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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현불연재물

[2020년 4월호] 진오 스님 베트남 돕기 위한 미국 대륙횡단 탁발 마라톤 순항 / 김창송

작성자파란연꽃|작성시간20.06.21|조회수273 목록 댓글 0


    < 화제의 현장 >




    진오 스님의 베트남 돕기 위한
    미국 대륙횡단 탁발 마라톤 순항



    글 | 김창송






    진오스님은 ‘베트남 돕기’라는 구호를 들고  로스 엔젤레스에서 뉴욕의 유엔본부까지 3달 120일간 매일 50Km 씩 달리고 있다. 지난 2월 7일 L.A 헌팅턴비치를 출발하여 오는 5월 23일 뉴욕 유엔 본부에 도착할 예정이다. 총 거리는 5,255Km.  경북 구미에 있는 ‘금오종합사회복지관’ 부장으로 있는 진오스님은 본지 1월호에   보도된 인텨뷰에서 베트남 학교에 60개의 해우소(화장실)을 건립해주었는데 이것을 108개 지어주기 위한 모금을 위해, 그리고 베트남 전쟁과 관련이 있는 미국인들과 미국에 살고 있는 베트남 보트피플들에게 이 사업을 알리기 위해 대륙횡단 마라톤을 하는 것이다”라고 이 마라톤을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을 하였다. 이것은 넓은 의미에서 세계평화를 위한 마라톤이라고 볼 수 있다.
    세계평화를 위해 한국스님으로는 진오스님이 첫번째로  마라톤을 통해 대륙횡단을 시도하지만 미국에서 세계평화를 위한 스님들의 이런 시도는 여러차례 있었다. 작년에는 프라수담 티땀담오(Pra Sudham Thitadhammo)라는 태국 스님 이 걷기로 대륙횡단을 하였고, 또 오래 전에 평화의 탑을 세우고 활동하는 일본 불교계의 ‘일본산묘법사’ 계열의 많은  스님들이 평화를 위한   대륙횡단을 하였다.
    그러나 미국 불교사에 나오는 가장 역사적인  세계평화를 위한 스님의 행사는  샌프란시스코까지 한  중국인 선화선사의 미국인 제자들인  행주 스님일 것이다. 본지에서 발행한 ‘이야기  미국불교사’ 책에서 그 장면을 옮겨 소개한다.


    중국 불교도는 몇 년씩 걸려 중국 전역을 순례하며 돌아다니곤 했는데, 그 순례에는 금욕과 스스로 행하는 고행이 뒤따랐다. 금산의 비구승 행주Heng Ju는 1973년 가을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애틀까지 절을 하며 가는 순례를 행함으로써, 이 고대의 수행을 부활시켰다. 해군 잠수함 수리공 출신이며 모험심이 많은 행주는 1880년경 허운 대사께서 절을 하며 중국 대륙을 가로질러 순례하였다는 사실에 감명을 받았다. 허운 대사는 세 걸음에 한 번씩, 무릎과 팔꿈치와 이마와 손바닥을 땅에 대고 절을 하며 중국을 가로지르는 9,600킬로미터 길을 순례하였다. 이 순례는 6년이 걸렸는데, 그 순례 기간 동안 허운 대사는 자신이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일념一念의 빛과 마음의 청정함을 얻었다고 한다. (허운대사는 선화대사의 스승으로 1840년에 태어나 1959년에 입적한 120살을 산 스님이다.)




    행주가 처음 이 순례를 시도하였을 때, 그는 깊은 밤중에 아무도 모르게 금산을 빠져 나갔다. 그는 절을 하며 마켓 가街에서 금문교까지 9킬로미터가량을 걸었다. 그로 인해 교통이 막히고 경찰이 쫓아오고 결국은 지칠 대로 지쳐 다시 절로 돌아왔는데, 그는 자신이 마침내 완전히 미쳐버린 건 아닌지 의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거기에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러나 제 존재의 밑바닥까지 이르는 무엇이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다시 한번, 이번에는 화 대사의 충고와 축복을 받으며 시도했다. 그는 자신의 수양을 위해서 절하며, 그 공덕을 세계 평화에 바치기로 했다.
    비구승 행요Heng Yo가 음식과 천막이 들어 있는 짐을 메고 그를 뒤따랐다. 행주는 1973년 10월 16일 샌프란시스코를 출발하였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해가 나오나 1번 고속도로 부근의 작은 마을들을 따라, 세탁소와 술집과 학교와 쇼핑센터와 주유소를 지나갔다. 옻이 올라서 피부에는 물집이 생기고 얼굴은 까맣게 타고 무릎은 퉁퉁 부어올랐다. 처음 160킬로미터쯤이 가장 고통스러웠다. “우리는 아주 나쁜 날씨와 장비 부족에 시달렸어요. 저는 너무나 거대한 일을 시작하지는 않았는지, 세계 평화를 위해서 1,600킬로미터를 미국에서 절하며 걷는 수행이란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지요.” 처음에는 모두 다 그들의 이상한 모습(빡빡 깍은 머리, 승복, 절하는 모습)에 경악했다. 순례를 끝마쳤을 때, 행주는 이렇게 말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애틀까지 절하며 1,600킬로미터를 걷는 일은 오히려 쉬운 편이었지요.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하는 일이야말로 정말이지 어려웠어요.” 처음에 그들은 아래와 같은 글이 적힌 조그만 카드를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사람들은 적개심에 항상 시달리며 서로 싸우게 되면서 자신의 본성인 지혜의 본질을 인식하지 못하므로, 불교 승려인 달마 마스터Dharma Master 행주는 세계 평화와 화합을 위해 이 순례를 하고 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부처님과 보살과 여러 신들이 감응하셔서 폭력과 전쟁을 방지하고 세계 평화가 보호받고 유지되리라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그러나 곧 그들은 카드보다는 사람들과 개별적으로 대화하는 편이 더 낫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신문기자와, 트럭운전수와,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과, 나무꾼과, 여행자와, 그들을 체포하려는 고속도로 순찰대와,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라고 권하는 ‘새로 태어난’born-again; 복음주의, 근본주의, 오순절 교회파를 주로 가리킴 그리스도교 신자와, 지방의 몇몇 불교신자들과 대화를 나눴다. 세 걸음에 한 번 절하고 하루에 8~9킬로미터를 걷는 그들의 순례가 나아감에 따라, 신문과 텔레비전에 자주 기사와 뉴스가 실렸고, 그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누구이며 무엇을 하려는지를 알게 되었다. 순례 초기에는 차를 타고 지나가던 사람이 맥주깡통을 그들에게 던지기도 하고, 한 번은 술 취한 사람이 그들을 차로 치어버리려고도 했다. 그러나 그들이 오레곤 주의 골드비취에 도착했을 때에는 “행주와 행요를 환영합니다. 좋은 순례를 하세요”라고 쓰여진 휘장이 한 운동기구 상점 앞에 걸려 있기도 했다.
    1974년 7월 20일 토요일, 순례를 시작한 지 아홉 달 만에 행주와 행요는 1,600킬로미터에 달하는 순례를 완료했다. 시애틀에서는 화 대사와 금산의 승단과 세계 평화를 위한 모임을 기념하기 위해 모여든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맞이했다.  행주는 그가 순례를 떠나던 날 대사가 자기에게 준 글귀를 암송했다.


    하기 어려운 수행을 시도하는 것은 현자賢者의 행위요,
    참기 어려운 일을 참아내는 것이 진정한 인내다.
    시방十方의 모든 부처님들께서 이 길을 걸으셨으며,
    팔만의 보살들이 부처님 곁에서 따라갔네.
    위대한 불법의 나팔을 불어 도시를 일깨우라.
    고귀한 양철 지팡이를 흔들어 인색한 욕심을 변모시키라.
    그대의 일이 성취되어 충만한 결과를 가지고 승리의 노래 속으로 돌아오라.
    그러면 내가 그대에게 딸기파이를 주리라!



    이글을 쓰는 3월 10일에 진오스님은 대략  1,600km를 주파한 것 같다. 진오스님은 매일 페이스 북에  그날 사진을 올리면서 동선을 알리고 있다. 스님의 탁발 마라톤은  25년전  미국인 행주스님의 삼보일배 처럼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못하지만  대신  시비를 거는 사람들은 없어 보이고 환대받는 모습이다.  베트남 불교 텔레비젼과, 한국인 언론들에 보도가 나가고, 미국인들의 집에 초대를 받아 민박도 하고, 미국 원주민들도 만나고,  때로는 성당을 방문하기도 하면서 하루에 50Km를 뛰고 있다. 이 대륙횡단 마라톤을 마치면 스님의 희망대로 베트남의 학교에 108채 해우소 건립기금이 마련될 것으로 생각한다.
     5월 23일 뉴욕 유엔본부에 스님이 도착하는 날 많은 분들이 환영하러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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