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텔라의 마음공부 >
내가 소멸해가는 것을 지켜보며
글 | 스텔라 박
“번뇌를 벗어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니
고삐를 잡고 한바탕 매달릴지어다.
뼈속까지 사무치는 추위를 견디지 않고
어찌 코끝을 찌르는 매화 향기 맡을 수 있으랴.”
- 황벽선사의 '박비향'
정월대보름의 소원
지난 정월대보름 무렵, 한국에서 춤 테라피를 하는 지인으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소원우체통ㆍ
“2월26일 밤, 달집을 태우며 소원을 비는, 춤기도를 춥니다. 당신의 소원을 적어 보내 주세요. 그 소원이 이루어 지도록 춤기도를 올려드릴께요.”
박일화드려요.
소원...이라…
그녀의 문자는 나로 하여금 다시 한 번 내가 이 삶에서 성취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시간을 내어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나는 과연 이 삶에서 무엇을 원하는가…
한참을 생각하던 나는 이렇게 적어 그녀에게 보냈다.
“나라고 믿고 있던 것(에고)이 완전히 죽어 온전히 우주의 신성(불성)이 나를 통해 춤추게 되기를…”
그녀는 한복을 입고 정월대보름 휘영청 밝은 달 아래에서 나의 소원을 빌어주었다고 알려왔다.
“종이 옷 훨훨 태워 모두 다 하늘로 염원을 담아, 달집과 함께, 존재의 근원으로, 우주로 훨훨… 차를 올리고 감사를 드렸어요.”
그무렵 나는 남들이 들으면 웃을지 모르지만 나름대로 나라 믿고 있던 것들이 소멸되어감을 체험하고 있었다.
멀쩡히 일하던 방송국에서 별다른 이유도 없이 갑자기 하차하게 됐다. 마지막 방송을 마치고 난 다음 날, 방송국의 웹사이트에 실려 있던 나에 대한 소개 페이지가 사라졌다.
33년째 라디오 방송 진행을 했다. 너무 오래 일하다 보니 그 일과 나의 정체성에 대한 경계가 모호하다. 사람들은 나를 방송진행자로 기억한다. 나 역시 나를 수식하는 여러 단어 중 ‘수행자’ 다음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방송진행자’로 생각하고 있었다.
21세기에 있어 한 인간의 존재감은 실제 세계에서보다도 온라인에서 더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다. 나는 내가 진행하던 ‘저녁으로의 초대’ 프로그램 홈페이지에서 사라져버린 나의 프로필과 함께 우습게도 내가 소멸되어가는 아픔을 느꼈다.
예전에 큰 매체에서 일할 때도 남들이 나를 “XX일보” 다니는 스텔라씨라고 소개할 때면 “아닙니다. 객원기자이고 작가인데요, 지금 어쩌다 보니 제가 기고하고 있는 매체가 XX일보일 뿐입니다.”라고 정정하곤 했었다. 나를 큰 매체에 소속돼 있다는 생각으로 괜스레 뭔가 도움이라도 받을까 싶어 접근해오는 이들을 익히 봐와서였다. 뿐만 아니라 내가 세상으로부터 받을 축복의 분량보다 더 큰 것을 그 매체 덕에 받게 되기를 원치 않아서였다.
참 오랫동안 내 앞을 수식했던 ‘라디오코리아’ 진행자라는 표현이 이제 떨어져나갔다. 그게 도대체 뭐라고… 정말 아무 것도 아닌 그 표현, 그 자리이건만 가진 게 아무 것도 없는 내게 그 위치는 위안이었고 요새였었던 것을 깨달았다. 매일 버리고 내려놓는 연습을 그리 했음에도 실제의 삶이 그렇게 다가왔을 때 나는 많이 힘겨워했다. 거절받았다, 소외됐다는 느낌이었다.
고통의 끝까지 가보기
물론 “그 무엇이라고…” 하면서 발딱 일어나 오뚜기처럼 탄력성을 회복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번 기회에 절망의 나락까지 떨어져보겠다는 작전을 선택했다.
사실 난 살면서 그리 큰 절망을 느껴보지 못했고 우울감에 빠져보지도 못했다. 어쩌면 하늘이 내게 준 아주 좋은 절망의 기회이다. 그래서 나는 우울감 상실감 외로움 소외감 등을 있는 그대로 모두 느끼기로 했다.
그래서 가슴의 먹먹한 느낌, 답답한 느낌, 금방이라도 울고 싶은 느낌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봐주었다. “아, 지금 나는 아파하는구나…”라면서.
그것이 내가 아닌데… 왜 나는 이토록 아파하는가. 나는 누구인가. 약 한 달간 매일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직업, 일자리.. 그것은 항상한 것인가. 아니다. 항상하지 않은 것은 고통이요, 나라 할 만한 자성이 없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
황벽선사의 ‘박비향’
이렇게 다시 한 번 나로 존재하며 나와 고통을 동일시 하지 않는 시간을 갖던 중, 전 일지암 주지 법인스님으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번뇌를 벗어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니
고삐를 잡고 한바탕 매달릴지어다.
뼈속까지 사무치는 추위를 견디지 않고
어찌 코끝을 찌르는 매화 향기 맡을 수 있으랴.”
- 황벽선사의 '박비향'
내게 꼭 필요한 가르침은 어떠한 경로를 통해서든 내게 주어진다. 나는 이제 이 사실을 안다. 때로 그 가르침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말, 빌보드 광고, 라디오 진행자의 멘트, 유행가 가사, 야채를 싸 왔던 오래된 신문지의 기사 등 그 어떤 것을 통해서도 전해진다.
나는 지금 이 순간 내게 배달된 이 가르침에 무릎을 내려치며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고통을 업이라 여기며 윤회하는데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고통의 끝까지 들어가 고통의 실체를 해부하고, 결국 고통을 완전히 떠난 그 분, 붓다. 그를 믿고 따르는 나 그리고 수행공동체의 구성원들은 붓다처럼 번뇌를 벗어나, 열반에 이르겠다는 쉽지 않은 원을 세웠다.
열반에 도달하고 싶다는, 결코 만만치 않은 것에 대해 강한 의도를 세울 때 삶은 우리에게 그 길을 열어준다. 그리고 그 길은 때로 더 큰 고통으로 나타난다.
황벽선사의 ‘박비향’은 나로 하여금 경계에 부딪히며 고통스러울 때 그 고통에 감사하라는 가르침을 주었다. 그냥 그 고통이 일어나도록 허용해보라는 통찰이 일어난 것이다.
처음엔 당연히 무척 춥고 힘들다고 느껴진다.
그런데...
뼛속까지 사무치는 추위를 견뎌낼 때야 비로소 코끝을 찌르는 매화향기를 맡을 수 있게 된다.
추위라는 원인은 매화향기라는 결과를 연하여 일으키는 것이다. 즉 추위가 없다면 매화향기도 없다.
그러니 지금 현재의 추위는 매화향기를 가져올 원인인 것.. 어떻게 할 텐가. 추위에 저항하여 매화향기를 맡을 기회를 날려버릴 것인가. 아니면 추위에 감사할 것인가.
나는 불합리하다고 느껴지는 현재 상황에 대한 감사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에고의 소멸로 인한 고통이 있어야 진정으로 신성과 하나 된 열반이 있다. 더 이상 무슨 언어가 필요할까. 내게 이런 기회가 온 것에 온전히 감사할 뿐…
정확히 한 달 만에 나는 다른 방송국에서 일하게 됐다. 1시간짜리 오후 4시 프로그램이라 깊이 있는 얘기를 할 수는 없지만 감사함으로 받아들였다. 저녁 프로그램을 아껴주시던 분들을 위해서는 따로 유튜브 개인 방송을 하리라 마음먹는다. 어쩜 삶은 정확하게 자신의 계획을 나를 통해 실현하고 있는 것이리라.
몸이 소멸되는 체험
마음과 함께 몸을 더 건강하게 만들자, 하는 생각에 주서(Juicer)를 새로 구입했다. 과일과 야채를 많이 먹어야지 하는데 배가 하도 작아 별로 많이 먹을 수가 없어 과일과 야채의 에센스를 먹겠다는 의도로 마련한 것이다.
주말 오후, 저녁 대신 주스를 마시겠다는 생각으로 과일을 갈다가 실수로 손가락 끝의 살점이 약 2밀리미터 정도 갈려 나가는 사고를 당했다. 살점의 2밀리 정도가 떨어져나갔을 때, 아주 작은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몸으로 그 상실감이 느껴졌다. 나는 내 몸이 사라지는, 소멸해가는 느낌을 몸으로 느낀 것이다. 그 느낌은 꿈에서 바닥이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과 비슷하다. 아마도 어머니의 자궁에서 세상으로 나올 때 역시 그런 느낌이 아닐까, 싶다.
혼비백산한 나는 911에 전화를 걸었다가 예전에 발 사고 났을 때 앰뷸런스가 그리 빨리 도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손가락을 테이프로 꼭 싸매고 나는 가까운 병원의 응급실로 향했다.
나로서는 손가락이 잘려나간 엄청나게 긴박한 상황이었지만 응급실의 스탭들은 느긋했다. 그들은 피를 흘리는 나를 한참 기다리게 한 후 진료를 시작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뼈와 신경의 손상이 없었다. 그리고 천만다행으로 왼손을 다쳤다. 병원에서는 파상풍 주사를 놔줬고 엑스레이를 찍어 뼈 손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붕대를 감아주었다.
다음날 오전 내가 손가락 사고를 당했다는 걸 알고 안부 전화를 걸어주신 분은 ‘아니, 사띠 수행하는 사람이 이게 뭔 일이냐?’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말이다. 기계의 스위치를 끄고 이내 멈출 줄 알았던 성격 급한 나를 다시금 돌아봤다.
나를 죽이는 것이 황홀한 삶의 첫 걸음
최근 내게 다가온 최진석 교수는 강의 중 한 부분을 내 언어로 옮겨본다.
나를 죽이는 것이 황홀한 삶의 첫 걸음이다. 나를 꼭 죽여야 할까? 그렇다. 꼭 죽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진정으로 황홀한 삶을 살 수 없다. 나를 죽여야 진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니 “나는 누구인가?(이뭐꼬?)” 라고 자신에게 물어보라. 지금 ‘나’라고 할 때 나를 규정하는 것들, 그것은 사회에서 준 것인가, 아니면 내가 만들어낸 것인가, 스스로에게 질문해보라.
자기자신을 죽이고 나면 홀연히 드러난다. 그동안 나를 조정하고 있던 것들, 즉 보아야 하는 방식으로 세계를 보게 했던 모든 것들이… 이런 것들이 제거되어야 나와 내가 경험하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된다.
기성세대의 교육과 사회적 통념 전체를 들여다보고 반성할 수 있게 되면 그때서야 비로소 자기만의 욕망으로 새롭게 자기자신을 건설하게 된다. 이 순간을 황홀경이라고 한다.
그의 강의의 요지는 “기존의 나라고 여겼던 것들을 의심하고 ‘나 아님’을 알고 이를 진정으로 여읠 때, 참다운 나로 존재하며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된다”라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순간, 우리들의 욕망은 무얼까? 내가 누구인지 안다는 것은, 내가 누구인지 몰라서 경험하던 모든 고통을 벗어났다는 것이니, 즉 견성, 성불, 해탈, 열반이라는 얘기이고
이 상태의 특성은 아마도 ‘욕망 없음’일 것이다.
욕망이 없는 상태? 한 친구는 이런 상태에 대해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겠네.. 기운 빠진다. 우울해진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기운 빠지고 허무할 필요가 없다. 진정 내가 사라진 상태에 있으며 ‘욕망 없음’이라는 또 하나의 상을 붙잡지 않고, 그 무엇으로도 머무는 바 없이, 삶이 온전히 살아지도록 허용해보라.
“나는 황홀한 삶을 살겠다..” 가 아니라 “황홀한 삶이 나를 통해 살아진다.”
다시금 정월대보름 때의 소원이 떠오른다.
“나라고 믿고 있던 것(에고)이 완전히 죽어 온전히 우주의 신성(불성)이 나를 통해 춤추게 되기를…”
그녀의 춤 덕분인가. 일자리를 떠나고 살점이 잘려 나간 지금, 나는 예전보다 훨씬 더 나라고 믿고 있던 것들보다 우주의 신성을 따라 살고 있다고 믿고 싶다.
스텔라 박은 1980년대 말, 연세대학교에서 문헌정보학과 신학을 공부했으며 재학시절에는 학교신문인 연세춘추의 기자로 활동했다. 미국으로 건너와 지난 20년간 한인 라 디오 방송의 진행자로 활동하는 한편, 10여 년 동안 미주 한인 신문에 먹거리, 문화, 여행에 관한 글을 기고해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