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텔라의 마음 공부
들판의 마틴 성인
Saint Martin in the Fields
스텔라 박
지난 겨울에는 그동안 그리 고팠던 여행을 어지간히 했었다. 특히 런던에서는 현지에 주재원으로 나가 있는 동생 덕에 구석구석까지 둘러볼 수 있었다.
조금 편하게 시내에 나가겠다고 동생이 출근하는 새벽 시간에 일어나, 자동차에 동승하기를 여러 날 했다. 그렇게 대영박물관과 내셔널 갤러리, 테이트 모던, 빅토리아 알버트 하우스 등 여러 곳을 섭렵했다.
런던의 박물관들은 제각각의 컬렉션과 매력으로 이 역사적 도시를 찾은 관광객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그 여러 박물관 가운데 가장 나의 관심을 끄는 곳은 내셔널 갤러리. 런던을 방문할 때마다 꼭 찾게 되는 곳이다.
그날도 내셔널 갤러리를 가겠다고 동분서주, 새벽부터 동생 차에 올라타 트라팔가 광장에 내렸다. 동생 출근 시간이 이르다 보니 도착한 시간은 7시 30분을 조금 넘긴, 아직 하늘이 어둑할 때였다.
런던에 살면서도 최근까지 애들 키우느라 그닥 외출을 많이 하지 못했던 막내동생도 함께 길을 나섰다. 우리는 내셔널 갤러리가 문을 열기 전까지 어딘가에 가서 커피라도 마시며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때 막내동생이 제안한 곳은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Saint Martin in the Fields)의 지하에 위치한 카페 인 더 크립트(Café in the Crypt)였다.
카페의 오픈 시간은 8시. 우리는 우선 추위도 녹이고 구경도 하기 위해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 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 교회는 그 명성에 비해 너무나도 겸손한 교회였다. 영국의 다른 교회들에 비해 역사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고 크기도, 장식도 수수하다. 심플한 제단의 십자가는 현대적인 디자인이 채플 전체와 부조화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교회에서 몸을 녹이는 사람들
1월 중순이라 목도리에 장갑까지 두르고 길을 나섰던 날, 신도들의 좌석에는 10여 명의 노숙자들이 앉아 있었다. 그들을 지나쳐 제단 쪽으로 가자니 노숙자들의 몸에서 나는 시궁창 냄새가 코를 찔렀다. 때마침 교회 관리자가 입구 쪽으로부터 걸어다니며 방향제를 뿌리고 있었다.
런던의 문화와 역사를 상징하는 아이콘 가운데 하나인 이 교회 경영진으로서는 노숙자들이 여간 골치거리가 아닐 터였다. 교회란 가난한 자들을 내몰 수 있는 장소가 아니다. 하지만 마냥 노숙자들을 방취할 경우 악취가 진동하고, 그럼으로써 일반인들이 피하게 된다면 이 또한 낭패다.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에서는 노숙자들이 추위를 피해 잠시 머무를 수 있게 하면서 동시에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도 쾌적함을 느낄 수 있도록 이런 조치를 한 것이다.
마틴이라는 이름의 성인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 들판의 성 마틴, 현장에서 일하시는 마틴 성인… 뭐 이런 뜻이다. 가톨릭 성인 가운데 한 분인가본데, 성 베드로와 성 야고보처럼 예수의 직속 제자도 아니고 장렬하게 예수를 위해 순교한 이도 아닌지라 영 그 이름이 친숙치 않다. 이처럼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지만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의미 있는 인물이고 유럽에서는 매우 사랑 받는 성인이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최고의 수호 성인으로 꼽힌다. 그는 순교자가 아니면서 성인이 된 최초의 인물이다.
그가 태어난 시기는 기원 후 316년 또는 336년으로 추정된다. 태어난 곳은 헝가리의 작은 마을. 하지만 아버지가 이탈리아 파비아(Pavia)로 전직되는 바람에 어린 시절 대부분을 그곳에서 보냈다. 성인이 되어서는 프랑스에서 살았고 그곳에서 수도원 제도를 개척하고 수도원도 지어 활동했다. 주 활동지는 프랑스의 뚜르(Tour) 지방. 그래서 그의 이름 앞에는 '뚜르'라는 수식어가 붙어 '뚜르의 성 마틴(St. Martin of Tours 라틴어로 Sanctus Martinus Turonensis)'이라 불린다.
그는 비행기도 자동차도 없던 시절, 상당히 여러 지역으로 여행하고 생활했던 글로벌 시티즌이었다. 그런 만큼 그는 각기 다른 유럽인들의 정서를 하나로 엮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럽연합(Europe Union) 이전의 정신적 EU를 가능케 한 인물이었던 셈.
뚜르의 주교였던 그의 유해가 뭍혀 있는 성지는 가톨릭 순례자들이 스페인의 산띠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로 순례를 떠날 때 꼭 들려가는 곳이다.
선행의 상징, 성 마틴
그로 하여금 선행을 상징하는 성인이 되게 했던 일화를 소개한다. 기원 후 337년 어느 추운 겨울날, 군대의 예비자였던 그는 말을 타고 가다가 성문 앞에서 거의 벌거벗은 채 추위에 떨며 구걸을 하고 있는 거지를 만난다. 그가 가진 것이라고는 입고 있던 옷과 무기밖에 없었다. 그는 칼을 뽑아 자기 망토를 두 쪽으로 잘라 한 쪽을 거지에게 주었다.
그날 밤 그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망토 반쪽을 입은 예수가 “아직 예비자인 마르티누스가 이 옷으로 나를 입혀 주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이 신비 체험 후 마르티누스는 18세 때 세례를 받고 군대에서 제대한 후 푸아티에(Poitiers)의 힐라리우스(Hilarius)를 찾아가 사제 서품을 받았다.
성 마틴의 축일
그는 397년 11월 8일에 세상을 떠났다. 축일은 11월 11일.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는 그의 축일을 대대적으로 축하한다.
특히 독일에서는 성 마틴 축일 며칠 전부터아이들이 학교에서 초롱불을 함께 만들고 축일 전날 저녁 무렵엔 이를 들고 노래를 부르며 동네를 한 바퀴 도는 전통이 있다고 한다. 이때 성 마틴과 거지로 분장한 아이들이나 동네 어른들이 성 마틴의 에피소드를 연극처럼 공연하기도 한다고.
또한 유럽 여러 나라의 어린이들은 이날 작은 선물을 받기도 한다. 독일의 프랑켄 지방에서는 성 마틴이 산타 할아버지처럼 어린이들을 찾아 오기도 하며 아이들이 각 가정을 돌며 방문하면 집에서 구운 과자와 사탕을 나누어 주는 식이다. 할로윈과 크리스마스의 전통이 성 마틴 축일 행사에서 비롯된 것으로 유추해볼 수 있다.
독일에서는 11월 11일, 성 마틴을 기리는 마을 단위의 축제도 열린다. 과거 성 마틴 축일은 농촌에서 특별히 중요한 날이었다. 일년 동안 열심히 농사를 지었던 농장의 하인들은 성 마틴 축일 날, 그들의 한 해 일을 종료하면서 댓가를 받았다. 즉 성 마틴 축일은 연봉 결산일이었던 것이다. 한편 이 날은 또 첫눈이 내리기도 하고, 거위요리와 함께 그해 생산한 포도주를 처음 시음하는 날이다. 미국으로 치자면 추수감사절 같은 의미도 있는 날이다.
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
런던의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St Martin-in-the-Fields) 교회는 트라팔가 광장에서 내셔널 갤러리를 앞에 두고 섰을 때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다. 뾰족한 첨탑으로 장식된 네오 클래식 양식의 교회는 명성에 비해 크기나 내부 장식이 수수하기 그지 없다.
1721년부터 건축이 시작돼 1726년에 완공된 이 교회에는 여느 다른 교회처럼 십자가 형상이 따로 없다. 창문에 색조 없는 스테인드 글라스 형태로 들어서 있는 십자가는 무척 현대적인 느낌을 준다. 십자가 맞은편 2층에는 커다란 파이프 오르간이 배치돼 있다.
세인트 마틴즈 인 더 필즈는 지난 250여 년간 컨서트 장소로 사랑받아왔다. 18세기에는 헨델과 모차르트가 공연을 하기도 했던 유서 깊은 곳이다. 그리고 1950년대에는 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즈 인 더 필즈가 창단돼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세인트 마틴즈 인 더 필즈가 유명해진 것은 교회 자체보다 교회의 이름을 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즈 인 더 필즈 덕이다. 클래식 음악 방송을 듣다 보면 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 콰이어와 앙상블의 연주가 상당히 자주 나온다.
뛰어난 음악성과 찬란하고 품격 있는 사운드로 정평이 나있는 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Academy of St Martin in the Fields, ASMF)는 1958년, 당시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하던 네빌 마리너 경에 의해 창단된 후, 1959년 11월 13일 세인트 마틴즈 인 더 필즈 교회에서 창단 후 첫 공연을 가졌다.
ASMF는 창립 초기, 상임 지휘자를 따로 두지 않고 작품 본연의 해석과 연주에 집중한 현악 그룹으로 출발했다. 이후 네빌 마리너가 적극적으로 관악기 연주자들을 채용해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됐다. 규모와 연주 레퍼토리, 그리고 명성에 있어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해 온 ASMF는 현재 세계적인 바이올린주자인 조슈아 벨이 예술 감독 겸 주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ASMF는 1600년대 작품으로부터 현대음악에 이르기까지 약 500개 이상의 음반을 냈다. 이 가운데 1969년 비발디의 '사계' 음반으로는 골든 디스크 상을 받았고, 2007년에는 조슈아 벨과 함께한 비발디 ‘사계’ 음반은 빌보드 차트 클래식 부분 1위에 오르는 등, 특히 바로크 음악의 중흥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이들이 배경음악을 맡은 영화 <아마데우스(Amadeus)>는 아카데미 음악상을 비롯해 13개의 골든 디스크 상을 휩쓸었으며, 영화 <잉글리쉬 페이션트(English Patient)>는 아카데미 베스트 음악 상을 수상했다. 영화 음악에의 참여로 이들의 이름은 보다 대중적인 인기를 얻게 됏다.
ASMF는 1967년 첫 유럽 투어를 시작으로, 매 시즌 15번의 투어와 연간 100회가 넘는 공연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런던의 세인트 마틴즈 인 더 필즈 교회에서는 ASMF의 연주가 자주 열린다. 특히 저녁 시간에는 아직까지도 촛불을 밝히고 펼치는 컨서트로 유명하다. 매주 수요일 저녁에는 지하의Café in the Crypt에서 재즈 컨서트를 열기도 한다. 그리고 점심 시간에는 주로 월요일과 목요일 오후 1시부터 40분 동안 무료 컨서트를 연다. 런던으로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점심 시간의 무료 컨서트가 됐든, 저녁 시간의 컨서트가 됐든, 꼭 참가해보기를 권한다.
이 교회는 또한 지난 50년 동안 영국에 귀화한 홍콩과 중국 교포들의 이민자 교회로도 잘 알려져 있다. 입구에 보면 중국어 안내 책자도 비치돼 있다. 1997년, ASMF는 홍콩 정부로부터 국가 정권 이양식에 직접 초대받아 연주를 하기도 했다.
교회 지하의 카페, Café in the Crypt
막내동생과 내가 8시부터 내셔널 갤러리가 개관하는 10시까지 장장 2시간 동안 커피를 마시며 소위, 죽 때린 곳은 바로 세인트 마틴즈 인 더 필즈 지하에 위치한 카페 인 더 크립트였다.
교회 지하라는 곳이 옛 주교와 성직자들의 묘가 안치돼 있는 으스스한 곳이지만 이것도 관념의 차이. 18세기 건축물의 고풍스러운 인테리어를 고스란히 살린 카페는 역사와 전통을 사랑하는 영국인들에게 인기 최고의 만남의 장소가 되어가고 있다.
카페 인 더 크립트는 잠시 복잡한 도심으로부터도, 현재라는 시간으로부터도 멀리 떠나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커피와 티, 그리고 신선하고 질 좋은 재료로 만든 가정식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이 카페의 한 구석 자리가 LA에 돌아와서도 두고 두고 생각이 난다.
카페 인 더 크립트에 앉아 사찰도 이런 식의 공간을 마련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일반인들을 절로 끌어들이고 생소한 불교적 요소들을 친숙하게 만들 수 있으며 사철로서는 수입을 창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작은 규모일지라도 이렇게 자금이 조성된다면 의미 있는 불사에 사용할 수 있는, 불교 공동체의 힘이 될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