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심을 깨치는 글-부처님 방광기> 나에게 수행이란?
길에서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이 나에게 물어온다. 수행을 많이 하셨나봐요? 난 삶 자체가 수행이지 별다른 뭐가 있나요? 흔히 이렇게 대답을 한다.
그렇다. 내가 부처를 찾아가는 길은 휘어진 꼬부랑 길이었다. 휘어져 보이지 않는 그 길을 돌아 돌아 이젠 대로에 서 보지만 아직도 끝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굽은 길이 반듯이 펴 보이니 참으로 다행이다.
손가락을 텃치하는 사경이나 붓끝에 집중하는 사경이나 마음에 부처를 그리는 염불이나. 망념만 없으면 그 길은 내가 나에게로 돌아가는 수행의 길이다.
나는 한국 사경연구회에서 김경호 선생님을 모시고 수 년 째 사경의 올바른 인식을 터득하며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젊어서는 화두잡고 선방에서 십 수 년을 전전하기도 했지만, 모든 게 인연의 소치라 어느날 사경에 빠져있는 나를 발견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수차례의 회원전과 N.Y과 L.A에서의 전시,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초대전 등 작품활동 하는 동안 조금씩 기량이 늘어 지금은 금니 사경하는 차원에 이르렀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요즘은 인터넷이 세상을 좁게 한다. 손가락 몇번 텃치하면 전국은 물론 세계 구석 구석도 다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래서 찾아낸 것이 청화 스님의 '보리방편문'을 공부하는 "금강불교입문에서성불까지" 라는 인터넷 카페이다. 매일 보리방편문을 자랑껏 사경하는 것을 수행의 방편으로 하는 온라인 모임이다. 참으로 흥미롭다. 오늘날 같은 미디어 시대에 걸맞는다고나 할까? 카페 회원은 다양하여 미주지역까지 그 열기가 대단하다.
붓이나 펜으로 정성을 다하는 노력 없이 자판을 두들기는 것도 공부가 되나? 하는 의구심에 나도 동참한 것이 벌써 4~5년 되었으니, 이젠 말할 수 있다. 타자하는데 집중을 하지 않으면 오타 투성이니 집중이란 면에서는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이런저런 수행모임에 기웃거리기도 참 많이 했지만 과연 "나에게 수행이란 무엇일까?"
많은 세월 살면서 이런 저런 나의 수행의 길에는 반듯이 훌륭한 스승이 있었다. 좋은 스승과의 인연은 항상 나를 깊은 수행의 길로 이끈다. 지금은 입적하고 계시지 않은 큰스님들...
성철, 자운, 관응, 구산, 혜암, 서옹. 일타스님 그리고 청화 큰스님.
우리불교사에 큰 획을 그으신 큰스님들을 모두 친견하다시피 한 이 커다란 복을 어찌 모른다고 하겠는가?
성철스님의 3000배에서 시작하여 원당암 선방에서의 화두삼매 하며, 자비로우신 구산스님과의 인연으로 송광사 불사에 뛰어들었던 일들 하며 '보명화' 란 법명을 내려주신 일타스님의 법문과 우주과학을 강의 하는 듯한 청화큰스님의 특이한 법문은 지금도 저 깊은 바다 속 잠잠한 그 곳을 보게 한다.
인연의 소치란 묘한 것이어서 지금은 사경이라는 화두를 잡고 내 심연으로 탐닉하는 즐거움을 어떻게 표현할까 하는 새로운 번민이 생긴다.
"느림의 미학"이라고 하는가?" 조급하고 서둘러서는 단 한 획도 허락이 되지 않는 사경의 매력은 작품이라고 하는 사리를 낳는다. 이를 법사리라 하는데....! 참으로 조심스런 표현이다.
고려전통사경의 일인자이신 한국사경연구회 김경호 선생님은 제자들에게도 법사리를 강요하신다. 사경이란 부처님의 경전을 사서하는 것인 만큼 정성과 법에 맞게 했을 때 법사리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할 때 정말 힘들다는 표현은 과장할 수 없는 진실한 표현인데. 항상 내 자신이 부족하다 보니 이해가 되지 않는 불만 같은 것이 마음 한 자락을 채우는 중에 이런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 사실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는 현실과 직면하게 되었다.
인터넷카페 "금강"에서 보리방편문 사경을 하는 도반들의 오프라인 수행을 위한 수행터((渺金輪園)를 지난 10월 24일 서산 태안에 개원하고 부처님을 모셨는데, 부처님께서 환한 방광(放光)으로 응답하셨단다.(사진)
난 어쩌면 그러실 것을 이미 믿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부처님 복장에 봉안하는 복장사경을 나는 나도 모르게 내가 해야겠다고 자청하였는데, 우리 세간사정으로 하면 겨우 일주일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보리방편문 일편과 아미타불조성기와 회향문을 더구나 금으로 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면 불가능한 것이 정말 법답게 정성을 다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은 내 능력이 아니었다. 부처님 법이었다. 우주에 충만한 진성, 내 안에 존재하는 불성이 법사리를 낳았다. 글씨를 잘 썼냐 못썼냐 하는 것은 보는 사람의 견해이고 신심과 원력의 문제는 내 것임을 깨닫는 순간, 정말 눈물이란 슬픔이 아니고 나만 아는 기쁨임을 고백한다.
감지에 금니로 사성하고 명주 주머니에 넣고 다시 경함에 넣으니 이것이 法舍利가 아닌가? 내 마음은 하얗게 표백되어 그냥 텅 빈 듯한 개운함을 무엇으로 표현 할 수 없으니 그냥 모른다고 해야겠다. 마음 속에 마음이 없는 데 복장 불사에 참가할 수가 없어서 그냥 무심한데 카페에 사진이 올라왔다.
부처님이 환하게 빛을 보이시네!
나는 나를 믿는다. 오랜 세월 스승님들의 가르침 따라 기도 정진한 신심과 사경수행의 원력을 믿으며 또한 많은 도반님들의 부단한 노력과 원력의 힘에 부처님께서 응답하신 대단한 현실을 지면으로 인식시키기엔 내 능력이 부족하지만 나는 나를 믿는다.
이렇게 수행이란 기다림의 미학이다. 비유하자면 텃치 커피를 내릴 때 한 방울씩 되도록이면 천천히 내려야 최상의 맛을 얻을 수 있듯이 수행도 많은 기다림 속에 참맛이 있다. 또한 수행이란 지루한 인생길에서 하나씩 주어 담는 작은 행복이다. 수행이란 대단한 그 무엇이 아니며 그냥 흘려버릴 수 있는 작은 행복인지라 주위를 게을리 하면 자칫 놓칠 수 있으니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수행이란 커다란 선물같은 것이 아니고 내 스스로 주워 담는 작은 행복이다.
이제 벼랑 아래로 바랑을 던져 버릴 수밖에 없는 다 된 나이에 만날 수밖에 없었던 김경호 선생님과 금강카페의 경주법사님의 가르침의 인연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수행이란 어쩌면 좋은 스승을 만나러 가는 탄탄한 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수행은 내 삶의 표현임을 부끄럽게 고백 하며 실다운 모든 인연에 감사한다.
2014년 12월 17일 가은 강경애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