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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물

[2022년 3,4월호] 냐나띨로까 스님의 생애 소개 책 번역 연재 안내 글 / 김재성

작성자파란연꽃|작성시간22.06.05|조회수67 목록 댓글 0

 

< 책 소개 >

 

 

 


냐나띨로까 스님의 생애 소개
책 번역 연재 안내 글

 

 

 

본지는 다음 달 부터 냐나띨로까 스님의 생애에 대한 글을 소개한 책 ‘THE LIFE OF NYANATILOKA THERA, THE BIOGRAPHY 

OF A WESTERN BUDDHIST PIONEER’을 번역 소개한다. 
번역자는 서울에 있는 능인대학원대학교 명상심리학과  김재성 조교수이다. 
Nyanatiloka 스님(1878~1957)은 현대 세계에서 불교의 선구자 중 한 사람이자 최초의 유럽대륙 출신의 불교 승려였다. 25세가 되던 1903년, 스리랑카에 도착했지만 영국인 불교 승려인 아난다 메떼야 비구를 만나가 위해 버마(미얀마)로 가서 그해 가을 출가하여 사미가 되었다. 그리고 1904년 초에 비구계를 받았고 법명을 ‘삼계(三界)를 아는 자’라는 의미의 냐나띨로까Nyanatiloka로 받았다. 
이 책은 원래 스리랑카 캔디에 있는 ‘불자출판협회-Buddhist Publication Society Inc. 에서 출판되었다. 그런데 ‘Buddhist Publication Society 의 출판물에 대한 모든 책의 한국어 출판권은 ‘고요한 소리’에 있다. 본지는 ‘고요한소리’와 한국어 번역에 대한 저작권 계약을 맺었는데 ‘고요한 소리’ 회주 활성 스님께서는 무료로 계약을 해 주셨다. 

 

 

 

<냐나띨로까 스님의 생애> 를 번역하며
 

김재성
능인대학원대학교 명상심리학과 조교수 


인도에서 탄생한 불교는 기원전 3세기 아쇼카왕 시대에 고대 그리스를 통해 서양에 전해졌지만, 명맥이 이어지지 않았다. 18세기에 다시 불교가 영국과 유럽대륙에 소개되기 시작했으며, 영국, 독일, 프랑스, 러시아 등이 학술적인 맥락에서 불교가 전파된 나라였다. 그 가운데 가장 활발하게 불교를 전한 나라는 인도, 스리랑카, 버마 등을 식민지 지배한 영국이었다. 영국 다음으로 뛰어난 학자와 번역가들이 서구에 불교를 전파하는 데 큰 공헌을 한 나라는 독일이었다. 독일 철학자들과 동양학자들은 일찍부터 붓다의 메시지에 매료되었고 고된 연구에 매우 잘 적응한 독일인의 정신은 모범적인 명료한 번역을 기반으로 테라와다 불교의 빨리어 삼장을 깊이 탐구했다. 또 가르침에 대해 숙고하고, 해석하고, 강의하고, 수필과 책을 쓰고, 정기 간행물을 출판하고, 학회를 조직하는 등 지식을 전파하고 독일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붓다의 가르침을 알리기 위한 노력을 했다.
19세기 독일 불교의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친 최초의 독일 철학자는 쇼펜아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였다. 쇼펜하우어는 주로 대승에 근거한 불교에 관한 초기의 빈약한 출판물에만 접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천재성은 그로 하여금 교리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게 했고 불교의 가르침이 자신의 생각과 근본적으로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매우 기뻐했다. 쇼펜하우어는 엄밀한 의미에서 "불교" 저술가는 아니지만, 그의 세계에서 인간에 대한 의지와 이념과 붓다의 교리에 대한 찬사를 많이 언급함으로써 많은 젊은 학생과 추종자들이 불교를 더 공부하도록 격려했다. 이런 식으로 그는 서구 세계에서 붓다의 가르침을 전파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Nyanatiloka 스님(1878~1957)은 현대 세계에서 불교의 선구자 중 한 사람이자 최초의 유럽대륙 출신의 불교 승려였다. 본명은 안톤(Anton Walther Florus Gueth)이며, 음악을 전공하던 소년 시절부터 영성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불교를 만나기 전, 서양 고대철학(플라톤의 파에도), 근대철학(데카르트,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그리고 당시 인기 있었던 쇼펜아우어의 전집을 읽었다. 서양철학의 전통 속에서 무언가 인생의 문제에 대한 답을 추구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안톤은 서양철학을 통해서 자신이 찾고 있던 인생의 문제에 대한 만족스런 답을 얻지 못했던 듯하다. 20대 초반에 안톤은 신지학회의 에드윈 뵘(Edwin Böhme)으로부터 불교에 대한 강연을 듣고 나서 바로 열정적인 불교신자가 되었다. 강연이 있은 다음 날, 그의 바이올린 선생이 안톤에게 수바드라 빜슈가 지은 불교 교리문답서(Buddhist Catechism)를 포함해 불교관련 서적을 주었고, 이 책들을 읽고 나서 안톤은 아시아에서 불교 승려가 되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프랑스에서 작곡가가 되기 위한 공부를 마친 후, 1902년에 불교 승려가 되기 위해 인도를 거쳐 스리랑카로 가게 되었다.
25세가 되던 1903년, 스리랑카에 도착했지만 영국인 불교 승려인 아난다 메떼야 비구를 만나가 위해 버마(미얀마)로 가서 그해 가을 출가하여 사미가 되었다. 그리고 1904년 초에 비구계를 받았고 법명을 ‘삼계(三界)를 아는 자’라는 의미의 냐나띨로까Nyanatiloka로 받았다. 버마에서 빨리어를 배우기 시작했으며, 빨리어와 빨리 문헌에 대한 공부를 더 하기 위해서 1905년에 스리랑카로 갔다. 2년 가까이 스리랑카에 머물면서 빨리어 공부와 부정관, 죽음명상을 수행했다. 1906년 말에 앙굿따라 니까야의 번역을 위해서 버마로 가게된다. 그리고 2006년에 첫 번째 저작인 <붓다의 말씀>을 독일어로 출판하였다. 1907년에 빨리어로 버마 사람들에게 사성제를 법문했고, 버마어와 빨리어에 능통한 통역자가 버마말로 통역하였다. 이후,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 등지를 다니며 불교를 전하였고, 1911년에 스리랑카로 돌아와서 도단두와의 호수 한가운데 있는 버려진 섬에 Island Hermitage를 만들어 지내게 된다. 이후 이곳을 중심을 스님은 많은 서양인 제자들을 양성했다, 그 가운데에는 청정도론의 영역자인 영국 출신의 냐나몰리(Ñāṇamoli, 1905~1960) 스님과, 불교출판협회BPS의 창립자이자 서양에 버마의 마하시 계통의 위빠사나 수행을 알린 고전적인 저술, <불교 선수행의 핵심>의 저자 냐나뽀니까(Nyanaponika, 1901~1994) 스님이 있다.
냐나띨로까 스님의 저술과 번역을 통해 그의 영향력은 그가 입적한 지 6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그의 최초의 저술인 고전적인 <붓다의 말씀>(김재성역, 고요한소리)은 여전히 널리 전세계적으로 읽히고 있다.
앞으로 소개할 <냐나띨로까 스님의 생애>의 핵심 내용은 스님이 48세가 되었을 때 독일어로 쓴 자서전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1926년부터 1957년까지 후반기 31년은 다른 출처에서 가져온 전기적인 기술에 의거해서 구성되었다.
스님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문화적 의심과 주저함을 한쪽에 제쳐두고 비서구적 가치, 사상 및 관행 체계를 진심으로 끌어안은 한 사람의 능력에 대한 고무적인 예를 보여준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의 혼란과 불확실성을 경험하지 않고 인터넷을 통한 즉각적인 정보 접근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스님이 남긴 업적은 더욱 놀라울 것이다. 스님의 생애는 유럽대륙과 붓다의 담마가 만나는 형성기에 대한 매혹적인 통찰력을 제공한다.

 

 


 고요한소리는 
부처님 그분의 본래 가르침을 되살려 궁구하고, 실천하고, 선양하기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고요한소리는 1987년 근본불교 빠알리(PĀLI) 경전을 우리말로 옮기는 역경사업을 발원하면서 출발하였고, 1992년 사단법인을 설립하였습니다. 고요한소리는 빠알리어 경전을 이 시대의 감각에 맞게 번역하는 일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경전번역의 준비를 위해서 고요한소리는 스리랑카의 불자출판협회(Buddhist Publication Society)에서 근본불교의 소개를 위해 펴낸 출간물 중에서 부처님 가르침의 기초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들을 엄선해서 번역하고 출간해왔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일반 독자에게 더 쉽게 알리기 위해 본격적인 역경작업에 앞서 영문판 글을 먼저 번역하여 소개한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리말과 글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더 전하려 했습니다.

1880년대부터 영국과 독일을 비롯한 서양의 여러 나라는 빠알리어 경전을 자국어로 번역하기 위해 경전 자료를 수집 정리하고 사전과 문법책도 편찬해 경전 연구를 위한 기초를 닦았습니다. 이는 2000년 전 중국에서 불교경전을 한문으로 번역한 사업을 능가하는 획기적인 불사라 할 만합니다. 가까운 일본에서는 메이지유신 직후 서양의 불전 연구 성과를 토대 삼아 근본불교 경전을 번역하였고, 이후로도 역경에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대만에서는 빠알리어 경전의 일역판을 참고해 한역을 완수했습니다. 불교 수용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스리랑카, 서역, 중국 다음가는 불교 선진국임에도 중국 불교에 안주해왔기에 초기불교의 가르침을 서양의 언어를 통해 공부하는 역설적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고요한소리가 출범한 이래 한국 불교는 다른 어느 불교 국가에서도 볼 수 없는 놀라운 변화를 보이고 있습니다. 여태까지는 북방의 대승불교와 남방의 상좌부불교가 상호 배타적으로 발전해 왔지만, 이제는 지구화시대를 맞아 이 두 전통이 폭넓은 대화를 시작하였고, 불교의 이러한 새 기운은 바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힘차게 퍼져가고 있습니다.
고요한소리도 이제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습니다. 현대 과학 문명을 주도해온 서양의 지성들은 과학적 지식을 옳게 다스릴 수 있는 지혜와 슬기를 갈구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서양에서 불교학 열풍이 일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까닭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서양의 불교학자들 앞에는 실수행의 은산철벽이 가로막고 있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전지구화 시대에 걸맞게 선양하는 일은 도도한 시대적 기운을 타지 않고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사업입니다. 고요한소리는 이 기운을 받아들여 새로운 출발을 기하기 위해 힘겨운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위대한 선사들이 쌓아올린 빛나는 수행 전통을 바탕으로 하여 부처님 원음을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복음으로 새롭게 펴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분발할 것입니다.

고요한소리 설립 정신
고요한소리는 ‘붓다의 불교, 붓다 당신의 불교를 발굴, 천착, 실천, 선양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되었습니다.

 


고요한소리 회주
활성 스님
1938년 출생.
1975년 통도사 경봉 스님 문하에 출가.
통도사 극락암 아란야, 해인사, 봉암사, 태백산 동암, 축서사 등지에서 수행 정진.
현재 지리산 토굴에서 정진 중

사단법인 고요한소리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길 47-5 (우 03145)
전화 02-739-6328
팩스 02-723-9804
이메일 calmvs@hanmail.net

부산 지부
부산시 동래로 190번길 24 (칠산동 하이츠빌라) 다동 201호
전화: 051-513-6650
팩스: 051-416-3586

대구 지부
대구시 중구 관덕정길 13-10 (남산2동 939-8번지) 
아미빌딩 2층
전화: 053-755-6035

대전 지부
대전시 서구 둔산로 74번길 25(둔산동 1209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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