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텔라의 마음공부 >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을 보고서
잘못탄 기차가 목적지에 데려다 준다
글 | 스텔라 박
“바람은 지나가려고 부는 것”
-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의 대사 중 -
간만에 드라마를 봤다. 드라마란 것이 한 번 보기 시작하면 적잖은 시간을 송두리째 바치게 되어 있는지라 어지간하면 아예 시작하질 않는다. 수행할 시간, 일할 시간, 집안 치울 시간도 부족해 매일 쩔쩔 매는 내가 어쩌자고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 손을 댔을까. 어쩌면 너무 무미건조하게 살아가는 내 내면에서 달달한 초콜릿 같은 스토리를 필요로 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삶이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지도 적잖이 궁금했다.
그렇게 해서 1편을 보기 시작했는데 요즘 한국 드라마 제작팀들의 드라마 만드는 기술이 어찌나 출중하던지 일단 시작을 하면 다음 편을 보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것이었다. 2019년 12월부터 2020년 2월까지 약 3개월간 방송됐으니 이미 밥으로 치면 식은 밥이건만 나는 간만에 식음을 전폐하지는 않았지만 짜투리 시간을 모두 투자할 만큼 드라마에 몰입했다.
재벌 상속녀와 북한 장교의 사랑
한국 드라마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구조는 남자 주인공이 재벌이고 여자 주인공은 얼굴 예쁘고 착하지만 가정형편이 좋지 않은 여성으로 그려진다. 그런데 <사랑의 불시착>은 이런 곰팡이 냄새 나는 지리한 구조를 벗어났다는 점에서 일단 참신했다.
여자 주인공인 윤세리(손예진 분)는 재벌 상속녀이자 자신의 독자적인 브랜드 세리스초이스를 개발 성공시킨 능력지존의 여성이다. 그녀는 세리스초이스의 여러 제품 가운데 익스트림 스포츠 라인을 개발, 직접 시험 패러글라이딩으로 제품을 검증하고자 한다.
하늘에 둥실 떠서 자유로움을 만끽하던 순간, 갑자기 불어닥친 돌풍으로 윤세리는 북한에 불시착하게 된다. “일 없소.”를 외치며 아무런 장식 없는 미니멀의 표현을 하는 리정혁 역의 현빈에게 손예진이라는 사랑스러운 여배우가 초승달 눈을 하며 애교를 부리는 모습도 보는 즐거움을 더했다.
남자 주인공인 리정혁(현빈 분)은 북한 장교 중대장이자 총 정치국장의 아들이다. 피아니스트를 꿈꾸며 스위스로 유학을 떠나지만 형의 사망 소식을 듣고 급하게 귀국, 이후 군인이 된다. 그러다 사고로 북녘 땅에 불시착한 윤세리를 집에 숨기는 바람에 인생이 단단히 꼬인다. 현빈을 매력적이라 생각한 적이 없던 터라, 별 기대 없이 봤다가 흠뻑 젖어들었다.
“잘못탄 기차가 목적지에 데려다 준다.”
드라마를 보면서 가슴에 공명을 일으킨 대사가 몇몇 있다.
사고로 불시착한 북한에서 남들이 눈치 채지 않게 윤세리를 남한으로 보내기 위해 리정혁은 그녀를 북조선의 스포츠 대표팀 후보 선수 중 하나로 물밑작업을 해놓는다. 여권 사진을 찍기 위해 평양을 가는 길이었다. 자동차로 가면 몇 시간 걸리지 않는 거리인데 어쩌자고 기차를 탔는지 모르겠으나 달리던 기차가 들판에 갑자기 서는 것이다. 곧 떠날 줄 알았던 기차는 무려 10시간이 넘게 정차한다. 성격 급한 또 다른 남한 사람인 구승준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면서 입이 댓발이나 나와 투덜거린다.
기막힌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서있는 윤세리에게 리정혁이 말한다.
“인도 속담에 그런 말이 있디요. 잘못탄 기차가 목적지에 데려다준다고.”
이미 달달한 사랑의 감정이 싹튼 윤세리와 리정혁은 열차가 정차한 덕에 아쉽기만 한 두 사람만의 시간을 좀더 보내게 되고 뜻하지 않은 장소에서 불을 피워놓고 옥수수도 구워먹으며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게 된다.
현재의 내 삶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 있을 수 없어… “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
우리 상식으로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고, 두 번 생각해도 진짜 모르겠는 상황. 나 역시 지난 해 9월부터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모르겠는 일들이 줄줄이 펼쳐졌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오직 모를 뿐이다.
모르면 답답하다. 왜 삶이 이런 식으로 흘러가는지 모를 때 우리들은 일단 안전지대(Comfort Zone) 안으로 숨으려 한다. 저항하는 순간 닫혔던 가슴은 허상인 에고를 지키고자 여러 장치를 꺼내든다. 본래 하나인 존재를 나와 남으로 분리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엄청난 불편함과 두려움을 느끼고, 상처받은 느낌과 분노, 실망감, 좌절감, 죄책감, 무력감, 중압감, 외로움을 느낀다. 그리고 이렇게 가슴이 닫힌 원인을 남들에게 돌린다.
하지만 조금만 높은 눈높이로 올라가 모두 보게 되면 이해한다. 그렇게 안 풀리던 퍼즐이 풀린다, 만다 할 것도 없이 그냥 사라져버린다. 내가 마음으로 지은 견고한 상이 모두 녹아내린다.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모든 상이 상 아닌 줄 알면, 삶이 꿈임을 알면 고통은 단박에 사라진다. 애쓰면 잘 되지 않는다. 정말 모든 노력을 완전히 내려놓고, 온전히 자성불에게 맡길 때 이런 마법이 일어난다. 그리고 삶은 있는 그대로 은총이다. 감사로 충만하다.
그러니 삶에서 기대치 않았던 일이 펼쳐질 때, 그 현재의 경험에 대해 저항하기보다 “아… 내가 기차를 잘못 탔구나.. 하지만 잘못된 기차가 목적지에 데려다준다니까… 지금 펼쳐지는 이 풍경을 그냥 즐겨봐… “라고 스스로에게 속삭여보면 어떨까. 그리고 그 여정의 모든 순간을 놓치지 말고 만끽해보는 거다.
“바람은 지나가려고 부는 것”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은 2부분으로 나뉜다.
첫 부분은 북한이 주요 무대이다. 리정혁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사고로 북한에 불시착한 윤세리를 남한으로 보내기 위해 고건분투한다. 그러던 중 리정혁은 윤세리를 구하려다 대신 총탄을 맞게 된다.
두번째 부분은 윤세리가 남한에 돌아오고 난 후, 남한을 무대로 펼쳐진다. 북의 조철강이란 자가 윤세리를 미끼로 리정혁과 정면대결하려는 과정 속에서 윤세리는 리정혁을 보호하기 위해 온 몸을 던져 총탄을 막아낸다. 즉 두 남녀 주인공들이 자신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생명을 아낌없이 바칠 만큼 서로를 사랑한 것이다.
이제껏 봐온 드라마, 영화, 소설, 다큐멘터리를 보면 인간이 생과 사를 오갈 때, 의식이 뚜렷하지 않을 지라도 삶속에서의 중요한 순간들이 다시금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고 한다.
제품 품질 평가를 위해 직접 패러글라이딩을 하러 갔을 때 윤세리는 이를 말리는 비서에게 이렇게 묻는다.
“실장님. 바람이 왜 부는 것 같아요. 지나가려고 부는 거에요. 머물려고 부는 게 아니고.”
그렇게 말이다. 바람은 지나가려고 부는 것이다. 좀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바람은 지나가는 것, 즉 무상, 고, 무아… 이다. 하지만 회오리 바람은 윤세리로 하여금 “진정한 사랑”과의 만남을 가능하게 한 원인이 되었다.
다시금 침상에 누운 그녀의 의식은 이렇게 회고한다.
“저게 저렇게 지나가야 내가 날아갈 수 있는 거고...당신을 만나기 위해 그 모든 일들을 처음부터 다 다시 겪는 선택… 시간을 돌려도, 백 번을 돌려도, 당신을 알고, 당신을 사랑하게 되는, 위험하고 슬픈 선택을 할 것을 난 알고 있었다. 그 선택을 해서 난 행복했어, 리정혁씨..”
우리들 삶도 그런 것 아닐까? 우리 삶에서 지나가는 수많은 회오리 바람들.. 그 바람이 원인이 되어 일어나는 결과들을 경험하고자, 그 깨달음을 경험하고자 우리는 어쩜 삶이라는 장치를 미리 마련했는지도 모른다.
졸지에 남녘에서 온 에미나이 때문에 약혼자의 마음을 빼앗기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서단이란 인물은 이런 독백을 한다. “살다가 생기는 많은 일들 중, 왜 생기는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일이 얼마나 되갔습니까?” 그렇게… 우리는 이유를 알 수 없다. 오직 모를 뿐이다. 이를 풀고자 무한 지성과 맞장 떴을 때 깜도 안 되는 우리의 머리를 달그락 거리며 돌려봐도 돌아오는 것은 “도대체 이해가 안 되는” 상황 뿐이다.
윤세리를 그윽하게 바라보는 리정혁의 눈길을 보며 모든 것에 무덤덤했었던 심장이 바르르 떨려온다. 인간들의 주의력을 빼앗아가는 드라마이지만, 풀잎들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낼 정도로 메말라 있던 심장에 비를 내려주고, 촉촉하게 적셔주고, 문을 활짝 열어주고 세상과 일체가 되게 하니 무한 감사할 뿐이다.
아름다운 침묵, 아름다운 소리
최근 리트릿을 다녀왔다. 간만에 침묵 가운데 거하고 난 후 나는 소리의 아름다움에 비로소 눈떴다. 새들의 노랫소리가 이렇게 아름다운지,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가 이토록 청아한지 깨달았다. 집에 와서 들었던 비틀즈의 “렛잇비(Let it be)”는 감동이었다.
침묵을 위한 침묵일까. 단식을 위한 단식인가. 아니…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 음식을 필요로 하고 살아가면서 소리를 접하게 된다. ‘공’을 체험한 후에는 소리도 예전의 소리가 아니다. 소리가 일어나는 침묵과 연결돼 있다 보니 일어나는 소리, 그 유한한 움직임을 있는 그대로 즐길 뿐, 그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도 집착하지도 않는다. 하루의 단식 끝에 대한 빨간색 딸기는 이 세상 그 어떤 음식보다도 향기로웠고 신들의 음식처럼 달콤했다.
모든 유한한 것들의 변화를 있는 그대로, 정말이지 있는 그대로 한 번 허용해보자. 있는 그대로 열반, 천국이다.
스텔라 박은 1980년대 말, 연세대학교에서 문헌정보학과
신학을 공부했으며 재학시절에는 학교신문인 연세춘추의
기자로 활동했다. 미국으로 건너와 지난 20년간 한인 라
디오 방송의 진행자로 활동하는 한편, 10여 년 동안 미주
한인 신문에 먹거리, 문화, 여행에 관한 글을 기고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