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 20. ~28일 까지 치앙라이 여행기
동남아시아 사찰 순례기(9)
태국 최북단 산악 지역에 있는
‘프라 마하 체디 차이 차나스’
Pha Maha Chedi Chai Chanasuk
글 김형근 (본지 발행인)
치앙마이와 더불어 고대 태국 왕국 란나왕조의 고대 도시 치앙라이에서 1 시간 정도 가면 국경 도시 매싸이가 나온다. 이 매싸이는 폭이 10미터도 안되는 매싸이 강을 두고 미얀마의 국경 도시 ‘타키렉 Tachileik’ 과 마주 보고 있다. 강 위에 국경 검문소가 있다. 이 국경도시는 각종 물건을 싸게 파는 가게들이 줄지어 서 있다. 또 평소에는 관광객과 태국에 장기 체류하면서 비자문제를 해결하려고 미얀마에 갔다 오는 사람들도 넘쳤나지만 코로나로 2011년 11월에는 한산했다. 이 매싸이와 타키렉을 한 눈에 보려면 매싸이 언덕 고지대에 오르면 ‘왓 파다 도이 와오’ 라는 사찰이 있다. 이 부근에 전갈이 많았기 때문에 일명 전갈 사원이라고도 하는데 이 사찰에는 전갈 조형물이 있다. 전갈 사원에서 보면 매싸이와 타키렉이 하나의 도시처럼 보인다. 그곳에서 저 멀리 보이는 곳이 미얀마이고, 태국 국기가 뚜렷하게 보이는 큰 불상이 보이는 곳과 사찰 아래 쪽은 태국이다. 강은 자세하게 보아야 보인다. 위치 좋은 사찰에서 보는 국경도시는 긴장감을 전혀 느낄 수 없는 평화로운 전경이다.
이곳을 보고 관광객들은 전에는 양귀비 재배지였다가 지금은 커피 재배지로 유명한 고산족들이 사는 ‘ Pha Hee Village/파히 아카족’ 마을이 나온다. 이 마을로 가는 좁은 산길을 돌아 돌아가면서는 도로 바로 아래쪽이 미얀마 이기 때문에 국경을 지키는 태국 군인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2011년 11월 27 일 토요일에 찾은 파히 마을은 관광객들이 넘쳐났다. 커피 농장들도 볼 수 있고, 도로 변에도 커피 나무를 쉽게 볼 수 있다. 전망 좋은 커피 가게에서 산을 배경으로 변화무쌍하게 변하는 구름을 보면서 커피를 마시면서 정담을 나누고 많은 사람들이있고, 커피 가게는 손님들이 줄지어서 기다린다. 대부분 이런 일정으로 이 지역 관광으로는 하지만 나는 이 지역에 한국 역사와 관련이 있는 흥미로운 사찰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이 사찰을 방문했다.
이 사찰의 긴 이름은 ‘프라 마하 체디 차이 차나스 Pha Maha Chedi Chai Chanasuk’이다. 이 지역이 태국과 미얀마 국경지역이고 국경 분쟁이 있는 지역이어서 2001년에 태국군 사령관? ‘왓타나 차이 차이 므앙 엉’이 태국 국민들이 추앙하는 아유타이 왕국의 ‘나레쑤언 대왕 Naresuan ‘ 을 기념하는 동상과 탑이 있는 사원을 건립했다. 아유타이 왕국은 방콕 부근에 수도가 있었는데 이 왕국의 왕을 기념하는 사찰을 아유타이에서 북쪽으로 멀리 떨어진 산 속 깊은 곳에 건립한 것은 그의 공적과 관련이, 특히 버마와 아유타이 왕국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그는 태국 역사상 가장 큰 영토를 확보한 왕이라고 한다. 이 나레쑤언 대왕이 임진왜란때 일본을 공격하게다고 명 나라에 사신을 두 번이나 보냈다고 한다. 이런 기록은 조선의 선조실록에도 나온다고 국가기록원의 ‘e-기록속으로’ 의 ‘태국, 700 여년 교류. 임진왜란 때 연합군 참전 자청 ‘ 을 검색하면 알 수가 있다.
우리는 임진왜란을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명나라를 공격하기 위한 길을 내어 달라는 명분으로 이를 거절한 조선을 침략한 전쟁으로 알고 있다. 이 시기 국제적인 시야를 조금 넓히면 조선 북쪽에 누루하치가 이끄는 여진족이 있었고 명나라 남쪽에는 현재 미얀마 지역에는 따웅우 왕조 (1531-1752), 태국에는 남쪽에 아유타이 왕국을 나레쑤언 대왕 (재임 1590-1605)과 북쪽에 란나 왕국이 있었다.
1592-1598 임진왜란
1592: 제 5차 따웅우 왕조가 아유타이 왕국 침공
1595: 나레쑤엉 대왕 따웅우 왕국 바고 점령.
이렇게 한쪽에서는 일본과 조선, 명나라의 전쟁이 동남아시아에서는 역사적인 숙적 태국과 버마가 싸우던 시기이다. 태국과 버마와 전쟁에서 태국은 버마에게 주로 패배를 당하였고, 나레쑤엉이 왕자 시절에 인질로 따웅우 왕국에 끌려가기도 했다. 나레
쑤엉은 볼모시절 따웅우 왕조의 군사적 전술을 익혀서 ‘1584년 유타하티 전쟁 ‘에서 따웅우 왕국을 이기면서 전세를 역전시켰다. 또 캄보디아도 점령하고, 란나왕국도 아유타이 왕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 이렇게 국력을 키운 나레쑤엉 대왕은 명 나라에 사신을 보내서 일본이 텅비어 있으므로 규수에 상륙해서 일본을 공격하겠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그러나 명 나라가 이 제언을 반대해서 나레쑤엉 대왕의 제안은 성사되지 않았다. 명 나라는 나레쑤엉 대왕이 일본을 공격하는 댓가로 요구할 내용때문에 이에 응하지 않았다는 분석이 있다.원래 태국과 일본은 오랜동안 배를 이용해서 교류가 많았고, 조선과는 별로 없었다. 아유타이에는 이
런 역사를 반영하듯이 지금도 일본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나레쑤엉이 참전했다면 분명 무언가를 명과 조선에 요구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어쨌든 실현은 안되었지만 이런 내용이 조선실록에 나온다고 ‘국가기록원’ 에서 운영하는 ‘e-기록속으로’ 에 나오는데 그 사람이 나레쑤엉 대왕이 되는 것이다.
이런 배경이 있다고 해서 원래 없던 일정을 내서 28일 ‘프라 마하 체디 차이 차나스’를 찾아갔다. 12 시 경에 도착했는데 마침 주지 스님인 ‘프라 몬트리 아파토’ 스님도 외출하고 들어오는 길이었다. 태국 사찰을 방문한 사람들은 알겠지만 태국 사찰에서 스님을 개인적으로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주지 스님은 내가 운이 좋아서 스님을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내가 명함을 건네
면서 이 사찰을 찾은 이유를 설명하니 아주 반가워하면서 친절히 이 사찰에 대한 설명을 해 주었다. 그는 3대 주지라고 하는데 이 사찰에는 주지 스님과 또 다른 스님이 있고, 대왕을 기념하는 불탑과 란나 왕국 시절 양식의 법당(우보소) 그리고 20개의 조그만 개인 수행처 (꾸띠) 가 있다고 한다. 나레쑤엉 대왕은 ‘닭’을 매우 좋아했기 때문에 불탑 기단부에는 닭 조형물이 많이 있었다.
불탑속 법당의 주불은 우보소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고, 우보소와 등지고 앉아 있도록 되어 있었다. 정상적인 배치가 아닌데 이것은 주불이 태국 국토를 바라보면서 태국을 보호하는 배치로 이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