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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현불연재물

[2018년 10월호] 성씨의 본향 / 이원익

작성자파란연꽃|작성시간18.12.10|조회수206 목록 댓글 0


    < 부루나 칼럼 >




    성씨의 본향



    글 | 이원익 leewonik@hotmail.com

    한국 불교의 전파와 대중화에 힘을 보태려는 발원으로
    태고사를 도와 왔으며 우담바라회 회원이다. 포항에서
    태어나 경남고와 서울 문리대를 졸업했다. 오래 전에
    회사 주재원으로 와서 LA 지역에 살며 국제운송업을
    하고 있다.



    찰리 킴, 데이빗 킴, 도날드 킴, 더글라스 킴, 에밀리 킴, 조지 킴, 제이슨 킴, 어나더 제이슨 킴…, 하이고 길기도 한 김씨의 행렬이다. 우리 동네 고등학교 졸업식 장면이다. 그러다 이씨가 이어진다. 제니 리, 조나단 리, 토마스 영 리, 윌리엄 리…. 박씨는 철자가 몇 가지로 흩어져서 좀 낫다. 릴리 바크, 써니 팩, 종 에스 파크, 킴벌리 파크, 원 큐 파크…. 비슷비슷한 이름을 연거푸 부르며 지쳐 가는 나이든 곱슬머리 여선생님이 조금 불쌍해 보이기도 하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왜 이렇게 같은 성이 많나? 그것도 거의 외마디 한 글자에다가.

    세상에 가장 간단하고도 짧은 성이 아마 오(吳 O)씨가 아닌가 한다. 동그라미 하나면 되니까. 영어로 Oh 라고도 쓰는데 이리 쓰나 저리 쓰나 무슨 감탄사 같아서 그랬는지 아예 Ossi 라고 ‘씨(ssi)’를 붙인 사람도 보았다. 이민 수속관이 잘못 알아들은 착오였었나? 옛날 러시아에 이민 간 한인들 중에는 서로 김가, 이가, 박가 하며 부르다가 아예 성이 김가이(Kimgai), 리가이(Ligai), 바가이(Bagai)로 성이 굳어진 사람도 있다더만. DeYoung 이란 한국 성도 있는데 이는 아마 평안도 출신일 거다. 평안도에선 서울에 반감이 있어선지 입천장소리되기(구개음화)를 거부하고 본랫소리를 고집해서 정거장은 뎡거댱으로 남았고 정(鄭)씨는 끝까지 뎡씨였다. 그러니 받아쓰는 이민관 귀에는 DeYoung으로 들릴 수밖에.
    아무튼 한국 사람들의 성과 이름은 참 독특한데 미국 살면서 이 때문에 좀 불편도 겪고 숨기기 어려운 정체성도 드러난다. 그래서 성은 몰라도 이름은 많이 영어식으로 바꾸기도 하는데 가장 큰 핑계가 미국 사람들이 발음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반드시 맞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많은 경우 그럴싸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 도대체 이 미국사람들은 그 흔해 빠진 ‘어’와 ‘으’ 발음을 못하니 알파벳으로 이리도 써 보고 저리도 써 보고…, 우리가 이리 생고생이다. 그래서 같은 성이 갈라지기도 하고(Chung, Cheong, Chong…) 다른 성이 한 성이 되기도 한다(Sung, Song, Seung, Seong). 여기다 자음까지 얘기하자면 더 복잡해지는데 이는 독특한 음운체계를 가진 우리말에 더 책임이 있어 보인다. 같은 기역자라도 말의 첫머리에 있냐 가운데 있냐 받침으로 있냐에 따라, 우리 귀에는 안 그런데 미국사람이 듣기에는 K로도 G로도 자유자재로 들리니 어이 아니 헷갈리겠는가! 그래서 같은 김씨가 Kim 도 되고 Gim 도 되고 어떤 이는 Ghim 으로도 쓴다.
    게다가, 주소도 그렇지만, 성과 이름을 쓰는 순서부터가 거꾸로니 성 빼고 이름 먼저 손으로 쓰던 맨 처음의 당혹감을 아마 잊은 분들도 많으리라. 그리고 중간 이름은 대체 뭐며 세례명에다, 애비 이름을 그대로 갖다 쓰질 않나 씨니어니 주니 어니 1세니 2세니 하며…, 바깥세상에 어두웠던 우리 5대조 할아버지였다면 호래자식들 같으니라고 하며 어쩌면 욕지거리를 해댔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안다. 문화가 다르면 도덕도 다를 수 있음을 깊이 새기면서…, 그 역도 마찬가지. 미국은 아시아를, 한국을 이해해야 하고, 그리고 한일과 남북한사이에서도 서로 서로.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고 하면 우리 이민자를 포함하여 요즘은 본국에 있는 우리 동포들까지 거의 미국사람 다 된 것 같지마는 사람 이름 하나만 보더라도 우리 밑바탕 문화는 이민국문화와는 참으로 극과 극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을 건 참고 따를 건 따르면서 나날의 삶을 남들에 그다지 쳐지지 않게 잘 영위해 나가시는 많은 우리 재미 동포들에게 존경과 위로의 말씀을 올리기 위해서다. 참 고생 많았습니다. 그만해도 대단들 하십니다 그려.
    그리고 말이 나온 김에 좀 더 성의를 보여 성과 이름에 관련된 이야기를 더 늘어놓자면 우리가 본래 이 세상에 태어날때 그냥 사람으로 나왔지 이마에 이름 석 자를 붙이고 나오지는 않았다는 말씀이다. 곧 이름이란 문화적이며 후천적인 것으로 우리 한국 사람들이 이러한 몸뚱이로 이생에 나투기 시작한 건 수십만 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되 지금처럼 이름 석자 받아가지고 나오기 비롯한 것은 채 천년, 아니 오백년이 안되었다는 말씀이다. 여기선 편의상 한국을 우리나라라고 부른다면 우리나라가 중국식 성과 이름을 본격적으로 붙이기 시작한 건 고려 초였고 그것도 지배층 귀족에게서 그 아래 계층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선 말 갑오경장이 있기까지 이름만 있고 성이 없는 백성들도 숱하였으니 우리가 무슨 김씨 무슨 이씨 하지만 실은 임진왜란 이후 조선 후기나 말기에 급조되거나 남의 성에 묻어 들어간 이들이 상당수라는 것이다.
    본래 세계 어디에서나 사람들은 이름만 있고 성이 없었다.
    그러다 한곳에 정착한 농경민들부터 성이라는 것을 붙이기 시작했는데 이는 인구가 불어나다 보니 같은 돌쇠라도 아랫마을 돌쇠 윗마을 돌쇠, 냇가 돌쇠 우물집 돌쇠 하며 구별이 필요해서 사는 곳이 성으로 되기도 하고 직업이 분화하여 대장장이(Smith) 돌쇠, 고기잡이(Fisher) 돌쇠 하며 갈라 불렀던 것이다. 그보다 이전에 수렵채집민의 씨족생활을 할 때에는 일처다부의 모계사회라 어머니는 알아도 아버지는 잘 몰라 어미 이름을 붙여 누구 아들, 누구 딸 하고 부르니 자연히 여자의 이름이 성으로 굳어진 때가 있었다. 사실 성(姓)이란 한자도이를 반영하며 중국 고대의 성들에 계집녀(女) 변이 많은 것도 이러한 연유다. 남자는 잘 다치고 일찍 죽기가 일쑤인 소모품이라 별 볼일 없는 존재이기도 했었다. 요새도 좀 그렇지가 않나?


    일러스트: 이병익                              


    아무튼 그러다 사람들이 차차 한 곳에 집짓고 붙박이로 살게 되다 보니 아비가 누구인지도 알게 되고 농사일에는 여자보단 남자의 근력이 중시되기 시작하니 세력도 커져서 자연히 남자의 이름으로 자식을 구분하게 되었다. 이게 바로 씨앗이 누군지를 밝히는 건데 한자로도 씨(氏)라고 불렀다. 그러다 합쳐서 성씨(姓氏)라고도 하다가 완전히 부계사회로 넘어온 뒤 그냥 아비의 씨를 밝힐 때도 그냥 성(姓)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렇게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성씨가 굳어진 중국 옆에 살다 보니 그 사람들과 주거니 받거니 하게 되고 대외관계상 우리도 성을 일컬을 필요가 생겨 왕족들부터 성을 붙이기 시작한 때가 삼국시대다. 문헌에 나와 있는 고구려 백제 신라 초기의 성씨가 고작 십여 개씩이다. 그나마 대다수가 중국문명을 본격적으로 수용한 후대에 와서 꾸며서 갖다 붙인 것이고 실제로는 평소에 성을 거의 안 썼다는 것이 정설이다. 일례로 신라 진흥왕(AD540~576) 때에 세운 네 개의 순수비나 그 얼마 후의 것으로 보이는 빗돌 쪼가리에 남아 있는 몇 개의 금석문을 뜯어 읽어 보면 아찬, 파진찬, 술간 하는 관직명이나 거칠부, 마질, 굴진, 홀리 등 사람 이름이 나오는데 성을 쓴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이러다 차츰 사회의 상층부부터 이른바 중국물이 들어 중국풍으로 성을 갖다 붙이고 이름을 짓기 시작했는데 중간층이나 하층민까지 완전히 성 한 자, 이름 두 자의 중국식 성명 일색으로 통일되기까지 천 몇 백 년이 걸렸다. 물론 예외는 있다. 고려 때는 한 동안 임금부터 귀족까지 몽고 이름이 유행했었다. 충선왕은 이지르부카, 충혜왕은 부다시리, 공민왕은 빠얀티무르다. 일제강점기에는 타카키(高木), 츠키야먀(月山) 등 수많은 일본식 이름이 대다수에게 강제되거나 소수 인사들에 의해 자의로 선택되었다. 그리고 미군정기 때부터 이때도록은 사람 이름뿐만 아니라 개 이름까지 쫑(John)이니 메리(Mary)니 하며 영어 이름이 유행하고 있다. 한편 몇 십 년 전부터인가 우리 본래의 고운 이름을 되살려 버들이니 새로미니 어진이니 빛나리니 하는 이름이 심심찮게 불리는가 하더니 심지어 박차고나온노미새미나 라는 놈도 태어났다고 하더구먼.

    하지만 요새는 다시 영어 이름에 밀렸는지 이런 순한글 이름 짓기는 약간 시들해진 감도 있는데 나와 통신하는 고국의 새파란 회사 직원들은, 특히 여직원들 중엔 지니니 제니퍼니 미셸이니 하며 영어 이름 안 가진 아가씨들이 드물 정도다.
    어쨌거나 역사 이래 갖가지 과정을 거쳐 숱한 성씨들이 생겨났다 사라졌다 하며 현재의 상태로 굳어진 한국 사람들의 중국식 성과 이름은 세월이 흐르면서 중국과도 다른 몇 가지 특색을 지니게 되었는데 그 첫 번째가 성의 가짓수가 아주 적다는 것이고 그것도 몇 개의 성에 인구가 거의 다 몰려 있다는 점이다. 2003년 고국의 통계로는 김(金) 씨가 인구의 21.6%, 이(李)씨가 14.8%, 박(朴)씨가 8.5%, 최(崔)씨가 4.7%, 정(鄭)씨가 4.4% 로서 이 다섯 성이 전체의 54%를 차지하고 나머지 약 300 개 성이 46%를 차지한다. 이것도 한자로 썼을 때 그렇고 한글로 쓰면 숫자가 더 준다. 이름 부르는 우리 동네 여선생님이 고생할 만하다.
    중국은 인구가 십 몇 억이지만 현재 쓰이고 있는 성씨가 4,100개쯤 되고 그 중 많이 쓰이는 것이 100~200 개 정도는 되니 우리 하고는 사정이 다르다. 하지만 인구가 워낙 많다보니 왕(王)씨와 이(李)씨가 각각 9,200만 명 이상으로 수위를 다툰다. 일본만 해도 십만여 개의 성씨가 있는데 대성인 사토(佐藤)나 스즈키(鈴木)가 각각 180여만 명이고 자주 쓰는 성씨는 30~40개다. 한국은 남한만 해도 김씨가 천만 명이 넘는다. 일본의 경우에도 얼마 전까지 대부분의 서민들은 이름만 있었는데 성씨의 거의 대부분이 명치유신 때 개화를 하면서 급하게 지어진 것으로 산 밑에 살면 야마시타(山下), 우물 위쪽에 살면 이노우에(井上), 개 키우면 이누가이(犬養) 하는 식이다. 누가 우스개 하듯이 극심한 전쟁 후 인구부양책으로 남녀가 아무데서나 잠자리를 해서 생긴 야한 이름이 아니다.
    성씨가 몰린 유일한 예외로 중국식 성명을 쓰는 베트남이 있는데 구엔(阮Nguen 응우옌)씨가 인구의 40%다. 나머지 성들은 비교적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
    한국 성씨의 두 번째 특징으로는 대개가 성 한 자 이름 두자로 세 음절이면 땡이라는 점이다. 영어로 표기할 때는 그 순서부터 정해야 하는데 이름의 첫 음절만 쓸 것인지 두 음절을 붙일 건지 뗄 건지, 아니면 중간 이름 머리글자를 넣을 것인지 등 고민도 각양각색이다. 한국 사람 이름 중엔 간혹 성 한 자 이름 한 자도 있고 성 두 자 이름 한 자, 또는 성 두 자 이름 두 자도 있는데 남궁, 황보, 제갈, 선우, 서문, 독고, 동방 등 이러한 복성은 가짓수나 인구도 적은데 옛날 중국 등지에서 귀화한 성이 들어 있다. 최근의 일본계 귀화성에도 복성이 더러 있다.
    세 번째로는 성 마다 한 개 이상의 관향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 성의 발생지와 진짜 핏줄을 나타낸다는 것인데 이것은 겉으로는 잘 안 나타나지만 한국인을 만나서 통성명 후 좀 더 깊이 개인적 관심을 가진다면 틈을 봐서 서로 물어보는 사항이다. 이러한 본관에 따라 분류할 경우 한국인의 성씨는 수천 개로 불어나는데 그 중 가장 대성인 김해 김씨의 경우 남한만 해도 인구가 4백만이 넘는다. 거기에다가 더 깊이 들어가면 중시조를 따라 파가 갈라지고 족보를 보면 이렇게 갈라진 먼 일가라도 금방 촌수를 밝힐 수 있다. 본래 본관이 같으면 같은 성이라도 혼인을 엄격히 기피했는데 이로 인해 적지 않은 비극이 발생해기도 했지만 족외혼을 철저히 해서 피가 고루 섞이는 데도 일조를 했을 것이다. 동성금혼은 얼마 전에 법적으로는 없어졌지만 민간의 타부로는 엄연히 남아 있다.
    네 번째로는 전통 유교문화의 약화로 요새는 좀 느슨해졌지만 돌림자(항렬)에 따라 이름짓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인데 같은 세대(generation)를 나타내는 공통된 음절이 이름에 포함된다는 것은 중국에도 없는 아주 독특한 현상이다.
    때로는 어색한 일이 생길지 모르겠지만 이름만 보고 아저씨뻘인지 조카뻘인지 안다는 건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다섯 번째로는 누구나 아버지 성을 따르며 여자도 평생 자기 성을 지닌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귀천이 따로 없다. 한국사람의 성은 가문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인 부계의 혈통을 나타내고 평생 고정불변인 나의 정체성임을 보여준다. 최근에 와서 여권신장이니 이혼 가정의 문제니 해서 법적으로 어머니의 성을 따르거나 의붓아버지의 성을 따르는 것이 허용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예외적인 경우다. 일부 여권 운동가들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을 합쳐서 복성으로 부르는 경우도 있는데 일부의 비웃음을 사기도 하며 별로 세를 얻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곳 이민사회에서는 예외로서 한국 이름을 쓰더라도 미국식을 따르는 것이 대세다. 미국에서도 더러 여자가 자기 성을 고집하더라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데 그러다 보니 간혹 결혼 전 유명해진 여류 인사가 그 후에도 자기 성을 사회적으로나 법적으로 그대로 쓰기도 한다. 어느 동포 모임에 갔더니 평소에 알던 미시즈 홍이 남편을 데려와 소개를 하던데 다들 당연히 남편을 미스터 홍이라고 부르자 쑥스러워하며 자기는 사실 미스터 최라고 한다. 그러면 아내도 이제부터는 미시즈 최가 돼야 하지 않겠냐니까 업계에서 이미 그렇게 너무 알려져서 그대로 쓰기로 했단다.
    이 밖에도 몇 가지 특성이 있지만 이 정도로 하고 눈을 좀 돌려 절의 스님들은 무슨 이름을 쓰시나 보자. 본래 출가하면서 속가의 인연을 끊기로 했으므로 속명을 버리고 법명을 받는데 거기서도 가문이 정하는 돌림자를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현각, 현문, 현도, 현법, 현승 하며 같은 글자를 공유하는 스님들은 한 은사 스님 밑에서 같은 시기에 형제같은 도반으로 함께 수행했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한국불교도 중국불교를 그대로 이어받다 보니 이름도 죄다 중국식, 북방 선불교식 일색이라 어느 정도 제한된 글자 속에서 고르자니 법명이 겹치기 일쑤다. 때로는 같은 문중에서도 그러하여 누구를 가리키는지 헷갈리는지라 실무에 있어서는 할 수 없이 속가의 성을 앞에 붙여 김현각 송현문 하며 구별하기에 이르렀다. 본래는 속가의 성을 버리고 다 같은 석가모니의 자제들이니까 석(釋)’을 성 삼아서 석 현각, 석 현문 따위로 부르고 말아야 함인데 현실은 다르다. 그 뿐인가. 속세보다 더하게 문중을 앞세우기도 하며 인도에서 비롯하여 중국을 거쳐 왔다는 수십대 선맥을 일컫거나 은사와 상좌 수제자로 끈질기게 이어지는 밀착과 헌신이 놀랍기도 한데 이로써 부처님의 가르침은 면면히 이어지기도 하고 뒤틀리기도 하리라.
    이랬거나 저랬거나 이름이란 것은 우리가 노상 쓰는 것인데다 마치 내 몸의 일부인양, 아니 내 몸보다 더 소중한 나 그 자체가 돼 버린 모양새니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이름에 얽매이는 것도 일면 수긍이 간다. 어느 시인이 읊었듯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더란 말인가? 그리고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에야 그는 비로소 나에게로 와서 하나의 꽃이 되었다면 나 이원익 또한 그대가 그 이름을 불러 주지 않는다면 내가 지금 이 순간 여기 끄적이는 이 언사며 숱한 내 생각들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하지만 노자가 도덕경 첫머리에 말로써는 할 수 없는 것을 마지못해 말로써 이르기를, 길을 길이라 이르면 늘 그러한 길이 아니며 이름을 이름하면 늘 그러한 이름이 아니라고 했던가. 워낙 뼈다귀만 앙상하게 추려 남은 옛날 말이라 뒷사람들의 살 붙이는 풀이가 분분한데 이를 조금 달리 새겨 보자. 길이라 일컫는 것은 늘 길이 아니고 이름이라고 붙은 것은 늘 이름이 아니라고 해야 하나? 이는 바로 나를 이원익이라고 이름 붙여 부르는 순간 그대가 생각하고 기대했던 그런 이원익은 이미 변하거나 사라지고 없다는 그런 말씀이렷다. 여러분도 마찬가지다. 그 누가 됐건. 한 마디로 누구의 이름이든 누구의 말이든 그런 것 백프로 믿지는 말란 소리 아니오리까!
    그러니 한국이름이든 영어이름이든 김씨든 박씨든 스미스씨든 피셔씨든 소중히 가꾸시되 그거 영원한 것은 못되나이다. 너무 세상 마지막인양 매달리지는 마옵소서. 그 이전에, 김춘수 시인이 말했듯이, 누군가 그 이름을 고이 불러 주고 가꾸어 주어 소중하고도 고귀한 이만큼의 나로 꽃피었지만, 몇날 며칠 만달라를 만들어 온 티베트 스님들도 이제 마지막 순간에 이르면 그 정성들였던 형형색색의 모래알 만화경을 빗자루로 간단히 쓸어버리지를 않으시나! 그래야 또 다음 순간 어느 하늘 아래 또 다른 만달라가 꽃피듯이, 이렇게 생겨나 머물다 허물어져 사라짐은 성이나 이름은 물론이거니와 장삼이사(張三李四)로 이름지어진 우리 모두의 운명이자 본향이며 영원히 돌아가는 진리의 물레방아요 수레바퀴이나이다.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201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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