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방세계 >
33 관세음보살 이야기 |
아뇩관음
글/ 방경일, 그림/남종진
아뇩관음은 아뇩(阿耨)과 관음이 합한 말이다. 아뇩은 고대 인도어인 산스크리트어의 발음을 한자식으로 나타낸 것이고 관음은 뜻으로 나타낸 것이다. 아뇩관음의 의미는 아뇩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두 가지가 된다.
첫째는 아뇩을 아뇩다라(阿耨多羅)의 준말로 보는 것이다. 아뇩다라는 산스크리트어 anuttara의 발음(아눗타라)을 한자로 만든 말인데 그 뜻은 무상(無上;위없는 최고)이다. 이 경우 아뇩관음은 ‘무상관음’이 되며 이는 ‘최고의 관세음보살’이란 의미다.
둘째는 아뇩을 아뇩달지((阿耨達池)를 의미하는 말로 보는 것이다. 아뇩달지는 산스크리트어 anavatapta를 말한다. anavatapta의 발음은 ‘아나파탑타’이고, 이를 나타내는 한자는 정확하게 표기하면 아나바달다(阿那婆達多)지만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아뇩달지(阿耨達池)로 불러왔기 때문에 그렇게 굳어진 것이다. 이 경우 아뇩관음은 ‘아뇩달리의 관세음보살’이 된다.
아뇩관음을 최고의 관세음보살로 볼 것인가, 아니면 아뇩달지의 관세음보살로 볼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해 중국의 민간에 전해 내려오는 아뇩관음에 관한 이야기를 한번 살펴보자.
진(晉)나라때 산동(山東) 지역의 낭야현에 서양산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독실한 불자였다. 한번은 동양영생이란 곳에 갔는데 돌아올 때는 뱃길을 이용했다. 정산(定山;강소성 무석시에 있는 산으로 보임) 부근을 지날 때였는데 사공이 익숙하지 못해서 배가 바다의 회오리 속으로 말려들었다. 배가 곧 침몰할 것 같아 사태는 다급하고 위태로웠다.
서 거사는 어찌 해볼 도리가 없자 마음을 집중해서 관세음보살만을 불렀다. 그러자 돌연히 기적이 일어났다. 사람 같은 형상이 회오리에서 배를 꺼내더니 강으로 옮겨놓고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덕분에 회오리의 위험에서는 벗어났지만 그들이 아직 안전한 것은 아니었다. 이때는 이미 땅거미가 진 뒤라 하늘은 어두었고, 광풍이 몰아치고 폭우가 내리는 지라 배는 전혀 방향을 잡을 수 없었다. 게다가 성난 파도가 사정없이 뱃전을 때리는 바람에 배는 곧장 뒤집히려고 했다.
이에 서 거사는 다급히 큰 소리로 불경을 독송했는데 잠시도 멈추지를 않았다. 그러자 홀연히 산꼭대기에서 불길이 일어났다. 맹렬한 화염이 왕성하게 일어나더니 강을 환하게 비췄다. 훤한 불빛 때문에 배는 방향을 잘 잡아 안전하게 강변에 닿을 수 있었다. 다음날 서 거사가 강변에 사는 사람들에게 전날 밤 산꼭대기의 불길에 대해 물었는데 아무도 알지 못했으니, 마침내 사람들은 관세음보살이 서 거사 일행을 보호해 주었음을 알았다.
<관세음보살감응록>에 등장하는 이 이야기에서 관세음보살은 바다에 있던 배를 강으로 옮겨놓았다. 강과 바다는 아뇩달지가 아니므로 이 관세음보살은 아뇩관음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불교에서 강과 바다는 아뇩달지와 깊은 관계가 있다.
불교의 세계관에서는 중앙에 있는 수미산의 남쪽에 우리 인간들이 사는 염부제가 있다. 이 염부제에 대설산과 향산이 있는데 이 두 산 사이에 있는 큰 호수가 바로 아뇩달지다. 향산의 남쪽이며 대설산의 북쪽에 위치한 이 아뇩달지에서 흘러나온 물이 염부제의 4대강의 강물을 만들고는 바다로 흘러들어간다. 따라서 아뇩달지는 강과 바다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다.
여기서 아뇩달지라는 말의 뜻을 살펴보자. 아뇩달지의 산스크리트어 anavatapta(아나파탑타) 는 무열뇌(無熱腦)라는 뜻이다. 무열뇌는 ‘열(熱)도 없고 뇌(腦)도 없다(無)’는 것인데 여기서 열은 ‘뜨거운 모래바람’을 말하고 뇌는 ‘가루라(금시조)’를 말한다.
용은 뜨거운 모래바람 때문에 몸이 상할 수 있지만 아뇩달지에는 그런 위험이 없다. 또, 아뇩달지에서는 천적인 가루라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데, 가루라가 용을 잡아먹기 위해 야뇩달지로 가려고 하면 곧 죽어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아뇩달지는 열(뜨거운 모래바람)도 없고 뇌(가누라)도 없는 무열뇌지(無熱腦池)라고 불린 것이다.
그래서 옛날 인도 사람들은 이 아뇩달지에 용왕이 산다고 생각하고 그 용왕에게 호수의 이름을 붙여주었다. 이 아뇩달지 용왕은 기본적으로 아뇩달지를 다스린다. 그런데 4개의 큰 강도 이 아뇩달지의 물 때문에 있는 것이므로 4대강 역시 이 아뇩달지 용왕의 영역이다. 또, 그 물이 바다에도 이르므로 아뇩달지 용왕의 힘은 바다에까지 이른다. 이렇게 생각한 사람들은 아뇩달지 용왕의 영역에서 위험한 일을 당하게 되면 이 용왕의 이름을 불렀을 것이다.
그런데 불교인들은 이 아나바달다 용왕을 8지 보살이 변신한 몸이라고 생각했다. 보살이 용이되어 아뇩달지에 살면서 그 영역에 있는 사람들을 보살펴 준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아뇩달지 용왕, 즉 아나바달다 용왕은 나중에 불교를 수호하는 8대 용왕의 일원이 된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사람들이 이 아뇩달지 보살을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생각하면서 아뇩관음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을 것이다.
지리적으로 보면 아뇩달지는 중국의 서쪽에 있지만 중국의 불자들은 아뇩관음이 중국의 모든 강과 나아가 바다에까지도 그 힘을 이르게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들이 묘사하는 아뇩관음의 전형적인 모습은 바다를 바라보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위 서영산 거사의 이야기에서 아뇩관음이 바다의 소용돌이에 빠진 배를 건져서 강에 내려놓은 것이 이해가 된다.
남종진 화백의 아뇩관음도에서도 관세음보살은 바다를 바라본다. 보살은 오른쪽 무릅을 세웠지만 그 위에 두 손을 포개서 얹어놓지 않고 오른팔을 걸쳐 놓은 채 자연스러운 자세를 취하고 있다. 보살의 뒤편에 있는 집은 아뇩달지 용왕이 산다는 오주궁(五柱宮)을 상징하는 것일까 ? 남 화백의 설명에 의하면 보살이 앉아 있는 땅은 한반도, 꽃은 해당화, 오른쪽 위에 보이는 섬은 제주도, 뒤편의 건물은 낙산사라고 한다. 이는 쉽게 말해 우리도 아뇩관음의 덕을 좀 보자는 것이다.
아뇩관음은 법화경 보문품의 게송들 가운데 ‘혹표류거해(或漂流巨海) 용어제귀난(龍漁諸鬼難) 염피관음력(念彼觀音力) 파랑불능몰(波浪不能沒)’에 해당한다. 즉 ‘혹시 바다에 표류해 용, 물고기, 귀신 등의 난을 만났을 때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파도가 침몰시키지 못할 것이다’는 것인데, 이는 위 서영산의 경우와 잘 어울린다.
이 글은 ‘우리 곁에 계신 33관세음보살이야기’ 책에서
운주사 출판사의 허락을 받고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