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아함의 중도체계 - 2. 중도의 내용과 체계
1. 당시의 외도사상 (1)
전술한 바와 같이 불타의 철학은 중도에서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중도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중도는 당시의 사상을 비판하고 그 비판의 토대에서 제시된 새로운 철학적 입장이다. 중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여러 사상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아함에 설해진 다양한 중도설을 고찰하기에 앞서 당시의 사상조류를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고래로 철학의 가장 주요부분으로서 역사적으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형이상학 또는 존재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생성 변화하는 삼라만상의 근원 또는 본질이 되는 第一義的 존재에 대한 문제는 철학의 출발임과 동시에, 끊임없이 그리고 여전히 논의되고 있는 문제인 것이다. 인도철학도 예외는 아니다.
인도 철학의 始原이라고 할 수 있는 리그 베다 시대에 이미 一者(Tad Ekam), 生主神(Prajapati), 造一切神(Visvakarman)과 같은 형이상학적 존재가 사유되기 시작했고, 이같은 철학적 사색은 불타 당시, 즉 우파니샤드(Upanisad)기에 이르러, 우주의 궁극적 실체 본질인 모든 아트만은 본질에 있어서 브라만과 동일하다고 하는 범아일여의 전변설적 사상체계를 형성하게 된다.
이같은 정통 바라문교의 사상은 상공업을 중심으로 하는 도시문화의 발달로 바라문교가 약화되자 새롭게 출현한 자유사상가들의 도전을 받게 된다. 사문이라 불리우는 새로운 사상가들이 출현하여 베다의 종교적 권위를 부정하고 각기 다른 사상을 전개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들의 사상을 통칭하여 적취설이라고 부른다.
당시의 인도사상계는 이와 같이 정통바라문의 전변설과 사문들의 적취설이 대립하고 있었다. 이같은 사상적 대립은 근본적으로는 제일의적 존재에 대한 견해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도인의 형이상학적 사고가 해탈을 추구하는 종교적 관심 아래서 이루어진 것이라 할지라도, 해탈이라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인간과 세계의 본질과 구조가 문제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같은 본질, 즉 제일의적 존재가 문제된다면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인식의 문제가 전제되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본질적 존재가 문제되고 있다는 것은 그같은 존재에 대한 인식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도의 철학 학파들은 자신들의 형이상학적 세계 해석을 뒷받침하기 위해 인식의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따라서 이들의 사상을 인식론과의 관계에서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인도철학에서는 일찍부터 무엇이 인식의 타당한 방법인가 하는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져왔다. 이 문제가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논의되기는 여러 사상들이 본격적으로 체계화되기 시작한 BC 3-4 세기 경이라고 생각되지만, 이에 대한 관심은 그보다 훨씬 일찍부터라고 생각된다. 사문들의 출현은 우파니샤드의 형이상학에 대한 인식론적 비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부라만이나 아트만과 같은 실체가 존재한다는 인식론적 근거에 대해서 사문들은 의심을 제기했던 것이고, 그 결과, <범동경>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나름대로의 인식론과 논리학을 토대로 저마다 다른 사상을 전개하였던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인식의 타당한 방법(Pramana)의 수가 얼마나 되는가 하는 것은 학파 사이에 이론이 많은 주제 가운데 하나인데, 학파에 따라서는 여섯 가지 또는 그 이상이 있다고 주장하는 학파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도 논리학자들은 그 중 세 가지를 인정한다. 지각(現量), 추론(比量), 그리고 믿을 만한 타인의 증언, 특히 베다의 계시적 증언(聖言量)이 그것이다.
정통 바라문 사상가들은 이 가운데 베다의 계시적 증언을 가장 타당한 인식의 수단으로 생각하고, 감각적 인식은 가장 피상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추론에 의한 사유도 사물의 본질을 인식하는데는 적당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한다. 참된 실체는 주객의 대립을 초월해 있는 존재인데 사유는 언제나 주객의 대립관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범아일여와 같은 진리는 베다나 스승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지는 것이며, 우리는 이같은 진리를 요가와 같은 선정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정통바라문의 사상에 대하여 그 독단적 허구성을 비판한 것이 사문들의 사상이다. 이들은 원칙적으로 감각적 지각을 떠난 인식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가장 확실한 인식의 방법은 감각적 지각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장아함 사문과경>에서는 이들을 육사외도로 지칭하여 이들의 사상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 내용을 중심으로 사문들의 사상을 살펴보기로 한다.
도덕부정론자인 푸라나 카삿파는 아무리 몹쓸 행위도 그것은 악이 아니며, 그에 대한 죄보도 없고, 아무리 착한 행위도 그것은 선이 아니며, 그에 대한 복보도 없다고 주장한다.
한편 유물론자인 아지타 케사캄발리는 선악업의 과보도 없고, 현세와 내세도 없으며, 부모도 없고, 태어나는 존재도 없다고 주장한다. 인간존재는 지, 수, 화, 풍 사대로 구성된 것으로서 죽으면 四大는 각각 지, 수, 화, 풍으로 흩어질 뿐이라는 것이다. 이들이 도덕을 부정하고 세계와 인간을 물질적 요소의 우연한 결합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것은 그들이 감각적 지각만을 인식의 타당한 방법으로 인정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지, 수, 화, 풍, 고, 락, 명아 등의 칠요소설을 세워 기계적 불멸론을 주장하는 파쿠다 캇차야나도 마찬가지로 생각된다. 그가 내세우는 7요소는 현실적인 경험을 통해 인식되는 것으로서, 그도 역시 현실적인 경험 이외의 인식은 타당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문들은 이와 같이 감각적 지각만을 인정한 가운데 우연론(無因無緣論)에 빠져 있었다. 세계와 인간은 몇 가지 요소들의 우연한 이합집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같은 우연론을 극복하고자 한 것이 사명파로 알려진 막칼리 고살라의 숙명론이라고 생각된다.
그는 지, 수, 화, 풍, 허공, 득, 실, 고, 락, 생, 사, 영혼 등의 12요소설을 세워 세계와 인간을 설명하는데, 인간의 행동이나 운명은 모두 이들 요소가 자연적인 법칙에 의해 결합된 것으로서, 태어날 대 이미 숙명적으로 결정되어 있다고 한다. 이같은 막칼리의 주장도 일차적으로는 감각적 지각에 기초하고 있지만, 그가 이들 요소의 결합을 어떤 필연적인 법칙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것은 그가 추론을 어느 정도는 인정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가 주장하는 필연적인 법칙은 추론의 결과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