 상대적으로 개발이 덜 된 것 같다. 그래서일까 서울 면적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얄라 국립공원이 있다. 국립공원에 가기 전에 도로에서 코끼리를 만났다. 무려 다섯 번 만났다. 두려움과 공포의 시간을 가졌다. 강제 코끼리 사파리를 당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짜릿했다. 진짜 사파리를 한 것이다.
가고자 하는 곳은 키리베헤라(Kiri Vehera)이다. 혜월스님이 출가한 절이라고 한다. 이번 스리랑카 성지순례 일정에 키리베헤라가 포함된 것은 행운이다. 아마도 스님이 출가한 절이기 때문에 잡아 놓았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일반 여행사의 패키지에도 키리베헤라가 들어가 있을까?
키리베헤라는 스리랑카 동남부 우바 지방에 있다.
얄라국립공원 안에 있는 것이나 다름 없다. 그래서일까 원시의 자연을 본다. 청정지대에 있는 성지인 것이다.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물소 였다.
길을 가다가 물소 떼를 보았다. 우리나라에서 보는 황소와는 다르다. 동남아에 사는 시커먼 물소가 떼를 지어 있는 것이다. 마치 아프리카 사바나 초원을 보는 것 같았다. 분위기가 다른 지역과 확실히 달랐다.
스리랑카는 국토가 작다. 그럼에도 다양한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숲의 지평이 있는가 하면 해발 2천미터가 넘는 고원도 있다. 동남부에는 초원과 늪지대도 있다. 우리나라 남한의 3분의 2에 해당되는 지역에 다양한 지형이 있는 것이다. 또한 지역의 다양성 못지 않게 문화의 다양성도 있다. 키리베헤라에는 커다란 사리탑이 있다. 그런데 사원이 있는 구역은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이다.
카타라가마(KATARAGAMA) 사원을 말한다. 먼저 카타라가마 사원에 들어갔다.
카타라가마 사원 입구는 노랑 황금색 아치로 되어 있다. 두 마리의 코끼리 형상이 흰 상아를 내밀고 서있다. 문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마주치는 것은 보리수이다.
혜월스님은 보리수 앞에 섰다. 자신이 젊었을 때 출가했을 때도 이 보리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때가 언제였던가? 스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70년대 후반인 것 같다. 스님이 21세 때 이 절로 출가했다고 한다.
보리수는 거대하다. 영문판 위키백과에 따르면 “Kataragama 사원 뒤에 있는 보리수 나무는 스리랑카 Anuradapura에 있는 Sri Maha Bodhiya의 여덟 묘목(Ashta Phala Ruhu Bodhi) 중 하나입니다.
이 나무는 기원전 3세기에 심어졌습니다.”라고 설명되어 있다.
카타라가마 보리수는 아누라다푸라 보리수와 형제 보리수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인도 보드가야에 있는 보리수가 이곳에까지 있게 된 것이다. 보리수가 있기 때문에 성지중의 성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건기이어서일까 보리수도 단풍이 든 것 같다. 울긋불긋한 보리수도 있다.
카타라가마 사원을 다 보지 못했다. 법당 건물이 있지만 들어가 보지 못했다. 겉에서만 보았을 뿐이다. 법당 건물을 한바퀴 도는 것으로 끝냈다. 그런데 카타라가마 사원에는 불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힌두교 사원도 있었다. 카타라가마에는 세 가지 종교가 공존하고 있다고 한다. 여행기를 쓰기 위해서 검색으로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카타라가마에는 불교사원도 있고 힌두교 사원도 있는 것이다. 다만 힌두교 사원은 같은 영역 내에 있지만 벽으로 구분되어 있고 작은 통용문만 있을 뿐이다.
카타라가마 사원 안에는 힌두교 사당도 있다. 불교사원 안에 힌두교 사당이 있어서 힌두신이 모셔져 있다. 보시함으로 보이는 도네이션 박스도 있다. 혜월스님에 따르면 힌두신은 불교를 보호하는 신장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힌두사당은 한국의 산신각이나 칠성각 정도의 개념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힌두교와 관련된 카타라가마 신은 카티르카맘이라 한다. 또한 스칸다 무루칸(Skanda-Murukan)과 도 관련이 있는데, 이는 카르티케야(Kartikeya)와 같은 말이다. 전쟁의 신 또는 승리의 신을 뜻한다.
불교도와 힌두교도가 민간에서 공통으로 숭배하는 대상은 전생의 신, 승리의 신에 대한 것임을 알 수있다.
스리랑카 동남부에 있는 카타라가마 사원은 불교와 힌두교의 성지임을 알 수 있다. 다만 불교세가 강하기 때문에 불교사원의 영향력 하에 있다. 또한 800미터 떨어진 곳에 그 옛날 부처님이 이곳에 직접 오셨다고 전해지는 키리베헤라 불탑이 있다.
이번 스리랑카 순례는 스리랑카 역사와 문화에 대하여 잘 모르고 떠났다. 다녀와서 후기를 쓰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혜월스님이 출가했다는 카타라가마도 그런 곳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카타라가마에는 불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힌두교도 있다는 것이다.
두 종교 신도들이 공통적으로 믿고 있는 수호신이 있다. 이를 카타라가마 데비요라고 한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민간신앙 수호신 같은 것이다. 전쟁의 신 또는 승리의 신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최영장군이나 중국의 관운장과 같은 위치라고 볼 수 있다.
일본에서는 비사문천이 될 것이다. 비사문천은 북방을 관장하는 벳싸바나 대왕의 한자식 이름이다. 초기경전에도 전쟁의 신이 있다. 사대왕천에서 북방을 관장하는 벳싸바나 대왕을 말한다. 이는 디가니까야 32번경 아따나띠야의 경에서 볼 수 있다.
아따나띠야의 경에 따르면, 북방을 관장하는 벳싸바나는 부처님 가르르침을 따르는 자들을 수호하는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다. 그래서 누구든지 아따나띠야 주문을 외우면 안전할 것이라고 말한다.
카타가라마 사원에서 키리베헤라 불탑이 있는 곳까지는 직선 거리로 800미터이다. 마치 신작로 같은 흙길이 곧게 주욱 뻗어 있다. 저 멀리 아스라히 백색의 다고바가 보인다. 저 곳을 향하여 네 명이 길을 떠났다. 혜월스님과 김형근 선생, 그리고 나와 운전기사 가미니 네 사람이다.
성소에서는 신발을 벗어야 한다. 양말도 신어서는 안된다. 사람들은 모두 맨발이다. 무려 800미터나 떨어져 있는 신작로같은 흙길을 맨발로 걸었다. 흙길 주변에는 아름드리 나무들이 있다. 열대지방에서 보는 상록수이다. 종종 남방에서만 볼 수 있는 대나무도 있다. 대나무가 무리를 이루어 서 있는데 멀리서 보면 한구루 나무처럼 보인다. 가지가 아래로 내려온 나무도 볼 수 있다. 마치 커튼 쳐 놓은 것처럼 보인다. 보리수도 이런 류의 나무에 해당된다.
나무 그늘 아래는 시커먼 물소 떼가 무리 지어 있다. 이런 광경은 좀처럼 보기 힘들다. TV에서 동물의 왕국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다. 이곳 남동부 지방은 자연과 원시가 공존하는 곳 같다. 평화롭기 그지없는 길을 걸었다.
백색의 불탑이 다가올수록 꽃가게가 나타났다. 꽃가게는 즐비하다. 이곳에서는 오로지 꽃만 판다. 꽃 공양용 꽃을 파는 것이다. 향, 초, 꽃 등 공양물이 있지만 꽃 공양이 거의 대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스리랑카 전역 어느 사원에서나 볼 수 있다.
꽃가게를 지나칠 수 없다. 불탑에 꽃 공양하기 위해서 꽃을 샀다. 그런데 꽃 파는 여인들은 한결같이 미인이라는 사실이다. 스리랑카 미인들은 모두 꽃가게에 있는 것 같다.
꽃과 미인은 통하는 것 같다. 같은 꽃을 팔아도 남자보다는 여자가 파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같은 여자라도 미인형이 더 나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꽃가게에서 꽃 파는 여인들은 모두 미인 같다. 특히 미소가 아름답다.
기리베헤라에 도착했다. 백색의 거대한 불탑이 전면으로 다가 왔다. 크기는 얼마나 될까? 위키백과에 따르면 높이가 95피트이다.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높이가 28미터이다. 아파트 9-10층 높이에 해당된다.
혜월스님이 말한 것이 있다. 기리베하라는 부처님이 오셨던 곳이라고 했다. 전설 같고 신화 같은 이야기이다. 부처님이 스리랑카를 세 번 방문 했는데, 세번째 방문한 곳이 이곳 키리베헤라라는 것이다.
키리베헤라 불탑 앞에는 안내판이 있다. 싱할라어와 타밀어, 영어로 쓰여진 것이다. 부처님이 부처님 재세시에 5백명의 장로와 함께 스리랑카를 방문했는데 세 번째 방문한 곳 중의 하나라고 한다. 이런 비문이 역사적인 사실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스리랑카 역사서 마하왕사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키리베헤라 전설에 따르면, 키리베헤라에는 부처님의 성물이 있다고 한다. 부처님이 직접 전달해 준 보리수좌의 좌대, 심지어 아노마 강에서 자른 머리카락 다발도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부처님의 성물이 있어서일까 ‘망갈라 마하 베헤라(Mangala Maha Vehera)’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 말은 ‘위대한 축복의 탑묘(The Blessed Great Chethiya)’ 라는 뜻이다.
키리라는 말은 기리라고도 발음된다. 혜월스님에 따르면 기리라는 말은 ‘소의 우유처럼 하얗다’라는 뜻이다. 아마도 백색의 다고바를 우유빛으로 본 것 같다. 어쩌면 소가 많아서 그런 이름이 붙여진 것인지 모른다. 중앙대로에 물소떼가 유유자적 이동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부처님은 정말 스리랑카에 왔을까? 이에 대하여 충분히 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믿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역사서와 유적을 근거로 들고 있다. 설령 그것이 전설이고 신화일지라도 믿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키리베헤라와 같은 성소가 스리랑카 전역에 16군데가 있다. 이를 솔로마스타나(Solomasthana)라고 한다. 오늘날 스리랑카에서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곳이다.
키리베헤라는 솔로마스타나 16곳 중의 하나이다.
순서가 가장 나중에 있기 때문에 가장 나중에 방문한 것일까? 그것은 알 수 없다. 전설에 따르면 이곳에 부처님이 세 번째로 방문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곳에서 혜월스님이 출가했다. 카타라가마 사원에서 출가한 것이다.
스리랑카 성지순례기 35번째 이야기는 카타라가마와 키리베헤라에 대한 것이다. 멀고 먼 남쪽나라, 더 이상 갈 수 없는 스리랑카, 거기에서도 동남쪽에 있어서 세상의 끝처럼 보이는 곳에 갔었다. 그곳은 놀랍게도 부처님이 다녀갔다고 한다.
카타라가마는 불교와 힌두교의 성지이다. 사원안에는 불교와 힌두교 신도들이 함께 믿는 카타라가마 데비요가 있다. 인도 힌두교에서 유래하는 전쟁의 신, 승리의 신을 말한다. 우리나라 산신과 같은 민속 신앙의 신격이다. 초기경전에는 벳싸바나 대왕이 이에 대응될 것이다.
키리베헤라 가는 길은 꽃길이었다. 길이가 800미터에 달하는 길은 원시의 길이었다. 물소 떼가 지나다니고 물소떼가 초원에서 유유자적하게 쉬고 있는 원시의 땅이었다. 아직 현대문명에 물들지 않은 순박한 사람들을 보았다. 꽃 파는 여인의 웃음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으로 보였다.
백색의 키리베헤라 다고바는 가슴을 설레게 했다.
마치 아누라다푸라에 있는 루완웰리세이야 다고바를 보는 것처럼 마음을 충만하게 했다. 전설에 따르면 부처님이 다녀간 곳이고, 또한 부처님의 유물과 성체가 남아 있는 곳이라고 한다. 성소중의 성소라 아니할 수 없다. 그래서일까 부처님이 다녀갔다는 16개의 솔로마스타나 중에 하나가 되었다. 힘들게 작성한 여행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한번 써 놓은 여행기는 남아 있다. 인터넷바다에 있는 한 인연 있는 사람이 읽어 볼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것이다. 누군가 읽어 보았을 때 글을 쓴 목적은 달성된다. 키리베헤라, 언제 한번 다시 가볼 수 있을까?
이병욱
필자 담마다시 이 병욱 거사는 전재성 박사가 이끄는
‘한국 빠알리 성전협회’에서
오랫동안 니까야 공부를 하고 있다.
그리고 블러그, 페이스북에
매일 불교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