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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현대불교 2024. 8월호] 기행문_마하시 명상센터와 모곡센터

작성자파란연꽃|작성시간24.10.28|조회수11 목록 댓글 0

 

기행문

 

동남아시아 불교국가 미얀마 성지순례(3) 
(2024년 3월 1일 ~ 3월 8일) 

 

마하시 명상센터와 모곡센터

 

글 덕광 김형근(德光 金䵚 根)
 -본지 편집인

 

 

사무실에 걸려있는 마하시 스님 사진

 

정문

 

 

 

 

1. 위빠사나 명상법을 체계화하고 
 전세계에 위빠사나 명상을 알린 
 마하시 명상센터 

 

3 월 3 일 오전 9:40 경에 마하시 선원을 방문했다. 이곳에서 전화로 약속한 강종미 보살님을 만났다. 위빠사나 수행자인 강 선생은 30년 전인 1996년 이곳에 와서 마하시 선원, 때인구 명상센터, 모곡센터 등에서 수행하였다. 강 선생은 1996년에 처음 이곳에 와서 8 개월 수행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 만달레이 주립 대학교 등 두 곳의 대학에서 빨리어와 삼장을 배운 분으로 미얀마어를 미얀마 사람처럼 한다.
아비다마 해설서 등 여러 권의 책도 저술했고, ‘미얀마 아라한의 수행 - 9 위빠사나 선사들의 법문’을 듣고 정리한 책에는 근대 미얀마 위대한 선사들에 관해 자세하게 소개한 책이다. 강 선생은 현재 이곳 조그만 사찰에서 스님처럼 수행하면서 살면서 가이더로 일도 하고 있다. 강 선생님 도움으로 마하시와 모곡 그리고 짜욱타지 와불선원을 강 선생의 설명을 들으면서 방문하였다.

 

 

마하시 명상센터 
이곳은 위빠사나 명상을 전세계에 널리 보급한 센터다. 대체로 10일 명상수행을 지도한다. 여기 참석하는 스님들과 외국인은 무료이고, 일반 신도는 하루에 1,000 짯(한국돈 350, 미국 달러는 30 센트 )이다. 여기에 참가했던 미국 거주하는 사람들에 의하면 무료지만 내용이 좋아서 헌금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사무실
여성 수행 선방

 

남성 수행선방

 

 

마하시 센터는 외국인 참가자에게 각별하게 신경을 쓰고 있는데 코로나 전에는 한국에서 온 스님과 신자들도 많았고 10 일 코스에 외국인 참가자가 항상 수 십명이었는데 현재는 없다고 한다. 이 센터는 마하시 스님(1904- 1982)에 의해 1947년에 건립되었다. 불교 교리와 수행을 배우기 위해 설립된 부다 사사나 누가하 협회 초대 회장이던 ‘우 트윈’이 당시 수상이던 ‘우 누’에게 부탁해서 북부 작은 마을에서 수행과 지도를 하던 마하시 스님을 모셔 왔다고 한다. 우 누 수상을 비롯해서 이 단체에서 마하시 스님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후원하였다. 
마하시 스님은 위빠사나 명상법을 체계화 한 스님으로 평가를 받는다. 위빠사나 수행자로 이곳 미얀마에서 30년 살고있는 강종미 보살은 “미얀마에서 수행은 전통적으로 수행자들이 숲속에 들어가서 하는 특별한 스님들이 었다. 모든 스님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 스님들만 하는 것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마하시 스님이 이 센터에서 일주일 코스, 10 일 코스, 한 달 코스 등으로 수행을 체계화 시켰다. 그 청정도론 등에 나오는 16 단계 등에 대해서도 정리를 하였다. 그래서 위뻐사나 수행 대가가 아닌 스님들도 수행을 지도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렇게 해서 수행을 대중화 시켰습니다.”라고 설명한다. 미국에도 한번 동부의 유명한 위빠사나 명상 수행처인 IMS를 1970 년대에 방문한 적이 있다. 
마하시 센터는 미국에 분원이 3 개, 한국에도 분원이 있다. 해외에 100 여개의 분원이 있고, 미얀마에 1,000 개 넘는 분원이 있다. 
현재 이 곳에서 10일간 수행중인 스님은 89명이다. 상주 스님은 20 명. 비구니와 여성 수행자 98 명. 돈 받고 일하는 사람 60 명. 간호사와 상주 노 스님 시중자 20명. 수용인원은 500 명 까지만 받고 있는데 코로나 전에는 최대 2,000 명 이었다고 한다. 미얀마 새해는 양력 4월이고 이때 15 일간 모든 관공서가 문을 닫는데 이 기간에 많은 사람들이 10일간 수행에 참가한다고 한다. 
우리가 방문한 날은 일요일이었고, 한 쌍의 젊은 남녀가 결혼식을 하는 날이었다. 또 경내에서 탁발이 막 시작되는 시간이어서 나는 스님들께 미얀만 돈 소액(미국돈 3센트 정도)을 드리는 탁발 의식을 경험하였다. 
경내에는 대규모 인원을 수용해야 하기 때문에 크고 작은 건물이 70 개. 외국인 전용 숙소가 있다. 방은 셀 수 없이 많다. 규모가 커서 수행센터라기 보다는 학교 같은 느낌이었다. 이 센터의 운영은 신도들이 한다. 후원회장은 중국계로 미얀마 재벌이라고 한다. 여기 상주하는 스님들에게 돈은 주지 않는다.
설법할 때 신도들이 보시하는 돈은 설법하는 스님께 드린다. 여기 와서 마하시 명상센터, 모곡 센터, 찬매 명상센터 등을 직접 방문하고 , 강 선생으로 부터 마하시, 모곡, 파욱 선사 등에 관한 설명을 들으니 책에서 이름으로만 알았던 위빠사나 선사들과 명상센터에 대한 이해가 확실해졌다.

 

탁뷅을 기다리는 스님과 수행자들

 

결혼식을 올릴 신랑과 신부와 기념사진
탁발에 참가한 필자

 

2. 미얀마 불교를 이끌고 가는 
 모곡 명상센터 
3월 3일 점심 조금 지난 무렵에 양곤 모곡 명상센터를 강종미 보살과 함께 방문했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마하시 센터에 비하면 매우 작았는데 양곤에 있는 이 센터가 모곡센터의 본부는 아니라고 했다. 강종미 보살은 “모곡 수도원은 마하시에 비해서 외국인 수행자들에 대한 배려가 없다. 독방도 없고, 여성들의 샤워도 노상에서 옷입고 하는 미얀마 전통식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외국인 수행자들은 모곡 센터에 별로 없다. 나도 모곡에서 수행을 하려고 했는데, 할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이에 비해 마하시 수도원은 외국인 참가자들에게 큰 배려를 한다. 외국인 전용 숙소도 따로 있다. 이것은 마하시 센터 뿐만 아니라 그의 제자들이 설립한 찬매 명상센터도 똑같다. 모곡센터와 마하시 센터의 외국인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 때문에 한국인들 뿐만 아니라 서양인들도 마하시 명상센터에서 수행한 사람이 많았고 마하시 명상센터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것으로 생각된다. 
사무실을 방문해서 담당자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이 센터에서는 현재 매월 10일 코스 프로그램이 있다. 스님과 재가자가 함께 수행한다. 참여자는 코로나 전에는 350명 정도였으나 현재는 200명이다. 참가비는 10일에 30,000짯, 하루에 3,000짯($1). 사무실을 나와 서점을 방문했는데 주로 모곡 스님 저서와 설법 테이프를 판매하고 있었다. 이 곳도 마하시 센터와 마찬가지로 손님들은 별로 없었다. 
이번 미얀마 여행을 통해서 나는 모곡 사야도, 마하시 사야도, 우 자나카 비왐사 사야도, 쉐우민 사야도 등 많은 위빠사나 선사들의 법맥과 그들의 노선의 차이점 등을 알 수 있었다. 동남아시아에서 위빠사나를 배우고 1970년대 에 미국에 위빠사나 명상법을 소개한 잭 콘필드, 조셉 골드스타인 등이 왜 마하시 계열이었는지를 강종미 보살과 함께 마하시 센터, 모곡 센터, 찬매 센터 등을 다니며 설명을 듣고 이해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저서 ‘미얀마 아라한의 수행- 9 위빠사나 선사들의 법문 모음’도 미얀마 선사들의 이해에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이번에 모곡 선사에 대해서 많은 공부가 되었다. 마하시사야도가 미얀마 국민들에게 위빠사나 명상법에 대해 기초를 닦았다면, 그 바탕위에 모곡 센터는 현재 미얀만 명상을 끌고 가는 형국이라고 한다. 
미얀마 전역에 270개의 모곡 협회가 있고, 3,000개의 수행센터가 있다. 마하시 센터는 모곡의 1/3 정도이다. 수행자 또한 모곡 센터에서 수행하는 사람들이 3 배 정도 많다고 한다. 센터와 참가자 수에서 모곡 센터가 3 배 정도 많은 것이다. 미국에는 플로리다에 분원이 한 개 있다. 두 선사를 간략하게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점심 공양하는 모습
마하시 스님이 거처하던 곳
마하시 외국인 전용숙소

 

 

 

 

마하시센터 경내

 

양곤 모곡센터

 

모곡 선사가 설법할 때 사용한 도표

 

모곡센터에 선방에 있는 모곡 선사 사진

 

 

양곤 모곡센터 선방 모습

 

모곡 센터내에 있는 책방과 테이프 판매 가게 모습

 

(3)모곡 선사와 마하시 선사 생애 소개 
모곡 사야도 1899년 - 1962년 입적. 9살에 출가.
입적 후 사리가 많이 나왔는데 심지어 안구까지도 그대로 사리로 나왔다. 삼장법사 민곤 사야도는 “불법에 부처님이 계신다면 미얀마 교학에는 모곡 사야도가 계신다”라고 평가했다. 강종미씨는 “모곡은 선교를 겸비한 근대 미얀마 최고의 아란한”이라고 그를 평가했다. 

 

마하시 사야도 1904년 - 1982년입적. 6살에 수도원 들어감. 12세 때 ‘소바나’ 사미계 받음. 미얀마 최초의 삼장법사인 민곤 사야도와 함께 제 6차 경전 결집대회를 주관. 두 선사 모두 아비담마 논장 대가. 뛰어난 교학자이며 수행을 강조. 그러나 두 사람은 접근 방법이 다름. 

 

12 연기에 대한 두 사람의 견해

 

모곡 사야도

12 연기를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표를 만들고, 총체적인 관점에서 분석. 12 연기를 벗어 나는 것은 느낌을 통해서이다. 모든 것을 인지할 때, 느낌으로 인지하고 거기에서 멸을 찾아라. 

 

마하시 사야도 
무명의 원인으로 행이 일어나는 등 12가지 요소의 원인과 결과를 하나씩 분석.

 

미얀마 선사들이 설법한 책. 강정미 저서. 표지사진 모곡 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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