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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현대불교 2023.2월호] 이달의 명상-법현 스님

작성자무량수|작성시간23.04.25|조회수150 목록 댓글 0

 

 

한 방울의 물도,
사막을 적실 수 있다

 

글 법현 스님

 

 

 

 

귤렌스쿨의 하나인 D.A.(아시아대화)의 세계종교 평화세미나 모임이 2005년 6월 7~8일 모스크바 크렘린궁 컨퍼런스홀에서 있었다. 귤렌스쿨은 터키(튀르키에) 출신의 지도자인 페툴라흐 귤렌(Fetullah Gullen,82)의 뜻을 따르는 사람과 조직을 일컫는 말이다.
“세상은 문제를 일으키는 이들의 것이 아니다. 해결책을 찾으려는 이들과 인간을 이해하려는 이들 그리고 함께 나아가고 관용과 사랑의 정신에 가치를 두고 있는 이들의 세상이다. 꽃봉오리가 작다고 무시해서는 안 된다. 비록 지금 가진 것이 적다고 비관하거나 착각해선 안 된다. 가냘픈 봉오리 하나가 피워 낸 꽃송이가 바로 온 세상과 다름없다. 쉽고 편한 길이 있는데 왜 굳이 힘든 길 가느냐고 누군가가 말하면 그저 웃어주고 가던 길 계속 가라.” 귤렌의 말이다. 그는 2013년 만해평화대상 수상자였다. 하지만 미국 망명생활을 하고 있고 건강상태가 썩 좋지 않아 터키 기자작가재단 무스타파 예실회장이 대리 수상했다. 예실 회장을 아는 사람과 연결해 만나서 한 시간 정도 이야기 나눈 기억이 새롭고 소중하다. 터키 300여 개, 전 세계 1000여 개 정도의 학교를 운영하는 그룹의 정신적 지도자다. 한 때는 지금 튀르키에 대통령 에르도한과 벗이었다가 갈라져 미국에 망명해서 살고 있다. 그만 망명한 것이 아니라 그를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숙청을 당했거나 뒤에 다른 나라로 망명해서 마음이 아프다. 한국에도 많이 있다.
아시아의 대화에 한국 대표 격으로 참여해서 이른바 ‘방울물이론(Waterdroptheory’을 발표한 기억이 새롭다. “한 방울의 물이 가문 사막을 다 적시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그 마지막 한 방울의 물을 뺀다면 오래 가물은 사막을 다 적시지는 못합니다. 그러니
오늘의 우리 대화가 비록 ‘방울 물 대화(dialogue of waterdrop)’일 지라도 시작하고 이어갑시다.”라고 연설했다. 한국인으로는 나 혼자 참여해서 대표 격이어도 한국에서 선출과정을 거쳐서 뽑힌 것은 아니었다. 불교 쪽은 티베트불교 소속의 텐진스님과 나 둘이었다. 200여명이 넘는 이웃 종교인들과 함께 한 그 때의 이야기들은 가슴에 잘 새겨져 있다.

 

지구촌에 이름 난 길이 몇 개 있다. 우리가 많이 아는 초원길(Greenroad), 비단길(Silkroad), 그리고 요새 많이 이야기 하는 바다비단길(Silkroad of the sea)과 가장 위쪽에 툰드라로드 또는 사슴길(신화로, 툰드라로드) 등이 있다. 자신이 아니라 오로지 나라를 위해 흉노 선우에게 시집갔던 왕소군이 ‘봄이 왔어도 봄 같지 않아(春來不似春)’라 했던 비단길이 유명하다. 까닭은 죽어가면서도 잘 하면 떼강도에게 비단을 빼앗기지 않고 팔아서 이문을 크게 남길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우리 불교 승려들에게는 구법과 전법의 길이었다. 중앙아시아의 쿠마라지바, 중국의 법현, 현장, 의정, 한반도의 혜초 등과 같은 많은 이들이 실크로도와 해양실크로드를 통해 인도에 오고 갔으며 실크로드 지역의 중요 관문인 아프가니스탄을 지나갔다. 혜림의 <일체경음의>에 포함되었으며 루브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펠리오의 돈황본 고문서에 들어있는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에도 이 지역을 다녀 간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마침 많은 구법승들이 내가 새로 교화 터 잡은 보국사(輔國寺) 주변 평택 지역의 항로를 통해 드나든 흔적이 많다는 연구들이 시작되고 있어서 관심이 많은 곳이다.
20여 년 전 바미얀 대불을 여러 나라와 단체에서 보존비용을 지불하겠고 대안을 제안했지만 거부하고 무조건 폭파해버린 탈레반의 그 어리석은 잔악성을 이미 보아서 비교할 곳과 단체는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아프간 지역은 알다시피 알렉산더 그룹의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인도 반도에서 발생한 불교가 서구와 동북아시아로 전해지는 중요 통로이며 소통하는 창구로서의 역할을 크게 한 장소다. 법현, 현장, 의정 등 중국의 인도 구법 승 뿐 아니라 혜초 등 한반도 승려들의 피와 땀도 배어있는 곳이어서 관심과 함께 안타까움이 많은 곳이다.
그 사람이 가진 의식(意識)이 그를 규정한다는 것이 불교의 이론이다. 그 지역에 그런 의식이 깃든다는 장소의 철학(場所哲學)도 있지만 그 또는 그들의 의식이라는 느낌이 더 강하다. 그런 뜻에서 어느 곳과도, 어느 단체와도 나쁘게 달라서 괴물 같은 탈레
반의 경우도 역시 구성원들의 이식 총합인 지도자들의 의식이 가장 문제다. 요즘도 몽골기병대이야기가 회자되고 있는데 많은 이들이 오해하는 말이있다. 가장 빠른 시간에 가장 넓은 지역을 지배하기 위해 어린아이들까지 싹 죽여 버린 몽골기병대라는
표현이 그것이다. 몽골의 정책은 항복하고 귀화하면 그 지역 사람에게 통치를 맡겼기에 빨리 정복하였고 그 사람들이기에 마음을 돌렸기에 일찍 원상회복이 된 것이다.
<밀린다팡하(미란다왕문경, 나선비구경)>에는 유명한 대화의 원칙이 있다. 그리스왕 메난드로스에게 불교 승려 나가세나존자가 말한 왕들의 대화와 현인들의 대화가 그것이다. 왕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권위로 누르고, 현인들은 맞다라고 느껴지
면 바로 따른다는 것이다.

 

간다라지역으로 이야기되는 지역에 관해 한 가지 더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불교용어지만 이웃종교에서 많이 쓰는 장로(長老,thera)라는 말도 부처님 근처에 살았던 큰스님들이 아니라 멀리 전법을 위해 떠나서 가까이 하지 못하니 오히려 더 그립고 간
절한 이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들이 원칙, 말씀 그대로 지키려는 마음이어서 그들이 테라와다(장로 가르침)불교인 것이다.
이슬람이나 기독교처럼 많지는 않아도 근본주의적 경향을 띈 불교 그룹들도 있다. 최근의 동남아 스리랑카의 분쟁이나 특히 미얀마 군부집단의 행태는 큰 나라, 이웃종교 등 여러 배경 이유가 있기는 하지만 실망스럽고 위험하기 그지없어서 불교라고 말
하기 민망하다. 아프간과 이슬람 또는 탈레반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행위는 근본적으로는 자체 문제이기는 하다. 제대로 교육받고 알라의 뜻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이들이 부족해서 정상적인 사고와 활동이 어려워서 그렇다. 하지만 세계의 경찰국가를
자임하고 있는 미국, 영국의 몰이해에 의한 잘못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튼 싹이 크다는 것도 분명하다.

이슬람주의자들이나 불교 근본주의자들이 그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 속에는 역사 속에서 발생한 국제질서, 국제정치와 자본의 흐름 등의 원인을 발견할 수 있다. 대개는 경찰국가들의 몰이해와 편의주의 그리고 자국의 경제
이해세력의 힘이 반영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더구나 최근에는 국가보다 위에 있는 재벌, 국제 기업 등 경제단체의 이익을 국가기관이 도와주고 있음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래서 과거와는 달리 단편적인 이해보다는 복합적이고 세밀한 분석을 통해 불의, 모순
,힘과 이익의 불공정한 분배 등을 보다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대증요법 보다는 다양한 원인 분석으로 통한 대안 그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해야 한다.
귤렌은 터키의 학자이자 사상가이며 교육운동가이자 평화운동가이다. 1941년 터키 에주룸 주 코루쿡 마을에서 태어나 이슬람교의 사상가로서 자신의 신념을 펴기 위해서 과학과 종교간 대화를 진행하고, 바티칸과 유대교 단체와도 대화를 주도하고 있
다. 영어권 미디어에서는 그를 터키와 현대 이슬람 세계에 대한 문제를 논의하는 이슬람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귤렌의 활동 가운데 주목할 점은 이른바 ‘귤렌운동’으로 불리는 교육활동이다. 국경을 초월한 종교 사회 정치운동으로서 터키와 중앙아시아는 물론이고 세계 여러 나라에 많은 지지자가 있다.
주된 활동은 교육을 통한 평화운동이다. 후원자는 전 세계를 망라해서 수백만 명이 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주로 학생, 교사, 비즈니스 맨, 저널리스트 등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다. 2009년 <뉴스위크>는 귤렌이 이 운동을 통해 2백만 명의 학생들
에게 장학금을 수여했다. 터키에 있는 300여개의 학교와 전 세계 1,000여 곳의 학교에 장학금을 줬다고 한다. 귤렌은 설교를 통해 ‘물리학, 수학, 화학을 공부하는 것이 신을 숭배하는 것보다 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터키에 있는 귤렌학교는 영어로 수
업을 하는데 매우 우수한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으며 성차별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나는 이스탄불에 있는 귤렌학교를 방문해 설명을 듣고 현장을 본 적이 있다. 800여 명의 학생을 150여 명의 교사들이 지도하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50여 명은 교과교사
이고, 100여 명은 생활지도교사였다. 귤렌의 활동 중에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세계적인 골칫거리가 되고 있는 종교 간의 폭력과 테러, 자살공격에 반대한다는 점이다. 9.11 테러가 일어났을 때 이를 공개적으로 비난했던 첫 번째 무슬림 학자 였으며 미국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에 이를 규탄하는 광고를 내기도 했다. 인류애와 종교 관점에서 테러와 자살공격을 규탄하는 이슬람의 시각을 담은 책을 출간했다. 서구 독자뿐 아니라 무슬림들에게도 이와 같은 입장을 전하고 있다. 터키의 수많은 국내 텔레비전 프로그램 출연, 일본, 케냐, 미국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종교적 이유로 테러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을 공개적
으로 비판했다.
9.11 테러 이후 10여 년이 넘는 기간 동안 귤렌은 서로 다른 종교간, 서로 다른 문화 간 대화를 활발히 시도해 왔다. 터키에서 소수를 차지하는 그리스 정교, 아르메니아 정교, 가톨릭, 유대교 등 다양한 소수 종교들을 인정함으로써 이들에 대한 긍정적 분
위기가 형성되도록 노력해 왔다. 2005년 6월 크렘린궁에서 열린 아시아의 대화도 그런 차원에서 진행하였고 나를 비롯한 200여 명의 종교 지도자가 참여해 대화를 나눴다. 각자의 시각에서 가진 오해를 만나서 대화함으로서 벗겨내고 이해로 승화시키자는 취지였다. 모름에서 앎으로 회향하는 불교의 사상과 같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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