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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4대성지 (2) - 사르나트 (Sarnath, 녹야원, 鹿野園) .jpg

작성자노랑|작성시간14.05.09|조회수263 목록 댓글 0

(불교의 4대 성지 사르나트쿠시나가라) 2

 

최초로 설법한 사르나트 (Sarnath, 녹야원鹿野園)


사르나트(Sarnath)의 한국절. 통도사 해외분원인 녹야원(綠野園)이다.

녹야원은 2층이 법당이고, 1층은 생활관인 아담한 절이다.

사르나트는 함께 고행했던 다섯 수행자들에게 첫 설법을 한 곳이다.

붓다가 첫 설법(說法)하는 모습을 재현한 모형. 초전법륜(初轉法輪).

사성제(四聖蹄)와 팔정도(八正道)를 설법. 한글로된 설명문도 있다.

 

사르나트(Sarnath, 鹿野園녹야원)는 인도 북부 바라나시의 북쪽 10km에 있는데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뒤 자신과 함께 고행했던 다섯 수행자들에게 처음으로 설법(說法)을 한 곳이다이슬람의 침입으로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가, 1835년 영국 고고학자의 발굴 작업으로 알려졌다현장법사가 남긴 기록에는 30여 개의 사찰과 3,000여 명의 승려가 있었다고 적혀 있지만현재는 유일하게 기원후 6세기에 건립된 다메크 스투파(Dhamekh Stupa, )만 남아있다부처님이 설법할 때 노루도 모였다고 해서 일명 녹야원(鹿野苑)으로 불리며네 가지의 거룩한 진리라 일컬어지는 사성제(四聖蹄)와 불교의 실천 수행인 팔정도(八正道)를 설법했는데이것을 불교계에서는 초전법륜(初轉法輪)이라고 한다.

 


차우칸디(Chaukhandi) 스투파는 붓다가 다섯 수행자들을 다시 만난 곳이다.

차우칸디 스투파 (迎佛塔, 영불탑)에서 바라 본 사르나트.

 

차우칸디 스투파 (Chaukhandi Stupa)는 부다가야에서 깨닮음을 얻은 부처가 예전에 같이 고행하던 5명의 동료를 처음 만났던 장소로 AD 5세기경 굽타왕조 시대에 세워졌다부처님을 맞이한 곳에 세워진 탑이라 하여 영불탑(迎佛塔)이라고도 한다상단의 팔각형탑은 무굴제국의 악바르 왕이 이슬람 양식으로 만든 것이다악바르의 아버지인 후마윤이 페르시아의 쉐르샤 와의 싸움에 져서 쫓겨다닐 때 한 스님이 그를 숨겨줬기 때문에 그에 대한 보답으로 지은 것이라고 한다탑 위에 오르면 사르나트와 바라나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데인도의 높은 탑들은 넓은 평야지대라서 효과가 더 좋다.

 


무라간다 쿠티 비할 (Mulagandha Kuti Vihar).

부다가야의 마하보디 탑을 본따서 1931년 만든 스리랑카 사원이다.

사원 내부 벽면에는 부처님의 일대기를 그린 프레스코화가 있다.

수로엔 연꽃이 피어있는 사원 뒷편의 야자수 길이 아름답다.

 

무라간다 쿠티 비할 (Mulagandha Kuti Vihar)은 부다가야의 마하보디 탑을 본따서 1931년 만든 스리랑카 사원이다전세계 불교신자들의 도움을 받아 건설하였다고 한다절의 내부 벽면에는 몇년전 일본인 화상이 부처님의 일대기를 그린 프레스코화가 있다.

세계의 3대 종교하면 첫째가 기독교로 94,000만명 정도두번째가 불교인데 7억정도세번째는 이슬람교로 35,000만명 정도라고 한다인도는 나라의 크기는 세계에서 7번째이고인구는 12억 정도로 두번째이나세계에서 유일하게 전체국민의 80%이상이 힌두교인이며불교의 발생지이면서도 0.8%에 불과하고1인당 GDP는 4,000달러가 안된다. (한국은 23,679달러로 세계 34위. 2012년)

 


사르나트(Sarnath)는 사슴이 많았던 녹야원(鹿野苑)으로 불린다.

이슬람의 침입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가,

1835년 영국 고고학자의 발굴 작업으로 다시 알려졌다.

다멕 스투파와 자인교 사원.

 

다메크 스투파(Dhamekh Stupa)는 직경 28.5m, 높이 43.6m의 거대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다메크는 산스크리트어로 법()의 중계라는 의미이고스투파(Stupa)는 '흙을 쌓아올린 것'을 뜻하는데,부처의 사리를 흙을 높이 쌓은 무덤에 모셔놓고 숭배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전법륜탑(轉法輪塔)의 하단은 마우리아 왕조 시대상단은 굽타 양식으로 여러 세기에 걸쳐 증축되었다사르나트 유적군중 이슬람의 침입 속에서도 유일하게 제 모습을 갖추고 있어 의미가 깊다탑 둘레를 돌며 탑돌이를 하는 티베트와 동남아 순례자들을 볼 수 있다

 


다멕 스투파(탑)는 사르나트에서 제 모습을 갖춘 유일한 유적이다.

다메크 스투파(Dhamekh Stupa)는 직경 28.5m, 높이 43.6m이다.

하단은 마우리아 왕조시대, 상단은 굽타양식으로 증축된 것이다.

탑 둘레를 돌며 탑돌이를 하는 순례자들.

부처의 사리를 모셔놓은 초기 스투파(Stupa)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사르나트 다메크탑 벽면의 문양들.

 

아쇼카 석주(Ashokan Pillar)는 인도의 불교 유적지 어디서나 볼 수 있는데아쇼카 왕은 불교에 귀의한 후 유적지들을 돌며 기념석주를 남겼다. 30개 정도의 석주를 남겼는데 현재까지 남아있는 것은 15개 정도라고 한다아쇼카 석주가 중요한 이유는 기록이 제대로 남아있지 않은 상태에서 성지임을 확인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BC 250년에 세워진 석주는 직경이 71cm이고 높이는15m였으며, 725년 혜초스님이 방문했을 때도 건재했으나, 1194년 이슬람에 의해 파괴되었다기둥의 중간에는 종단의 분열을 경고하는 글이 새겨져 있다기둥머리에 안치되었던 4마리가 등을 마주 대고 동서남북을 향해 포호하는 사자상은 사르나트 박물관에 있는데인도 국가문장의 원본이다.정부문서나 화폐인 루피에도 이 문양이 찍혀 있다.

 


아쇼카석주는 불교의 성지를 확인시켜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석주의 4사자상은 인도의 국가문장 원본으로 사르나트 박물관에 있다.

다마라지까 스투파(Dharmarajika Stupa)가 있던 둥근 원형터.

사르나트 사원터. 기둥엔 동남아 불자들이 붙인 금박이 반짝인다.

1794년 바라나시 마하라자의 궁전 건립용으로 사용하려고 해체했다.

현장법사는 30여개의 사찰과 3,000여명의 승려가 있다고 적었었다.

 

둥근 원형터의 다마라지까 스투파(Dharmarajika Stupa)는 붓다의 사리를 보관했던 사리탑으로,최초 건립 당시에는 13.5m 규모의 큰 탑이었으나, 1794년 바라나시 일대를 지배하던 마하라자의 궁전 건립시 벽돌을 사용하려고 탑을 해체했다해체할 때 아쇼카왕 이래로 보관되어 오던 붓다의 사리함이 발견되었는데힌두교도들이 사리함 외에는 모두 강가에 버렸다사리함은 뉴델리 국립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고사르나트 박물관에 있는 부처가 깨달은 후 다섯 제자들 앞에서 최초로 설법하는 모습을 담고 있는 초전법륜(初轉法輪)상도 이 스투파에서 출토된 것이라고 하는데, 5세기 굽타시대의 최고걸작으로 손꼽힌다출토품 대부분이 사르나트 박물관에 있는데박물관은 카메라 등의 휴대물품을 통제한다.

 

 

 

힌두교의 성지(聖地)인 바라나시 (Vārānasī)

 


바라나시(Vārānasī)는 사르나트와 가까운 갠지스강 중류에 있다.

민족종교로 다신교인 힌두교의 7개 성지(聖地) 가운데 으뜸으로 꼽힌다.

바라나시는 고대 도시로 붓다시절엔 카시(Kashī)왕국의 수도였다.

이슬람 무굴제국 아우랑제브 황제때 도시와 힌두교사원이 파괴되었다.

바라나시를 흐르는 갠지스 강은 힌두교도에게 성스러운 젖줄이다.

 

바라나시 (Vārānasī)는 인도 북부 갠지스강 중류에 위치하는데민족종교로 다신교인 힌두교의 7개 성지(聖地가운데 으뜸으로 꼽힌다바루나(Varana)강과 아시(Asi)강 사이에 있다는데서 유래했는데과거에는 빛의 도시라는 카시(Kashī)로 불렸다고대 인도의 대서사시 마하바라타에도 언급되어있는 도시로붓다시절인 기원전 6세기 무렵엔 카시(Kashī)왕국의 수도로 번성하다가 코살라왕국마가다왕국에 지배되었다. 11세기경부터는 이슬람 침략자들에게 약탈당하기 시작해 무굴제국 아우랑제브 황제 때 도시 대부분과 여러 힌두교 사원이 파괴되었다당시 파괴된 사원 중 대표적인 것은 황금사원이라고 부르는 비슈와나트 사원이었다.

 


갠지스 강에 몸을 담그고 전생과 이생에 쌓은 업이 씻겨 내려가길 기원한다.

갠지스 강변 가트에서는 매일 밤 푸자(Puja, Pooja)의식이 진행된다.

갠지스강변의 화장터.  힌두교도들은 갠지스 강가에서 화장을 하고,

갠지스강에 재가 뿌려지면 윤회의 사슬이 끊어진다고 믿는다.

 

연간 100만 명이 넘는 순례자들이 방문하여 성스러운 갠지스강에서 목욕재계를 하며 전생과 이생에 쌓은 업이 씻겨 내려가길 기원한다순례자들을 위해 갠지스강변에는 길이 4km에 걸쳐 가트(Ghat)라는 계단상의 목욕장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한쪽에는 죽은 사람의 시체를 화장해 갠지스강에 뿌리는 화장터도 있다갠지스 강가에서 화장을 하고 재가 뿌려지면 윤회의 사슬이 끊어진다고 믿어서 대부분의 힌두교도들이 죽어서 갠지스강으로 돌아가기를 원한다.

 

 

 

열반에 들어간 쿠시나가라(Kuśinagara)

 


쿠쉬나가르(Kuśinagara)는 불타(佛陀)의 열반지(涅槃地)이다.

부처님 입적지인 쿠쉬나가르에 세워진 한국절인 대한사.

석가모니는 80세에 버섯죽를 먹고, 식중독에 걸려 입적했다.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에서 오른쪽 겨드랑이를 밑으로 하고 열반에 들었다.

열반당(涅槃堂)은 1927년 미얀마 불자가 짓고, 1956년 인도정부가 수리했다.

열반당 뒤편에는 아쇼카왕이 세웠다는 높이 55m의 대 열반탑이 있다.

대 열반탑도 미얀마 스님들이 1927년과 1972년 보수하고 증축했다.

 

쿠시나가라(Kuśinagara)는 불타(佛陀)의 입적지로 인도 힌두스탄 평야에 있는 카시아(Kasia)의 남서 3km에 있다불타 시대부터 외딴 곳으로 당시는 마라족(malla )이 살았고가까이에 히란냐바티강()이 흐르고 있다석가모니는 80세에 버섯죽를 먹고 식중독에 걸려 입적했다사라쌍수(沙羅雙樹사이에 머리를 북쪽으로 두고 오른쪽 겨드랑이를 밑으로 해서 열반에 들어간 불타를 화장(火葬)한 곳이다열반당(涅槃堂)은 1927년 미얀마 불자의 보시로 지은 것을 1956년 인도 정부가 수리한 것이다열반당 뒤편에는 아쇼카왕이 세웠다는 높이 55m의 대 열반탑이 있다이 탑 역시 발굴 당시 심하게 훼손돼 있던 것을 미얀마 스님들이 1927년과 1972년 두 차례에 걸쳐 보수하고 증축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사실상 신축이나 다를 바 없다.

 


열반당엔 붉은사암의 길이 6.2m인 거대한 열반상이 봉안되어 있다.

굽타왕조 시대인 5세기에 하리발라(Haribala)스님이 기증한 것인데,

히라냐바티 강바닥에서 심하게 파손된채 발견된 것을 복원한 것이다.

불멸 2500년을 기념해 1956년 미얀마 불자들이 금칠을 다시 했다.

부처님의 다비식을 치른 곳인 람바르 스투파(Rambar Stupa).

원래는 왕족의 대관식을 거행하던 장소였다고 한다.

아쇼카왕이 세운 스투파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잔해들만 황량하다.

 

열반당엔 5세기 굽타기의 마투라 양식인 거대한 열반상(길이 약6m)이 안치되어 있는데히라냐바티 강바닥에서 발견된 것을 복원한 것이다발견 당시 열반상은 원형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심하게 파손돼 있었으나조각들을 주워 모아 1956년 불멸 2500년을 기념해 미얀마 불자들이 불상(佛像)에 금칠을 다시 하는 개금(改金)을 했다열반상 대좌에는 세 명의 사람이 조각돼 있는데마지막 공양을 올린 춘다부처님의 마지막 제자가 된 수밧타그리고 부처님의 발아래서 슬퍼하고 있는 아난다 존자다일부에서는 춘다와 수밧타가 아니라 코살라국의 왕비 말리카와 5세기 굽타왕조 시대에 열반상을 기증한 하리말라 스님이라는 주장도 있다.

 


탄생지 네팔 룸비니에 한국이 조성한 부처님 진신사리 봉안 기념비와 탄생불.

부처님 진신사리가 열반지에서 탄생지로 입멸 2556년만에 봉안된 것이다.

 

붓다 석가모니의 진신사리 3과가 열반지 인도 꾸시나가르 열반당에서탄생지 네팔 룸비니에 입멸2556년만인 2012년 2월 15일 봉안됐다. 1910년 꾸시나가르 마하빠르니르바나 스투파에서 출토되었던 사리로, 2008년 열반당 주지스님이 한국의 108산사기도회에 봉양한 8과의 사리 중 일부이다.한국-네팔-인도가 함께 조성한 진신사리를 봉안한 기념비(4.5m)와 탄생불(2.5m)은 룸비니 개발구역 평화공원 룸비니박물관 부근에 있다네팔과 인도의 국교는 힌두교이나. 미얀마(버마)는 90%가 불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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