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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현불연재물

[2015년 8월호] 하지권 불교사진 작가를 만나다 /전현자

작성자파란연꽃|작성시간15.08.07|조회수333 목록 댓글 0

    하지권 불교사진 작가를 만나다

    인터뷰 /전현자




    질문) 안녕하세요. 하지권의 선이란 제목을 염두에 두고 있는데 괜찮으신가요. 정식으로 계를 받으시지 않으신 것으로 아는데 불자로 소개되는 것도 무난하신지요? 제가 알기로는 선생님께서 불교적 사진을 작품으로 많이 만드셨는데 어떤 계기나 특별한 의도가 있으신지요. ?

    답변) 우선 불교를 어떻게 접했는가 또 불교는 무엇인가를 예술가, 작업자의 삶과 연결해서 말씀드리면 저는 사진가니까 불교 이미지를 사진으로 만드는 작업과 관련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보통 일상적인 절에 가면 보이는 사진보다는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고 나면 보이는 다른 내용들이 분명히 저에게는 관심으로 다가온 듯 합니다. 쉽게 놓칠 수 있는 구름, 바위, 나무들 같은 자연에서 부처님 말씀이 존재하는 것 같았는데, 15년 정도 절에 관련된 생활 - 해인사 팔만대장경 작업, 초조대장경 작업-에 있으면서 이미지로 보이는 사진과는 다른 것들이 조금씩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부처님 말씀에 실사로 표현하는 것에서는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해석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계속 진행되는 과정이고 쌓아가는 과정 중이며 그만큼 더 보인다는 생각이어서 앞으로도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이 듭니다.

    질문) 서구에서도 감탄하는 도봉산의 인수봉과 같은 웅장한 규모의 바위도 아닌 산사로 향하는 곳의 작은 돌들에서 부처님 가르침의 고리를 어떻게 발견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답변) 늘 그 자리에 있는 제가 좋아하는 바위가 있었습니다. 사진작가라는 직업특징 상 여러 곳을 돌아다니게 되는데 그 중 경주 칠불암 올라가는 길에 소나무와 바위가 있었습니다. 그 바위는 계속 인상에 남았는데 어느 순간 친구같이 느껴지는 겁니다. 사진작업의 특징상 사람이 없는 시간을 골라 새벽 4시반 경에 올라가서 일출을 보고 해질녘에 내려옵니다. 이 바위는 제가 올라갈 때 한번 만지고 내려올 때 한번 만지곤 했는데, 과연 이 바위를 나만 만졌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주에는 천년 전에 많은 법당이 있었을 터이고, 부처님을 위한 법당 건물 짓는 소리로 가득 찼던 곳이 경주 남산일 텐데, 너는 그 소리를 들었었겠구나 하는 시간을 초월한 모습이 느껴졌습니다.

    산사 입구에 못생긴 돌과 휘어진 소나무가 장승처럼 친구처럼 맞아주는 것 같고 부처님께 기도하고 내려오면서 다시 인사하며 헤어졌습니다. 세월에 있어서는 주목 못 받는 돌이지만 저에게는 친구 같았고 무생물이 아니라 생명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빛을 받고 나뭇잎이 떨어지고 계절이 변할 때마다 돌의 모양도 변하고 하는 것을 보면 마치 생명이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런 모습도 한 컷씩 찍어두면 이 친구도 계절, 시간이 변하는 것에 따라 바뀌는 과정을 남길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작은 돌, 구름 한 조각 조차 이런 기쁨과 힐링을 주는 것을 보고 작은 어떤 것도 소중하게 여겨야 할 필요가 있고 나쁘게 생각할 이유가 없으며 모두가 서로 공존해서 관계되어 함께 존재한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또한 느꼈습니다.

    질문) 반야심경에 보면 색이 즉 공이요, 공이 곧 색이라 했습니다. 작가님께서는 바위, 작은 돌들도 어떤 순간에는 살아있는 생명으로 느껴지신다고 하시며 부처님의 가르침-생명존중-과 연결되는 점을 말씀하셨는데 이를 공사상과 연결될 수 있을까요?

    답변) (웃으며) 좀 어려운 부분입니다. 경전을 연구하는 박사님들께서 하실 말씀인 듯 합니다.

    질문) 선불교에서는 공하다는 표현과 실천으로 깊은 침묵을 권장하는 면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진이라는 것은 언어를 초월한 표현이며 있는 그대로의 현상을 담아내는 이미지로서 불교적 관점을 이해하시는 면도 있으신지요?

    답변) 우선 형태적으로 사진이라는 작업 자체가 호흡, 명상(meditation)과 관련된 부분이 있습니다. 어느 순간 몰입하면서 호흡도 멈춰지고 대상에 대한 집중이 깊어지면 그저 관(觀)한다는 느낌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아! 좋다’라는 사진작업의 측면에서 보는 삼매의 현상이 나타나는 듯 합니다. 제 작품 중 도솔암 마애불 같은 것은 그런 느낌을 받으며 촬영한 경우입니다.  산에 올라가 몇 시간을 추위에 떨며 기다리는 중 하늘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는데 그 순간에 부처님과 저만이 공유하는 시간/공간이 생긴 것 같았습니다. 참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셔터소리만 계속 날아가고 저는 내리는 눈을 바라보면서 사진의 대상과 저와 부처님과의 삼자만이 존재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상황에 몰입이 되고 한 순간 집중이 되니까 정신이 맑고 또렷해 졌는데 그 순간만큼은 아직도 머리에서 잊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후 이런 느낌을 받기 위해서 사진의 대상 앞에서 오랜 시간 침묵하고 기다리면서 계속 쳐다보고 빛을 기다리며 관(觀)하다 보면 어느 순간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아 내가 이걸 보기 위해서 한자리에 이렇게 오래 머무르며 기다렸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이런 마음으로 한 작업들이어서 제 사진이 좀 더 불교적 느낌으로 다가가게 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언어와 이미지를 넘어서는 불교의 시각화 작업 역시 제가 바라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질문) 제가 지난 달에 절집이라는 충무로에서 하는 하작가님의 전시회를 가서 작품들을 보면서 저로서는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어요. 꽃이 있는 것을 보고 좋다고 느끼면 살아왔는데 흔히 사람들은 자기의 추억거리로 사진을 찍거나 자연을 찍는 것을 사진이라고 일반화 한다면. 작가님을 보면서 깊은 수행자의 모습을 느끼며 제 스스로 무지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보통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 것과 언어를 초월한 다음에 사진을 찍는 과정에서의 인고 그 인고 속에서 나타나는 사진과의 만남을 통해서 예를 들면 부처님을 만나는 것 같은 환희 내지 인고에서 오는 어떤 창조 그런 것을 하게 되리라고 예측을 해보셨는지요?

    답변) 그렇지는 않습니다. 작업에 대한 욕구 욕망은 늘 가지고 있었습니다. 학교 다닐 때부터 늘 본질이 뭔가, 나는 뭔가, 사람은 뭔가, 이런 궁극적 궁금증이 많았습니다. 그러다가 ‘이 뭣꼬’ 라는 화두를 알게 되었는데 은연중 사진 작업 중에 이 화두가 들어왔습니다.

    찍고 있으면서 되묻게 되고, 한참을 들여다 봐야 되고 이런 과정에서 사진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굳은 살이 생기고, 앎이 많아지고, 지혜가 더 생기면 저의 작업이 어떻게 발전할 지도 궁금하기도 하고 재미있을 것도 같고, 그런 순간입니다.

    질문) 팔만대장경을 사진으로 찍었다는 의미는 뭐지요?

    답변 ) 2001년부터 2007년까지 했습니다. 고려대장경 연구소에서 의뢰한 것으로 해인사에 있는 팔만대장경 경판을 디지털화하기 위한 순수한 사진작업이었습니다. 웹을 통해 컴퓨터로 볼 수 있게 마련하는 작업이었습니다. 대장경판의 분실이나 유실에 대비한 중요한 준비였습니다.
     질문) 사진이란 무엇입니까

     답변) 나.. 자신입니다.

    질문) 나는 누구입니까?

    답변) 수행자입니다. 나를 찾기 위해서 늘 … (잠시 후)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인간은 참 불안정하고 어느 순간 흔들리기도 한다고. 오늘 이런 상태였으면 내일은 또 달라지잖아요? 사진을 찍을 때도 그런 바이오 리듬에 영향을 받아 어느 날은 잘되고 어느 날은 잘 안되고. 수술하는 의사들의 집도와 마찬가지일 겁니다.
    저 같은 경우에도 불완전한 존재로서 가지는 한계에 마주쳐 사진을 찍으면서 대상을 바라보고, 법당에서 호흡하면서 정화된 느낌을 가지고 싶고, 이를 바탕으로 삶의 기복을 극복하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아직 깨달음 이런 수준은 아닌 것 같구요. 앞서 말씀 드린 소박한 바램을 추구하는 작업자, 작업하는 수행자라고 하겠습니다.

    기자. 이럴 줄 알았으면 인터뷰를 좀더 길게 잡을 걸 그랬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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