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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공산화 통일과정이 대한민국에 주는 시사점 요약(월남패망 당시 월남공사였던 이대용선생 강의)

작성자천리안|작성시간19.02.28|조회수1,356 목록 댓글 9





베트남의 ‘공산화통일’ 과정이 대한민국에 주는 시사점



1975년 월남패망 당시에 주월남 공사로서 마지막 한 명의 교민까지 철수시킨 후 본인은 월맹군에게 억류되어 5년간 정치범 수용소 생활을 겪었다.







강연 당시 이대용선생은 93세의 고령임에도 우리에게 월남패망의 교훈을 전하려는 절실한 심정으로 선사연의 강연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여 156매에 달하는 육필원고를 직접 작성한 사실만으로도 청중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 북베트남의 3·10 남침 적화통일















 (1) 남베트남의 안보 불감증과 군(軍)전투력의 붕괴(崩壞)


1973년 1월 27일, 파리평화협정이 체결되자 남베트남 국민들은 앞으로 남북전쟁은 절대로 없을 것이며, 남북통일은 국제 평화감시위원단의 통제 감시하에 남북 자유총선거에 의해서 평화적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파리 평화협정 내용을 굳게 믿고 있었다.



특히 파리 평화협정에는 소련 외무장관과 중공 외무장관이 서명하고 있기 때문이며, 북베트남은 군대의 무기와 탄약은 전적으로 소련과 중공에서 100% 공급받고 있기에 더욱 그렇게 방심하게 되었다.

 


또한, 북베트남이 만에 하나라도, 파리 평화협정을 위반하고 남침을 감행한다면 강력한 국제적 제재는 물론이고, 미국과 남베트남이 맺은 상호 방위조약에 의거해 즉각 미군이 북폭을  감행하여 하노이를 위시한 북베트남 주요도시들을 불바다로 만들며, 남베트남군을 지원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북베트남은 재남침은 못할 것 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당시 북베트남은 세계 최극빈국 중 하나로 미국이 제공해주겠다는 40억 달러의 원조가 꼭 필요하여 파리평화협정의 이행을 당연히 할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2) 북베트남 정치국의 남침 결정


 1974년 10월 북베트남 하노이에서는 정치국과 중앙당 군사위원회 합동 비밀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레준(LE DUAN)서기장은 북베트남군이 남침총공세를 감행하면, 사기가 땅에 떨어진 남베트남군은 쉽게 패전(敗戰) 도주(逃走)할 것이며,


닉슨이 대통령직에서 사임한 미국은 국내사정도 그렇고, 남베트남 이라는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어도 소용없다는 것을 지금은 알고 있기에 남베트남과 맺은 상호 방위조약은 이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3) 북베트남군의 3·10 남침총공세 적화통일

 

1975년 3월 10일 새벽 2시 북베트남군 대병력이 중부베트남 고원지대에서 남침 총공세를 감행했다. 사기가 땅에 떨어진 국방의지가 허약한 남베트남군은 북베트남군을 당해내지 못하고 각지에서 괴멸하며 패주(敗走)했다.



티우 대통령은 국제 평화감시위원단에게 ‘북베트남 공산군의 북위 17도선 이북으로 철수’를 미국에게는 방위공약 이행을 촉구했다. 그러나 이들 중 어느 것 하나 이행되지 않았다.



1975년 4월 29일 수적(數的)으로 군사력과 경제력에서 북베트남을 압도한다고 자랑하던 남베트남은 북베트남 공산군에 의해 너무도 허무하게 패망(敗亡)하여 지도상에서 사라졌다.

 


미국은 밑빠진 독에는 물을 붓지 않았다. 1975년 남베트남은 밑 빠진 독과 같은 실태를 보이고 있어, 미국은 남베트남과 맺은 방위 공약을 이행하지 않았고 남베트남의 패망을 방관만 하고 있었다.




































































▶ 파리평화협상 및 평화협정 체결


 1968년 5월10일 드디어 미국 정부는 북베트남을 상대로 프랑스 파리에서 베트남전을 종식시키기 위한 평화회담을 시작했다.  4년 8개월을 서로 밀고 당기며 지루하게 끌던 파리평화회담은 1973년 1월 27일 평화협정에 합의하고 서명함으로써 종결되었다.

 

미국 국무장관이던 헨리 키신저는 보다 확실한 평화를 담보하기 위하여 국제평화 감시위원단을 파견하는 캐나다, 이란, 헝가리, 폴란드 4개국 외무장관을 서명에 참여시켰다.

 

하지만 이것도 믿지 못한 미국의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은 북베트남공산측이 파리 평화협정을 준수하지 않을 수 없는 다음과 같은 5개의 안전장치를 만들어 놓았다.



(1) 북베트남 공산측이 파리휴전협정을 위반하고 남베트남에 대한총공세를 감행할 때에는 미군의 해군과 공군이 즉각 자동 개입하여 북폭(北爆)을 감행하고 남베트남군을 공중 지원하는 방위공약을 남베트남과 맺었다.


(2) 북베트남이 파리평화협정을 성실히 이행하는 조건으로 40억 달러(20억 달러는 미국이 직접 무상원조, 20억 달러는 국제은행이 장기저리차관)의 전후 복구 및 경제개발 원조를 북 베트남에 제공하는 약속을 했다.

 


(3) 주 베트남 미군 철수 때 그들의 첨단무기들을 남베트남군에 이양, 남베트남은 총병력 125만 명을 유지케 했다.


이는 북베트남 총병력 111만 명보다 더 많은 병력이었다. 남베트남 공군은 전투력이 세계 4위로 막강했다.

 


(4) 국제 평화감시위원단 250명의 본부를 사이공에 두고, 북베트남 하노이에 지부를 설치하고 남북베트남 주요 도시에 여러 개의 감시조를 두어 평화협정 이행을 잘 감시하도록 했다.



 (5) 사이공에 체류하는 북베트남공산군 연락단은 일종의 인질이기도 했다.

  




▶ 남베트남 각계각층에 침투한 공산프락치

 

1967년 10월 30일 남베트남은 초기 3년간 부정부패 일소를 위해 노력했으나, 세월이 지나감에 따라 정치인들의 사리사욕이 다시 고개를 들면서 고질적인 부정부패 일소는 용두사미로 흘러가고 있었다.


 

1971년 9월 12일에는 사이공 대학생들이 선두에 서서 주베트남 미국대사관에 진입해 “미군은 철수하라! YANKEE GO HOME!" 등의 구호를 외치며 차량 3대에 불을 질러 소각해 버리는 소란도 피웠다.


이 데모의 배후에는 남베트남의 최고 고승(高僧)인 띡 찌꽝(釋智光)과 비밀공산당 프락치이며 거물급 불교신자 큐 몽트 여성 하원의원이 있었다. 베트남 공산 통일 후에 확인된 바에 의하면 띡 찌꽝은 공산당원이 아닌 순수한 민족주의자였고, 큐 몽트는 공산프락치였다.


 

고 딘디엠 정권 때는 유능한 정보 실력자가 많아서 남베트남 내의 공산프락치는 거의 뿌리가 뽑혔으나, 그 후 반정부 시위와 연이은 쿠데타로 핵심 정보부 요원들 모두 퇴직하여 정보기능을 거의 상실하자 북베트남 공산세력들이 남베트남 각계각층에 침투해 들어왔다.



심지어 티우 대통령의 신임을 독차지하고 있던 유능한 민정수석비서관 흰 반 쫑(黃文鍾)도 모두 비밀공산간첩이었다. 이런 북베트남의 거물간첩을 일일이 열거하자면 너무도 많다. 그러나 1970년대 남베트남 정보기관은 너무나 약화되어 눈뜬장님 상태에 빠져 있었다.

   

출처: 선진 사회만들기연대







전북 진안의 마이산(馬耳山) 탑사를 쌓으신 이갑룡(李甲龍, 1860~1957) 처사의 증언









 







    이갑룡처사의 손자 이왕선(李旺善,1934(甲戌)생, 증언 당시 71세.





/ 조부님이신 이갑룡 처사께서 전쟁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얘기했는지, 그걸 그대로 한번


/ 그걸 그대로 얘기하면 남북이 또한번 붙는다는 거예요.

 


/ 앞으로 또 그렇게 된다고?


/ 말하자면 3차 대전이 온다는 식으로 얘기를 하더라고.


 



 / 이 말씀은 몇 번이나 들으셨어요?


 / 글쎄, 그냥 흔히 들은 것 같아요.

 

 


 / 마이산 그 집에서? 



 / 예, 집에서. 하여튼 겨울에 자시(子時) 기도 드릴 때까지 그대로 앉아서 그 얘기를 했어요.

      한번 얘기 나오면, 옛날 얘기 이런 거 진지하게 잘 하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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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진보문사모 | 작성시간 19.03.01 천리안 미국이 저지른 일을,,, 마치 베트남이 우리의 표본인것처럼,,
    미국이 저지른 일에 촛리안은 무슨 감사?,
  • 답댓글 작성자염화미소 | 작성시간 19.03.01 진보문사모 미국에게 감사하다는 말이 아니라 파란연꽃님의 댓글이 감사하다는 뜻입니다
  • 작성자진보문사모 | 작성시간 19.03.01 좃리안은,, 미국이 저지른 일을
    왜 베트남을 통해 교훈을 삼으라니,, 마치 베트남이 저지른 일 처럼,,
    주범은 미국인데요. 그럼 우리도 미국이 그리 만든다는것인가요?
    베트남을 통해 무슨 교훈? / 알지도못하면서 퍼온 보수주의자 촛리안,
  • 답댓글 작성자염화미소 | 작성시간 19.03.01 좃리안이 아니라 천리안 입니다.
    그리고 베트남의 일을 통해 미국이 저지른 일을 교훈으로 삼으란 말은 미국을 조심하란 말이지 베트남이 저질렀단 말이 아니겠죠. 그리고 우리나라 분단엔 미국의 이익관계가 있었죠
  • 작성자진보문사모 | 작성시간 19.03.01 그렇지요. 미국을 조심해야하는데 인터넷에 떠도는 베트남일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가 되서는 안된다는
    그런 내용이 많아요. 이글은 오래 전부터 떠도는 사회주의 거부 내용이었어요.
    미국을 조심하라는 내용은 거의 없어요.
    위 천리안도 아마 미국횡포 보다는 사회주의를 비판하는걸로 해석되기도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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