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달의 법문 >
뉴욕의 관음보살상
글/ 원영스님
(뉴져지 보리사 주지)
뉴욕은 항구다. 이 입구에 서 있는 자유여신상은 횃불을 높이 들고 광명을 내뿜는 모습이다. 그것은 대서양을 건너 와서, 긴 항해를 마치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안도와 희망의 모습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렇게 시작한 이민 생활자들은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
이런 노력은 태평양을 건너 온 한국의 이민자들도 그렇다. 우리는 이 자유여신상을 보면서 언론자유 종교자유 등을 실현하려고 노력한다. 자유라 함은 얽매임이 없는 것이다. 해방이다. 해탈이다. 빈곤이나 공포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자유를 이루기 위해 수많은 이민자들과 함께, 또 온 세계 사람들과 함께 노력해 오고 있다.
이제 한국을 되돌아보자. 한국은 대륙에서 튀어나온 반도이다. 저 자유여신상을 비추는 대서양의 바닷물은 돌고 돌아 태평양을 이루고, 그 바닷물이 한국을 둘러싸고 있다. 그 동서남 세 면의 바닷가에는 각각 관음보살님을 모신 절들이 있다. 동해에는 낙산사. 서해에는 보문사. 남해에는 보리암에 각각 관음보살님이 있어 그 앞바다를 오가는 이들을 지켜주고 보호해주고 있다. 긴 불교 역사 속에서 세 분의 자유 여신상이 있는 셈이다.---(낙산사 해수관음상)
불교에서는 이 세상살이가 고통바다라고 한다. 우리가 이 고통바다를 안전하게 운행해 갈수 있도록 도와주고 안내하는 큰 원력을 가진 거룩한 분들이 있다. 보살님들이시다. 특히 관세음보살님은 일천의 손을 가진 큰 힘의 보살인데, “나무관세음보살” 하면서 간절하게 부르면 즉시 나타나서 도움을 내려준다. 법화경에서는 이렇게 비유한다. 항행 중 폭풍우를 만났을 때 모두가 한 마음으로 간절하게 “나무관세음” 하면 관음보살은 반드시 응답한다.
세상의 관음보살님은 온갖 모습으로 나타난다. 법당 안에 모셔진 불보살님 모습만이 아니다. 혹은 재력있는 사람, 권세있는 사람이기도 하고, 혹은 관리이기도 하고, 일반인이기도 한다. 혹은 소년 소녀이기도 하다. 이런 가지가지 모습으로 나타나서 도와주는 사람이 모두 관세음보살이다.
관음보살의 큰 자비는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무연자비라고 한다. 그 사람의 성별에 차별하지 않는다. 신분에 막히지 않는다. 종교에 차별두지 않는다. 누구나 오직 간절한 한 마음으로 그 이름을 부르기면서 도움을 청하기만 하면 구제의 손길을 내민다.
이 고통바다에서 관음보살님을 만나면 두려움이 없어지고 평안해진다.
“그것은 시원한 물이 목마른 사람의 갈증을 없애주듯, 추운 사람이 불을 만나듯, 헐벗은 이가 옷을 얻은 듯, 상인이 물건 사 줄 사람을 만나듯, 어린 자식이 어머니를 찾은 듯, 강나루에서 배를 만난 듯, 벙 든 이가 의사를 만나듯, 어둔 밤에 등불을 만나듯, 가난한 사람이 보물을 얻은 듯, 국민들이 현명한 지도자를 만나듯. 횃불이 어둠을 없애듯 하다.”
힌국의 대표적 국가보물인 고려불화.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등에도 소장되어 있는 고려불화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분이 바로 관음보살님이다. ---(고려불화. 메트에 보관)
고려불화는 고려 후반기에 만들어졌다. 군인들이 정권을 잡고 몽고와 전쟁을 치루면서도 국가의 안전과 가문의 안녕을 염원한 마음을 나타낸 것이 바로 저 고려불화이다. 고려불화를 제작하던 그 상황은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코로나 사태라든지 세계질서의 혼돈과도 비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지금 우리는 관음보살님께 예배해야 한다.
이 고통바다에서 자비와 지혜만이 온갖 두려움을 없앨 수 있다. 관음보살을 믿는다 함은 과학적인 지식으로 인과법을 아는 것이며, 신앙적인 믿음으로 인과법을 실천하는 것이며, 경제적인 평등으로 인과법을 이룩하는 것이다. 이런 노력을 통해서 각자 마음의 힘을 키우고 또 함께 힘을 합치는 것이다. 개개인에 대한 집착심이 줄어드는 만큼 평등심이 넓어지고 자비심도 커질 것이다.
자유여신상이 저 높은 받침대 위에서 횃불을 들고 우리에게 자유의 길을 밝혀주듯. 개개인이 관음보살의 자비심으로써 보면 세상은 평등하게 보일 것이다. 이런 평등한 무연자비를 실천함으로써 더욱 넓어지고 밝아지는 자유로운 세상을 열어가도록 하자.
나무관세음보살!
원영스님은 성철큰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2002년 포교를 위해 미국에 입국하였다. 현재 뉴져지 보리사에서 수행과 포교를 하고 있다.