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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호] 33 관세음보살 이야기 / 편집부

작성자파란연꽃|작성시간22.02.27|조회수160 목록 댓글 0

< 시방세계 >

 

 

 


33 관세음보살 이야기

 

 

 

아마제 관음
글/ 방경일, 그림/남종진

 

아마제관음의 아마제(阿麽提)는 산스크리트어 Abhetti의 발음을 한자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Abhetti(아베티)의 의미는 ‘무외(無畏;두려움 없음)’,‘관광(寬廣;너그러움)’이다. 따라서 아마제관음은 두려움 없는 관세음보살이나 너그러운 관세음보살이 된다. 그러다면 다음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관세음보살은 어느 쪽일까?

한나라 때 관병이 대리(大理, 938~1253)를 침입했다. 그런데 진군하던 병사들의 눈에 이상한 관경이 보였다. 한 할머니가 굵은 새끼줄로 큰 돌덩어리를 메고 가는 것이 아닌가 !
돌은 장정들도 그렇게 하기 힘들 정도로 컸다. 놀란 병사들은 속으로 생각했다. 
‘할머니의 힘이 저 정도라면 청년이나 장년은 말해 무엇 하겠는가 !
관병의 지휘관도 같은 생각이었던지라 그는 즉시 후퇴명령을 내렸다. 퇴각을 알리는 징소리를 들은 병사들은 신속하게 대리국에서 철수했다. 
침입한 군대가 사라지는 것을 숨어서 지켜본 대리국 사람들이 할머니를 찾았지만 이미 할머니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에 사람들은 관세음보살이 나타나 자기들을 보호해 준 것이라 생각했다. 사람들은 이를 기념하여 큰 돌 위에 한 채의 관음각을 짓고 각 안에는 그들이 본 관세음보살을 조각한 상을 모시고 공양했다. 운남(雲南)의 하관(下關)과 고성(古城) 사이에 있는 이 관음각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관음각은 큰 절이 되었다. 

할머니는 대리국 사람들은 노인이라도 청년 못지않은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침략한 병사들이 싸울 마음을 잃게 만들었다. 전투에 임한 군대는 사기가 생명인데 싸우기도 전에 미리 겁을 집어 먹었으니 후퇴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여하튼 돌을 져서 병사들을 물리친 이 이야기는 ‘부석조병(負石阻兵)’이란 이름으로 사람들 사이에 전해 내려온다. 
요즘도 무장하고 진군하는 적군 병사들이 있다면 두려움의 대상이겠지만 그 당시에는 말 그대로 공포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특히 위 이야기에서 병사들은 자기들을 본 할머니가 대리국에 정보를 제공하면 자신들이 전멸당할 수도 있으므로 서슴없이 할머니를 죽여 버릴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큰 돌을 지고 침략군 옆을 지나가는 수상한 행동을 하는 것은 사실상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면 하기 힘들다. 그러니 할머니의 앞에 ‘두려움이 없는’이란 수식어가 붙을 만한데, 이 할머니가 관세음보살의 화신이라니 ‘두려움이 없는 할머니’가 ‘두려움이 없는 관세음보살’, 즉 무외관음이 된 것이다. 
그런데 Abhetti(아베티)라는 산스크리트어가 암시하듯이 아마제관음은 인도에서  탄생한 관세음보살이다. 그렇다면 이 관세음보살의 본모습은 어떤 것일까? 전해져 오는 아마제관음의 모습은 삼목사비(三目四臂)다. 우선 앞의 두팔은 봉황의 머리를 한 공후(箜(篌)뒤의 팔 가운데 왼쪽 팔의 손에는 마갈어가 쥐어져 있고, 오른쪽 팔의 손에는 흰색의 길상조가 쥐어져 있다. 게다가 보살은 온 몸이 희고 눈이 세 개인 사자를 타고 있는데, 왼쪽 다리는 굽혀서 사자의 등에 올려놓고, 오른쪽 다리는 아래로 늘어뜨리고 있다. 
하지만 남종진 화백의 아마제관음도에는 푸른색의 몸을 한 사잔 한 마리가 여유로운 자세와 표정을 한 보살의 앞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이는 전형적인 아마제관음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것으로 한국적인 아마제관음을 나타냈다고 봐야 한다. 배경 역시 마차가지다. 그런데 정통적인 아마제관음의 모습은 다음과 같은 인도 신화와 관계가 있다. 

 

아뇩관음


물소의 모습을 한 여신 마히샤Mahisha는 여자에 의해서가 아니면 죽임을 당하지 당하지 않는다. 그러자 그는 남신들을 무시하고 스스로 세상을 통치하려고 한다. 이에 브라흐마, 시바, 비슈누는 마히사에 대한 그들의 분노 속에서 여신 두르가Durga를 만들어 낸다. 여덟 개의 팔을 가진 두르가는 신들이 준 삼지창, 활, 거륜(車輪;바퀴모양의 무기) 등의 무기를 들고 눈이 세 개인 황금색의 사자를 타고가 마히샤를 죽인다. 

분노의 화신인 두르가는 매우 전투적인 여신이다. 그녀의 전투성은 두르가, 즉 ‘가까이 하기에 두려운’이라는 이름에서도 잘 드러난다. 일반적인 의견은 불교에서 이 두르가를 모방해 아마제관음을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두르가의 전투성을 없애기 위해 팔의 숫자를 반으로 줄이고 삼지창, 활, 거륜 등의 무기는 악기, 새, 물고기 등으로 바꿨다고 할 수 있다. 또, 황금색에서 하얀색으로 바뀐 사자의 몸 색깔 역시 사람들에게 친근한 느낌을 준다. 태어난 곳도 분노가 아니라 푸른 연꽃이다. 그러나 이 관세음보살은 두려움으로 인해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두르가가 가진 용맹함은 그대로 가져왔으니 아마제, 즉 ‘두려워하지 않는(무외)’혹은 ‘너그러운(관광)’이라는 이름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반대도 가능하다고 본다. 즉 불교의 아마제관음을 힌두교에서 모방하여 만들어낸 것이 바로 두르가 여신이라는 것이다. 이는 불교에서 관세음보살이라는 개념이 이천여 년 전에 나온 것을 감안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원래 수직적 계급사회를 지탱하는 정신적 지주였던 브라만이라는 유일신만 있었던 바라문교가 수평적 평등사회를 주장하는 불교에게 밀리자 힌두교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불교의 보살 사상을 도입하여 여러 신들을 만들어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아마제관음은 엄밀하게 말하면 중국보다는 대리 지역의 관세음보살이라고 봐야 하는데 왜냐하면 다음과 같은 이유들 때문이다. 
첫째, 해발고도 3,000~4,000미터 급의 산들 사이에 자리를 잡은 대리는 옛날부터 중국과 인도를 연결하는 또 하나의 통로였다. 그 때문인지 한 나라의 무제(B.C. 156~B.C. 87년)는 대리 일대를 공격해 익주군 등 6군을 설치한다. 따라서 위 부석조병의 이야기에 나오는 한나라의 관병은 한의 무제가 파견한 군대일 가능성이 크다. 
둘째, 대리 지역 최초의 국가인 남조국(南詔國,649~902년)은 불교를 사상적인 기반으로 한다. 남조국의 불교는 차마고도(대리지역에서 생산되는 차와 티베트에서 나는 말이 교환되는 길로 이천여 년 전부터 있었음)를 통해 토번(티베트)에서 들어온 것이다. 
셋째, 남조국은 당나라와 싸우는데 748년에서 754년에 걸쳐 벌어지는 세 번의 큰 전쟁에서 모두 30만의 당나라를 군대를 물리친다. 
따라서 부석조병 이야기는 위의 사실들이 적당하게 혼합되어 있따고 보아야 한다. 즉, 전투없이 돌아간 한나라 병사의 이미지와 당나라 시대, 그리고 아마제관음의 활약이 섞여 있는 것이다. 그게 아니면 한 무제 때 이 지역에 이미 아마제관음이 들어와 있어야 하는데, 이는 가능성이 낮다. 그런데 대리지역의 관세음보살인 아마제관음이 중국의 33관움이 된 것은 이 지역이 몽고에 의해 점령당한 다음 원나라의 행정구역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대리 지역은 대대로 관세음보살 신앙의 성지이다시피 했다. 물론 지금도 관련 행사가 열리면 인산인해를 이룬다. 부석조병 이야기에 나오는 관음각으로 보이는 천경각 등은 관광명소로 유명하다. 

 


이 글은 ‘우리 곁에 계신 33관세음보살이야기’ 책에서
운주사 출판사의 허락을 받고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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