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실의 아내
글 이원익 leewonik@hotmail.com
한국 불교의 전파와 대중화에 힘을 보태려는 발원으로 태고사를 도와 왔으며
우담바라회 회원이다. 포항에서 태어나 경남고와 서울 문리대를 졸업했다.
오래 전에 회사 주재원으로 와서 LA 지역에 살며 국제운송업을 하고 있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한국의 역사책 가운데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 김부식(金富軾 1075 ~ 1151)이 지은 삼국사
기(三國史記)인데 그 제14권 열전 여덟 번째 글(第 四十八卷 列傳 第八)로 이런 짤막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밤실[栗里]에 설씨(薛氏) 성을 가진 젊은 평민의 여자[薛氏女]가 살고 있었다.
비록 가진 것 없고 외로운 집안이었으나 용모가 단정하고 뜻과 행실을 잘 닦은 처녀였다. 사람들이 그 고움을 보고 흠모하지 않는 이가 없었으나 함부로 가까이하지 못하였다.
진평왕 때 그 아비는 나이가 많았음에도 정곡(正谷)으로 수(戍)자리 당번을 가야 하였는데 그 딸은 병으로 쇠약해진 아비를 차마 멀리 보낼 수 없었지만 자신은 여자의 몸이라서 아비를 대신할 수 없어 큰 고민을 하고 있었다.
사량부에 사는 가실(嘉實) 소년은 비록 집은 매우 가난하였으나 뜻을 곧게 키운 사내아이였다. 일찍이 설씨를 좋아하였으나 감히 말을 못 붙이고 있다가 그 아버지가 늙은 나이에 군대에 나가야 함을 설씨가 걱정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드디어 설씨에게 말을 하였다.
“저는 비록 나약한 사람이지만 일찍이 뜻과 기개를 가졌다고 자부합니다. 바라건대, 이 몸으로 아버님의 일을 대신하게 하여 주시오.”
설씨가 대단히 기뻐하여 들어가 아비에게 아뢰니 아비가 그를 불러 보고 말하였다. “듣건대, 이 늙은이가 가야 할 일을 그대가 대신하여 주겠다 하니 기쁘면서도 두렵소. 보답할 바를 생각건대, 만약 그대가 우리 딸이 어리석고 가난하다고 버리지 않는다면 그대에게 주어 수발을 받들도록 하겠소.”
가실이 두 번 절하고 말하기를 “감히 바랄 수는 없었어도 이는 저의 소원이올시다.” 하였다.
이에 가실이 물러가 혼인날을 정하자고 청하니 설씨가 말하였다.
“혼인은 사람의 큰일인데 갑작스럽게 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이미 마음으로 허락하였으니 이는 죽어도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바라건대, 그대가 수자리에 나갔다가 교대하여 돌아온 다음에 날을 잡아 예를 올려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이에 거울을 둘로 쪼개어 각각 한 쪽씩 갖고는 “이는 신표로 삼는 것이니 뒷날 합쳐 봅시다!” 하였다.
가실이 말 한 필을 가지고 있었는데 설씨에게 말하였다. “이는 천하의 좋은 말이니 후에 반드시 쓰임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 내가 떠나면 맡아 기를 사람이 없으니 바라건대 이를 두고 쓰시지요.”
그러고는 작별을 하고 떠났다.
그런데 마침 나라에 변고가 있어 다른 사람으로 교대를 시키지 못한지라 어느덧 여섯 해가 지나도록 그는 돌아오지 못하였다. 아비가 딸에게 말하기를 “처음에 세 해로 기약을 하였는데 지금 이미 그 기한이 넘었으니 다른 데 시집을 가야 하겠다.”라고 하니 설씨가 말하였다.
“아버님을 편안케 해 드리려고 가실과 저는 전에 굳게 언약하였습니다. 가실은 이를 믿고 군대에 나갔으니 몇 해 동안 굶주림과 추위에 고생이 심할 것이고, 더구나 적지에 가까이 있으니 손에서 무기를 놓지 못하여 마치 범의 입 앞에 가까이 있는 것 같이 늘 물릴까 걱정일 텐데 신의를 버리고 한 말을 지키지 않는다면 어찌 인정이리오?
끝내 아버님의 명을 좇을 수 없으니 바라건대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늙고 늙은 그 아비는 딸이 다 컸는데도 짝을 짓지 못하였다 하여 억지로 시집을 보내려고 마을 사람과 몰래 혼인을 약속하였다.
혼인날이 되자 신랑 될 사람을 끌어들이니 설씨는 굳게 내치고는 몰래 도망치려 하였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에 설씨는 마구간에 가서 가실이 남겨두고 간 말을 쳐다보면서 크게 탄식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마침 가실이 교대되어 왔다.
모습은 마른 나무처럼 야위었고 옷은 남루하여 집안사람조차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라고 하였다.
가실이 앞에 나아가 깨진 거울 한쪽을 던지니 설씨가 이를 주워 들고 흐느껴 울었다.
아버지와 집안사람들도 기뻐하여 어쩔 줄 몰랐다. 둘은 언약하기를 얼마 후 드디어 서로 혼인하기로 하였으며 그리하여 늙어 죽도록 함께 살았다.
이런 얘기인데 가난한 평민들이니까 그나마 신의를 잘 지켰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런 윤리와 도덕을 현대의 도시 문명에도 적용할 수는 없겠지만 시집 장가를 밥 먹듯이(?) 가고 화장실 가듯(?) 없던 일로 쉽게 해소해 버리기도 하는 세태를 보면 평범한 서민, 나이 어린 아녀자들까지 이런 ‘말의 무게’를 지녔던 조상님들이 그립고도 두렵다. 그게 아니라고요? 결혼하든 안 하든 절차 따지지말고 애부터 낳아야 하는 ‘민족 소멸의 위기’ 앞에서 한가한 소리 집어치우라고요? 정말 그런 사정이라면 우리가 어쩌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는 물어볼 것도 없겠다. 다 자업자득이 아니겠나! 공짜만 바란죄, 무임승차 좋아한 죄, 속은 무시하고 겉만 보고 평가한 죄, 돈 보고 몸 팔고 마음 판 죄…. 제 가치관으로 안 살고 늘 남들 눈치 보고 비교만 하며 살아온 죄…. 늘어놓자니 호남평야도 모자라고 쌓아 두자니 백두산이 오히려 낮구나.
그건 그렇고 아무리 여자를 좋아한다지만 한 여자를 얻기 위해 목숨까지 내놓아야 할지도 모를 전쟁터에 대신 나간다고? 그때는 삼국이 각축하던 시대라 가실이 신라 사람이니까 아마도 지금의 한강이나 임진강 어름에서 밀고 당기던 고구려와의 국경지대로 갔었겠지. 그리고 저 북쪽에서 남으로 끌려와 영문도 잘 모르고 서로를 찌르고 베고 하던 고구려의 청년들은 밤하늘의 별만큼 많았던 또 어떤 기막힌 사연들을 품고 있었을까?
불행히도 고구려가 고구려를 쓴 생생한 역사책은 이름만 남고 우리 손에 없다. 백제도 발해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지금 고국은 칠십 년째 다시 서로를 속이고 죽이는 남북조의 대치시대에 살고 있다. 이 말도 안 되는 사연들을 제대로 기록이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가실과 설씨녀가 희망의 끈을 끝까지 놓지 않고 신의를 지킨 결과 해피 엔딩을 이룬 이런 일이 당시에도 흔치는 않고 상당히 드문 일이었으니까 역사책에 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비극이 그보다 더한 비극으로 끝난 일이 이보다 백배 천배는 많았겠지? 그리고 이 모든 비극의 원천은 평화의 부재요, 책임 없는 호전주의요 내 마음속의 욕심, 성냄, 어리석음이다. 지금도 어느 나라나 본인 목숨은 털끝만치도 희생할 뜻이 없는 인사들일수록 무책임하게 전쟁을 부추긴다.
각설하고, 가까스로 살아남은 이런 설화들은 보배같은 우리 문화의 밑거름이요 소재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일찍이 춘원 이광수(春園 李光洙, 1892~1950)도 이 이야기에 살을 붙이고 가지를 뻗어 내어 중편소설 <가실(嘉實)>을 쓴 바가 있고 소설가 정비석(飛石 鄭瑞竹, 1911~1991)도 <현부열전(賢婦列傳)>에 이 이야기를 불리고 꾸미어 실었다.
아시다시피 이광수는 특유의 계몽적인 목소리가묻어나는 소설을 여러 편 썼는데 여기서는 그렇지가 않고 인간의 신의와 성실성을 강조하는 데에 초점을 둔다. 평자에 따라 엇갈리기는 하지만 동족 간의 싸움을 극복하는 가실의 인간적 신의와 그에 걸맞은 노력이 잘 나타나 있으면서 다른 한 편 설씨녀와의 사랑도 이루고야 말겠다는 주인공의 집요함이 한데 어울리고 있어 성공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리고 엇갈리는 평가로는 이런 것이 있다.
이광수는 고단하고 위험한 망명 독립운동가의 생활이 점차 견디기 힘들어 소심해져 있던 차에 마누라의 꼬드김에 더욱 마음이 약해져 상해임시정부에서 하던 일을 그만두고 귀국하고야 말았는데 특히 영웅을 잃은 많은 청춘남녀의 낙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결과적으로 그 길은 결국 민족 반역자로 돌아서는 갈림길이 되었다. 아무튼 그는 국내로 들어와 한 해쯤 조용히 있다가 이름을 숨기고 이 작품을 발표했는데 평론가 김윤식(金允植1936~2018)에 의하면, 현실을 관망한 이후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바꿔치기 하는 변화를 보여준다는 것이며, 따라서 자신의 환국을 변명하려는 의도가 담겼다는 것이다.
비록 시대와 무대는 바뀌었어도 이야기의 줄거리는 그대로이다. 지금도 남과 북에서 가실은 불려가고 떠나가고 있다. 뭐가 잘못됐는지 제때 돌아오지 않기도 하며 설씨녀는 기다리다 못해 고무신을 거꾸로 신기도 하고 간혹 맨발로 지내기도 한다. 그뿐인가? 제2의 이광수, 제3의 춘원도 지금 돋아나 똬리를 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제는 그대가 그대만의 <가실>, 그대 나름의 제대로 된 <설씨녀>를 쓸 때다. 어떻게 살을 붙이고 어떻게 가지를 뻗칠 것인가? 그보다도 어디에다 초점을 두며 어떠한 가치관으로 뼈대를 삼을 것인가? 힘겨우면서도 즐거운 고민에 싸일 그런 당신의 참조를 위해 여기 <삼국사기>에 있는 원문을 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