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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현대불교 2023. 2월호] 스텔라의 마음공부/현재 경험에 대한 완전한 수용-스텔라 박

작성자무량수|작성시간23.04.26|조회수78 목록 댓글 1

 

 

현재 경험에 대한 완전한 수용
팜스프링스 위빠사나 센터에서의 안거

 

 

글 스텔라 박

 

스텔라 박은 1980년대 말, 연세대학교에서
문헌정보학과 신학을 공부했으며 재학시절
에는 학교신문인 연세춘추의 기자로 활동
했다. 미국으로 건너와 지난 20년간 한인
라디오 방송의 진행자로 활동하는 한편, 10
여 년 동안 미주 한인 신문에 먹거리, 문화,
여행에 관한 글을 기고해왔다.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하는 것은 모든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이다.
그러려면 진정한 행복을 경험해야 한다. 돈과 권력, 그리고 관능적 쾌락에의 탐닉 등
소위 우리가 행복이라 믿고 있는 것은 진정한 행복이 아니다.
이는 연약하고 불안정하며 덧없다.
진정한 행복, 지속적이고 안정된 행복을 원한다면 자신의 깊은 내면으로 여행을 떠나,
마음의 심층에 저장된 모든 불행을 제거해야 한다.
마음 깊은 곳에 불행이 있는 한,
마음의 표면적인 수준에서 행복을 느끼려는 모든 시도는 헛되다는 것이 증명된다.

- S. N. 고엔카

 

 

 

연말연시 휴가를 묵언안거에 반납

 

지난 연말(2022년)은 황금휴가가 가능했다. 토, 일, 월 연달아 쉬는 것이 2주 계속 됐다. 그러니 직장인이 며칠만 휴가를 낸다면 제법 긴 기간 동안 여행을 갈 수도, 명상 리트릿을 갈 수도 있었던 것이다.
나는 후자를 택했다. 그래서 12월 22일부터 이듬해 1월 2일까지 이어진 팜스프링스 위빠사나 센터에서의 묵언안거에 참가할 수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시기는 가장 인기 있는 묵언안거 기간이었다. 새삼 잠 설쳐가며 등록 시작 날 새벽에 깨어나 웹사이트 접속을 계속했던 자신이 대견해진다. 안거를 모두 마친 후 참가자들과 이야기를 통해 알게 된 것은 아무리 일찍 등록을 시작한다 해
도 모두가 선택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들의 친구 가운데 상당수가 신청했지만 올 수 없었다고 한다.
<사피엔스>의 저자인 유발 하라리는 여름과 겨울 두 차례의 휴가 기간 동안 고엔카 명상센터에 와서 집중 수행을 한다고 말했었다. 어쩌면 그 역시 이 기간 동안 나와 마찬가지로 안거에 들었겠거니, 하는 생각이 일었다.
12월 말은 여기저기서 파티와 모임이 잦은 시기이다. 아무리 발을 땅에 딛고 있으려 해도 왠지 붕 떠있는 느낌이 드는 때이기도 하다. 샴페인과 폭죽, 춤과 음악, 넘치는 먹거리 등, 고요함과 평정을 개발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는 요소들이 가득하기 때문일 것
이다. 써놓고 보니 모두 실라(계)에 반하는 것들이다. 명상센터에 입소해서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것이 ‘5계의 준수’인 것은 그것이 전제되어야만 마음이 고요해지고, 그래야 바른 사마디에 들고 빤냐의 지혜가 개발되기 때문일 것이다.

 

 

전세계에서동일하게운영되고있는프로그램

 

나는 2018년 한국의 진안에 있는 고엔카 명상센터 분원인 담마 코리아에서 10일 코스를 마쳤다. 이곳에서도 프로그램은 한국에서와 동일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첫날 저녁 식사를 제공하는 것, 남녀구별을 철저하게 하는 것, 매일 매일의 스케줄, 수행방법,
법문 등 모든 것이 그때와 똑같았다.
처음 한국에서 10일 코스에 참가할 때는 고엔카 명상센터의 이런 저런 방식에 대해 판단의 마음이 일었던 적이 있었다. “왜 꼭 이런 식으로 한다지?” 하는 마음 속 저항의 목소리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 10일 코스를 하면서는 고엔카 명상센터 스타일의 철저
한 방식에 대해 존중의 마음을 갖게 됐다. 어쩌면 그런 것들이 있었기에 붓다 때부터 전해내려온 고유의 수행법이 고스란히 나에게까지 전해져왔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두번째 참가자들을 이곳에서는 구 수련생(Old Student)라고 부르고, 10일 동안 오후 불식을 해야 한다. 아침 6시 30분의 식사, 그리고 11시의 점심식사 후, 오후에는 온전히 속을 비우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지난 해 간헐적 단식을 생활화 했기에 별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어려움을 느끼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정말 속이 편안하고 정신이 또렷해지는 상태까지 경험했다. 신선한 야채들로 조리한 영양가 풍부한 음식들을 약간 부족한 듯 섭취하는 것이 얼마나 우리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지, 경험하고 나니 앞으로도 오후 불식을 생활화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2끼 식사에 하루 종일 앉아 있을 경우 변비가 생길 수 있는데, 이곳에서는 이를 방지하기 위한 기막힌 음식을 수련생들에게 제공한다. 말린 프룬에 통계피와 오렌지 슬라이스를 넣어 끓인 음식이었는데 어찌나 배변을 쉽게 하는지 매일 4쪽 정도를 꼭 챙겨 먹으면서 집에 가서도 만들어먹어야겠다, 생각했다.

스피릿록 명상센터도 그렇고, 미국의 명상센터에서는 식당 한쪽에 이스트와 계피가루, 아마씨가루 등을 갖춰놓은 곳이 많다. 이것들을 음식 위에 토핑해 먹으면 음식의 맛도 좋아지고 소화도 잘 된다.
나는 집에서 짐을 챙길 때, 커피 드립 기구를 챙길까 말까를 한참 고민하다가 “에라, 관두자, 없으면 없는대로 10일 살아보자.” 하는 마음에 그냥 갔다.

인도 요가 학교에 갔을 때도 커피 없이 살았는데 10일쯤이야 못 견딜 것 없다는 마음이었다. 명상센터에는 대부분 여러 종류의 차는 있지만 커피는 없다. 팜스프링스 명상센터에는 그래도 냉동건조커피 파우더가 마련돼 있어서 아쉬운대로 아침이면 커피로
카페인을 섭취했다.
오후 5시, 신참 수련생들은 약간의 과일을 먹을 수 있지만 구참 수련생들은 완전한 오후 불식이 요구되어 차만 마실 수 있다. 세상에 살 때 차라는 것은 커다란 머그컵에 따라 책을 보며 마시거나, 사람과 만나 대화를 나누며 마시거나, 음악을 들으며 마시는
것이었지만 이곳에서는 온전히 차만 마시게 된다. 모든 주의를 기울여 마신다. 다시금 차 마시는 기쁨이 내면으로부터 솔솔 솟아난다. 자연과 농부들의 사랑을 느낀다. 명상센터에서 마시는 차가 유별나게 맛있는 이유는 다음 아닌 우리들의 주의력 때문이다.

 

 

 

고귀한 침묵

 

이미 여러 차례 안거의 경험에 대해 썼던 것처럼 명상 센터 내에서는 고귀한 침묵(Noble Silence)가 요구된다. 목소리를 내어 하는 말은 물론, 필담, 눈짓, 몸짓 등 일체의 커뮤니케이션이 금지된다. 그래서 식사 할 때도 온전히 식사만 하고, 걸을 때도 온전히 자신의 몸의 감각에 집중하며 걷게 된다. 처음에는 어떻게 견딜까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나는 하면 할수록 침묵 만큼 편안한 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아가고 있다. 이렇게 평생을 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모든 현재의 경험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하면서 우리는 분별의 습을 쌓아 간다. 그냥 통으로 경험 자체를 아는 것은 말 없이 느린 삶을 살 때 더욱 쉬워진다.
이번 안거를 통해 철저히 깨달았다. 내가 그토록 바쁘게 살았던 것은 실제 삶이 바빴던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바빴던 것임을. 최근 봤던 한 드라마에서 나왔던 대사가 떠오른다. 생각이 많던 재가자가 출가자 친구와 나누는 대화이다.
재가자: “몸이 천근만근이다.”
출가자: “몸은 고작 110근, 천근만근인 것은 네 마음.”

그렇네, 마음이 천근만근일 때 우리는 몸이 천근만근이라고 느낀다. 마음이 분주할 때 우리는 바쁘다고 느낀다. 고요하면 시간은 멈춘다. 마음이 아프면 가슴이 아프다고 느낀다. 본래 공한 마음은 어쩜 이렇게 잘 무거워도 지고, 바빠지기도 할까.
그렇게 빈 캔버스 같던 마음이 채색되며 그것에 사로잡혀 괴로워지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 갈망의 세계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내가 명상센터에서 10일 동안 했던 수행이다. 있는 그대로의 몸의 감
각을 알아차리고 그 경험의 무상함을 알면서도 완전한 평정에 이르는 연습이 왜 아픈 마음을 치유하는 건지, 10일 간의 수행을 통해 뼈저리게 체험하고 이해한 것이다.

 

 

강한 결심으로 앉기

 

고엔카 명상센터에서는 5일째부터 ‘아딧타나(Adhiṭṭhāna)’로 앉으라고 주문한다. 아딧타나는 강한 결심으로 수행한다는 뜻으로 한 시간 동안의 좌선 시간 동안, 그림처럼 움직임 없이 앉아있는 것이다. 나는 이번 안거 기간 동안 수행 시간마다 정말 돌부처
처럼 가만히 앉았다. 머리카락이 이마에 닿아 간지러운 느낌, 콧물이 나오다가 인중에 떨어져 갑갑한 느낌, 눈물이 눈 아래 닿아 찝찝한 느낌을 가만히 바라봤다. 정말 못 견딜 것 같았던 그 고통이 희한하게도 사라졌다.
이렇게 불쾌한 감각에 대해 반응하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은 새로운 상카라가 쌓이지 않게 해주고 과거의 업까지 제거해준다. 왜냐, 우리가 대상에 대해 반응하는 것은 결국 몸의 감각으로 나타나는데 알아차림 없는 상태에서는 무상한 몸의 감각에
대해 좋다, 싫다는 상카라를 일으키게 되고 그것은 몸에 기억되어 나중에 비슷한 상황, 물질을 경험하게 될 때 더 강화된 반응을 일으키게 된다. 그러니 고요히 앉아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 것은 과거의 상카라로 인한 마음의 불순물들까지 제거하는 정화의
효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왜 삶은 아무 문제가 없는 건지, 진정한 해탈이 무엇인지를 이제 밝히 알았다.
아딧타나로 수행을 하기 시작한지 3일째 되던 날, 나는 벌레에 물려 가려워 손을 그 부위로 가져가는 순간의 내 마음을 바라봤다. 이처럼 좋고 싫은 것에 대한 우리들의 몸의 반응과 그 후에 이어지는 행은 빛의 속도로 진행된다. 나는 긁으려고 올렸던 손을
알아차리고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 간지러운 느낌을 있는 그대로 바라봤다. 그 변화무쌍한 느낌을, 일어났다 사라지는 경험을, 있는 그대로 경험해주며 허용했다. 좌선 시간에 배웠던 위빠사나의 공식을 삶에 완전히 적용한 셈이다. 공식을 외워 응용문제를
풀었을 때의 기쁨이 온 몸에 쫙 퍼졌다. 내가 추구하고 탐했던 것이 이 느낌이다. 이 느낌은 어떤가. 이 역시 일어났다 사라진다. 나는 이제 일어났다 사라지는 무상한 것에 대해 집착하지 않는다. 고요함과 평정을 유지한다.

 

 

 

감옥의 독방과 명상센터의 개별실

 

첫번째 참가했을 때는 2인 1실에 배정받았는데 이번에는 독방이 주어졌다. 화장실이 딸린 개별 꾸띠이다. 방은 세상의 기준으로 보자면 정말 좁지만 수행자가 10일을 머물기에는 아무 부족함이 없었다. 나무를 짜서 만든 트윈 사이즈의 작은 침대에 매트리
스 한 장, 그리고 그 곁에는 작은 서랍장 하나가 있어 옷과 생활필수품 등을 넣어둘 수 있었다. 정말 심플한 방이다.
감옥이나 수도승들의 방이나 명상실이나 별 차이가 없다. 유일한 차이라면 감옥은 강제적으로 들어 가게 된 것이고, 수도승들이나 수행자들은 자기 발로 원해서 들어간 것이다. 주변이 심플하니 고민도 사라진다. 무소유의 기쁨이다.
센터에는 10일 동안 지내면서 불편함이 없도록 물병, 손전등, 타올, 침대시트, 샴푸, 로션 등 별의 별 것들을 다 갖춰놓고 있었다. 옷을 충분히 가져오지 않은 이들이 이곳에서 입을 수 있는 옷들도 마련돼 있었다. 모두 누군가의 보시로 인한 것이다. 그 세세
한 손길에 감사의 마음이 일었다.
어디 이런 작은 물건들 뿐일까. 10일 동안 내가 먹었던 음식들, 이 건물 모두가 누군가의 보시로 내가 잠시 이용할 수 있었고, 그곳에서 소중한 담마를 만나게 했다. 그러니 이제 나도 누군가가 이곳에서 수행하며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마음을 낸다.
고엔카 선생 한 사람으로 시작된 무주상보시의 공덕은 이제 전 세계 100여 개의 명상센터가 안거 참가비 없이 지속가능하게 이어지는 것으로 열매맺었다.

값 없이 주어진 담마의 은총에 대한 감사로 보시는 물론, 시간 나는대로 와서 봉사를 해야지, 마음 먹었다.

 

 

팜스프링스 사막의 아름다움

 

팜스프링스 센터의 조경은 사막의 건조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법당과 식당 인근에는 로즈메리, 라벤더 등 조경용 플랜트도 조금 심겨져 있었지만 대부분의 지역은 선인장들이 듬성듬성 나있는 것이 전부이다. 분별하는 마음을 내면 황량하다, 쓸쓸하다, 메
말랐다 하겠지만 있는 그대로 바라보다 보니 사막의 아름다움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사막은 모든 군더더기를 빼고 난 존재의 에센스 같다.
팜스프링스 센터는 주변에 눈에 걸리는 높은 빌딩이 하나도 없는 평원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아침이면 동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있고, 저녁이면 서쪽 하늘의 황금빛 저녁 노을을 볼 수 있다. 나는 아침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향하는 길
에 잠시 멈춰서서 일출을, 저녁 시간에 산책을 하다가 일몰을 바라보았다. 무상한 현상이지만, 사라질 것이지만 일출과 일몰을 슬퍼하지는 않는다.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고, 이를 자연현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삶에서 대하는 모든 경험들 역시 이곳에서 경험한 일출과 일몰처럼 그대로 일어나 그대로 사라지게 허용한다면 무슨 문제가 있을까. 내가 그렇게 피곤한 삶을 살았던 이유를 이제야 진정으로 알았다. “많은 생을 윤회하면서 나는 치달려왔고 보지 못하였다. 집 짓는 자를 찾으면서 괴로운 생은 거듭되었다. 집 짓는 자여, 그대는 보여 졌구나. 그대 다시는 집을 짓지 못하리라. 그대의 모든 기둥들은 무너졌고 집의 서까래는 해체되었다. 마음은 업의 형성을 멈추었고 갈애는 부서져버렸다.”
우리를 태어나게 하고 살아오게 한 것은 탐 진 치였다. 고통의 원인인 삼독을 없애는 유일한 방법은 바른 시각으로 있는 그대로 보며 무상한 현상이 무상하도록 허용하며 저항도 탐착도 하지 않으며 완전한 평정에 머무르는 것이다. 고통 없는 상태가 행복
이고 평화이다.
당신이 행복하고 평화롭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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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Less Suffering | 작성시간 23.05.11 문헌 정보학과라는게 다 있군요. 그런데 문헌정보학 불교학과는 왜 없나요?
    중넘들은 왜 불교대학에 정보학과를 만들지 않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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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길게 쓰는 사기꾼 역겨워서 ,,, 미주불교 좋은 글들 안올림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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