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 소개 >
창간 32주년 특별소개 1
서구세계에 불이법을 가르치고 있는 현자
무지 바바 (2)
글/ 스텔라 박
“사랑은 자유로운 사람 안에 산다.
(Love lives inside the one who is free.)”
- 무지
“당신 마음의 빛에 따라 살아라… 하지만 그 마음이 고요하고
텅빈 마음인지를 먼저 확인하라.
(Live by the light of your own heart… but make sure this
heart is silent and empty.)”
- 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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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의 비극이 일깨운 영성 지도자의 D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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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호에서 30대 초에 이르기까지 무지의 삶에 대해 소개했다. 그의 초창기 삶에서 가장 큰 사건이었던 체리 누나의 죽음은 ‘거리 예술가로서의 한 시대’를 접게 만든 삶의 개입이요, 은총이었다.
그의 삶의 내러티브를 바꾸는데 있어 체리 누나의 비극이 담당했던 역할은 지대했다. 그는 보통 사람들이 저항할 수밖에 없는 삶의 경험에 완전히 항복했고, 받아들였고 내려놓았다. 삶은 늘 옳다. 과거의 원인이 현재에 한치의 오차도 없이 펼쳐지는 것뿐이다. 그러니 현재와 싸우기보다 현재에 완전히 항복하고 저항을 포기할 때, 미래는 저항할 것이 사라져버린 평화로 펼쳐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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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비주의자 마이클의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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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 누나의 재판이 열렸던 1987년, 당시 33세였던 무지는 우연히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친구 마이클(Michael)을 만나게 된다. 무지는 마이클에 대해 ‘젊은 기독교 신비주의자’라는 표현을 쓰곤 했다. 그는 마이클의 겸손함과 지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깊게 이끌렸다.
그들은 함께 예수의 삶과 가르침에 대해, 그리고 오늘날 일상적 고통과 함께 살아가는 제자의 삶에 대해 매우 깊고 고무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마이클과의 영적이고 깊은 만남은 무지의 의식적인 진실 탐구의 전조이자 촉매제로 작용했다.
마이클과의 영적인 대화 끝에 무지는 마이클에게 다음에 기도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이에 마이클은 간단히 “그럼, 물론이지. 그런데 왜 지금 기도하면 안 되지?” 라고 되물었다. 그러게, 왜 지금 기도하면 안 될까.
그래서 그들은 함께 기도했다. 무지 자신은 즉각적으로 기도를 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기도의 문구들이 스스로 흘러나오는 것을 경험했다고 말한다. “내 마음 속으로 들어와 주세요. 내 마음을 완전히 채워주세요. 당신에게로 안내해 주세요.” 라는 내용의 기도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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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에의 첫 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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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를 한 후, 무지에게는 ‘살아 있는 존재’, ‘기쁨’, ‘힘’, 그리고 모든 삶에 만연한, ‘신의 실재’에 대한 첫 각성이 일어났다. 그는 자신의 존재 안에 차고 넘치는 가벼움과 평화를 경험했고, 이 떠오르는 평화와 기쁨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들고 싶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신비하고 기쁘게도 다음 날 아침 눈을 떴을 때까지, 평화와 기쁨은 그와 함께 있었다. 그리고 그 깊은 내면의 평화는 오늘날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그의 내면에 남아 있다.
존재와 합일되는 순간의 강렬한 경험은 성자들마다 다르면서도 일관성이 있다. 무지 역시 “기도” 라는 행위를 통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완전한 그 상태를 경험한 것이다. 그것이 화두와의 싸움도 아니고, 7년 면벽도 아니라, 싱겁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우리들이 만들어낸 “깨달음”에 대한 상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려 더 높은 힘의 발자취를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난 그 시점부터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을 포함해,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하찮아진 것이다.” 라고 그는 고백한다.
무지는 자신을 덮친 새로운 상태에 깊이 빠져들면서 많은 시간을 혼자 지내기 시작했다. 한동안 마이클의 방에서 열린 교회 모임에 참석하기도 했지만 오래지 않아 그곳을 떠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그 안의 더 큰 존재와 내면의 신비로운 연결됨이 계속 강력하게 꽃피고 있었다.
무지는 “나는 그리스도의 빛과 하나님의 사랑이 내 내면에 들어와 내 마음을 채운 것을 알았고, 내가 내 것이라 여겼던 과거의 삶을 그냥 걸어 나왔다. 내 존재 안에서 그동안 집착하던 것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느낌은 축복이었다. 마치 신의 무릎팍 위에 앉아, 현재의 삶을 인지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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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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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렵, 무지는 브릭스톤에 있는 지역 대학의 미술 교사로 일하고 있었는데 직장을 그만두고 자유롭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시기는 그에게 있어 매우 깊은 변화의 시간이었다. 그는 침묵했고 그의 직관적인 이해, 통찰력, 각성은 더욱 풍부해졌다.
사실, 이 3~4년간 동안 그는 어떻게 세월이 흘러갔는지에 대해 잘 기억하지 못한다. 세속적인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은 마음은 거의 없어졌다. 그리고 과거와 미래에 대한 느낌이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그는 신의 사랑에 뿌리내린 채 점점 내향적인 인간이 되어갔다.
그 시절, 무지는 여전히 다가오고 있는 개인적 성향(카르마)을 초월하기 위해 자신을 보다 높은 의식 상태로 더 빨리 인도해줄 수 있는 스승을 찾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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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킨스 서점에서 만난 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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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그는 런던 중심에 있는 유명한 영성 서점, ‘왓킨스’에 걸어 들어갔다. 책장을 펼쳐 글을 읽는 것에 마음이 기울지 않았던 그의 눈에, 고작 몇 페이지밖에 되지 않는, 아주 얇은 책 표지에 있는 평온한 얼굴 사진이 들어왔다. <나는 누구인가?: 라마나 마하르시의 가르침>이라는 제목의 소책자였다. 그러나 그가 그 책을 펼쳤을 때, 무지는 책자에서 제공된 자기 성찰의 메시지를 읽지 못하고 이내 책장을 덮어버렸다. 그 책 표지에 있던 고요한 얼굴은 다른 책에 가려지고 말았다.
그대신 <스리 라마크리슈나의 복음서> 라는 책을 집어 들었던 무지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 책의 몇몇 구절을 읽고 너무 감동해 그 말들을 다시 옮길 수조차 없었다. 라마크리슈나의 말은 내 가슴에 대고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었다. 라마크리슈나는 내가 통찰하고 있었던 거의 대부분을 확인시켜주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하게 명확히 할 만큼 충분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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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로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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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 누나는 자신의 집에 벽화를 그려준 동생 무지에게 고맙다는 의미로 돈을 주었고, 무지는 그 돈을 들고 인도 여행을 떠났다. 가능한 많은 영적 은총과 가이드에 흠뻑 젖어들겠다는 강한 충동 외에는 아무런 계획도 없었다. 이미 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사원과 사상가들을 찾아 인도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것이다. 여행을 가서도 그는 가족의 보살핌을 받고 있는 체리 누나와 계속 연락을 취했었다.
무지는 캘커타의 닥샤인스워에 있는 라마크리슈나의 집과 사원을 여행하겠다는 생각으로 델리에 도착했다. 그는 내가 요가 유학을 떠났었던 히말라야 산기슭의 도시, 리시케시에서 짧은 기간을 보내기도 했다.
리시케시에 머물고 있던 어느 날, 성스런 갠지스강 인근을 걷던 무지는 위대한 아드바이타 현자인 스리 하릴랄푼자(많은 이들이 그를 파파지로 부른다)의 헌신적인 추종자들과 우연히 조우한다. 훗날, 무지는 파파지를 만나기 위해 자신들과 함께 여행해야 한다고 그들이 주장했던 것은 우주의 신성한 조정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당시의 무지는 어떤 현인도, 스승도, 신성한 존재도 만나고 싶은 열망이 없었다. 그래서 무지는 스리푼자지가 살며 가르침을 펴고 있는 럭나우로 가는 것을 훗날로 미루고, 그대신 성스러운 도시 바라나시로 여행을 떠나 10일간을 머물렀다.
바라나시에 머물고 있던 어느 날 아침, 무지는 파파지를 방문하고 싶다는 강한 충동에 잠에서 깨어났고, 그날 곧바로 파파지가 살고 있는 럭나우 행 기차표를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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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파지와의 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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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파지를 만난 순간, 나는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내 발걸음을 인도한 것이 ‘은총’이었음을 직감했다. 캘커타로 가서 라마크리슈나의 집을 방문하고 싶다는 충동은 가라앉기 시작했다. 나는 살아있는 붓다 앞에 있었다. 럭나우에서 파파지와 함께했던 시간은 순수한 자각으로서의 ‘자아(Self)의 경험적 인식’으로 나를 이끌었다.” 무지는 파파지를 처음 만났던 순간에 대해 이렇게 회고하고 있다. 무지는 럭나우에 수개월간 머물며 파파지의 우아한 현존과 함께 했다.
이 시기에 그는 파파지의 축복과 함께, 남인도 티루반나말라이에 가서 파파지의 사부였던 스리 라마나 마하르시의 아슈람을 방문하기도 했다. 티루반나말라이에 있는 동안, 무지는 성인이었던 스리 요기 람수랏쿠마르, 그리고 그의 가장 가까운 제자인 마데와키를 만나기도 했다.
무지는 “나는 마음 속으로부터 깊은 영적 지식, 보살핌, 은총이 있는 인도 땅에 점점 정착하고 있음을 느낀다. 내게 인도는 진정 영혼의 땅이었다.” 라고 회고한다.
어느 날 아침, 무지는 다시 럭나우로 돌아가 파파지를 보고 싶다는 강한 충동으로 깨어났다. 다시 스승을 찾아가려 하는 순간, 그는 런던에서 장남인 제이슨이 바이러스성 폐렴으로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듣는다. 무지는 즉시 아들의 장례식을 준비하기 위해 런던으로 돌아와 가족과 함께 머물렀다. 그는 가슴 속에 파파지의 현존을 품고 집으로 돌아갔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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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을 파는 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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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은 자들은 존재와 합일되어 고통이 사라진 후, 하릴 없이 자연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에크하르트 톨레의 경우, 깨달음 이후, 런던의 공원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며 존재와의 합일을 즐겼다고 하고 바이런 케이티 역시 비슷한 고백을 한다. 무지 역시 그 당시 자신이 살고 있던 브릭스턴 아파트의 정원에 몇 시간 동안이나 계속해서 앉아 있었다고 털어놓는다.
그는 1년간의 여행 끝에 1994년 영국에 돌아왔다. 런던에서의 생계를 찾던 무지는 일렉트릭 애비뉴(Electric Ave.)에 있는 브릭스턴 마켓(Brixton Market)에서 향을 팔며 삶을 꾸려 가기 시작했다. 생활은 쉽지 않았지만 기쁨과 자유가 충만한 시간이었다고 그는 기억한다.
그는 또 맥도날드 빨대 속에 넣어 돌돌 말아낸 종이에 지혜의 토막글, '오늘의 생각'을 써서 사람들과 나누기를 즐겼다. 그가 쓴 ‘오늘의 생각’은 가볍지만 의미가 있었다. 그때 쓴 토막글 중 몇 개를 소개한다.
“신은 당신에게 빵을 주셨다. 토스트를 달라고 요구하지 말라. 빵으로 토스트를 만들어라.”
"당신에게는 날개가 있다. 그런데 왜 새 신발을 사러 나가는가?"
"당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을지라도, 그곳이 바로 가장 깊은 존재로 통하는 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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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은 죽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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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는 다시 한번 파파지와 함께 하기 위해 인도로 돌아가려 했다. 이미 파파지는 노쇠했기에 어쩌면 이번이 파파지의 발 아래 앉을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 될 터였다. 하지만 운명은 그로 하여금 다시 파파지의 현존 앞에 서는 것을 허용치 않았다. 무지가 런던으로 돌아온 지 한 달 뒤인 1997년 9월이었다. 한 친구가 전화를 걸어 파파지가 그의 몸을 떠났다고 알려온 것이다.
그후 누군가가 파파지의 죽음으로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를 물었을 때, 무지는 “스승은 죽지 않았습니다. 죽은 것은 한 아저씨이고, 한 사람입니다. 스승, 그 태어난 적 없는 영원한 내면의 원리는 홀로 존재하며 그것이야말로 진짜입니다.” 라며 스승을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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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숍을 찾은 추종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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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몇 년 사이에 무지의 향 판매는 현지 시장으로부터 브릭스턴 홀푸드 매장 앞쪽에 있는 작고 화려한 노점, ‘무지의 차이숍’으로 발전했다. 여기서 그는 차이(인도 차), 곰부차, ‘붉은 코뿔소(Red Rhino, 그가 만든 오리지널 건강 음료)’를 만들어 팔았다.
토요일에만 문을 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차이숍은 인기를 구가했다. 그 시절부터 그를 만나겠다고 온 이들이 여기에 있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무지를 찾아 차이샵에 들렀고,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평화와 기쁨을 알아채기 시작했다.
이 즈음부터 무지에게는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브릭스턴 힐에 있는 그의 작은 아파트에 소수의 헌신적 후원자들이 모여들었다. 그들 중 일부는 오늘날까지도 열정적으로 그를 따르고 있다.
그 시절, 무지는 빛나는 존재와 사랑에 이끌려 있었고 묵묵히 앉아 명상하는 것이 가장 행복했었다. 그렇다고 그가 후원자들에게 설법하기를 꺼렸던 것은 아니다. 그를 찾아와 함께 수행하려는 후원자들의 숫자는 결코 빠르게 늘지 않았다. 하지만 점차 그 그룹 내에서 의식의 본질은 무엇인지, 어떻게 진실(Truth)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지, 등 굵직한 주제에 대해 질문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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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상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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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찾아와 이처럼 깊은 질문을 해오는 구도자들이 증가하자, 무지는 신성을 향해 그들을 진실(Truth)로 인도할 수 있는 영감, 은총, 힘을 공급해줄 것을 간구했다. 기도 끝에 무지는 구도자들의 질문에 대해 답하는 것은 물론이고, 질문자들의 마음 속 깊이 박혀 있는, 드러나지 않는 성향(무명의 카르마)을 밖으로 끄집어냄으로써 사라지게 하는 능력을 개발하게 됐다.
그에게는 질문과 질문자 모두가 경이롭게 다가왔다. 신, 진정한 자아, 진실… 그 어떤 이름으로 부르든지 그것은 그 어느 때보다 간절히 구도자에 의해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삿상’의 탄생이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사람들은 그를 ‘무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일대일로 이야기를 나누며 타고난 지혜를 나누던 그는 이제 ‘무지’로 다시 태어난 것이 자신의 소명임을 깨달았다. “나는 사색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일이 즐겁습니다. 이는 저의 예술적 배경에서 비롯됩니다.” 라고 그는 말한다.
오늘날 그는 포르투갈에 근거지를 두고 있으며, 남쪽 언덕에 자신의 아슈람을 세웠다. 무지의 아슈람에서는 전 세계에서 온 구도자들을 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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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를 깨닫게 하는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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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는 본연의 자아로 깨어나길 원하는 모든 이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쳤다. 무지는 ‘진정한 자아’를 직접 인식하고 체험하기를 갈망하는 전 세계 구도자들과 함께 삿상을 나누고 있다. 무지는 자신이 발견한 진실을 공유하며 전 세계를 여행했지만, 포르투갈, 영국, 인도의 몬테 사하자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유튜브로 그의 삿상을 지켜보고 있자면 마치 수백명이 한 자리에 모인 가운데 실시하는 집단 테라피 세션 같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상처받은 영혼의 애타는 질문, 뜬구름 잡는 구도자의 어설픈 질문, 줄탁동시의 시점에 와 있는 자의 예리한 질문에도 무지는 전혀 동요하지 않고 고요히, 웃음을 잃지 않으며, 지혜와 사랑으로 답변해준다.
아니, 단지 답변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다시 질문자에게 질문한다. 그 질문들은 때로 질문자의 현재 처한 곳의 주소를 밝히 드러내고, 그로 하여금 자신이 아닌 것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도록 이끈다. 그의 답변에는 흔치 않은 명료함, 지혜, 동정심, 심오한 소박함이 깔려 있다.
그의 가장 놀라운 능력은 구도자들을 자아의 직접적 인식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전 세계 수천명의 추종자들이 무지바바를 진정한 마음의 주인으로 발견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그가 판단(Judgement)과 조건화(Conditioning)를 초월한,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가르침과 조언을 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가 삿상에서 사용하는 깨달음으로 가는 방법은 질문자들과의 열린 상호작용, ‘초대(The Invitation)’이다. ‘초대’는 진실하고 지속적인 자기 실현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보조 도구임이 입증되었다. ‘초대’는 또한 자유로 향하는 가장 직접적인 길이다. 무지와의 열린 상호작용은 구도자들로 하여금 무지바바의 지혜, 연민, 개방성, 유머를 느끼게 한다. 그를 만나는 사람들은 가슴 깊이 감동을 받고 그들 스스로 깊은 평화와 사랑, 고요함을 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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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바바의 존재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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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바바의 존재감은 거의 사이비 교주급이다. 사람들은 그의 발밑에 엎드리고 꽃을 바치고 손을 잡고서 흐느끼며 절을 한다. 그 강력한 존재감, 우주적인 매력은 삿상에서는 물론, 간절한 마음으로 아슈람을 찾은 모든 구도자들에게도 드러난다.
살아 있는 모든 존재들은
불멸의 자아가 구현된 것.
삶의 가장 높은 목적은
이 진실을 경험적으로 일깨우고
우리 존재의 핵심이 되게 하는 것.
깨어난 주인은
순수 의식으로 부활하도록
도와주는 산파.
- 무지바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