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기획연재 -미국의 여성 불교 >
[여성 불교 도서 소개]
지혜의 여인들
(Women of Wisdom)
저자: 츌트림 알리온 (Tsultrim Allione)
글 | 김지영(본지 편집위원 , 뉴욕, 뉴져지 변호사)
미국의 티벳불교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쵸얌 트룽파 링포체가 이 책의 추천사를 적었다. 추천사를 통하여 트룽파 링포체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금강승 수행자는 주로 남자라는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위대한 명상스승과 수행자였던 여성들이 많이 있었다. 이들 티벳의 여성들은 종종 남성들보다 더욱 근면하고 헌신적이었다. 이 책의 내용이 그 증거이다. 츌트림 알리온 (Tsultrim Allione)의 저서가 단순히 페미니즘류의 주장으로 여겨져서는 않된다.
이 책의 이야기의 모음들이 서구인들이 티벳불교를 이해하는데 큰 공헌을 할 것이다.
지혜의 여인들 (Women of Wisdom) 에서 저자 츌트림 알리온 (Tsultrim Allione)은 여섯명의 티벳 불교 전통의 여성 수행자 혹은 성인들의 전기를 요약하여 소개 한다. 알리온이 미국 뉴햄프셔 주에서 출생하였을 당시 그녀의 이름은 죠운 루스마니에르 유윙이었다. 외할머니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불교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1967년 인도와 네팔에 여행을 하게 됨으로서 불교에 심취하게 되고 곧 불교의 비구니가 된다. 3년 반 동안 비구니로서 티벳어를 배우고, 홀로 수행을 여러차례 마치고, 네팔과 인도의 각지의 순례여행의 경험을 한다. 그녀는 승가조직의 후원없이 티벳 불교 수행의 길을 가기로 결정, 비구니의 계를 반납하고 미국으로 돌아와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린다. 두 번의 결혼을 통해 네 명의 자녀를 출산하였다. 그 중의 한 자녀는 영아로서 세상을 떠났다.
츌트림 알리온
여섯명의 티벳의 여성 수행자의 이야기를 적기 전에 저자는 상당한 분량의 원고를 전문(Preface)과 안내(Introduction)의 장에 할애한다. 전문에서 그녀는 그녀의 불교 수행자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삶을 회고하면서 그녀가 이 책을 준비하고 출간하게 되기까지의 그녀 자신의 인생의 이야기를 적고 있다. 그녀의 이야기는 어린소녀의 이야기처럼 솔직하고 구체적이다. 읽는 이는, 마치 긴 여행길을 함께 가는 친구가 그대의 손을 꼭 잡고, 모닥불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것처럼, 편안하고도 강렬한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열게 된다. 그리고 특히 그대가 여성이라면 그녀가 들려주는 그녀의 삶의 모퉁이에서 함께 눈물을 흘리고 있을지도 모든다.
그녀의 불교에 대한 관심은 그녀의 외조모인 프란시스 루스 마니에르 듀윙 여사의 영향이 컸다. 듀윙 여사는 래드클리프대학에서 여성으로서 네 번째로 박사 학위를 받은 인물로, 35세때 결혼하기까지 유명한 웰즐리 대학, 홀리요크 대학, 스미스 대학등의 강단에서 가르쳤다. 저자가 15세때 그녀의 외할머니가 선물해 준 선불교 시집을 받으면서 그녀의 마음속에서 불교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의 싹이 텄다.
1969년 알리온 여사가 19세가 되던해 6월, 그녀는 아버님께서 인도, 캘커타에 영사로 부임하여 계신 친구 등과 함께 인도를 방문하게 된다. 영사부인인 친구 어머니께서는 당시 테레사 수녀님께서 운영하는 고아원이나 미혼모 보호소 등에 저자와 친구들을 자원봉사하도록 알선해 주었다. 영사 부인으로서는 소녀들이 이러한 모습들을 보고 신비스러운 아시아 따위의 환상에서 깨어나서 현실적인 앞날을 개척하기를 바랬을 것이라고 저자는 짐작한다. 소녀들이 다시 보내진 곳은 카트만두. 그곳에서 티벳 난민을 돕는 일의 자원봉사를 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곳에서 저자는 그녀의 불교 인생을 시작하게 하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녀들이 카트만두의 거리를 구경하면서 보게 된 곳은 “원숭이 사찰”이라고 불려지는 흰색 둥근지붕위에 금빛 첨탑이 더해진 멋진 건물이었다. 이 사찰은 당시 비위진지 오래되어서 야생원숭이들이 살고 있었기에 “원숭이 사찰”이라고 불린다고 했다. 이 원숭이 사찰의 원래 이름은 스와얌부나트 즉 “스스로 솟아올랐다” 는 뜻이라고 했다. 거대한 티벳의 탑과 몇 개의 사원들이 위치하고 있는 이 산 정상은 네팔인들과 티벳인들 모두에게 거룩한 장소로 여겨지고 있었다.
저자와 그 동무들은 그 산에 올라가려고 새벽에 출발했다.
좁고 더러운 마을 길을 지나서 다리를 건너 가파른 오르막길에 다다랐다. 수백개 의 돌계단을 오르는 동안 점점더 더워져서 소녀들은 그들이 지나쳐 가고 있던 고대의 불상들과, 기도의 깃발들과, 야생의 원숭이들을 제대로 의식하지도 않았다.
마침내 그녀들은 어마어마한 크기의 금강저앞에서 멈추었다.
이 금강저뒤로는 마치 [서양여성의 무도복] 치마를 펼쳐놓은듯이 둥근 커다란 흰색의 지붕이 있고 그 위에는 두 개의 거대한 부처의 눈이 평화로운 골짜기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저자는 이 사원의 모습에 반해서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스와얌부 언덕 근처의 티벳 사찰들에서 아침 예불과 기도를 하고 아침의 첫 티벳의 차를 마시는 시간에 맞추어서 그곳을 찾아가곤 했다. 저자는 특히 탑 옆에 있는 사찰 한 곳을 유달이 좋아 해서 그곳에 찾아가 사찰 후미의 구석에 앉아 있곤 했다 .
스와얌부나트 사원
이러한 인연을 시작으로 그녀는 스코트랜드에 있는 티벳 명상 센터에서 초얌 트룽파 링포체를 만나게 되고 그때 트룽파 링포체에게서 탄트라 불교 수행에 관하며 트룽파 링포체가 집필한 책을 받아 읽게 된다. 런던에서 카투만두로 돌아와서 스와얌부로 돌아왔을때 그녀는 뭔가의 이유로 흥분되고 안정이 않되어서 먹고 자는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었다. 당시 스와얌부에는 13년만에 카르마파 성하께서 네팔을 방문하시고 계셨기 때문에 승려들이나 수행자 그외의 종교적인 목적의 방문객의 수가 증가해 있었다. 트룽파 링포체가 준 책을 읽으면서 그녀는 문득 카르마파에 대한 계속적인 언급을 인식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그녀는 카르마파가 머물고 계신 스와얌부의 사찰로 찾아가서 꽃을 공양하면서 출가를 하고 싶다는 뜻을 밝였다. 카르마파께서는 그녀를 보고 웃으셨는데 그때 그의 눈빛은 그녀가 기억하기로 마치 그녀의 삼생을 모두 알고 계신 듯한 느낌이었다. 카르마파께서 허락하셔서 일주일 후에 부처님께서 보리수 아래에서 견성하신 장소인 보디가야에서 출가하도록 결정되었고, 1970년 1월 의 초승달이 뜨는 날 카르마파께서 주관하시고 카규파의 네명의 툴쿠가 참석한 예식을 통하여 그녀는 비구니가 되었다. 원래 승려가 되는데에는 예비의 단계가 있으나 카르마파의 직권으로 이를 모두 생략하고 그녀에게 정식승려의 계를 내려 주었다. 불교 승려로서 그녀가 받은 이름은 카르마 출트림 쵸드론. 승려가 된 그녀는 스와얌부로 옮겨서 티벳어를 공부하기로 했다. 그녀가 기거한 방은 탑 바로 옆의 나무 위의 집 으로 명상하려고 앉으면 그 자리에서 사방의 벽에 손이 닿았다. 네팔에서 일 년간 지내고 인도로 가서 시킴에서 카르마파를 친견했다. 카르마파께서는 늘 그녀를 지켜보았노라고 말씀하셨고 그녀는 그분께 매우 가깝게 느껴져서 떠나기 전날 하루종일 울기만 했을 정도였다. 카르마파를 떠나서 부다가야, 부처님께서 처음 법륜을 굴리신 사르나스, 따시종, 마날리 등으로 여행하면서 그녀는 카르마파의 존재를 계속 느꼈다. 마날리에서는 승려로서의 예비과정을 제대로 이수하기 위해 장기 명상 수행을 하기로 했다. 그 전에는 그녀는 비전통적인 방식으로 주로 틸로파의 “마하무드라의 노래”에 의지해서 명상 수행을 했었다. 당시 알게 된 서구출신의 비구니는 그녀의 명상 수행 방
식을 보고 매우 놀라면서 마하무드라는 고급단계의 수련이기 때문에 그 단계 이전에 여러가지 거쳐야 할 예비의 수행과정이 있다고 가르쳐 주었다. 그래서 그녀는 좀 더 기본적인 제도적인 불교 수행을 시작했다. 그때까지는 그녀는 카르마파와 꿈이나 비젼들을 통하여 직접 교신 하였는데 이때 이후 꿈이나 환영을 통해 카르마파와 직접 메세지를 받는 일은 거의 없어졌으나 불교에 대한 공부를 더 잘 할 수가 있었다고 회고한다.
그녀가 공부하기를 가장 좋아했던 것은 티벳불교의 위대한 스승들의 전기였다. 그녀는 그분들이 견성하기 위하여 고통을 겪으며 찾아나가는 과정의 이야기들이 그녀에게 매우 도움이 되고 고무적이라고 생각했다. 저자는 여기 저기서 여성들의 이야기들을 조금씩 발견하게 되면 여러번 되읽곤 하였으나 별반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이야기들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중요한 성인은 모두 남성이라는 무의식적인 통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 같다고 저자는 술회한다.
인도에서 2년 반을 지내고 미국으로 돌아와서 당시 스코트랜드에서 미국으로 이주하신 트룽파 링포체를 만났다. 이때 저자는 승려의 의복이 축복이기 보다는 방해가 된다고 느끼기 시작하여 트룽파 링포체와 상담했다. 트룽파 링포체는 저자에게 인도로 돌아가서 카르마파를 만나 뵙고 성하를 미국으로 초대할 것을 제안했다. 그리고 그녀가 승려를 그만 둘지 그곳에서 결정하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그녀가 인도로 돌아갔을때 시킴에서 전란이 일어나서 카르마파를 만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카르마파 성하께 초대장만 보내고 타시종으로 왔다. 타시종에서는 딘고 켄체 링포체가 여러 달에 걸친 입교식등을 주도하고 있었다. 그녀가 전에 네팔에서 만났던 명상 스승인 결혼한 수행자인 아보 링포체도 그 입교식들 중 하나에 관련하여 따시종에 와 있어서 그녀와 재회하게 되었다.
또한 그곳에서 4년 반 전에 만나서 계속 연락을 주고 받고 있던 네덜란드의 남성을 재회한다. 그녀는 4명의 자녀를 낳고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아보 링포체에게 자신이 갖게 되는 성에 대한 생각과 느낌들을 이야기 하고 승려로서의 계를 반납해야 할지 상담했다. 이때 아보 링포체는 “그야 그대가 얼마나 더 견딜수 있는가가 관건이지” 하고는 폭소를 터뜨렸는데 이때 그가 얼마나 실컷 웃었던지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그녀는 그때 스스로 맞지 않는 것을 붙들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보 링포체는 재가 신도로서도 명상 수행을 계속 해나갈수 있다고 확신을 주었다.
그 다음날 그녀는 캄트룰 링포체전에서 승려의 계를 반납하자 캄트룰 링포체는 그녀에게 비구니로서 배운 것들을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를 위하여 사용하라고 말해 주었다. 그녀는 그녀가 비구니로 있던 “처녀”로서의 기간을 매우 소중한 경험으로 생각하며 모든 여성에게 이러한 경험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처녀”로서의 시간이란 관계에서 오는 감정의 낭비 없이 남자에게 소속되지 않고 여성 혼자로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완전한 시간을 뜻한다.
승려를 그만두고 곧 그녀는 전에 알던 화란인인 폴 클로펜버그와 결혼했다. 그리고 1년내에 그녀는 어머니가 되었다. 인도에서 결혼식을 올린 그들은 시애틀 근처의 푸겟 사운드란섬에서 작은 명상센터를 열었다. 그런데 그녀는 첫 딸을 출산하고 9개월 후 다시 둘째 딸을 임신하게 되었다. 둘째를 임신했을때 섬의 비슷한 젊은 엄마들의 모임을 가지고 임신이나 자녀 양육들의 이야기를 서로 나누려고 했다. 한 번 모임을 갖고 난 후에 그 모임의 엄마들은 아기에 관한 이야기 보다 자신들의 내면의 소리들을 나누기를 원했다. 이때 그녀는 여성으로서의 경험과 여성인 동료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인도에 있을때 그녀는 그녀가 여성이라는 사실이 수행에 방해가 될까봐 걱정이었다. 그러나 이 여성들의 모임을 통해서 저자는 여성이라는 것은 짐이 아니며, 여성이기 때문에 치유하고, 판단하지 않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힘이 되어주며, 또한 여성이기 때문에 상황에 대한 직관을 가질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저자는 이때 자신이 여성이라는 사실과 다른 여성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기뻐하게 되었고 여성을 좀 더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때 저자는 티벳 불교에서 여성 수행자들의 이야기가 별반 다루어지지 않았었다는 점에 주목하였으며 이 책을 준비하여야 겠다는 착안을 하게 된다.
그녀의 첫 남편은 친절한 사람이었으나, 결혼 생활 3년 후 저자는 관계의 속박의 답답함을 느껴서 당분간 홀로 지내기로 결정, 1976년 두 딸을 데리고 보울더로 이사한다. 그곳에 있는 나로파 대학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미국 전역에 강연을 하러 다녔다. 불교사회내에서 생활하는 것이 즐겁기도 했지만 몇 년이 지나면서 그녀는 가부장적이고, 주종적이고 구조적인 조직생활에 대해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이 트룽파 링포체의 말씀을 앵무새처럼 따라하고 있을 뿐 스스로의 경험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고 느꼈다. 그녀는 자신이 초심자의 마음을 떠나서 어떤 전문가가 되어가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직내에서의 편리함을 감사하지 않을 수는 없었으나 그녀에게는 자꾸 늘어만 가는 의식과 형식들 그리고 조직에 맞추어가려는 그녀의 의식적인 노력이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서 갈등을 일으키고 있음을 느끼기 시작했고 또한 그녀의 수행도 전혀 진보하고 있지 않음을 느꼈다. 이러한 마음의 위기를 겪고 있을때 그녀는 두 번째 남편이 되는 코스탄조 알리온을 만난다. 저자가 승려시절 부터 지인이던 알리온씨는 나로파 대학의 시인들에 관한 영상을 제작하기 위해 나로파 대학을 방문한 차였다. 몇 번을 보울더와 이태리 사이로 왔다갔다 하다가 그들은 결혼해서 로마로 이주했다. 결혼하고 얼마 후 저자는 다시 임신하게 되었는데 이때를 그녀는 개인적으로 “내리막 길” 이라 표현한다.
그 당시 로마에서 살던 그녀의 곁에는 친구도 없었고, 남편은 출장이 잦아 집에 없는 날이 많아서, 로마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던 그녀가 살던 빌라에서 두 어린 딸들과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우울에 빠진 그녀 혼자 있었다. 그녀의 삶은 독립적인 생활에서 극도로 힘 없고 의존적인 상태로 변모했다. 공허의 소용돌이 같았다. 모든 것으로부터 고립된 느낌을 안고 그녀는 명상같은 것을 할 수가 없었다. 앉아서도 서서도 불편했다. 이태리에서의 출산경험은 미국 시애틀에서 그녀가 희망하는 대로 집에서 가정출산 전문인을 불러서 할 수 있었던 것과 달리 불안하고 불편했다. 이태리에서는 가정출산제도도 없었거니와 쌍둥이를 임신했기 때문에 병원에 가야 했다. 아기들이 태어나고 나서 2주 동안 인큐베이터에 들어간 아기들을 보는 것도 금지되었다. 미국인 소아과의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아기들을 데리고 퇴원했으나 두달 반쯤 지나서 쌍둥이 중 한 여아가 영아돌연사증후군으로 사망하게 되는 슬픔을 겪는다. 아기의 죽음이 그녀의 추락의 맨 밑바닥이었기에 그녀는 다시 떠오를 수 있었다. 당시 이태리를 방문중이던 남카이 노부 링포체가 아기의 장례를 집전해 주었으며, 왜 그녀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어서 모두 자신의 탓으로 느껴져서 울부짖던 그녀에게 “아기는 아기의 이유때문에 [왔다가 간것이오]” 라고 부드럽게 말해 주었다.
아기 치아라의 죽음 후에 그녀는 절망의 심연에서 다시 살아나오기 시작했다. 쉽지는 않았다. 노부 링포체와 알게 된 인연이 그녀를 다시 영적수행의 길로 되돌려 주었고 그 스승으로 인하여 그녀는 네팔에서의 초심으로 다시 시작했다. 그녀는 여성으로서 겪었던 생활과 영적인 경험을 통하여 족첸을 이해하게 되었고 또한 그녀 자신이 여성으로서의 경험이 수행자로서 했던 수행과 충돌하지 않으며 일면 또 다른 종류의 깨달음을 얻게 해 주었다고 믿는다.
알리온 그녀에게 있어서, 영성이란 그녀 내면의 섬세하고 장난스럽고 광활한 면과 연결되어 있으며 군대와 같이 조직이 짜여진 상황해서는 닫혀져 버리는 에너지이다. 바깥 세상의 형식에 그녀의 마음을 맞춰보려 할 수록 수줍은 계집아이처럼 이 미묘한 에너지는 도망 가 버린다. 그래서 그녀는 그녀의 마음의 광활함을 믿고, 그냥 두어 보며, 어깨의 힘을 빼고, 상황을 마음대로 하려고 어거지를 부리지 않기로 했다.
저자는 이 빛나는 미묘한 영적이 에너지가 “다키니”의 원형이라고 생각한다.
이 다키니야 말로 모든 사람들의 내면에 내재하는 무조건의 원초적인 상태로 이끄는 열쇠이고 문을 열어주는 자이며 인도자이다. 다키니는 상대가 그녀와 놀고 싶어하지 않거나 그녀에게 강요하거나 혹은 그녀를 부르지 않으면 그 문을 닫아두기 때문에 상대는 어둠과 무지속에 남아 있게 된다.
저자는 아기 치아라가 죽고 나서 일 년쯤 후에 캘리포니아에서 남카이 노부 링포체가 이끄는 구룹 명상에서 자신이 다키니를 만난 경험을 적고 있다. 어느날 밤 챠드 수행을 하고 있었는데, 수행이 진행됨에 따라, 수행자들의 구룹은 젊고 하안 모습의 다키니로서 마치그의 모습을 그리며 그 형상을 떠올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거칠게 생긴 노파의 형상이 그녀에게 가까이 나타났다. 그 노파 는 백발이 성성했으며 어두운 금갈색 피부에 벌거벗고 있었다. 춤을 추고 있는 그녀의 젖가슴은 추와 같이 늘어져 있었다. 방금 전 어떤 어두운 의식을 마친 참인 것 같았다. 저자에게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녀를 바라보는 그 노파의 눈빛이었다. 밝고, 장난스러운 기쁨을 섞어서 도전적으로 초대를 보내는 양보가 없는 힘과 자비의 눈빛이었다. 노파의 눈빛은 그녀에게 함께 춤을 추자고 부르고 있었다 .
그 후 저자는 이 노파의 모습이 마치그 랍드론의 형상이었음을 깨달았다. 마치그 랍드론은 여성으로 지혜의 화신이 된 수행자이다. 그녀의 젖가슴으로 아이들을 배 불리 먹였으나 그녀 자신은 전혀 길들여지지 않았다. 그녀는 두려움이 없었으나 자비로웠고, 황홀함에 차 있었으나 중심을 잡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 저자는 매일 밤 반복되는 꿈을 꾸게 된다.
새벽녘 잠에서 깨기 전에 그녀는 매일 같은 꿈을 꾸었다. 스와얌부에 가야 하는데 여러가지 장애가 있었다. 장애의 내용은 꿈 마다 달랐지만 스와얌부에 가야 한다는 주제에는 변함이 없었다. 스와얌부는 저자에게 있어서 영적인 중심의 상징이었으므로 처음에는 그 꿈들을 상징적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문득 이 꿈들이 워낙 강렬했으므로 실제로 스와얌부에 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안시옥 국제대학에 네팔에 가서 티벳의 여성수행자들의 전기를 수집하는 것을 저자의 석사논문으로 받아 줄 것을 협의하고, 1982년 3월 다시 카트만두에 도착했다. 카트만두에 도착하자 마자 스와얌부로 향했다. 그녀가 처음 카르마파를 만났던 카규파 사찰을 방문하여 옛친구들과 재회했다. 그 친구의 도움으로 마치그 랩드론의 전기를 찾고 카규 사원의 승려가 그 번역을 하게 되었다. 마치그 랩드론의 환영과 그것을 본 날 이후부터 매일 밤 나의 꿈들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사흘 낮밤을 꼬박 들여서 저자와 저자의 친구 그얄라, 그리고 번역을 하는 승려 세 사람은 마치그 랩드론의 전기를 번역했다.
저자는 스와얌부에 다녀오는 길에 카트만두 골짜기에 위치한 바우다라는 곳에 들렀다. 이곳에도 멋진 탑이 세워져 있으며 활발한 티벳 지역사회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곳에서 저자는 유드론이라는 티벳 여성을 만난다. 유드론은 최근의 티벳에서 가장 잘 알려진 여성 스승인 셔그 셉 젯순 링포체의 제자였으며 젊었을 때 셔그 셉 젯순 비구니 사원의 승려였다. 나중에 한 라마의 배우자가 되었으나 중국이 티벳을 침공하면서 헤어지게 되고 그 이후 티벳의 비즈니스맨을 만나서 그와의 사이에 두 아들을 두었다.
저자가 여성스승들의 이야기를 모으고 있다고 하자 반가워하면서 마치그 랩드론의 전기의 번역을 돕도록 그의 작은 아들을 보내 주었고, 그 일이 끝나자 그 의 큰 아들이 3년 수행차 가있는 파르핑에 저자를 데리고 갔다. 그 수행처 아수라 동굴은 바위 위에 자비로운 타라의 형상이 나타난 곳으로 유명하다. 서구인들은 이러한 기적을 믿지 않을 것이며 누군가 밤에 나와서 타라의 형상을 새겼을 것이라 추측할 지도 모든다 .
저자는 아수라 동굴 근처에 사는 랄루 라마로부터 낭사 오붐의 전기를 전달 받았다. 전에 알던 아보 링포체의 미망인을 만나러 마날리에 간 저자는 그녀의 첫 아들과 티벳어를 공부하고 있던 호주여성의 도움으로 낭사 오붐 전기를 번역했다.
이렇게 얻게된 세 분 티벳 여성 스승의 전기의 번역 초안을 들고 저자는 이태리로 돌아온다. 그 이후 1982년 11월 다시 마날리를 방문하여 드레첸 레마와 마치그 온죠의 전기를 얻었다. 이 전기는 아보 링포체의 딸인 트린레이 쵸드론과 저자가 번역했다. 이 당시 저자의 친구인 유드론이 셔그 셉 젯순 링포체의 전기를 주었으나 너무 길어서 이 책에서는 제외 되었다.
저자가 다시 인도에서 돌아온 후 매사추세츠 주 콘웨이에서 남칼 노부 링포체의 가르침을 들으러 갔었는데, 어느날 저녁, 남칼 노부 링포체가 저자에게 아유 카드로의 전기를 꺼내서 바로 이태리어로 통역하기 시작했다. 남칼 노부 링포체의 이태리어 번역본을 배리 시몬이 다시 영어로 번역했다. 이렇게 여섯분의 티벳여성수행자들의 전기가 모아져서 영어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