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 자유 게 시 판

[스크랩]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97

작성자다람쥐|작성시간10.11.11|조회수59 목록 댓글 1

96. 아미타불(阿彌陀佛) 이것은 우주(宇宙)의 대명사(代名詞)입니다.

동시에 나의 참 이름입니다. 김 아무개, 박 아무개, 그것은 이 몸뚱이 따라서

그때그때 가짜로 지어놓은 가명(假名)에 불과합니다. 가명(假名)에 속지를 마십시오. 내 참 이름, 내 생명(生命)의 이름인 동시에 우주의 이름은 바로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아미타불(阿彌陀佛), 미타(彌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 아미타(阿彌陀)에게로 빨리 가고, 또 만 중생을 아미타 부처님 자리로 가게끔 할 것인가, 학문(學問)을 많이 배우고 여러 가지 공부를 많이 해야만 하는가, 그렇지도 않습니다. 신라(新羅) 경덕왕(景德王) 때, 욱면비(郁面婢), 이름이 욱면(郁面)이고 여자 종 비(婢)인데, 욱면비는 아간(俄間)이라는 높은 벼슬, 즉 정승(政丞)정도 되는 벼슬아치 아간귀진(阿干貴珍)이라는 집에서 사는 종이었습니다.


그런데 과거 전생에 업장(業障)이 가벼운 사람이었나 봅니다. 아간귀진 주인 집 옆에 미타사(彌陀寺)라는 절이 있었습니다. 자기 안주인이 미타사(彌陀寺)에 다니면서 불공(佛供)을 열심히 하고 불교를 믿는단 말입니다. 따라서 그것을 보니 자기도 불심(佛心)이 발동 되었습니다. 과거 전생에 업장이 무거운 사람들은 남이 바로 믿는 것을 보아도 그냥 범연히 넘깁니다마는 과거 전생에 업장이 가벼운 분들은 남이 믿는 것만 보아도 그냥 자기도 모르게 감격(感激)을 느낍니다.


부처님 말씀 한마디만 들어도 감격을 합니다. 그래서 욱면비는 자기 주인 따라서 자기 주인 마나님이 부처님 앞에 가서 기도(祈禱)를 드리면 그 뒤에 서서 시중을 들면서 같이 기도를 드립니다. 그런데 주인이 보니까 그 여종이 자기보다 더 신앙심(信仰心)이 독실하게 보인단 말입니다. 그리고 그 여종이 자기 주인을 모시고 다닐 때뿐만 아니라 틈만 생기면 미타사에 가서 기도를 드린단 말입니다. 그러므로 그 주인이 괘씸하게 생각해서 ‘저 놈이 집안일은 등한히 하고서 절에만 가는구나' 그래서 일을 잔뜩 시켰습니다.


하루에 벼를 두 섬씩 디딜방아로 찧도록 했단 말입니다. 아직 나이도 많지 않은 욱면 종이 자기 몸무게가 별로 무겁지 않으므로 자기 등에다 돌을 짊어지고 땀을 흠뻑 흐르면서 디딜방아로 해서 벼 두 섬을 혼자서 다 찧는단 말입니다. 다 찧어 놓고서 단박에 옷 갈아입고서 다시 미타사(彌陀寺) 절에 가서 염불(念佛)을 했습니다. 절 마당의 양쪽에 말뚝을 박고 줄을 걸어놓고 자기 손바닥을 꿰어 그 줄에 매어놓고 왔다 갔다 하면서 잠 잘 줄도 모르면서 9년간 염불(念佛)만 했습니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염불을 그렇게 열심히 침식(寢食)을 잃을 정도로 그와 같이 열심히 했단 말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어떻게 그렇게 할 것인가? 두 섬의 벼를 어떻게 찧을 것인가? 그렇게 찧어 놓고서 몸의 피로도 못 느끼고 절에 가서 염불을 할 것인가? 의심을 품을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 인간의 본래 성품은 부처님입니다. 부처님 자리는 무한(無限)의 공덕(功德)을 갖추고 있습니다. 따라서 정말로 사무치게 믿으면 천지우주에는 자기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의 눈으로 안 보이는 귀신(鬼神)도, 신장(神將)도, 부처님 기운(氣運)도 꽉 차 있습니다. 하나의 풀 가운데도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기운이 다 들어 있습니다.


하나의 흙 가운데도 다 들어 있습니다. 쌀 한 톨 가운데도, 벼 가운데도 부처님의 기운이 다 들어 있습니다. 따라서 정말로 사무치게 방아를 찧는다고 생각 할 때는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보살이 돕고, 부처님이 돕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것은 신비로운 것이다. 지금 과학적(科學的)인 시대에 어떻게 그런 것이 가능할 것인가? 절대로 그렇게 생각 마십시오. 지금 과학이 신통(神通)을 얼마나 많이 합니까.


컴퓨터나 레이더나 우리가 그런 것을 보면 신통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과학이 신통을 다 하는 것입니다. 하물며 순수한 진여불성(眞如佛性)자리, 우리 불성(佛性)자리로 우리 마음이 다가서면 정말로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도 몸은 피로하지 않겠는가? 몸 피로한 것도 그것은 별것도 아닌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정말로 나만 생각하고, 자기 권속(眷屬)만 생각하고, 명예(名譽)만 생각하고, 그런 마음으로 해서는 초인적(超人的)인 힘이 못 나옵니다. 하기는 욕심(慾心)만 내도 평소의 자기 이상의 힘은 나올 수가 있겠지요. 그러나 욕심을 떠나버린 무아(無我)의 그 자리에서 내는 힘은 정말로 한도 끝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信仰)의 힘을 그냥 무엇을 많이 외우고, 또는 불사(佛事)를 많이 하고, 이러한 것만 신앙의 보람이라고 생각을 마십시오.

그런 것도 다 공덕(功德)이 큽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얼마만큼 사무치게 진여불성 쪽으로 부처님과 가까이 될 것인가. 내가 본래 부처인데 사람 몸 이대로 중생 이대로 그렁저렁 살다가 간다고 생각할 때에 얼마나 억울한 짓입니까. 부처가 되려면 될 수가 있는 것인데, 부처님 말씀대로 그대로만 따르면 몸도 마음도 편하면서 남한테 숭배를 받으면서 될 수가 있는 것인데, 그렁저렁 산다고 생각할 때에 그와 같이 큰 손해는 없습니다.


운면비, 그 여자종은 그렇게 해서 9년 세월 동안 밥을 먹으나 어디 가서 일을 하나 부처님 생각이 조금도 안 떠났습니다. 부처님 공부하시는 분들이 부처님께 지향(志向)하는 마음이, 부처님께 지향하는 마음은 바로 내 생명(生命), 내가 되어지는 마음입니다. 또는 거기에서 얻는 행복(幸福)은 한도 끝도 없는 것입니다. 환희용약(歡喜踊躍)이라!


불경(佛經)을 보시면 뛰놀 듯이 행복(幸福)스럽다. 이것이 환희용약입니다.

환희용약이라는 것을 여러분들도 다 보셨습니다. 정말로 바로 믿고 우리가 정화(淨化)가 되면 항시 자기 몸뚱이 아무런 부담을 느끼지 않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은 우리 본 성품인 진여불성은 본래로 그런 힘을 다 갖추고 있습니다. 행복(幸福)도, 능력(能力)도, 지혜(智慧)도 온전히 다 갖추고 있습니다.


예수가 학자(學者)가 아니지 않습니까. 육조혜능(六祖慧能)스님이 학자가 아닙니다. 오직 자기가 본래로 타고나온 그 마음 깨달았단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절대로 우리 본 인간성(人間性)을 과소평가(過小評價)해서는 아니 됩니다. 나는 지금 나이가 60이나 먹었는데 내 나이는 70이 넘어서 80이 가까운데 나야 이제 공부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 자식들이 주는 그런 여러 가지 차담(茶啖)이나 받아서 잘 먹고 잘 살면 그만 아닌가. 늙어서 많이 먹으면 소화도 안 되고 해롭습니다.


나이 많은 사람들 적게 자시고, 알맞게 자셔야 피가 맑습니다. 피가 맑아야, 그래야 비대하지도 않고 혈압도 높아지지 않습니다. 우리 부처님의 기운을 절대로 과소평가를 마십시오. 그렇게 해서 9년 되는 어느 날 욱면비 여자 종은 그냥 하늘로 육신등공(肉身登空)이라!


자기 몸체로 하늘로 올라가서 극락세계(極樂世界)로 가버렸습니다. 이러한 말씀도 미신(迷信)이나 신화(神話)같이 생각되시겠지요. 저는 조금도 의심을 않습니다. 우리 몸무게가 60킬로인데 어떻게 하늘로 뜰 것인가? 그러나 우리가 정말로 '우리 욕심의 뿌리가 완전히 뽑힌다' 이러할 때는 우리 몸의 무게는 없습니다. 우리 몸뚱이 이것은 욕심(慾心)과 진심(嗔心)의 뭉치입니다.


욕망(慾望)된 어리석은 마음과 분노(憤怒)하는 어리석은 마음과 이러한 독(毒)스러운 마음이 뭉쳐서 지금 내 몸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었다 하더라도 내 본 바탕은 부처입니다. 금(金)으로 해서 어떻게 무엇을 만들든, 필요 없는 귀걸이를 만들든, 금이라는 본질은 조금도 변질이 없지 않습니까. 그와 똑 같이 진여불성(眞如佛性) 자리는 우리가 욕심(慾心)을 부리고 진심(嗔心)을 부리고 치심(痴心)을 부린다 하더라도 조금도 오염(汚染)은 안 됩니다.


다만 우리 마음을 잠시간 가리었을 뿐입니다. 9년 동안 그렇게 주야불식(晝夜不息)하고 쉬지 않고 사무친 마음으로 해서, 그래서 하늘로 올라가서 극락세계(極樂世界), 인생(人生)의 본 고향(故鄕)으로 가버렸습니다.

우리 고향은 어느 누구나 바로 극락세계입니다. 극락세계란 삼독심(三毒心)이 가신 세계입니다. 삼독심만 없으면 탐욕심이나 분노하는 마음이나 어리석은 마음이나 그러한 마음이 없이 정말로 부드럽고 말입니다. 누구한테나 머리를 굽히고, 모든 사람을 부처같이 알고, 개나 소나 돼지나 모든 동물을 다 부처같이 알고, 이러한 사람들은 그냥 자기 얼굴도 훤히 빛나옵니다. 그래서 우리 몸뚱이도 녹용이나 인삼이나 그러한 것을 안 먹는다 하더라도 몸도 가뿐하고 부담이 없습니다.


 







다음검색
스크랩 원문 : 무주선원無住禪苑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다람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0.11.12 기쁜 말 고운 말을 알아보는 맘 ㅡㅡㅡ이것이 업장인 듯,,^^()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