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 사막 여행기 1편
스텔라박
딴히 사막을 좋아했던 건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살고 있는 곳이 사막이었다.
사막이라고는 해도 LA는 우리가 고전적으로 알고 있는 사막의 이미지와는 상당히 다르다. 시원하게 하늘로 솟아오른 야자수가 길거리에 그늘을 드리워주고 있으며 스프링쿨러가 고르게 물을 주는 잔디밭은 늘 비내리는 런던 못잖게 푸르다.
하기야 그것도 옛날 얘기가 됐다. 요즘 캘리포니아는 물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정부 차원에서 잔디밭에 물을 주지 말고 그냥 말려죽이라고 권고할 정도이니까. 잔디밭 대신 사막형 정원으로 바꿀 때에는 정부에서 공사비까지 지원해준다.
서론이 길었다. 이런 여러 이유로 LA에 살고 있으면서도 사막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는 얘기다.
항상 꿈꿔온 사막 여행
마음은 항상 외로운 집시, 뼈 속 깊이까지 노마드(Nomad)인 나는 길 위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집은 베이스캠프, 또 다시 떠날 것을 준비하는 장소이다. 두달 동안 원없이 런던을 여행하고 돌아왔는데도 또 뭔가 헛헛한 느낌이 드니, 나의 역마살에 대해서는 말 다했다.
이건 뭐지? 나는 내 영혼에게 말을 건다. 아주 어릴 때부터 꿈꾸어왔던 여행지. 그곳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낙타 등 위에 올라 출렁이는 모래밭을 하염없이 걷고 싶었다. 별빛 아래 텐트에서 하루 밤을 지내며 별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도 좋았다. 밤이면 심장을 울리는 북소리가 둥둥 울려퍼지는 가운데 캠프파이어의 불길을 바라보며 다른 행성에 있을지도 모르는 또 다른 나의 영혼과 조우해보고 싶기도 했다.
그곳은 영화 <영국인 환자(English Patient)>에서 알마시 백작과 캐서린이 모래폭풍에 갇혀 하룻밤을 보내게 된 곳이기도 하고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로렌스가 파견됐었던 모래들의 파도이기도 하다.
아니 그 전이었던 것 같다. 사막에 대한 그리움이 가슴 속에 싹텄던 것은.
쌩떽쥐페리의 <어린왕자>를 사랑했던 게 어디 법정스님뿐일까. <어린왕자>와 주인공 '나'가 '아름답다' 여기고 사랑했었던 사막은 내게도 고스란히 그 신비로운 빛을 발한다.
"사막은 아름다워.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어딘가에 샘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지......" 어린왕자가 했던 말이다.
주인공 '나'는 사막을 사랑했었다고 한다. 사막에서 모래 언덕 위에 앉으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것도 들리지 않지만 무언가 침묵 속에서 빛나는 것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사막이 가장 깊숙한 곳에, 보이지 않는 곳에 샘을 감추고 있기 때문에 아름답다는 어린왕자의 말을 공감한다. 어린왕자가 '나'를 감동시킨 것은 꽃 한송이에 대한 그의 성실성, 그가 잠들어 있을 때에도 마음 속에서 빛나고 있는 장미 한 송이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그를 보호해줘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가 '나'는 사막에서 우물을 발견한다.
사막, 감추어진 샘, 어린왕자, 장미, 우물…
이런 키워드들의 나열은 파울로 코엘료의 책, <연금술사>에서도 고스란히 반복된다.
사막, 감추어진 보물, 샘물, 사막의 여인, 간절한 꿈, 우주…..
모로코의 사막, 메르주가로 향하다
그래서 나는 길을 떠났다. 나의 행선지는 북아프리카의 모로코.
그런데 우습게도 실제 <영국인 환자>에 나왔던 사막은 모로코 바로 옆의 나라인 튀니지에서 촬영됐다고 한다. 그나마 <아라비아의 로렌스>에 나왔던 사막은 요르단과 모로코에서 찍었다고 하니 완전히 헛집은 건 아니었다.
내가 비행기를 타고 모로코에 첫 발을 디딘 도시는 마라케시였다. 모로코에 가기 전, 영국에서 한 달여 기간을 있었던 터라, 몸은 쌀쌀한 날씨에 적응돼 있었다. 갑자기 뜨거운 사막에 도착하자 내 몸은 갑작스런 변화를 무척 힘겨워했다. 여행지에 도착하면 호텔에 잠 잘 때 빼고는 발을 혹사시키며 싸돌아다니는 나였지만 몸 상태가 상태인지라 3시간이 넘도록 그냥 침대에 누워 있었어야만 했다.
휴식은 치유를 가져온다. 몸도 마음도 그렇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쉬기만 해도 원상복구가 되건만, 우리는 죽음이 바로 눈앞에라도 다가온 듯, 늘 마음이 분주하다. 하기야 죽음이 눈앞에 와 있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냐마는.
낮잠 자고 일어나 아직 비몽사몽간에 밖으로 나간 나는 이슬람 모스크도 둘러보고 제마엘프나 광장의 바자르들을 오가며 사람 혼을 빼어놓을 정도로 예쁘고 유혹적인 모로코 수공예품들을 둘러보기도 했다.
사막으로 갈 때는 스카프를 준비해!
사막 투어의 필수품 가운데 하나는 스카프이다. 내 평생, 모로코에서만큼 스카프를 잘 활용했던 적이 없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여성들은 히잡이라 불리는 천을 머리와 목에 두르고 다닌다. 유혹의 씨를 말리려는 장치이다. 여성 매매가 흔했던 이슬람 문화권에서 여성의 정조에 대해 대단한 가치를 부여했기 때문일 게다. 히잡을 두르고 있으면 희한하게도 여성성을 숨길 수 있다. 목과 어깨, 그리고 풀어내린 머리카락이 얼마나 성적 매력을 더해주는지, 처음 깨닫게 됐다.
그리고보니 이슬람 여성들은 사막처럼 자신들의 여성성을 히잡 아래 감추어두고 살아간다. 그녀들이 자신들만의 남자 앞에서 히잡을 벗으며 드러낼 은밀한 여성성을 상상하니 클림트의 그림 <입맞춤>을 보는 듯, 숨이 막혀온다.
현지인에게 들은 재미있는 얘기 하나. 국민의 95퍼센트 이상이 이슬람교도인 모로코에서는 남녀가 호텔에 갈 경우, 한 방에서 자려면 결혼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단다. 불륜의 경우, 또는 미혼 남녀가 합방을 할 원인 자체를 차단하겠다는 거다.
그렇다고 양극과 음극이 끌리지 않을까? 합하려 하지 않을까?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얘기다. 돈이 있다면 이들은 방을 각각 두 개 예약해 한 방을 비워두고 다른 한 방에서 상봉한다. 하지만 돈이 없을 경우엔, 약간의 돈으로 호텔 매니저를 매수한다. 그래서 모로코에서는 뭔가를 봐주는, 전근대적인 비리가 아직까지도 왕왕 행해지고 있단다.
다시 스카프 얘기를 돌아가자. 모로코를 여행할 때엔 이슬람 문화권에서 튀어보이지 않기 위해 스카프를 머리에 둘러싸매 히잡 비슷한 효과를 낸다. 길다란 스카프로 머리를 가리고 목까지 둘러주면 깊은 곳에 여성성을 감추고 있는 이슬람 여성의 모습이 된다.
사막의 베르베르족들은 스카프 한 쪼가리를 가지고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했던 것처럼 머리에 길게 내린 후 이마를 두르는 끈으로 고정시키기도 하고 뱃사람 신드바드처럼 터번으로도 쓰는 등, 멋지게 활용할 줄 안다. 카피에 또는 쉬마그라 불리는 이 스카프는 건조한 사막에서 뜨거운 햇빛과 모래바람을 막기 위한 생존 방식으로 발전된 것이다.
모로코 스타일, 흥정법
많은 여행자들이 마라케시에서 모로코 사하라 사막 여행을 떠난다. 호텔에는 의례 사막 투어에 대한 브로슈어가 비치돼 있다. 각자 호텔 주인이나 여행사를 통해 투어를 예약하면 그 다음날 여행사에서 호텔에 픽업을 와 미니버스에 올라타게 된다. 호텔 주인 따라 붙이는 웃돈은 제각각이지만 여기저기 알아본 결과, 2박 3일 여행상품의 가격은 대략 700디르함 정도면 되는 것 같다.
어차피 물려달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면서 투어에 참가해 차를 타고 가는 다국적 여행자들은 얼마에 투어를 예약했는지를 서로에게 물어본다. 나는 호텔 주인이 보여준 브로슈어 가격이 너무 비싼 것 같아 제마엘프나 광장을 거닐다가 한 여행사를 발견하고 들어가서 정말 무자비한 기세로 깎아 투어를 예약했다. 나름 정말 협상을 잘 했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투어 버스에 타고 보니, 중간 정도의 가격이었지, 결코 싸게 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갑자기 배가 싸르르, 아프려 했다.
여기서 깨닫게 된 모로코에서의 협상 철칙 하나. 반 값보다 더 아래로 후려치라는 것. 그래도 결국 물건이나 서비스를 파는 자는 믿지면서 판다며 거래를 할 것이다. 그가 "OK. Done."을 외칠 때면 웬지 손해를 보는 느낌이 든다. 거래가 받아들여지면 그냥 제3세계국민들에게 보시한다, 셈 치고 기분 좋게 사주자. 그래 봤자, 몇 푼 안 된다.
사막 가는 길, 아이트 벤 하두
모래 구릉이 이어지는 사하라가 있는 곳은 메르주가(Merzouga), 마라케시에서도 570킬로미터, 자동차로 9시간 정도 떨어진 곳이다. 하루만에 다녀오기는 무리라 1박2일, 2박 3일 관광상품을 이용한다.
내가 예약한 것은 2박3일 코스. 어떤 이들은 모로코의 다른 도시에서 메르주가로 직접 와 일몰, 일출만 보거나 또는 일몰을 포함한 1박 관광을 하기도 한다.
마라케시를 출발한 미니버스는 캘리포니아 주변과 별반 다를 바 없는 풍경들을 지나친다. 야자수, 황토색 바위, 듬성듬성 나 있는 물 없이도 잘 사는 선인장 종류의 플랜트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사막이라는 것을. 어쩜 이렇게도 판박아놓은 듯 똑같은 풍광이 계속될까. "진리를 밖에서 구했지만 못 찾고, 문득 돌아보니 내 주변 어디에나 진리가 편재하고 있더라"는 송나라 때 어느 비구니 스님의 오도시가 다시금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종일토록 봄을 찾아 다녔건만 봄을 보지 못했네.
산으로 들로 짚신이 다 닳도록 헤맸네.
돌아와 매화 향기를 웃으며 맡으니,
봄은 가지 끝에 벌써 무르익었네."
중간에 투어 버스는1987년 유네스코 국제문화유산에 등재된 아이트 벤 하두(Ait-Ben-Haddou)에 멈췄다. 3헥타르에 걸쳐 퍼져 있는 이 지역은 사막 한 가운데 물이 있어 형성된 오아시스 마을로 흙을 쌓아올려 지은 건축물, 카스바가 밀집해 있다.
이러한 요새 마을을 크사르(Ksar)라 부르는데 건축물 자체가 흙으로만 지어져 자연의 일부처럼 보이는 것이 매력적이다. 또 외부와 접촉하는 것이라고는 아주 작은 크기의 출입문과 창문밖에 없고 망루를 세워 외부의 침입을 감시하고 있어 철통 같은 안전체제를 갖추고 있다.
기묘한 바위, 사막, 오아시스 마을, 시간 여행을 떠나온 듯한 건축물로 인해 아이트 벤 하두는 영화 로케이션 헌터들이 퍽 좋아하는 지역이 됐다. 이미 1960년 <아라비아의 로렌스(Lawrence of Arabia)>를 촬영했고 1988년에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원작을 영화화한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The Last Temptation of Christ)>을 찍었다. 2000년에는 <검투사(Gladiator)>, 그리고 2004년의 <알렉산더(Alexander)>에 이르기까지 총 20편 정도의 영화가 이곳을 배경으로 만들어졌으니 영화 팬들이라면 더욱 의미 깊은 곳이 될 것 같다.
베르베르인의 양탄자
로컬 가이드의 안내로 이 지역 토착민인 베르베르족의 집을 방문한다. 작은 창문만 나 있는 집은 비바람 피하려는 목적에만 충실해 보이지만 벽에는 주인장 가족들이 직접 만든 멋진 양탄자들이 몇 겹씩 걸려 있어 이국적인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주인장 아저씨는 <반지의 제왕> 등장인물 가운데 하나인 마법사 간달프의 옷과 비슷한 베르베르족 남자들의 전통의상 간도라(Gandora)를 입고 있었다.
"어서오십시오." 라며 여행자들을 반긴 그는 일단 민트티부터 한 잔 대접하겠다며 부산을 떤다. 은쟁반 위에는 알록달록한 색깔의 유리잔들과 함께 주둥이가 기다란 은주전자가 놓여있다. 그 주전자를 하늘 높이 올려 분수대 위에서 떨어지는 것처럼 극적인 효과를 내며 민트티를 따라 잔을 돌린다. 모로코인들은 단 맛을 좋아하는지, 내가 모로코에서 마셨던 민트티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 여름날 마셨던 설탕물처럼 혀에 쥐가 날 것 같은 맛이었다.
그는 "이제 베르베르인들이 전통적으로 카페트 만드는 법을 보여주겠다"며 아내인지, 딸인지 모를 히잡 두른 여성에게 시범을 보여달라고 말한다. 그녀는 조용히 양털을 브러시로 빗어 실을 만드는 모습과 기계로 양탄자 만드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어느새, 그녀와 주인장은 그들이 이미 만들어 놓은 색색의 양탄자를 펼쳐보이기 시작했다. 크기와 색깔, 무늬가 제각각인 양탄자는 정말 하나 갖고 싶을 정도로 유혹적이다. 가격이 좀 나가긴 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비싸지는 않다.
다국적으로 이루어진 우리 투어팀에서는 누구 하나 사겠다고 나서는 이가 없었다. 주인장은 집안의 재고를 모두 바닥에 펼쳐 보인다, 싶을 정도로 과하게, 쉬지 않고 카페트를 선보였다. 괜히 주인장과 눈이 마주쳤다가는 미안해서라도 하나 사야할 것 같은 분위기라, 나는 하릴 없이 전화기만 들여다보고 있다.
가진 걸 전부 펼쳐 보여준 주인장은 아무도 사겠다는 지원자가 나오지 않자,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아! 이 민망한 상황, 어떻게 정리되려나.
결국 스페인에서 온 젊은 처자가 욕실에서 발 닦을 정도 크기의 작은 카페트를 하나 구입해준 덕에 우리 팀은 무사히 일어나 그 집을 나올 수 있었다.
모로코 사막 투어 2편은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