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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현불연재물

[2018년 9월호] 가슴에 스며드는 조각가를 만나다, 조재영 작가 / 전현자

작성자파란연꽃|작성시간18.10.16|조회수862 목록 댓글 0


    < 수행과 포교하는 사부대중 >





    가슴에 스며드는 조각가를 만나다

    조재영 작가




    취재 | 전현자 (미주현대불교 한국주재기자)




    기자: 조각이란 무엇입니까?


    조재영 작가: 조각이 무엇이냐에 대해서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매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예술이 무엇인가 혹은 삶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처럼 말이죠. 제가 처음에 대학에 들어갔을 때는 회화를 전공하려고 했었어요. 회화 수업과 함께 조각 수업을 들을 수 있었는데 조각이 당시 저에게는 아주 매력 있게 다가왔습니다. 내가 보고 듣고 만지는 모든 것이 작업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거든요. 평면이 아닌 입체를 다룰 때 자극되는 나의 감각, 상상 속 내 생각이 신체를 통해 구현되고 그것을 눈을 통해 즉시 확인할 수 있는 작업의 과정 등이 저를 설레게 했었습니다.

                                                                     작품이 놓이게 되는 공간 즉, 어디에 어떻게 설치되느냐의 문제 등도 조각을 생각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질문이었죠.
    학생시절부터 시작된 이 설렘과 고민들은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이런 다양한 고민 혹은 조건들을 거치며 하나의 조각 작품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 다양한 요소들 중 아주 사소한 하나의 조건만 달라져도 작품이 전혀 다르게 전달 될 수 있어요. 많은 작가는 언제나 이 부분에서 긴장하고 있어요. 작가가 예민해 질 수 밖에 없는 이유이죠. 하지만 저는 작가가 가지는 이런 예민함을 좋아합니다. 이런 예민함이 있기에 세상에 늘 질문할 수 있어요. 배운 대로 사고하기 보다는 스스로 생각하는 방식을 찾아가죠. 그리고 이러한 생각이 예술이란 혹은 조각이란 무엇인지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해요. 많은 사람들이 습관에 의해 생각하고 그 습관대로 행동합니다. 그저 먼저 생긴 익숙한 길을 따라 살아가요. 예술은 삶의 익숙함과 당연함에 작은 균열들을 내줍니다. 우리가 진실이라 믿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해주죠. 그리고 질문하게 만들어요. 전 그것이 예술이 가지는 아주 강한 힘이라 생각합니다.



    기자: 서양의 최고 조각품이라 할 수 있는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과 반가사유상에서의 조각적 가치를 알려주신다면?


    작가: 두 작품 모두 매우 우수하게 잘 만들어진 조각품이라는 생각합니다. 강인하면서도 섬세하게 제작된, 조형적으로도 완성도 있는 조각품. 더 재미있는 것은 두 작품을 함께 떠올릴 때 느껴지는 ‘생각과 사유’에 대한 동서양의 차이일 것 같습니다. 두 작품의 인물들이 취하는 몸의 포즈, 얼굴의 표정 등을 면밀히 볼 필요가 있을 듯 해요.
    로댕의 작품 ‘생각하는 사람’이 취하고 있는 포즈는 실제 우리가 일상에서 취하는 포즈와 비슷한 점이 많아요. 저 역시도 턱을 괴며 생각에 빠질 때가 있는데 그때 주로 어떤 생각이던가? 그리고 그 생각이 어떻게 흘러가던가? 떠올려보죠. 어떤 이들은 삶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와 같은 심오한 철학적 질문을 두고 ‘생각하는 사람’과 같은 몸의 동작이 자연스레 만들어 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의 경우 대부분은 풀리지 않는 마음의 숙제나 질문 등을 안고 있을 때이더군요. 내 마음, 심리와 생각 등을 되짚어 곱씹기도 하고, 왜 그랬을까 분석하기도 하고, 수많은 가정들을 세워 짐작하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멈출 줄을 모릅니다. 그때 표정은 더 진지해지고 어깨는 움츠려 들며 허리는 아래로 굽어지게 되죠.

    동양의 반가사유상의 표정과 자세를 보면 평화로운 미소를 머금은 채 차분한 자세로 앉아있어요. 신체가 크게 움츠려 있지 않아요. 실제로 반가사유상을 보게 되었을 때 한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마음 속에 무거운 생각이 없는 듯 보여요. 조용한 환희도 느껴졌지요. 계속 같이 있고 싶었어요. 그 조각의 힘을, 환희와 평화로움을 느끼고 싶었어요. 지금은 그 표정을 닮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을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는 것은 그것을 조각한 사람의 대단한 내공이에요. 단순히 물리적으로, 기술적으로 조각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수 있어요. 신체적인 반복을 중심으로 무단히 연습하면 가능해질지 모르죠. 하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작품의 아우라는, 그것이 뿜어내어 전달되는 힘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요? 작가인 저로서도 큰 화두가 됩니다.



    기자: 석굴암 부처님도 조각이며 절에는 수많은 조각품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왜 유럽으로 조각을 배우러 가셨는지요?


    작가: 제가 공부하고 활동하는 ‘현대미술’에서는 동양과 서양을 엄격히 구분하고 있지 않습니다. 동서양 구분에 앞서 조각이라는 매체를 통해 작가로서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가 더 중요한 문제이지요. 국내 예술대학의 조각전공과정은 서양예술을 근간으로 삼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제가 공부하는 진행 단계에서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어요. 실제로 다른 문화와 환경 속에서 시야가 많이 넓어지고 자신감을 많이 가지게 되었어요. 거침없는 토론문화와 사회 속 예술의 역할에 대한 고민 등은 이전의 저에게 부족했던 부분이었거든요.
    현대미술에서 활동하는 많은 작가, 큐레이터, 연구자들이 다루는 주제가 하나의 지형에 국한되어 전개되지는 않는 듯합니다. 그들은 동서양을 넘나들며 인간 근원적 질문들과 동시대 이슈들을 지속적으로 교류해가고 있습니다. 동시에 자신이 속한 구체적인 정체성과 역사적 배경을 지속적으로 공부하고 작업하는 이들도 상당수 존재합니다. 아시아에 집중하여 우리들 특유의 미술 흐름과 변화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는 동료 작가와 연구자들을 근래 들어 많이 만나기도 하였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세계의 미술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유럽과 미국만큼 아시아도 자생력을 키워야 하며, 우리들 스스로의 역사와 문화에 진심 어린 관심을 가지고 공부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기자: 금호미술관 전시작품을 보면서 문득 절의 문들이 떠올랐는데 옛 것에 대한 어떤 생각들을 갖고 있는지요?


    작가: 금호미술관에 설치된 <Alice’s Room> 작품은 우리에게 익숙한 사물 혹은 공간의 외피를 일종의 module 혹은 unit으로 제작하여 전체 구조를 구축해 가는 과정을 가지고 있어요. 사물과 공간이 가지는 개별적 특징들을 제거해 가면서 보다 중립적인 상태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우리는 본능
    적으로 사물을 볼 때 언어와 함께 그것의 이름을 부르고 그 역할과 의미 등을 떠올립니다. 그 과정이 없다면 아마도 일상 생활이 불가능하겠죠. 하지만 가끔은 너무나 즉각적인 그 반응들 사이에 잠시 머뭇거릴 수 있는 틈, 여유 공간을 두고 싶었어요. 판단이 잠시 보류된 상태라고 할까요? 전혀 낯설지도, 그렇다고 쉽게 판단하기도 어려운 상태를요. 대상을 쉽게 명명할 수 없는 그 상태가 조금 불안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전 작품을 통해 그 불안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싶어요.
    <Alice’s Room>를 제작하면서 특정 대상들을 한정한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보고 느끼신 것처럼 제 작품을 보는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느낌대로 그것이 이해하고 봐준다면 매우 기쁠 것 같습니다. 이 작품과 별개로 옛 것에 대한 관심은 아주 많아요. 언제 보아도 새롭고 깊이가 있어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찾게 되는 건 그런 힘이 있기 때문이겠죠. 최근에 지인들과 함께 중국역사에 관해 함께 공부를 했어요. 약 2000년 전의 사건들인데도 지금 우리의 삶,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언제나 지속하고 있는 현재의 문제들이었지요. 옛 것들, 역사들을 통해 지금 제 자신을 반추해보고 그것을 지도 삼아 새로운 길을 창조해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자: 조각품은 훌륭한 예술품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마주하는 많은 것들이 조각품이라 생각합니다. 조각을 즐기고 활용하며 고마워할 방법을 알려 주시길 바랍니다.


    작가: 몇 년 전 어린이 신문에 작업과 관련해 짧은 인터뷰를 한적이 있어요. 어린 학생들이 일상 속에서 어떻게 하면 작품과 가까워질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있었는데요. 말씀처럼 저 역시 우리 일상 속 사물에서부터 시작하자는 제안을 했었습니다. 맞아요. 일상에서 마주하는 많은 것이 미술이 될 수 있지요. 스스로 만들어 놓은 경계들, 고정관념들에서 벗어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해요. 한정적 의미와 기능들에 갇히지 않으면 좋겠어요. 우연과 돌발, 실패와 비계획적인 상황들을 즐길 수 있으면 어떨까요? 그것들을 비관하거나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 한 생각을 바꾸어 달리 바라보면 그것이야말로 새로운 기회이자 변화의 순간이 되니까요.
    그리고 갤러리와 미술관을 자주 찾아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처음에 그 장소와 작품들이 낯설어도 자주 접하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취향들을 발견하게 돼요. 우선은 아무것도 모른채 내 마음이 끌리는 대로, 직관이 움직이는 대로 작업들을 만나세요. 처음부터 모든 것을 이해할 필요가 없어요. 내가 자연스럽게 이끌리고 있다면 궁금해지죠. 그 작품에 대해, 그 예술가에 대해. 그때 노력이 필요해요. 그 궁금함에 대해 멈추지 말고 한 걸음 더 나가는 노력이 필요한 순간이에요. 그때는 그것에 대해 찾아보고 공부해 봐야 해요. 진정 미술을 즐기려면 그 만큼의 공부가 필요해요. 갤러리와 미술관에서 제공하는 도슨트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도 있고, 미술과 관련한 강좌를 들을수도 있죠. 서점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책들도 찾아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단순히 미술작품을 보고 감상하며 느끼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지만 그것으로만 끝난다면 많은 것들을 놓치게 되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단순한 진리가 현대미술에서도 예외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기자: 전시일로 매우 바쁘시어 이메일 인터뷰를 부탁 드렸는데 전시회를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작가: <앨리스의 방>이라는 설치작으로 금호미술관 <Flatland>전시에 참여중입니다. 올해 초에 6번째 개인전이 있었습니다. 파라다이스 집(Paradise Zip)이라는 곳에서 전시했습니다.

    오래된 집을 전시장으로 변화시킨 곳이예요. 기존의 전시장, 정제된 화이트 큐브와는 또 다른 묘미를 담고 있는 곳입니다.
    오랫동안 준비했던 ‘한강예술공원’이라는 퍼블릭 프로젝트가 8월 말 오픈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제가 머무르며 작업하고 있는‘금천예술공장’ 레지던시의 오픈스튜디오와 기획전이 9월에, ‘대구예술발전소’ 기획전과 ‘한강건축상상전’ 프로젝트가 10월에 기획되어 있습니다.


    기자: 정말 바쁘시군요! 당신은 누구입니까?


    작가: 조건으로 만들어진 무엇이지 않을까요? 그 조건들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그것들에 의해 여러 특징을 가지고 있고 어떤 것을 더 좋아하고 더 싫어하는지도 있어요. 능숙한 것도 있고 미흡한 것도 많고요. 어떤 것들은 노력으로도 쉽게 바뀌지 않는데, 생각과 감정이 하루에도 수십번 바뀝니다. 이를 포함한 아주 많은 요소들이 저를 구성하겠지요. 하지만 이것들이 곧 저 자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 미세한 요소들이 늘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어요. 그러니 애초에 저는 제 자신이 누구이다, 무엇이다 정의 내릴 수 없는 절대적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제 스스로를 알 수 없는, 제가 누구인지 모르고 있는 이 상태가 저는 아주 좋아요. 역설적이게도 이 절대적 무지가 가벼운 마음으로 지금 제 앞의 순간들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니까요.


    2018. 08. 05
    조 재 영





    추서: 조재영 작가님은 여러 전시회로 매우 바빠 부득이 이메일 인터뷰를 하였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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