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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내지 않는 연습, 코이케 류노스케 스님

작성자meong|작성시간16.04.16|조회수194 목록 댓글 1

화내지 않는 연습, 코이케 류노스케 스님

양영철 옮김

 

이 책의 기본은 불교다. 불교는 인생 문제 해결 방법으로 욕망을 줄이거나 없애버리는 길을 택한다. 해탈이다.

 

사람은 탐욕과 이기심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수련을 해야 한다. 이 책 읽는다고 바로 화를 내지 않게 되지는 않는다. 제목처럼 연습이 없다면 자기 중심적 생각을 버리기란 불가능하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몸으로 실행하는 것 사이에는 '마음'이 있다. 그 마음이 욕망에 사로잡혀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다면, 이 책 아무리 여러 번 읽어 봐야 잠깐의 자기 만족이라는 즐거움에 빠질 수 있을 뿐이다.

 

화를 내지 않는 방법은? 이 질문에 대해 지은이의 대답은 "마음의 관찰법"이다. 코이케 류노스케는 수행의 기본 경전 '대념처경'의 첫머리를 인용한다.

 

욕망이 있는 마음을 욕망이 있는 마음이라고 알 것,

욕망이 없는 마음을 욕망이 없는 마음이라고 알 것,

반발이 있는 마음을 반발이 있는 마음이라고 알 것,

반발이 없는 마음을 반발이 없는 마음이라고 알 것.

- 181 -

 

잘못 타이핑했다고? 아니다. 왜 같은 말을 반복하냐고? 책에 적혀 있는 그대로다.

 

"처음 이 구절을 읽었을 때, 나는 솔직히 '뭐야? 이게 다야?'라고 실망했다. 하지만 이 짧은 문장 속에는 마음을 다스리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응축되어 있다." 182

 

화내는 감정에 휩싸이면 냉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자신이 화를 내고 있음을 인식하는 순간, 감정은 차분히 가라앉는다. 주관의 환상이 아니라 객관의 사실에 집중하면 헛된 욕망을 마음에서 떼어내 볼 수 있다.

 

조선일보를 보는가? 당신은 조선일보적 주관에 따라 세상을 편집해서 본다. 한겨레를 읽는가? 그대는 한겨레적 세계관으로 세상에 일어난 일을 해석해서 생각한다. 신문에는 '사실'이 아니라 '선택된 사실'이 실린다. 기사는 기자 혹은 편집국이 자기 주장하면서 사실처럼 이야기로 꾸민다.

 

대표적인 예가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의 죽음에 대한 보도다. 자기가 믿고 싶은 사실만 짜깁기해서 그럴 듯한 이야기로 기사를 만들었고, 그 기사를 읽은 사람들조차 그 선택된 사실에 열광하며 자기를 쏟아냈다. 사실은 뭐였는가? 돌연사였다. 사실의 진위 여부를 떠나 사람들은 여전히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

 

집착이 망상을 낳으니, 그 집착을 버려야 마음이 평온해지고 화내지 않게 된다. 당신이 그토록 갖고 싶었던 새 차를 샀다. 기분 좋게 차를 타고 출근했다. 퇴근해서 차를 보니 조수석 문에 1센티미터 정도 뭔가에 긁힌 자국이 보인다. 당신은 화내지 않을 수 있는가.

 

우리는 현실을 산다기보다는 욕망으로 산다. 자기계발서는 자기 욕망의 실현이다. 타인한테 인정받고 자기 기분 좋으면 인생 성공이고 행복 만세다. 출세해라. 유명해져라. 부자가 되라. 자기 꿈을 생생하게 상상하고 생각하고 실현시키려고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죽을 똥 싸며 아둥바둥이다.

 

그런 당신에게 이 책은 한 방 이렇게 날린다. "소원은 이루어지는 순간 공허해진다." 뭐야? 이 책 쓴 사람 돌았나? 욕망의 실현은 순간적인 자극과 쾌락이지 지속적인 평온과 안락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행동한다." 소설을 쓰고 싶다는 사람은 많지만 실제로 쓰는 이는 드물다. 쓰기도 전에 다른 생각을 너무 많이 한다. 소설 쓰는 일보다 그 외 일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을 채운다. '이렇게 쓰면 출판이 안 될 것 같은데... 요즘 대세는 판타지야, 판타지를 써야 팔려.'

 

"일하고 싶다거나 일해야 된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저 행동하는 편이 훨씬 더 충실하게 일에 집중할 수 있는 방법이다."24

"마음속에 아무것도 넣어두지 않고 텅 빈 상태인 '()'의 상태를 만들면, 더할 나위 없는 충실감을 느낄 수 있다." 25

 

글을 쓸 때는 글 쓰는 것만 생각한다. 나머지는 머릿속과 마음속에서 버린다. 그러면 글을 쓸 수 있다. 너무 단순해서 어이가 없다고? 이 단순함을 실천해 보라.

 

어느 등산가한테 왜 산에 오르냐고 질문했더니, 이유를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그는 이 책을 읽지도 불교를 공부하지도 않았으나 산행을 꾸준히 하면서 삶의 진리를 자신도 모르게 깨달았던 것이다. 그는 그저 산을 오르는 일에만 집중했다. 마음이 한결같은 이에게 세상은 평화로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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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내지 않는 연습, 코이케 류노스케 스님

 

다른 내용

..업무 중 상대가 약속을 어겨 큰 손실을 보게 되었다고 해보자. 그러면 상대에 대한 강렬한 분노의 감정과, 그런 상대를 신뢰하게 된 자기 자신을 향해 후회라는 분노의 번뇌가 끊임없이 공격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무슨 일을 해도 실패에 대한 기억이 떠올라 스트레스가 되고, 마음에 강력히 새겨져 일의 효율도 크게 떨어질 것이다.

 

 이처럼 몇 번이고 반복해서 자신을 공격해오는 강력한 감정과 다른 사람에 대한 과도한 욕망이 만들어질 경우, 억지로 반대의 감정을 만들어냄으로써 제압하는 방법이 있다. 예를 들어, 일 때문에 배신을 당했더라도 잊지 못하고 언제까지나 원망해봐야 자신만 손해일 뿐이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는 억지로라도 상대를 가엾게 여기고 동정하는 마음을 만들어 분노의 에너지와 맞서는 것이 좋다.

 

 불가에서는 그런 마음을 억지로라도 만들어내기 위한 도구가 준비되어 있다. , 자비를 나타내는 단어나 상대를 가엾게 여기는 마음을 나타내는 단어를 정해, 이를 몇 번이고 반복하면서 마음속으로 비는 것이다. 자비의 말로는 '그 사람이 행복해지길..., 평온해지길...' 등이 있고, 동정하는 마음의 말로는 '그 사람이 고뇌하지 않기를...' 등이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짧은 단어를 마음속으로 반복해서 빌면, 그 단어의 내용에 의식을 묶어둘 수 있다는 것이다.

 

 같은 의미의 말을 수십 번, 수백 번씩 마음으로 빌면, 그런 말과 상반되는 감정인 미움이나 욕망이 마음속에 들어올 여지가 없어진다. 마음속으로 처음 빌기 시작했을 때는 '이런 형편없는 녀석이 행복해지길 바라지 않아.'라는 마음이 들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의 내용을 마음속으로 계속 빌면 잡념은 사라지고 마음은 평온해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잡념이 들어올 틈이 없을 정도로, 반복해서 쉴 새 없이 마음속으로 빌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 결과, 마음이 자비로 넘쳐나면 상대에 대한 분노로 물들어갈 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상쾌하고 편안해질 것이다. (168p-170p)

 

http://cfile227.uf.daum.net/image/1104EF3C4DE4A2961C8A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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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meong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6.04.16 저는 분석 심리학으로 맞섭니다. 억지로 참는건 방법이 아님니다
    참을 인자 셋이면 성인이되는게 아니라 화병을 얻지요. 나는 그런 방법은 사용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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